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심연을 들여다볼 때 (4)
울텐하임 성당 한복판에서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수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괴물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하얀 모래가 되어 무너져 내렸지만, 소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워낙에 큰 괴물인 데다, 괴성을 듣고 깨어난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게다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성당의 흔적은 지우려야 지울 수도 없었다.
여명군을 앞둔 이때 빛의 법전 성당 안에서 흉흉한 일이 일어났으니 소문은 일파만파 커졌고, 당연히 울텐하임 성당에서 일어난 사건은 황제의 귀에도 들어갔다.
“사제들은 기도하는 백목(白木)이라고 부르더군.”
발트제메르는 걱정 반, 웃음 반 섞인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작은 ‘구시가지의 괴물’보다 훨씬 그럴싸하게 붙은 이름을 듣고 어이없는 표정을 했다.
“성당의 사제들이 그 사건에 대해 입 밖에 내지도 못하게 하고 있으니 에둘러 말하는 별명이 붙은 모양이야. 생김새를 따서 붙였다는데 나도 그 모습이 궁금하긴 하군. 어땠나?”
아이작도 이 사건의 중심, 그것도 문제를 해결한 당사자였기 때문에 황제의 부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하반신이 땅에 붙고 팔다리 많은 흉측한 할망구였습니다.”
“할망구? 여성형이었나보군. 그건 못 들었는데.”
아이작은 아차 싶어서 말을 돌렸다.
“그런데 교단이 쉬쉬하다니 의외군요. 사교도의 테러 행위가 분명하니 오히려 열 올라서 선전할 줄 알았습니다만. 겸사겸사 수도 방위 상태에 대한 지적질도 좀 하고.”
“아, 그게 조금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긴 하더군.”
발트제메르는 재밌다는 듯 손가락을 부딪치며 말을 이었다.
“그 괴물의 정체가…… 바로 카밀 추기경이었다는 걸세.”
“허, 아니, 저런,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아이작은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몰랐다는 듯, 세상에서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를 처음 들은 사람처럼 놀라워했다. 조금 과하다 싶은 모습에 발트제메르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말을 이어갔다.
“듣자 하니 이번 사태 때 실종된 사제들이 몇 명 있는데, 카밀 추기경도 그중에 포함되어 있다더군. 잔해 밑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고. 특히 기도하는 백목의 사체에서…… 카밀 추기경이 사용하던 법구 몇 가지가 발견되었다는 걸세.”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혹시 불사 교단의 사제가 카밀 추기경을 덮쳐서 빼앗은 것이거나, 카밀 추기경을 변질시킨 게 아닐까요?”
“물론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겠지. 하지만 불사 교단원에게 수도 방어를 뚫고, 성당의 가호도 뚫고, 성기사단의 눈도 피하고, 추기경을 보호한 기적과 성물도 뚫고 그런 짓을 할 능력이 있다면 나는 여명군 원정을 포기할걸세. 그런 놈들과 싸우는 건 미친 짓이야.”
발트제메르는 아이작이 농담한다고 생각하는 듯 진지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뭣보다 다른 게 문제네. 듣자 하니 이솔데 수사관의 말로는 카밀 추기경의 방에서 이름 없는 혼돈과 관련된 자료가 다수 발견됐다더군. 카밀 추기경이 사교도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사실 아이작은 카밀의 집무실에 가서 이름 없는 혼돈에 대한 자료들을 던져 놓고 올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눈에 띄는 짓일 거 같아서 참았는데, 역시나 그녀가 보관하고 있던 자료는 아이작이 발견한 게 전부가 아니었다.
카밀이 살아있다면 모를까, 죽었다면 그녀를 질투하고 그 자리를 노리던 다른 사제들이 비밀을 드러내고도 남았다. 빛의 법전 교단이 이번 사건을 숨기는 것은 괴물이 성당 한복판에 나타난 것보다 추기경이 사교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날까 봐서였다.
이건 보통 추문이 아니었으니까.
“심각한 일이군요.”
“그래. 교단의 부패가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이건 선을 넘었지.”
황제는 즐거움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카밀의 실종, 죽음이 교단에 타격을 주었을까?
교단의 적들에게는 애석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교단은 철저한 계급제로 돌아간다. 계급에 맞는 기적, 기적에 맞는 계급이 부여된다. 거기에 개인적인 신앙심은 기적의 강도 정도에나 관여할 뿐, 가짓수나 다양함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추기경 정도 되는 고위 사제조차도 그 밑의 사제를 승급시키면 대신할 수 있다. 부품을 갈아 끼우듯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다.
추기경 한 명이 부족하다는 것은 추기경 한 명만큼의 전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며, 교단은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서둘러 추기경을 임명하고 사건을 종료시킬 것이다.
