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불경한 존재들 (4)
이름 없는 혼돈의 메시지는 눈을 감고 있던 아이작의 귀에도 들려왔다. 그의 의식은 문이 닫히기 직전 우르반수스에서 빠져나왔다. 기도하는 백목이 완전히 쓰러졌다는 뜻이었기에 아이작은 눈을 감은 채로 승리의 보상을 살펴보았다.
[혼돈의 자손 / ‘저 너머의 기생충’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기생충이 숙주를 즉시 잡아먹고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혼돈의 자손’으로 변태합니다.]원래 혼돈의 자손 능력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강화된 혼돈의 자손 능력은 새로운 것이 추가되어 있었다.
[추가로, 제물을 통해 이미 세상에 만들어진 혼돈의 권속들을 소환하거나 돌려보낼 수 있습니다. 단 소환할 장소에 ‘저 너머의 기생충’에 감염된 제물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즉, 권속에 대한 소환과 역소환이 가능해졌다는 뜻이군.’
아이작이 얼마나 먼 거리에 있든 그의 권속들을 불러들이거나 돌려보낼 수 있다. 아이작은 눈에 띄는 권속들을 쉽사리 끌고 다니기 힘든 처지였기에 상당히 유용한 특전이었다. 헤카틀리만 하더라도 도저히 배에 싣고 올 방법을 찾지 못해 일단 엘릴 왕국에 두고 왔기 때문이었다.
‘권속에 대한 정의부터 확인해야겠군.’
넓게 보자면 지금 이사크레아 영지를 통치 중인 카일이나 헤사벨도 혼돈의 권속이다.
더더욱 넓게 보자면 아이작이 알게 모르게 감화시킨 자신의 추종자들도 이름 없는 혼돈의 권속인데 그들 전부가 소환 대상은 아닐 것이다. 제물이 필요하다는 걸 보면 아마…… ‘소환 과정’이라는 것이 대단히 역겹고 충격적일 확률이 높을 테니까.
아이작은 눈을 떴다. 뜨자마자 자신의 바로 코앞에 있는 헤사벨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마를 후려쳤다.
헤사벨은 이마에 빨간 손자국을 남기고 나가떨어졌다.
“어, 씨. 깜짝 놀랐잖아.”
헤사벨은 이마를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그렇다고 목숨 걸고 지켜준 사람을 때려요?”
“자다가도 네가 천장에 붙어있는 걸 보면 놀라서 심장이 벌렁대는데 그때마다 때리고 싶어도 손이 안 닿아서 못 때렸어. 또 맞고 싶지 않으면 거리감 유지해.”
헤사벨이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저 족속들은 원래 네필림 같은 외모에 혹한다. 아이작은 사실 헤사벨이 승리가 아니라 그의 얼굴 때문에 쫓아다닌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녀의 삼촌도 그러다 죽었으니까.
아이작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헤사벨의 말이 과장은 아니었던 건지 처참한 난전의 흔적이 주변에 펼쳐져 있었다. 벽과 바닥에 꿰여 죽은 괴물들의 숫자만 헤아려도 두 자릿수를 넘어갔다.
절벽 아래에는 완전히 허리가 끊어진 기도하는 백목이 지상까지 이어진 채 축 늘어져 있었다. 핏기가 싹 빠져나간 기도하는 백목은 수도에서 그랬듯이 곧 흰 모래로 변해 버릴 것이다.
아이작은 그것이 아까웠다.
이미 아이작은 보상을 얻었지만, 의식을 수행하면서 소비한 신앙심을 보충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름 없는 혼돈의 권속들은 모두 유용한 신앙심을 듬뿍 함유하고 있다.
‘먹을 걸 남기는 건 낭비지.’
아이작은 기도하는 백목의 몸통에 손을 얹고, 촉수를 밀어 넣었다.
아직 식지 않은 살점들 속에, 생물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온갖 내장 기관들이 난잡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아이작은 그 쓸데없는 것들을 무시하고 흐름의 핵심을 찾아 나섰다. 그 중심부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채 멈춘 심장이 느껴졌다.
아이작의 촉수는 그것을 움켜쥐고 단숨에 으스러뜨려 파편을 먹어 치웠다.
그 심장 하나만으로도 포만감이 차오르는 동시에 막대한 신성력이 쌓이는 것을 느꼈다.
