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불경한 존재들 (2)
‘이제야 내가 아는 바엘바덴의 모습이 되었군.’
아이작은 게임에 등장하는 바엘바덴의 모습을 떠올리며 만족했다.
물론 게임에는 기도하는 백목 같은 존재는 없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기둥이 무너지고, 공동이 지상에 드러나면서 세상에 이름 없는 혼돈의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라는 것이 이곳의 배경이었다.
그때 이미 이름 없는 혼돈의 괴물들이 배회하는 던전 같은 장소가 되어 있었으니, 이들이 뭔가 사건을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아이작은 오늘 머지않아 터질 화약에 불을 붙인 것뿐이다.
“아, 으, 아아…….”
아직 도망치지 못하고 있던 신도들은 달을 향해 흐느적거리는 기도하는 백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성이 마비된 듯, 허우적대며 그 형상을 따라 했다. 마치 관절과 뼈마디가 없는 듯이 몸이 움직여, 보는 것만으로도 기괴했다.
물론 아이작에게는 불쾌함 이상의 감정을 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새롭게 소환된 이 기도하는 백목이 이전에 마주쳤던 이름 없는 혼돈의 권속들보다 훨씬 격이 높은 것은 분명했다.
카밀이 이름 없는 혼돈의 권속이 되면서 격이 높아진 건지, 아니면 격이 높은 어떤 불경한 존재가 카밀의 얼굴을 훔쳐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격에 대해서라면 아이작도 뒤처지지 않았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이름 없는 혼돈이 저 불쾌한 존재에 대한 징벌을 요구합니다.] [혼돈의 포상이 당신을 기다립니다.]이름 없는 혼돈은 감히 그의 대리인 앞에 촉수를 세우는 존재에 불쾌함을 드러냈다.
그의 분노는 아이작의 분노가 되었다.
“끼이이이익!”
촉수 벼룩에 몸을 빼앗긴 신도가 아이작을 향해 달려왔다. 신도의 몸은 벼룩에게서 뻗어 나온 촉수에 뒤엉켜 움직여, 통상적인 관절이나 근육에 반하는 기괴한 움직임을 보였다.
아이작은 달려오는 신도를 가볍게 회피했다. 신도가 뻗은 손은 굉음과 함께 바위에 박혔다. 촉수는 바위까지 뿌리내리며 내부에서 으스러뜨렸다. 아이작이 벼룩을 베어 버리자 흥건하게 피를 뿜어내며 촉수도 금세 말라버렸다.
벼룩이라 해도 사람 두개골을 단숨에 으스러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평범한 칼엔 이렇게 쉽게 베이지 않았을 것이나, 검기를 두른 카훌린은 톡톡 튀어오는 벼룩들을 빗자루로 쓸듯이 베어버렸다.
“하아…….”
아이작은 끝도 없이 뻗어 올라가는 기도하는 백목을 올려다보았다. 놈은 달빛을 본 순간부터 아이작은 안중에도 없이 지상을 향해 뻗어 올라가기만 했다. 이미 일부는 지상 위까지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그게 아직도 끝이 나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었다.
‘수십? 수백 미터는 되나? 아니…… 가늠하는 게 무의미하겠군.’
기도하는 백목이 튀어나온 벽 너머에는 아직도 녀석의 ‘문’이 열려있었다. 소환 의식을 진행하던 신도들이 전부 죽거나 도망쳤음에도 녀석은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서 덩달아 촉수 벼룩이니 다면 거미니 하는 것들도 꿈틀거리며 빠져나왔다.
기도하는 백목이 우르반수스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어차피 이 유적지는 파괴할 생각이었다. 녀석에게 겸사겸사 덮어씌울 생각이었지만, 어쨌든 아이작의 손으로 불러들인 놈이니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정리해야 했다.
‘지상 상황은 일단…… 로튼해머 단장에게 맡기면 되려나? 푹 쉬었으니 밥값 해야지.’
이안은 무사히 탈출한 것 같으니 보고도 받았을 것이다. 그럼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고 준비하겠지.
아이작은 기도하는 백목을 응시했다.
이 덩치 큰 신입을 처리하려면 평범한 수단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
“저, 저게 뭐야!”
“단장님을 불러!”
