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35)
235화. 심연을 들여다볼 때 (1)
아이작은 속삭이는 밤이 폭주하다가 굳어 버린 촉수 가까이 다가갔다.
촉수는 나무뿌리가 뒤엉킨 기둥처럼 변해 있었다. 가볍게 칼을 휘두르자, 부드러운 재 덩이처럼 흩어져 무너져내렸다. 백사병이 발병하면 나타나는 하얀 모래와 같은 성분처럼 보였다.
아이작은 무너진 잿더미 사이를 칼로 헤집자 안에서 무언가 닿았다.
두개골처럼 창백한 수도승의 얼굴이 가면 형태로 남아 있었다. 하관은 문어 다리처럼 뒤엉켜 기괴하게 변질되어 있었다.
애당초 수도승의 얼굴이라고 생각했던 부분 역시 가면이었을 확률이 높았다.
‘클레르와 그 일당들도 가면을 쓰고 의식을 진행했었지. 이름 없는 혼돈의 사제들은 가면을 쓰는 게 일반적이라 이 녀석도 가면을 얼굴로 삼았던 모양이군.’
살펴보니 평범한 가면도 아니었다.
[기어 오는 공포(A+)] [공포는 결코 떳떳하게 서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일상의 음울하고 불길한 형태로 기어 오다가, 어느 날 당신의 문 앞에, 벽 모퉁이에, 침대 머리맡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착용하면 사념파를 통해 대화할 수 있으며, 착용자보다 격이 낮은 상대는 공포감을 느낀다.]‘이건 쓸모 있겠군.’
아이작은 내심 반가움을 느꼈다.
얼굴이 지나치게 많이 팔린 탓에 가면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 중이었기 때문이다. 위압감을 주는 외형도 마음에 들었다. 그는 어색하지 않게 증거품을 수집하는 척 가면을 집어 갑옷 안에 숨겼다.
“끝났나요?”
이솔데가 어쩐지 다소 지친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아이작은 고개를 돌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어린 사제들을 둘러보았다.
“진짜는 이제부터죠.”
***
클레르와 그 일당들을 교단에 고발하거나 이 자리에서 목을 쳐 버리면 수습은 간단하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와 목격자까지 있으니까.
교단이 잡아가서 약간 겁만 줘도 녀석들은 술술 자백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녀석들은 반드시 화형대에 매달린다. 아이작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동정심 때문이 아니라, 녀석들도 이용당한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 의식에 관한 자료는 어디서 얻었나?”
아이작과 이솔데는 클레르 일당들을 바닥에 무릎 꿇려 놓고 심문을 시작했다. 녀석들은 아이작이 대체 어떻게 자신들을 정확한 타이밍에 찾아 괴물을 토벌했는지 궁금해하지도 못했다.
원래 성배기사는 영험한 존재니까.
“이, 이 지하 묘역에서 저희가 찾아냈습니다.”
예상했던 답변이지만 아이작이 바라는 답변은 아니었다. 아이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너희는 그럴 능력이 없다. 이 깊은 지하 묘역, 정확한 자료, 의식 절차, 제물을 위한 재료 조달, 고어로 적힌 문서를 해독하는 것까지, 어설프긴 했지만 너희들이 몇 달 노력한다고 해낼 수 있는 의식이 아니야. 너희를 도와준 놈이 있다. 그놈을 말해.”
아이작은 이번 사건이 클레르 일당들끼리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기엔 이놈들은 너무 어설프고 무능했다.
물론 또래 사제들 중에는 똘똘한 편에 속할 테지만 이건 그 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불사 교단이 암암리에 자료를 풀었거나, 정말 생존한 사교도가 있어서 은밀하게 조장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클레르와 친구들은 당황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이작은 그런 그들을 혼돈의 눈으로 주시했다. 정신없이 오가는 눈짓과 표정 속에서 그들의 내면의 진심을 알아내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저, 정말로 저희들끼리 찾아낸 정보인데…….”
아이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놈들은 정말로 자기들이 속은 줄도 모르고 있었다.
“누가 너희에게 지하 묘역에 들어가 보라고 부추겼지?”
아이작이 힌트를 주고서야 그들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제야 클레르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카, 카밀 추기경님께서 저희에게 납골당 관리를 맡기시긴 했는데…….”
카밀 추기경? 아이작은 그에게 임무를 맡긴 고위 사제의 이름이 나오자 입을 다물었다. 아이작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른 질문도 던졌다.
