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5)
25화. 수색 및 섬멸 (2)
두근.
아이작은 눈동자에서 맥박을 느꼈다. 눈앞에 뭔가 일렁거리는 것을 느낀 아이작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손으로 부빌 뻔했지만, 이내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고 가느다란 촉수가 그의 눈앞을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간 것이다.
아이작은 가까스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누군가 보기에는 단지 아이작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도는 정도밖에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깨달았다.
이름 없는 혼돈의 힘을 끌어다 쓰는 것은 즉 그 존재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다는 것이다. 아이작의 눈꺼풀 아래에서 돋아난 촉수가 일렁이며 눈동자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내 익숙한 상태창 같은 것이 나타났다.
[이솔데 브란트(A+) / 쇠약] [직업: 이단심문관(B)] [능력: 나방의 교리, 고급 심문, 도가니 짐승] [“수도원장을 어떻게 설득하지? 일단 놈들이 행동에 들어간 이상 서둘러야…….”]그것은 이솔데 브란트에 대한 정보였다.
혼돈의 눈은 상대방의 상태와 심리를 읽을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상태라는 게 정말 말 그대로 상태창 같은 정보였던 모양이다. 눈에 보이는 하단의 상태창에는 이솔데의 심리까지 나타나고 있었다.
‘아직은 얕은 생각만 읽을 수 있는 건가? 이 정도는 굳이 능력을 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건데…….’
아이작은 좀 더 집중하며 이솔데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눈가의 촉수가 다시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아이작은 기겁하며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이단심문관 앞에서 촉수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이다가 무슨 경을 칠지 모른다.
다행히 수도원장실은 어두웠고, 그늘진 곳에 있던 아이작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선을 돌리기 직전 아이작은 이솔데의 좀 더 깊은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나? 하지만 아직 증거도 이유도 못 찾았는데…….”]“증거도 이유도 못 찾았나요?”
아이작이 입을 열었다. 이솔데가 휙 고개를 돌렸다.
아이작은 말해 놓고도 어이가 없어서 입술을 만졌다. 이솔데가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불사교단이 왜 여기서 활동하는지 이유도 증거도 찾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증거가 없다니요? 죽은 역병신이 수도원을 노렸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이단심문관들은 그 직책상 증거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여차하면 사람 한두 명 목숨은 물론이고 집단까지도 대량 학살할 수 있는 직업이니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기본적인 행동 윤리에 어긋나는 셈이다.
“저희 조력을 필요로 하시는 이유가 성기사단을 움직일만한 근거가 없어서 아닙니까?”
아이작의 말에 예브하르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제야 예브하르도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이단심문관이라면 성기사단을 동원할 권한이 있죠. 단 그럴만한 근거가 있을 때 말입니다. 그런데 굳이 수도원에서 칼을 찾는다는 것은 근거가 없기 때문이군요.”
결국 이솔데가 칼 쓸 사람을 찾는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가 가진 증거와 논리가 빈약하다는 뜻이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원망스럽게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아이작이 구해준 것과는 별개로, 상황이 답답해진 것이다.
아이작은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다.
사실 이번 사태 배후에 불사교단이 있다는 그녀의 의심은 사실이었으니까.
‘내가 직접 수도원 지하에서 불사교단의 졸개를 봤으니.’
지힐렛의 시중을 들던 그 언데드 사제 놈. 녀석이 불사교단의 권속이었다.
하지만 이솔데의 모든 주장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그놈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려면 그놈을 어디서 찾았는지도 이야기해야 하고, 그곳은 현재 맥동하는 이름 없는 혼돈의 심장으로 뒤덮여 있는 상태였으니까. 결국 이솔데가 설득할 만한 근거를 마련해 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저는 불사교단이 활동한다는 첩보와 놈들의 동태, 흔적들을 발견했습니다.”
이솔데는 어떻게든 호소하려는 듯 필사적으로 말했다.
“녀석들이 왜 이 백제국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활동하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믿습니다.”
“믿으시지 않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만 분명…… 예?”
“믿는다고요. 수도원을 공격한 것은 고대신을 부활시키려던 불사교단의 소행이 분명합니다.”
그 말에 예브하르와 게벨도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예브하르는 아이작의 담대한 모습과 주장에 홀린 듯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이작?”
