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마법사의 탑 (2)
“천사─드래곤 혼종이요?! 그런 게 가능해요?”
헤사벨이 경악하며 물었다.
필멸자 입장에서는 드래곤도 끔찍하고 천사도 끔찍하다. 그나마 드래곤은 전부 죽거나 외경으로 쫓겨나거나 극소수만이 천사가 되어 살아남아 전설처럼 언급될 뿐이지만, 천사는 여전히 지상을 활보하는 신의 권능을 상징하는 존재다.
엘릴은 다른 교단과 달리 드래곤을 악의 상징보다는 용맹과 지혜를 상징하는 존재처럼 여긴다. 그렇다 해도 천사를 드래곤과 합치는 시도는 아무리 엘릴이라 해도 용서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의 육신과 신성을 나눠줬기 때문에 들키지 않고 연구할 수 있었던 거지.”
오월의 검이 그랬던 것처럼, 신들은 천사를 만들기 위해 ‘영광의 불꽃’ 같은 자원을 소모해야 한다. 엘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칼루리엔은 그것을 빼돌려 자신의 유전자와 섞어 이 잡종을 만들어 냈다.
[…….]칼루리엔은 직접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아이작의 태도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것 역시 아이작이 받은 ‘임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사실 아이작은 별생각 없었다.
칼루리엔이 여기서 천사와 드래곤을 합치든, 저그와 프로토스를 합치든 아이작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만 저것을 포식했을 때의 효과가 궁금할 뿐이었다. 겸사겸사 사소한 의문점도 하나 해결하고.
아이작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말했다.
“드래곤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전부 실패했겠지. 완성본이 없는 걸 보면 알 수 있으니까. 어설프게 만든 것들은 도저히 드래곤이라고 인정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그래. 전부 육체가 무너지거나 지능이 밑바닥을 치거나 번식조차 불가능한 상태더군. 연구 끝에 드래곤 하트 없이는 드래곤이라는 종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드래곤 하트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했지…….]“그걸 신성력으로 대신하려고 했나 보지?”
이 세계에는 바라는 자에게 바라는 것을 주는 힘이 있다.
검기가, 기적이, 천사가, 신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칼루리엔이 그 신비한 힘을 드래곤 하트 대신 육신에 인위적으로 주입하려 했다. 그 결과가 저 혼종이다.
어쩌면 칼루리엔이 엘릴의 천사가 되기로 한 것도 저걸 만들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천사의 신성을 얻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저 혼종의 외형에서 볼 수 있듯, 그의 시도는 실패했다.
[그래. 덕분에 반은 우르반수스에, 반은 지상에 걸친 존재가 나타났지. 하지만 지능은 현저히 떨어졌고, 마법도 쓰지 못했다. 지능도 기껏 해봐야 말 정도일까. 가장 중요한 번식 능력도 없었고.]칼루리엔은 종의 멸절을 막아 보려고 실험을 한 것이다.
세계구급 노새를 만들려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의 실험은 실패라고 봐야 했다. 하지만 귀중한 실험 결과물을 폐기할 수도 없었고, 세상에 풀어놓아 그의 죄악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그는 결국 이것을 실험실 가장 깊은 곳에 숨겨 두었다.
아이작 일행은 마침내 지하의 바닥에 닿았다. 천사─드래곤 키메라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아이작이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댔지만 튕겨내거나 깨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칼루리엔이 만든 봉인의 쇠사슬을 살펴보니 루앗딘 열쇠로도 충분히 끊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나운가?”
[……개처럼 말하지 마라. 차분한 건 아니지.]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네카루리엘이라고 명명된 이 천사─드래곤은 물론이고 모든 키메라들은 포악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이 비밀 던전을 돌파할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그럼 네가 남긴 폐기물을 처리할 차례다, 칼루리엔.”
아이작은 칼루리엔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루앗딘 열쇠로 쇠사슬을 내려쳤다. 쇠사슬 한 가닥이 깨져나간 순간, 네카루리엘의 거체가 꿈틀거렸다. 나머지 봉인의 쇠사슬은 아이작이 건드릴 필요도 없었다.
잠에서 깨어난 네카루리엘이 몸을 털어낸 순간 쇠사슬들이 맹렬하게 빛나면서 터져나갔다.
신성과 야만 사이에서 태어난 혼종이 사나운 포효를 토해 냈다.
***
그냥 쇠사슬에 봉인되어 있을 때 잡아먹고 싶었지만, 봉인은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로부터도 보호하고 있었다. 어쨌든 네카루리엘을 잡아먹기 위해서는 봉인의 쇠사슬을 깨뜨려야만 했다.
다만 쇠사슬이 절차대로 깨지는 대신 강제로 깨져나가자, 즉시 칼루리엔이 심어놓은 저주들이 발동되었다.