아이작의 예상대로 지상의 상황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굉음과 함께 지반이 무너져 내린 뒤 그 안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하는 검붉은 촉수들을 보고 성기사들은 경악했다. 그와 더불어 이름 없는 혼돈의 권속들까지 튀어나오기 시작하면서, 한가로운 휴양을 즐기던 성기사들은 제대로 준비도 못 한 채 싸움에 나서야 했다.
“정신 차려라, 이 멍청한 놈들!”
그때 어느새 로튼해머가 전신 갑옷을 걸치고 그들 앞에 나타났다.
“내가 늘상 이곳 임무는 휴양이 아닌 경계 임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당장 무기 들고 대오를 갖추지 못해!”
성기사단장의 호통에는 정신을 맑게 하고 용기를 북돋는 축복이 깃들어 있었다. 성기사들은 혼란에서 깨어나 바로 각성하여 저마다 대응에 나섰다. 그들은 이런 휴양지에서, 그것도 야밤에 갑옷까지 걸친 채로 쉬고 있던 로튼해머에게 존경과 감탄의 눈빛을 던졌다.
‘……아이작이 아니었으면 망신당할 뻔했군.’
아이작이 다녀간 뒤, 이안까지 정찰로 보내고 뭔가 사단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긴 했다. 설마 바로 이런 사태가 터질 줄은 예상 못 했지만, 혹시 몰라 갑옷을 입고 쉬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촉수 벼룩 하나가 성기사의 투구에 올라타 그를 찌그러뜨리려 했지만, 성기사는 손아귀에서 피워올린 불길로 벼룩을 태워 으스러뜨렸다. 촉수 벼룩들은 내구도는 약하지만 동작이 재빠르고 촉수가 예상치 못하게 움직여 상대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무장을 갖추고 경계를 서고 있던 성기사들이 시간을 버는 사이, 새로이 갑옷과 무장을 챙겨 입고 나온 성기사들이 전선에 합류하면서 전장은 혼전에서 일방적인 살육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들은 도저히 이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들이 벼룩이나 상대하는 사이, 지하에서 기어 올라온 촉수는 어느새 키 큰 나무만큼 자라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고 있었다. 수십 개의 촉수 가닥이 꿈틀거리며 달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그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괴하고 구역질이 났다. 기적으로 정신을 보호하고 있지 않았다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단장님!”
“이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지하에서 복귀한 이안이 다급히 달려왔다. 그 역시도 달려오면서 적지 않은 촉수 벼룩을 상대한 것인지 피투성이였지만, 크게 다친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지하에 사교도 신전과 사교도들이 있었습니다! 놈들이 이 불경한 것을 불러냈습니다!”
로튼해머는 눈을 부릅뜨다가 이를 뿌득 갈았다.
대체 교단 놈들은 지하에서 무슨 역겨운 짓거리를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의 목구멍까지 교단의 등하맹인들에 대한 욕설이 넘실거렸다. 이 사태를 경고하고 주의를 준 사람은 아이작, 방랑하는 성배기사 한 명뿐이었다.
“더 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놈이 막 소환되기 시작할 때 도망쳐 나와서…… 안에서 촉수가 폭주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딱히 피아를 가리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사교도 놈들도 아마 밑에서 거의 다 깔려 죽었을 겁니다. 아니면 저 벼룩한테 다 피를 빨아 먹혔거나요.”
로튼해머는 기도하는 백목을 올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소환 의식도 중단되었다는 뜻인데, 놈은 여전히 자라고 있었다.
***
끽, 끼긱, 끼기기긱.
달을 향해 가까워질수록, 기도하는 백목의 몸 틈바귀에서 자란 종양 같은 덩어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마치 달빛으로 광합성이라도 하는 것처럼, 종양에서 또 다른 촉수가 자라고, 그 촉수에서 또 다른 촉수가 자라면서 거대한 나무처럼 변해 갔다.
다만 그 가지 하나하나가 나무처럼 단단한 형태가 아닌, 끝없이 움직이고 흐물거리는 촉수들이었다는 점이 달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종양에서 촉수 대신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열매는 순식간에 자라다가 스스로 양막을 깨뜨리고 터져 나왔다.
퍽, 퍼퍽.
그것은 박쥐 날개에 뒤집힌 말미잘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놈들은 후두둑 밑으로 쏟아져 내려 성기사단을 덮쳤다.
로튼해머는 이름 없는 혼돈에 관한 얕은 지식으로나마 놈들의 이름을 알아차렸다.