“할 수 있으니까요.”
“뭐라고?”
“그놈들은 늙어도 죽질 않아서 그런지, 평생을 빛의 법전을 엿 먹이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변경의 병사들이 꼭 전략적으로 행동한 게 아니라도 흑제국에게 골탕을 먹일 수 있는 일들을 저지르곤 하지 않습니까?”
아이작은 그러면서 게벨을 슬쩍 돌아보았다.
성기사단 출신인 게벨이라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분쟁지역의 병사들은 굳이 상부 명령이 아니더라도 흑제국 쪽에 끔찍한 도발을 감행하곤 한다. 게벨은 짚이는 부분이 있는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대신을 부활시키려고 하다니?”
“말씀하셨던 부분이라면, 정말 고대신이 부활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말씀대로 약해빠진 놈들이니 수도원 하나 괴롭히는 수준이겠죠. 설령 정말 부활한다 치더라도 금방 토벌될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예브하르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대신 부활이나 세계를 양분하는 두 신앙 간의 대립이 고작 말단들의 장난질이라고?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였고, 실제로 아이작도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솔데의 내면을 읽은 아이작은 그녀도 아는 게 없는데 추궁해 봤자 의미 없다고 판단했다.
“중요한 건 놈들이 정말로 그 짓거리를 저지르고 있고, 우리가 당했다는 겁니다.”
아이작은 화제를 슬쩍 앞으로의 방향으로 돌렸다. 중요한 건 불사교단이 개입하는 중이란 거지 증거나 이유가 아니다.
이솔데는 아이작과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그렇다면 이제 돌려줘야죠.”
자세한 정보는 놈들을 더 찾게 된다면 그때 가서 물어보면 될 일이다.
***
회의가 끝나자마자 아이작과 게벨, 이솔데는 곧장 짐을 꾸려 수도원 밖으로 향했다. 수도원 안에는 당나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예브하르는 셋에게 아낌없는 축복과 충분한 식량 등을 나눠주었다.
아이작은 자신의 빈약한 논리에 수도원장과 게벨이 돕기로 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두 사람이 아이작에게 가진 호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예브하르는 이단심문관의 속내까지도 떠보려고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작의 논리에는 쉽게 넘어가 주었다. 이것은 네필림의 매력이 발동한 결과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매력적인 탓이군.’
“감사합니다. 아이작 씨.”
그때 앞장서서 걸어가던 이솔데가 아이작과 발걸음을 속도를 맞추며 말을 붙였다.
“사실 불사교단이 이 근방에서 활동 중이라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은 6개월 전입니다. 하지만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했었죠. 이 수도원에 손길이 닿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도 최근의 일인데 이런 결정적인 증언까지…….”
“괜찮습니다. 저희 수도원 일인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사실 이솔데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작은 적당히 공을 세우면서 수도원을 떠날 명분을 찾고 있었다. 이솔데는 자신을 호의적으로 보고 있으니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괜찮은 인맥이 될 수도 있다.
‘언제 어느 시대든 감찰관과 친해지는 게 유리하지’
어쨌든 이솔데는 고마운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작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녀가 이단심문관치고는 상당히 때 묻지 않은 순진한 성격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혹은 마을 하나쯤은 학살해도 끄떡없는 사이코거나.
사실 이단심문관으로서 유능하다면 후자일 확률이 더 높았다.
“이번 일이 잘 해결된다면 교단에 아이작 씨를 추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이작 씨는 성기사 수련생이지요? 제가 아는 성기사가 있는데…….”
“이단심문관님.”
게벨이 그때 뒤에서 굳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먼 곳이라면 마을에서 말을 빌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만, 여기는 마을에서 멀어지는 길 같군요.”
이솔데는 자신이 수도원 인근에 불사교단이 개입했다는 흔적을 발견한 곳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목적지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건지 서둘러 말했다.
“아, 수도원 근처에 있는 계곡으로 가는 중입니다. 주민들은 아리엣 계곡이라고 부르던 것 같군요.”
아이작과 게벨도 잘 아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오래 지낸 것은 이솔데가 아닌 두 사람이니까. 실제로 뭐가 숨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험한 곳이었다.
이솔데는 게벨에게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했고 어떤 증거를 잡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게벨은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그녀에게서 아이작에 대한 관심을 떼어 놓은 것으로 만족한 것 같았다.