쾅, 쾅, 쾅! 시커먼 안개들이 네카루리엘을 휘감아 찍어누르기 시작했다. 네카루리엘은 엄청난 무게에 짓눌린 것처럼 목을 바닥에 처박고 몸부림쳤다.
아이작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안도했다.
‘역시 여기까지는 던전 기믹 그대로군.’
실패한 실험체라도 일단 천사와 드래곤의 혼종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결과물이다. 게임 상에서조차 천사를 잡는 것이 극히 일부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이벤트라는 것을 감안하면 네카루리엘을 단독으로 잡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야 했다.
그걸 밸런스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칼루리엔의 봉인이라는 이 기믹이었다.
하지만 기믹이 있다고 손쉽게 잡을 수 있으면 히든 보스가 아니다.
‘헤사벨, 준비해라.’
아이작은 야생짐승 수준으로 전락한 피조물을 도살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네카루리엘은 맹렬한 포효를 토해내며 날개를 펼쳤다. 동시에 놈의 몸이 지워지듯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허공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위상변이(Phase shift) 능력이 있군.’
네카루리엘은 반은 드래곤 반은 천사답게 육신의 절반은 우르반수스에, 절반은 지상에 걸친 존재다. 놈은 이도 저도 아닌 존재이지만, 대신 순간적으로 원할 때마다 원하는 차원에 존재할 수 있다.
정말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잠깐 다른 공간, 우르반수스에 잠깐 몸 전체를 담근 채로 이동했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물으려면 우선 불사 교단에서 저승을 지상으로 끌어내린 불사 황제부터 붙들고 물어봐야 한다.
놈은 기다렸다는 듯 맹렬한 브레스를 토해 냈다. 칼루리엔의 유전자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답게 뇌전의 브레스였다.
콰콰콰콰쾅! 다행히 아이작은 이 뇌전 브레스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다. 그는 다급히 저 너머의 색채를 고밀도로 끌어올려 브레스를 막아냈다.
‘저격하겠습니다!’
헤사벨은 네카루리엘이 깨어난 순간부터 이미 눈치 좋게 자리를 피해 고지를 점거하고 있었다. 그녀는 붉은 깃털로 강화된 석궁을 겨냥해 네카루리엘을 향해 쏘았다.
석궁화살은 단숨에 네카루리엘의 목 주변 비늘을 벗겨 내고 박혔다.
헤사벨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녀는 눈을 겨냥했는데 네카루리엘이 그것을 알아챈 듯 피한 것이다. 그녀가 다시 화살을 쏘려 한 순간 방금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네카루리엘의 몸이 사라졌다가, 헤사벨의 코앞에서 나타났다.
네카루리엘이 날카로운 이빨로 헤사벨을 물어뜯으려 한 순간, 그녀는 붉은 탄원으로 간신히 피안개가 되어 빠져나왔다.
네카루리엘은 빠져나간 사냥감에 분노하듯 또 다시 포효를 토해냈다.
천사가 가진 기능적인 폭력과 드래곤이 가진 본능적인 폭력이 결합한 듯한 괴수였다.
‘다행히 당장 탑 밖으로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
날개 달린 짐승을 밀실에서 상대하는 것과 탁 트인 야외에서 상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놈이 탑 밖으로 빠져나가지만 않는다면 준비한 수단으로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칼루리엔이 남긴 봉인의 저주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집요하게 네카루리엘을 노렸다. 하지만 네카루리엘은 검은 안개마저 태워버리겠다는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뇌전의 브레스를 토해냈다.
훅, 쿠르르르르르!
단 한 번의 브레스였지만 비좁은 공동 안에서 터져 나오자 태풍 수백 개가 몰아치는 듯한 벼락의 폭풍이 일었다. 벼락이 여기저기 난반사되면서 튕겨 나간 탓이었다.
아이작은 저 너머의 색채에 착색된 갑옷으로 몸으로 보호했지만, 그렇다고 타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 가리지 못한 부분은 크게 그을릴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간신히 배를 채웠던 아이작은 아까운 포만감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헤사벨이 몇 번 더 화살을 쏘았다. 상대적으로 피하기 힘든, 커다란 날개 부위라도 찢으려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네카루리엘의 놀라운 특징이 하나 더 드러났다.
헤사벨의 화살은 허무하게 반투명한 날개를 관통했다.
‘화살이 그냥 지나갔어요!’
‘반투명한 부분은 우르반수스에 속한…… 뭔가 같다.’
그렇다면 이 공격은 통할 확률이 높다.
쉭, 후욱! 네카루리엘은 아이작의 공격을 비웃으며 몸을 틀었다. 아이작의 검이 향하는 위치는 네카루리엘이 반투명하게 바꾼 부위였다.