“혹시 올빼미의 가르침에 대해 알려준 것도 카밀 추기경님이신가?”
“어, 으음, 네. 맞습니다.”
클레르는 대답하면서도 아이작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카밀과 이 의식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혹시라도 아이작이 오해할까 봐 걱정된다는 듯 조심스레 말했다.
“저, 성배기사님. 카밀 추기경님은 제 조모님 되시기도 합니다. 어디까지나 저희를 믿고 묘역 관리를 맡기셨을 뿐, 그분께서 지하로 내려가라거나 이 의식에 관련된 정보를 암시하거나 하신 적은 없으십니다. 고위직이면서도 ‘신 교리’에 관심을 가지실 정도로 깨어있으신 분이기도 하시고요.”
클레르의 말은 단순히 자신의 할머니라서 편든다기보다 정말 존경해서 하는 말 같았다.
교단 상부는 전부 부패한 꼰대인 것처럼 말하던 사제치고는 새삼스러운 모습이었으나, 그들이 카밀로부터 올빼미의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놀라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카밀 추기경이 교단에서도 극도로 정치적인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면 굳이 그런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었다.
추기경쯤 되는 인물이라면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정치적 행위라고 봐야 했다.
아이작의 머릿속에서 뭔가 태엽이 맞물리며 돌아가듯 퍼즐이 짜 맞춰지고 있었다.
‘이름 없는 혼돈, 어린 사제들, 신 교리, 올빼미의 가르침, 성배기사…… 설마 나를 엮으려고 한 건가?’
아이작은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최근 교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성이다. 이교의 천사도 쫓아내고, 성자의 지위도 받아내고, 그를 후원하는 주교가 추기경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으며, 최근에는 엘릴의 대전사라는 인정까지 받아 왔다.
그런데 그런 성배기사가 떠들어댄 말 몇 마디가 어린 사제들 사이에서 ‘신 교리’라는 이름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교단에서도 탐탁잖게 여기는 ‘올빼미의 가르침’과도 유사한 부분들이 많다.
때마침 성배기사가 울텐하임에 입성했고, 카밀 추기경은 교단 안에 있던 어리석은 어린 사제들을 성배기사와 엮어 보기로 했다. 아이작이 퍼뜨린 ‘신 교리’라는 것이 이름 없는 혼돈과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퍼뜨려서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성배기사는 약점을 잡히고, 그의 기세 역시 꺾이고, 교단은 성배기사의 고삐를 잡는다.
성배기사를 빼면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는 결말.
물론 이것은 추정일 뿐이다.
의심병에 사로잡힌 아이작이 터무니없는 추측을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카밀 추기경이 왜 어린 사제들에게 이름 없는 혼돈에 관한 자료를 퍼뜨리고 방관하고 있었는지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일단 이건 카밀에게 따져야겠군. 감히 내가 잘나간다는 이유로 이름 없는 혼돈과 관련되어 있다는 터무니 없는 누명을 씌우려고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뭔가 이상한 것 같았지만, 아이작은 일단 사악한 추기경의 음모에 대해 분노하기로 했다.
어쨌든 배후를 알아냈으니 이 사제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해야 했다.
아이작은 클레르를 다시 돌아보았다.
의식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아이작에게 영혼까지 넘기겠다고 선언한 어린 사제들은 이제 훌륭한 이름 없는 혼돈의 사교도이자 배교자였다.
당장 언제 천벌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그들에게 아이작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 너희는 다시 살아서 교단으로 돌아가기 힘들 것 같다.”
안 그래도 창백하던 사제들의 얼굴이 더더욱 새하얗게 변했다. 그중 한 명은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아이작은 겁을 주려던 게 아니라 대처할 방법을 알려 주려던 것이기 때문에 일단 쓰러진 사제를 발로 차서 깨웠다.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들어. 너희들 진의가 어땠고 가문이 고결하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사제라서 더 엄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거야.”
사제나 성기사는 그 사회적 지위가 높은 만큼 어지간한 죄는 눈감아 준다. 하지만 그런 성직자들이기에 더욱 용서받지 못할, 일반인의 몇 배로 처벌받아야 할 범죄가 바로 이단과 배교 행위였다.
여명군이 코앞인 상황에서 ‘연구 목적’이라는 핑계가 통할 리가 없다.
“이제 너희가 용서받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뭐, 뭡니까……?”
“우선 여기서 도망쳐라. 내가 피신할 장소를 제공할 테니 한동안 은거하면서 교단에서 찾아 죽이기 아까울 만큼 공을 세워라. 다행히 서품받지 않은 성직자라 천벌이 직접 찾아오진 않을 거다.”