이것은 빛의 법전 교단이 가진 고질적인 부패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힘이자 체력이기도 했다. 교단은 이 정교한 계급제 덕분에 갑자기 자리가 비더라도 살아있는 생물처럼 튼튼하고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교단은 조만간 추기경을 새로 임명할 것 같더군.”
하지만 황제는 그 시스템을 역이용할 생각이었다.
빈자리에 자신의 편을 꽂아 넣는 것이다. 추기경 한 명을 매수하는 것보다 자기편을 빈자리에 꽂아 넣는 것이 더 싸고 쉬운 일이었으니까. 아이작은 염두에 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려다가 관두기로 했다. 후안 같은 인물이 또 생긴다고 생각하면 넌더리가 났다.
하지만 구시가지를 초토화할 수도 있는 실험을 하고 자기 손자도 위험에 내던지는 미친 광신도 보다는 돈 밝히는 돼지가 낫다.
아이작은 황제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했다.
***
성당에서의 일이 설마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지만, 이번 사건은 아이작의 내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지금까지 아이작은 최대한 눈에 띄지 않고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살아왔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카밀을 만날 때까지만 해도 그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조금 화를 내고 협박할 수는 있어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고 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불과 하루 전의 아이작에게 ‘너는 추기경을 괴물로 바꾼 다음 살해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미친놈인가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카밀은 그런 그에게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간 결국 괴물과 한편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교단 안에 내 파벌이 있다, 이거지.’
카밀은 그를 협박한답시고 말했겠지만, 그녀의 말은 아이작에게 힌트가 되었다.
빛의 법전 안에 아이작의 ‘신교리’에 찬동하는 세력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올빼미의 교리가 이름 없는 혼돈을 섬기는 조직의 뿌리가 되었다고?
유감스럽지만 그건 아이작의 전략이 성공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제부터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겠어.’
아직 두드러지는 조직력을 갖추진 않은 것 같지만, 이는 아이작이 계획했던 바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올빼미의 가르침이라는 외경이 모태가 되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아이작이 다소 폭주하더라도 비호해 줄 세력이 교단 안에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천사는 쓸모 있다고 눈감아 준다. 젊은 사제들은 자신에게 환호한다. 귀족과 황제는 떠오르는 신성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이 상황에서 교단이 엉망으로 굴러가는 꼴을 그저 방관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아이작은 조금 더 빛의 법전 교단을 원하는 방향으로 밀어보기로 했다.
카밀은 그 시작이자 첫 번째였다.
그리고 어쩐지 두 번째는 눈앞의 이단심문관이 될 것 같았다.
“단순한 의례적 절차이니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사크레아 경.”
빛의 법전 교단은 당연히 울텐하임 성당에서 벌어진 난리에 대해 수사하기 시작했다. 이단심문청에서 파견된 이단심문관들은 당시 울텐하임 성당에 머무르고 있던 사제들과 성기사 전부를 붙들고 심문을 진행했다.
아이작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작은 임시 심문실로 지정된 작은 골방에서 이단심문관과 대화를 이어갔다.
“제가 전해 듣기로는 카밀 추기경이 금단의 지식에 손을 댔다가 벌어진 일이라고 들었습니다만…….”
흉터투성이 이단심문관은 회백색 눈동자를 빛내며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저도 성당에 아는 사제 정도는 있습니다. 이단심문관 출신도 있구요.”
이단심문관은 아이작의 짝인 이솔데를 떠올린 듯 혀를 짧게 찼다.
“흠, 그래요. 카밀 사레아 추기경이 이름 없는 혼돈의 비의에 손대고 있던 것은 사실입니다. 수행사제는 물론이고 암암리에 아는 자들이 제법 있더군요. 추기경의 지위를 이용해 금지된 지식을 함부로 들춰 보고 있었다니, 개탄스러운 노릇입니다.”
“그걸 이단심문청에 신고하는 사람도 없었습니까?”
아이작은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물었다.
이단심문관은 입술을 씨근거렸지만, 곧 침착하게 대답했다.
“바로 그런 신고들을 취합하고 금지된 정보를 검열하는 최고 책임자가 바로 카밀 추기경이었습니다. 사실 추기경들은 지식에 대한 접속권의 등급이 가장 높으니까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올빼미의 가르침을 추구한답시고 금지된 비의에 접근하려면 당연히 금지된 비의를 먼저 손에 넣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카밀의 위치는 최적의 조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타락하는 것도 자연스레 있을 수 있는 수순이고.
그러나 이단심문청은 만만한 조직이 아니었다. 동네 사제도 내릴 수 있는 판단이라면 이단심문관이 파견될 이유도 없다.