그러나 카훌린에서 피어오른 사나운 검기가 잡아 찢듯이 네칼루리엘의 날갯죽지 일부를 사납게 물어뜯었다.
“캬아아아악!”
뒤늦게 다시 모습을 드러낸 네카루리엘이 사납게 포효하며 추락했다. 그리고 벽에 발톱을 박고 긴 상흔을 남기며 미끄러져 내렸다.
아이작은 그 모습으로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고 판단했다.
‘역시 영혼 포식 특전에 상처를 입는군.’
네카루리엘은 우르반수스로 완전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성질만을 그곳에 맞출 뿐이다. 덕분에 영혼 포식 특전이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점은 제법 고무적이었다.
검기는 언데드를 파괴하는 데 유용하지만, 영혼이 도망치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영혼만 있으면 언데드들은 어떻게든 빠져나와 이것저것 기워놓은 잡동사니 같은 육신으로 반항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영혼을 상처입힐 수 있다면, 그 속도는 훨씬 느려질 것이다.
하지만 검기에 묻은 영혼의 파편 정도로는 기별도 가지 않는 거지 알림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전부 먹어 치울 생각으로 왔다. 영혼의 일부 정도로 만족할 생각 따윈 없었다.
네카루리엘은 상처에 분노한 듯 아이작을 향해 또 한 번 브레스를 토해 냈다. 같은 패턴인가 했지만 이번에 놈은 영악하게도 온 사방에 번개를 토해 냈다. 번개가 난반사되는 것을 노리고 패턴을 예측할 수 없게 아예 공간 전체를 뒤덮어 버린 것이다. 저걸 맞으면 절연체고 자시고 튀겨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네카루리엘의 번개는 아이작보다 느렸다.
카훌린에 새겨진 룬 문자들이 빛났다.
하루 세 번 허용된 초가속 능력이 순간적으로 아이작의 몸을 뜨겁게 불태웠다.
아이작은 브레스를 뿜어내기도 전에 네카루리엘의 배후에 착지했다. 그 자신도 인식조차 하기 어려운 가속 때문에 무릎이 꺾일 뻔했다.
아이작은 그 빠른 속도에 아찔해졌다.
‘특별히 빨리 달리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카훌린의 가속 능력은 단순히 몸을 민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작의 시간 자체를 빠르게 만들었다. 덕분에 아이작은 평범하게 달려도 몇 배의 속도로 뛸 수 있었다. 물론 그의 몸에 가해지는 운동량도 몇 배다.
‘이거 함부로 쓰다가는 자폭기가 되겠군.’
하지만 익숙해진다면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다. 이 속도로 뛰어오른다면 평소보다 훨씬 더 높게 뛰어오를 수도 있을 테니까. 아이작은 빠른 속도를 활용하여 그대로 회전, 네카루리엘의 뒷 허벅지를 베었다.
또 다시 고통어린 포효가 터져 나왔다. 아이작은 네카루리엘이 위상변이를 하기 전에 재빨리 상처 부위에 왼손을 찔러넣었다. 저 너머의 기생충들이 우르르 상처 안으로 파고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본 시도였지만, 네카루리엘이 위상변이를 통해 도망친 순간 기생충들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역시 안 되는군.’
네카루리엘을 길들이거나 자기 편으로 삼을 수 있다면 시도해볼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저 위상변이 능력 때문에 저 너머의 기생충이 전혀 먹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먹어 치울 뿐이다.
아이작의 전투를 지켜보던 칼루리엔이 중얼거렸다.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있는 것 같군.]“전혀.”
아이작은 왼손에서 촉수를 꺼내 들며 말했다.
“말했지만, 나는 여기 싸우러 온 게 아니야. 식사하러 온 거지.”
아이작은 네카루리엘을 상대로 새로 얻은 능력을 하나하나 시험해 보고 있을 뿐이었다.
네카루리엘은 아이작이 위험한 상대라는 것을 인식한 듯 도망칠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봉인을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칼루리엔은 녀석이 말 정도의 지능이 있다고 했지만, 사실 말 정도면 대단히 똑똑한 짐승이다.
그 사이, 검은 안개가 다시 녀석을 사로잡으려 했다.
네카루리엘은 다시 위상변이를 통해 위치를 이동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혼돈의 눈을 통해 미리 어디로 이동할지 알아낸 아이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작은 죽은 자의 손으로 놈의 날갯죽지를 움켜쥐었다. 네카루리엘은 기겁하며 다시 위상변이를 하려 했지만, 영혼마저 붙잡는 죽은 자의 손은 네카루리엘의 위상변이를 방해했다.
위상변이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놈은 당황한 듯 날개를 퍼덕였다.
아이작의 왼손이 단숨에 놈의 목덜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