아이작의 말에 사제들은 휘청거렸다.
대체 무슨 공을 세워야 배교 행위를 용서받고 살아남는단 말인가.
하지만 아이작이 말한 방법은 바로 그 자신이 택한 길이었다.
빛의 법전 교단 안에 기생하면서, 쓸모 있는 존재로 인정받고, 잘라 내면 교단 또한 살점을 잘라 내는 것만큼 아프도록 단단하게 들러붙는 것.
“저, 그,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일단 이 사건으로 인한 공식적인 피해자는 없으니 묻어두겠다. 너희가 먹고 입고 잘 곳도 내가 마련할 테니, 일단 지시를 따르도록.”
아이작이 책임지고 돌보겠다고 하자 사제들은 눈시울을 적시면서도 안도하는 눈치였다. 명망 높은 성배기사가 직접 가르치고 돌본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충분한 속죄 행사로 느껴지는 듯했다. 그 성배기사가 이름 없는 혼돈의 대리인일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쓸모 있는 사교도로 키워주마.’
옛말에 상대가 당신을 이유 없이 미워하면 그 이유를 만들어 주라고 했다.
카밀이 아이작에게 이름 없는 혼돈과 관련됐다는 누명(?)을 씌워줬으니, 그녀가 바라는 대로 이름 없는 혼돈의 사제들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
아이작은 클레르 일당을 울텐하임 외곽에서 헤사벨에게 인계했다.
경비병들은 사제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검문도 하지 않았다. 아이작은 그들에게 여비를 쥐여주고 이사크레아 영지로 가도록 지시했다.
일부러 충분한 여비를 주지는 않았다. 대신 가면서 살기 좋던 울텐하임에서 물든 도련님 때가 쏙 빠지길 기대했다. 고생 좀 하겠지만 게르토니아 영토 안에서 사제들이 굶어 죽을 일은 없다.
자존심만 좀 내려놓으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선을 베풀 테니까.
아이작은 클레르 일당을 보낸 뒤 다시 울텐하임 성당으로 향했다.
“사실상 제가 멋대로 범죄자들을 처분한 셈인데 괜찮나요?”
가는 길에 아이작이 묻자, 이솔데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미수에 그쳤으니 죽을 죄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막이 교단에 밝혀졌다면 반드시 죽었겠지요. 누군가 죽지 않고도 속죄하고 잘못을 돌이킬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솔데의 생각이 자신과 맞는 것 같아 아이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물론 그녀처럼 고결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최선의 결과를 찾아냈다고는 생각하니까.
“그러고 보니 그 혼돈의 괴물이 당신을 공격했을 때 제법 놀란 것 같았습니다. 혹시 뭘 본 건가요?”
아이작의 질문에 이솔데는 움찔했다. 그녀는 대답을 고민하는 듯 하다가 가슴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놈의 목구멍 안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이 보이더군요. 그 심장이 마치 기생충처럼 몸을 장악해서 그 외의 몸통은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습니다.”
아이작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이솔데는 붉은 살점의 선지자의 심장을 흡수했다. 천사의 힘을 삼킨 셈이지만,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저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천사의 심장을 삼키고도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그런 마음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 힘을 완전히 쓰게 되면 붉은 살점의 선지자에게 장악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이작은 그런 그녀에게 과하게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말하려던 찰나, 이솔데도 물었다.
“놈이 죽으면서 거대한 촉수 형태로 바뀌어서 죽더군요. 혹시 그건 아이작이 가지고 있는 공포인가요?”
아이작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이솔데에게 이래라저래라 떠들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작이 언젠가 스스로의 몸을 뚫고 촉수가 범람해 세상을 뒤덮을 것을 걱정하는 것처럼, 이솔데 역시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심장이 어느새 자신을 장악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뿐이다.
괴물을 몸에 품은 둘은 아무 말 없이 나란히 길을 걸었다.
“음, 저는 카밀 추기경에게 사건에 대해 보고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신학대학 학생들이 우르르 사라졌으니 의아해하시겠지요.”
이솔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방 먹여주세요. 아이작.”
교단은 아이작을 얽어매려 했지만, 이것은 교단의 약점을 잡으려던 이솔데에게도 귀중한 단서가 되었다.
하지만 그 정보는 지금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처신할지도 아이작의 몫이었고.
아이작은 울텐하임 성당으로 향했다.
과연 어느 쪽이 괴물인지는 아직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