“하지만 그런 만큼 비의를 다루는 법을 가장 잘 알고 조심할 줄도 아는 분이었지요. 그러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안일한 판단은 일단 접어두겠습니다. 이사크레아 경.”
“말씀하시죠.”
“사건 당일 밤, 카밀 추기경의 수행비서가 귀하가 한밤중에 찾아왔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출입 기록을 보니 당신이 들어왔다는 기록이 없더군요. 그 말은 몰래 카밀 추기경과 접촉했다는 뜻인데,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아이작은 당황하지 않았다. 예상할 수 있었던 질문이었으며, 이미 준비된 답변도 있었다.
“저는 카밀 추기경이 내린 임무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그래요. 보자…… 공동묘지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의뢰였군요.”
“예. 해당 사건에 대해 조사하던 중, 카밀 추기경에 관한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빛의 법전 교단의 성기사로서, 존경하는 추기경님에 대한 잘못된 소문이 번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충격적인 비밀이요?”
“카밀 추기경이 지하 묘역에서 삿된 이교도 의식을 치러왔으며, 의식을 통해 스스로의 몸에 사악한 힘을 쌓아가고 있다는 비밀이었습니다. 저는 지하 묘역에서 그 의식과 소환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경악스러운 혼돈 편린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아이작은 뻔뻔하게 클레르 일당과 그곳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을 카밀에게 덮어씌웠다.
이단심문관은 아이작의 말에 당황하며 자료집을 뒤졌다. 금지된 비의를 연구하는 것은 징계를 받을 정도의 일이지만, 그것을 직접 시행하고 의식을 진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저는 존경하는 카밀 추기경님이 설마 그런 일을 벌였으리라 생각하지 못하고, 누군가 그분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은밀하게 접촉해 주의를 주었지요. 하지만 제가 그곳에서 의식을 망쳤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분은 뭔가 상심한 듯하더니 홀로 후원으로 향하더군요.”
“……그러고 나서 그 사건이 벌어졌다 이겁니까?”
“그렇지요.”
이단심문관은 피곤하다는 듯 몸을 뒤로 뉘었다.
회백색 눈동자와 흉터투성이 얼굴, 그리고 아이작 앞에서 기죽지 않는 모습까지.
전부 그가 이단심문관으로서의 경력이 짧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쌓인 그의 감은 아이작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소리를 믿으라는 겁니까, 이사크레아 경? 그렇게 허점이 많은 이야기를…….”
그 말에 아이작은 미소 지었다.
“안 믿으면 어쩔 건데.”
***
이단심문관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 차분하게 조사에 순응하던 젊은 성배기사에게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세를 느꼈다.
“카밀 사레아가 금지된 비의를 탐구한 것도 사실, 지하 묘역에서 그녀가 수집한 자료로 의식이 치러진 것도 사실, 괴물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에 뭔가 더 숨겨진 진실이 있다면, 더 높은 의지가 개입되어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이단심문관은 어느새 자세를 똑바로 고쳐 앉은 상태였다. 아이작의 보랏빛 눈동자에서 이단심문관은 자신도 알 수 없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다.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이단심문관의 역할입니까?”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러 온 수사관에게 하는 말이라곤 믿을 수 없는 터무니없는 말이었지만, 아이작의 말은 이단심문관의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이단심문관은 진실을 찾아내라고 있는 직책이 아니라 교단의 입맛에 맞는 진실을 만들어 내라고 있는 직책이다.
“아닙니다.”
“그럼 당신의 일을 하세요. 불쌍한 추기경은 괴물이 되었으니 아마도 지옥에 갔겠지요. 그곳에서도 불쌍한 이단심문관님을 위해 기도 정도는 해 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단심문관은 문득 눈앞의 성배기사가 천사도 물리치는 힘을 가졌으며, 부활의 성자라는 지위와 최근 새롭게 추기경이 된 후안 리아르와도 스승과 제자 관계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심지어 천사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아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장을 헤맸다는 것까지.
만약 아이작이 얽혀 있다면, ‘무고한’ 아이작을 누명에서 벗겨 주는 것이 이단심문관의 역할이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성배기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이단자 카밀의 추악한 모습을 포착했으면서도 신고하지 않은 수행 사제가 의심스럽군요. 불편함이 없도록 저희가 알아서 조치하겠습니다.”
“편할 대로 하십시오.”
아이작은 심문이 끝난 듯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단심문관은 그가 방 밖으로 나갈 때까지 꼿꼿이 서서 정중하게 마중했다. 그러다 아이작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카밀의 자료 중에 관심 있는 게 몇 가지 있는데, 제가 확인 좀 해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건 검열청으로 넘겨서 재검토를 받아야…….”
“그럼 제가 용무를 마친 후 검열청으로 넘기도록 하지요.”
“……즉시 머무시는 곳으로 자료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