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멋진 지옥 (1)
카밀의 자료를 굳이 넘겨받은 것은 사실 아이작도 이름 없는 혼돈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름 없는 혼돈과 관련하여 아는 정보는 게임에서 표현되는 표면적인 정보에 그쳤다. 교단 검열청에서 편집증적으로 제거하고 압수한 덕분이었다.
이름 없는 혼돈의 대리인마저도 이름 없는 혼돈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검열청의 노고가 대단하다 할 수 있겠다.
아이작은 이단심문관이 빼돌릴 자료가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울텐하임 성당의 고아원으로 향했다.
“성배기사님!”
고아원 아이들을 돌보는 사제가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사제의 뒤로 꼬마 아이들 몇 명이 몸을 숨기고 아이작을 지켜보았다. 아이작은 어쩐지 옛날이 생각나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사제님. 최근 벌어진 일 때문에 아이들이 많이 놀랐을 텐데 걱정되어서 찾아왔습니다.”
“아…… 예. 놀라긴 했습니다. 설마 카밀 추기경이 그런…….”
사제는 당혹스러워하며 아이들의 머리를 스다듬었다. 이런 말단 사제의 귀에 들어갈 정도면 정말 소문이 퍼질 만큼 퍼진 모양이다. 하기야 괴물 몸에서 카밀의 개인 법구들이 나왔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저도 그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설마 제가 벤 괴물의 정체가 존경하는 추기경님일 줄은…….”
아이작은 아이들을 둘러보다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소녀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그가 화형장에서 구출한 소녀였다.
아이작은 사제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만, 사제님. 사실 아이들을 이곳에서 보호하기가 조금 걱정스럽군요.”
사제는 당황한 표정을 했다.
울텐하임 성당의 고아원은 제국 내 고아를 돌볼 수 있는 시설들 중 최상위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최후방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이 안전하지 않다면 어디가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불과 며칠 전 성당에서 괴물이 튀어나와 사제 여럿이 죽었으니 그저 믿어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괜찮다면 제가 맡긴 아이를 좀 더 안전한 시설로 옮기고 싶군요.”
이솔데가 애써 찾아 준 양육처였지만, 교단이 아이를 인질로 잡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감안하자 이곳에 맡기고 싶지 않아졌다.
아이작은 소녀를 이사크레아 영지로 보내서 그곳에서 보호할 생각이었다.
사제는 이런저런 절차와 사정들을 이야기하며 난처한 모습을 보였다. 아이를 빼앗길까 봐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로 이곳에 소녀를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고 하는 말이었다. 아이작은 사제가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교단 상층부까지 그러리란 법은 없었다.
더군다나 아이작은 앞으로 아슬하게 선을 넘나들 생각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결국 사제는 아이작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소녀를 보내주었다.
“으음, 뜻이 그러하시다면 어쩔 수 없군요. 아참, 사망보험 계약 파기 의식은 아직 치르지 못했습니다.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의식을 진행할 성당이 크게 파손되는 바람에…….”
아이작은 아직도 사망보험 계약이 파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제 영지에도 사제님들이 계시니 그분들에게 부탁드리도록 하지요.”
“으음,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제는 소녀 앞에 몸을 숨기고 앉아 머리를 스다듬으며 말했다.
“안젤라야, 성배기사님의 영지에 가게 되면 여기보다 더 좋은 곳에서 지낼 수 있을 거다. 매일 빛의 법전에 기도하는 거 잊지 말고, 성서도 꾸준히 읽어서 네 내면의 영혼을 정화하는 것도 잊지 말거라. 그리고…….”
아이작은 소녀를 화형대에 올리려고 했던 교단의 일원이 빛의 법전에 기도하는 걸 잊지 말라고 하는 꼴을 보자 어쩐지 성질이 뻗쳤다. 생각해 보니 애초부터 성당에 맡길 일이 아니었지만, 계약 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어린 애한테 사망보험을 가입시킨 불사 교단이나 애를 화형대에 올리려고 했던 빛의 법전이니, 매한가지 미친놈으로 가득 차 있으니.’