[어두운 성찬례 / 촉수로 대상을 포식하거나 ‘성찬’으로 취급할 수 있습니다. 성찬의 질에 비례하여 신앙이 상승합니다. 성찬을 목격한 적은 공포 혹은 혼돈 상태에 빠지지만, 당신의 추종자들은 종교적 황홀경에 빠집니다.]때마침 어두운 성찬례가 발동했다. 아이작이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자 조용해진 것을 깨닫고 은신처에서 슬며시 기어 나온 네리아와 자칭 이름 없는 혼돈의 신도들이 보였다. 그들 눈에 보이는 것은 단지 가면을 쓴 남자가 기도하는 백목의 시체 위에 손을 얹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은 마치 숭고한 종교적 성화(聖畵)처럼 보였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엎드렸다. 네리아는 아이작을 향해 버르적대며 기어가다가 먼발치에서 멈춰 섰다. 도저히 더 이상 가까이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가 지난 수년간 저지른 죄악과 어리석은 짓들이 등골을 타고 치솟아 올랐다.
“선지자, 선지자시여, 부디…….”
무지했던 신도들은 진정한 신의 재림을 목격하고 그저 고개 숙인 채 자비를 구걸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눈은 씻겨지고 머리는 맑아졌다.
“부디, 저희가 저지른 죄악을 씻을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아이작은 네리아와 신도들을 둘러보았다. 이들은 빛의 법전이나 다른 신앙에서도 버림받거나 배교한 사실상 바르바리들이다. 호기심에 이끌려서 오게 되었을 수도 있고, 정말 세상에 불만이 있어서 멸망을 바라는 자들일 수도 있다.
‘이 답 없는 인생들을 어떻게 할까.’
성기사들이라면 별 고민도 없이 쳐 죽였을 테지만, 아이작은 그들이 단지 무지했을 뿐임을 알고 있다.
아이작은 이전 세계에서 습관적으로 ‘죽고 싶다’라고 말하던 친구를 떠올렸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가 정말로 죽고 싶다는 뜻으로 말하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그건 그저 아무런 걱정 없이 따뜻한 남쪽 나라 가서 마음 편하게 휴양이나 즐기고 싶다는 뜻이다. 이들이 멸망을 원했다면, 멸망을 원하게 만든 세상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아이작에게는 이제 그런 모난 세상을 잘 깎아서 둥글게 만들 만큼 단단한 모서리가 있었다.
아이작은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너희에게 새로운 계율을 알려주겠다.]가면을 통해 울려 퍼진 사념파가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그들은 고개를 조아린 채 새로운 시대를 이끌고 나타날 새로운 선지자의 새로운 계명을 기다렸다.
[야채 많이 먹고, 푹 자고, 정직하게 노동하고, 이유 없이 동물을 괴롭히지 마라.]***
쿵, 쿵, 쿵, 콰르르르…….
굉음과 함께 계단을 막고 있던 잔해가 무너져 내렸다. 로튼해머와 성기사들은 이곳 지하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로튼해머는 뻥 뚫린 구멍에 혼자 뛰어들어서라도 확인하고 싶어 했지만, 저 아래 얼마나 많은 괴물이 있을지 모른다며 만류하는 성기사들의 손에 저지당했다.
대신 성기사의 힘과 기적을 아낌없이 동원해 그들이 간신히 통과할 만한 통로를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마침내 지하 공동에 도착한 로튼해머는 처참한 잔해와 피비린내에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대체…….”
벽과 기둥 잔해에 남은 조각과 부조만으로도 이곳이 불경한 장소였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상으로 연결된 거대한 구멍까지 뻗어 올라간 기도하는 백목이 보였다. 기도하는 백목은 이제 녹아내리듯 흰 모래로 변해 가고 있었지만, 워낙에 덩치가 큰 탓인지 그 형상이 거의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리고 공동 한가운데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아이작!”
“로튼해머 단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들어간 것이 들통난 셈이지만, 로튼해머는 놀라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아이작의 경고가 사실이었다는 것이 이미 확인된 상태에서 그런 한심한 말을 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그는 다른 자괴감에 젖어 있었다.
“정말 이곳에서…… 사교도들이 부정한 의식을 치른 것인가? 나는 이때까지 그 무리들을 비호하고 있었던 것이고?”
교단의 명령을 따른 것이었다고는 하나 평생의 업적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바르바리와 이교도들을 망치로 때려죽여 왔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의식을 치르던 사교도들을 자기 손으로 보호하고 있었다니.
로튼해머가 분노와 자괴감으로 입술을 깨물던 중, 아이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사교도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실험에 희생당하던 얼치기 반푼이들이었죠.”
“얼치기 반푼이들?”
“예. 아마 교단의 사제 중 누군가 이름 없는 혼돈의 기적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 있던 자들은 단지 갈 곳 없는 자들이었지요.”
빛의 교단의 덕목 중 하나는 지식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이교도에 대한 연구도 그 지식 중 하나로 취급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그 의식을 직접 행하고 부정한 존재를 부르는 것은 한참 선을 넘었다.