“나이트 스토커다! 잡히지 않게 조심해!”
그러나 성기사들 모두는 공중에서 공격해 오는 적에 익숙하지 않았다. 발밑에서 튀어 오른 촉수 벼룩에 신경을 쓰던 성기사 하나가, 갑자기 하늘에서 낙하해 온 나이트 스토커의 촉수에 사로잡혔다. 나이트 스토커는 날개를 펄럭이며 순식간에 성기사를 들고 하늘에 날아오른 채 자신의 몸통 안으로 성기사를 쑤셔 넣었다.
로튼해머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부릅뜨며 망치를 맨땅에 쾅 내리쳤다.
“당신의 분노가 도적처럼 찾아오리니!”
콰쾅, 쿵!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벼락이 내리치면서 성기사를 낚아챈 나이트 스토커를 지졌다. 평범한 벼락이 아닌 신성한 기적이 깃든 벼락에 나이트 스토커는 괴성을 내지르며 추락했다.
대기하고 있던 다른 성기사들이 즉시 떨어진 놈을 창칼로 짓이겨 산산조각 냈다.
“형제는 살아있나?”
“조금 다쳤지만 살아있습니다!”
기적으로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는 성기사들에게 부상의 기준은 조금 남다르다.
‘조금 다쳤다’는 치료하면 곧 전장에 복귀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반면 ‘크게 다쳤다’는 치료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로튼해머도 그런 성기사의 튼튼함을 믿고 벼락을 내리쳤기 때문에 안도했다.
하지만 하늘에는 이미 10마리 가까운 나이트 스토커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직 저 거대한 촉수 괴물은 어찌할 방법조차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로튼해머가 일일이 벼락을 떨어뜨려 저놈들을 죽이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또 놈들이 옵니다!”
나이트 스토커들은 예측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움직임으로 하늘을 날다가, 갑작스럽게 일제히 급강하하여 성기사들을 노렸다. 이번에는 성기사들도 강하게 대응했지만, 놈들의 촉수에는 이빨이나 발톱 같은 날카로운 것들이 달려 있어서 무작정 방패나 칼을 빼앗기지 않게 매달렸다간 삽시간에 하늘로 딸려 올라갈 수도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쿠르르릉, 콰르르르르!
그때 갑작스러운 번개의 폭풍이 나이트 스토커들을 지지며 지나갔다. 번개에 그을린 성기사들은 나가떨어졌지만 직격당한 나이트 스토커들만큼은 아니었다. 날개 뼈대만을 남기고 타 버린 나이트 스토커들은 땅에 떨어져 버둥거렸다. 성기사들은 떨어진 놈들을 손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단장님, 대단하십니다!”
“내가 아니다. 저길 봐.”
당연히 로튼해머의 기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성기사들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빛의 실루엣 속에 흐릿한 무언가가 나이트 스토커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거대한 날개를 가진 그것은 나이트 스토커보다도 거대한 몸집과 발톱을 이용해 낚아채고, 물어뜯고, 반항하며 벼락을 뿜어내어 구워 버렸다.
실루엣만 겨우 보이는 어둠 속이었지만 성기사들은 전설적인 존재를 떠올리고 전율했다.
“드래곤? 드래곤이 우리를 돕고 있는 겁니까?”
“그래.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군.”
드래곤의 개입으로 전황에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저 기도하는 백목을 처리할 방법은 적어도 주교급 이상의 사제가 와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 나이트 스토커들이 도시를 덮치기라도 하면 재앙에 가까운 일이 벌어질 것이란 건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이안은 로튼하임을 돌아보며 물었다.
“지금이라도 지원 요청을 하러 갈까요?”
“아니. 지원은 필요 없다.”
저 정도 크기라면 이미 주변 마을이나 성당에서 목격했을 것이다. 지원이라면 굳이 요청하지 않아도 올 것이다. 그리고 진작에 나타나고도 남았을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작 이사크레아. 이 재난을 예언하고 경고했던 성배기사가.
로튼해머는 저 하늘에서 날뛰는 드래곤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작이 안배한 일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미 교단에 극도로 실망한 로튼해머는 주교 열 명보다 어딘가에서 목숨 걸고 싸우고 있을 그 성배기사를 더 신뢰하고 있었다.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자는 이미 싸우고 있을 거다. 우리는 이 재난이 다른 데로 번지지 않게 하고, 최대한 그를 돕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