“아이 이름이 안젤라입니까? 말을 하던가요?”
아이작은 몇 가지를 더 신신당부하는 사제의 말을 끊고 물었다. 사제는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직은 말을 못 합니다만 부르는 호칭이 필요하여 이름 붙였습니다.”
어쩐지 종교 색채가 강한 이름이었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이고 소녀 앞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안젤라.”
안젤라는 아이작을 빤히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충격받은 것 치고는 말을 잃은 것 외에는 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집에 가자.”
***
울텐하임 외곽의 한 마을.
스무 명이 겨우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작은 교회 예배당에 한 방랑 수도승이 앉아있었다.
방랑 수도승은 성자와 천사들의 행적을 되짚어 밟으며 성지를 순례하는 사제들이었다.
사제가 자리 잡지 않은 오지까지도 방방곡곡 돌아다니기 때문에 늘 기적을 갈구하는 주민들에게는 크게 환영받는 존재였다. 특히 이런 수도승들은 돈이나 권력에 상관없이 오로지 신앙을 위해 고행을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방랑 수도승이 오늘만 3번째로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했을 무렵, 한 사제가 다가와 곁에 앉았다.
“이단심문관으로부터 답신이 왔습니다.”
방랑 수도승은 암송을 멈췄지만 기도하는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 하던가요?”
“성배기사로부터는 별다른 특이 사항이 없다고 합니다. 매우 훌륭한 성기사로서 타에 귀감이 된다는 첨언까지 붙었더군요.”
방랑 수도승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사제도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번 거짓 선지자는 칼센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닌 것 같습니다.”
방랑 수도승은 고개를 들고 사제를 빤히 바라보았다.
“칼센도 쉬운 자는 아니었습니다. 형제님.”
“죄송합니다. 물론 칼센을 교만의 길에 빠뜨리는 것은 어려웠지요. 그는 사자였습니다. 곁눈질하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굳건히 믿는 사자였지요. 하지만 아이작 이사크레아는…… 거기에 더불어 여우의 꾀까지 가진 걸로 보입니다.”
사제는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카밀 자매가 이름 없는 혼돈을 연구하는 데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는지 우리 파수자 회의 형제들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검열청장도 이 정도 신중함이라면 문제없다고 판단하고 자료를 넘겨줬을 정도입니다. 성당에서 벌어진 일은 분명 성배기사와 관련이 있어요.”
“…….”
“그런데 이단심문관이 이런 보고를 올렸다는 건, 분명 협박이나 설득할 수단이 있었다는 겁니다. 칼센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카밀을 베고 당당하게 ‘이교의 교리를 연구해 죽였다’고 선언했겠지요.”
“칼센은 훌륭한 성기사였지요.”
“하지만 아이작은 어떤 수단을 이용한 건지 그녀를 괴물로 뒤바꿔 버리고 만인이 보는 앞에서 죽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 사태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척 숨기고 있지요.”
벌어진 일만 놓고 보면 카밀이 죽는다는 결과는 똑같지만, 대응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칼센은 사자의 길을, 아이작은 여우의 길을 선택했다.
두려운 점은 아이작이 가진 힘이 결코 칼센에 비해 모자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카밀이 괴물이 된 배경에 아이작이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면, 금지된 지식까지도 기꺼이 사용할 만큼 유연하기까지 하다는 걸 의미했다.
방랑 수도승은 사제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아이작이 다음 거짓 선지자로 선택된 게 현명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십니까? 교단 안에서조차 그를 떠받드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래서야 통제가 불가능할 겁니다.”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말씀은?”
“자칫 그가 아예 교단의 손에서 벗어나 엘릴처럼 분파해 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올빼미에 대해 속삭이는 젊은 사제들이나 후안 추기경 같은 자들을 보십시오. 지금도 교단의 손안에서 통제되지 않는 듯한 것이…….”
“하아…….”