로튼해머 역시 울텐하임에서 벌어진 일과 카밀에 대해 언뜻 듣기는 했었다. 그는 한참 말이 없다가 주변의 피바다를 둘러보았다. 멀쩡하게 남은 시체가 없었지만,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파편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다.
“그자들은 전부 죽은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아이작은 신도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발표한 뒤 비밀통로를 향해 도주시켰다. 도망친 뒤 통로를 붕괴시키기까지 했으니 그들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계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자신에 대한 신앙심이 최고조에 다다른 상태에서 계명을 들었으니 세뇌에 가까운 수준으로 뇌리에 박혔으리라고 기대했다. 네리아에게는 특별히 ‘저 너머의 기생충’까지 박아 놓았다.
아이작은 그들이 계명을 우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계명이었지만, 진심을 다해 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의미를 그들이 곱씹어 스스로 깨달았으면 했다.
“저 괴물도 자네가 죽인 건가?”
로튼해머가 기도하는 백목의 잔해를 가리키며 물었다.
로튼해머는 자신과 성기사단이 저 괴물을 죽일 만큼 충분히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주어졌다면 모르겠지만, 놈은 그 전에 이상행동을 보이다가 스스로 쓰러져 죽었다. 대체 얼마나 희생자가 나왔을지도 모르는 전투가 고작 몇 명의 부상자만을 남기고 끝난 것이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았습니다.”
로튼해머는 아이작의 대답에 크게 한숨을 내뱉고는 망치를 쿵 소리 나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아이작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로튼해머의 행동에 놀란 성기사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우선 사과하겠네. 자네 말을 믿지 않아 더 큰 재앙을 초래할 뻔했던 것에 대해. 그리고 고맙네. 자네 덕분에 내 부하들이 목숨을 건졌어. 어쩌면 내 목숨도 구해줬는지도 모르지. 아니, 렌하임 교구를 포함해 수천, 수만 명의 목숨을 구했는지도 몰라.”
“아니, 이러지 마십시오.”
아이작은 당황하며 말리려 했다. 사실 기도하는 백목을 불러들인 것은 아이작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가 사과와 감사를 받기에는 민망했다.
하지만 로튼해머는 꿋꿋하게 말했다.
“오늘부로 브리엔트 성기사단은 부활의 성자, 아이작 이사크레아를 수호성인(守護聖人)으로 삼겠다. 본래 우리 수호성인은 성 브리엔트였으나, 부활의 성자의 행적이 못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작은 당황하다 못해 경악했다. 놀란 것은 함께 내려온 성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각 성기사단에는 상징으로 삼는 수호성인이 있다. 그 수호성인의 행적에 따라 성기사단의 성격과 정체성이 결정되기도 한다. 브리엔트 성기사단이 아예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 사건인 셈이다.
그만큼 수호성인이 바뀌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닐뿐더러, 내부적으로 반발을 살 수도 있었다. 심지어 아이작은 성기사로서의 경력이 얼마 되지도 않은 풋내기에 불과했다.
“아니, 부하들 의견이나 렌하임 성당의 주교께서…….”
“내 부하들은 찬성할 거다. 반대한다면 내가 시간을 들여 설득하지. 그리고 렌하임 교구는 상관없어. 우리 근거지가 그곳이기에 지원도 렌하임 성당에서 받는 것일 뿐, 소속된 것은 아니다. 근거지를 옮기면 주교도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아니, 하지만…….”
“자네가 거절한다면 내가 떼를 쓸 수는 없겠지. 당장은 허락할 필요 없어. 하지만 이건 일종의 내 다짐이자 결심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네.”
그제야 아이작은 로튼해머가 어떤 각오를 하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빛의 법전 교단에 극도로 실망했다. 자신을 속인 교단에, 그들의 행적에. 그리고 그 실망은 하루 이틀 쌓인 것이 아닐 것이다. 이번 일은 마지막 물 한 방울을 넘치게 한 것에 불과했다.
때문에 그는 교단에 충성하는 것보다, 믿을 만한 성자에게 충성하는 길을 선택했다.
‘아…… 곤란한데.’
아이작은 마냥 자신에게 충성하는 성기사단이 생겼다고 기뻐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름 없는 혼돈의 대리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로튼해머가 또 다시 실망할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아이작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이제 그의 선행은 위선이 아닌 진심이 되어야 했다
로튼해머든, 이솔데든, 게벨이든, 에델레드든.
단지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자신의 진정한 실체가 들통나더라도 그를 믿는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아이작은 이름 없는 혼돈의 대리인으로서 자신이 부정할 수 없는 선한 존재임을 보여 주어야만 했다.
아이작은 지난 자신의 행적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딱히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는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