‘다행이군.’
아이작은 문득 ‘혼돈의 눈’을 발동했던 오른쪽 눈을 매만졌다.
이제 촉수가 꿈틀거리는 이질감은 사라졌지만, 떠나기 전 확인했을 때 한동안 핏발 선 기색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동공에 옅은 보랏빛도 감돌고 있었다. 약간 더 깊게 들여다보려 시도한 것만으로도 눈의 색이 변할 정도였던 것이다.
‘이 능력도 함부로 쓰기 힘들겠군.’
사기적인 능력이지만 함부로 쓰기 힘들다는 점은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가볍게 얕은 생각을 알아보는 정도라면 눈에 띄지 않겠지만, 상대의 심층 심리를 파헤치려 능력을 강하게 발동할수록 숨길 수 없는 흔적이 드러날 것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눈에서 촉수가 꿈틀거리는 꼴을 들킨다면?
‘죽일 수밖에 없겠지.’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일찌감치 부작용을 알아내서 다행일 뿐이었다.
***
“여깁니다.”
이솔데가 긴장한 기색으로 계곡에 발을 딛으며 말했다. 뾰족한 바위들이 불규칙하게 놓인 계곡에는 건기인 겨울이어서 그런지 마른 하천의 흔적만 보였다.
아이작도 이곳은 지나가면서 봤을 뿐, 직접 발을 딛는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라면 발을 딛기도 힘들 만큼 험한 곳이었는데, 하천이 마른 덕분에 바닥은 평평했다.
“여기서 불사교단의 흔적을 발견하셨다구요?”
“정확히는 놈들을 봤다는 증언과 언데드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다 역병에 감염된 짐승들과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불길한 흔적들을 발견해서…….”
이솔데는 그렇게 말하며 계곡 초입부에 놓인 커다란 돌 하나를 툭 발로 찼다.
아이작은 그 돌에 무슨 의미가 있나 했지만 이솔데는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게 뭡니까?”
결국 게벨이 먼저 물었다. 그러자 이솔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예? 당연히 우상숭배의 흔적이잖습니까. 잘린 석상의 머리잖아요.”
아이작은 다시 그 돌을 살펴보았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워낙에 마모된 흔적이 심하긴 했지만 부자연스럽게 잘린 단면과 어쩌면 눈 코 입일지도 모르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다시 보면 쥐같이 생긴 것 같기도 했다.
“계곡 안에 들어가면 이런 흔적들이 더 많습니다. 높은 산 위에서 떨어진 것 같더군요.”
“음…….”
아이작은 이런 게 한두 개라면 이솔데가 착각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 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조사해 볼 필요는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고고학의 영역일 뿐 이단의 증거는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역병에 감염된 짐승들이 나타나고, 수도원까지 공격당했다면 이는 명백한 공격의 증거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계곡을 조사하면 분명 배후가 숨어 있으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조사해보니 옛날에는 이 계곡 안쪽에서 이교도의 신전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이솔데는 나름 확신을 가진 듯해 보였다. 게벨은 여전히 긴가민가하는 기색이었지만 이솔데를 빨리 쫓아내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조사하고 싶어 했다. 오히려 설명을 듣고 난처해진 것은 아이작이었다.
‘이거 이러면 성역까지 조사가 이어질 수도 있겠는데?’
지힐렛이 숨어있던 성역은 수도원에서도 계단을 타고 상당히 내려가야 했다. 계곡과 이어진다는 말도 사실일지 모르는 셈이다. 이솔데의 쓸데없는 유능함이 성역의 발각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아이작은 어쩔 수 없이 계획을 일찌감치 실행하기로 했다.
‘조금 천천히 하다가 지칠 때쯤 증거를 뿌릴 생각이었지만, 어쩔 수 없지.’
아이작의 가방 안쪽에는 이솔데가 만족할 수 있는 증거가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뿌릴 수는 없었다. 이솔데가 조사를 마친 곳에 증거가 나타나면 이상하니까. 그리고 아이작은 그 전에 이솔데가 속을 만한 그럴듯한 상황을 연출해야 했다.
‘움직여라.’
아이작의 의지가 어딘가를 향해 전달되었다.
이내, 계곡 깊은 곳에 있던 무언가가 느리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