방랑 수도승은 얼굴을 찡그리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순간 사제는 자신이 말을 잘못 내뱉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나치게 선을 넘은 것이다.
그가 사과하기 전에 방랑 수도승이 입을 열었다.
“형제. 아이작을 거짓 선지자로 지정한 건 저 위의 높은 분들이십니다. 등대지기께서 선택하신 이상 다른 선택지는 우리가 상상할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분의 의지가 이 땅에 실현되도록 도울 뿐이지요.”
“아, 예, 죄, 죄송…….”
“성배기사가 통제되지 않는다구요?”
방랑 수도승은 사제의 어깨를 툭툭 치다가 꽉 움켜쥐었다.
“형제. 천사들의 날개가 천상에서 불타오르는 이상 힘의 균형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습니다. 심지어 저 엘릴 분파조차도 천년 왕국을 향한 대계에 불과했습니다.”
사제는 어깨를 움켜쥐는 악력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신음을 간신히 참으며 입을 열었다.
“그, 아니…… 죄송합니다. 저는 걱정되어서.”
“오늘따라 사과가 많군요. 형제를 파수자 회의로 너무 일찍 불러들인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사제는 다시 사죄를 표하려다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침묵이 정답이었던 건지 방랑 수도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풀어 주었다.
“형제. 젊은 사제들이니, 교황이니, 추기경이니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단에서 유일하게 천사들의 말을 듣고 그분들의 의지를 시행하는 파수자들임을 명심하십시오. 이 교만과 탐욕에 찬 양떼들이 울타리 안에 잘 머물도록 이끄는 것이 우리 역할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잘 알아들은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방랑 수도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제는 황망한 얼굴로 함께 일어나며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아이작이라는 성배기사를 직접 한번 만나봐야겠습니다. 설마 이 힘없는 늙은이를 괴물로 바꿔버리거나 하지는 않겠지요.”
***
이솔데는 아이작이 머무는 숙소를 찾아갔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다.
황궁 한쪽에 마련된 귀빈용 숙소 마당에는 이사크레아 령으로 출발하는 마차들이 늘어서 있고, 금방이라도 출발할 듯 짐을 싸놓은 상태였는데 아이작만 없었다. 이솔데는 아이작을 찾아다니다가 정원의 한 나무에서 아이작을 발견했다.
나무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매달려 있는 아이작을.
“뭐 하세요?”
아이작은 이솔데의 질문을 듣고서야 눈을 떴다.
“촉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저 자세로 있던 건지 모르겠지만, 이솔데는 그가 너무 오래 매달려 있어서 정신 줄을 놓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생 반려가 미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최대한 그 말뜻을 이해해 보기 위해 노력하다가 아이작의 왼손에 시선이 닿았다.
“그…… 촉수는 왼손에 달려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맨날 어깨에 매달려 거꾸로 있는 셈이니, 그 심정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이건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군요.”
아이작은 한숨을 쉬며 나무에서 내려왔다.
이솔데는 아이작이 하는 짓이 어처구니없으면서도 거꾸로 매달려 있다가 내려온 부스스한 모습까지도 잘생겨서 화가 났다.
“갑자기 촉수의 생각은 왜요?”
아이작은 말없이 나무 옆에 잔뜩 쌓여있는 자료집들을 가리켰다. 이솔데는 자료집을 살펴보다가 이내 이단심문관으로서 그게 무슨 자료들인지 알고 화들짝 놀랐다.
“사교도 자료들이잖아요?”
두서없이 내용이 뒤섞이긴 했지만 이름 없는 혼돈부터 사멸한 고대신의 의식, 삿된 것들이 쫓겨난 외경의 야만적인 전설까지 자질구레하게 모인 자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이름 없는 혼돈에 관한 자료가 가장 많았다.
“이게 왜요?”
“이름 없는 혼돈의 교단이 아직 남아 있을 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기적과 의식을 치렀는지에 대해 조금 읽었습니다. 그런데 전부도 아니고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속이 불편하더군요. 기괴할 정도로 잔인하고, 화가 나는 내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