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51)
251화. 밑그림 (4)
“……타천사? 타천사 맞지요?”
아이작은 뻔히 알면서도 울스텐에게 물었다. 그만큼이나 믿기지 않는 풍경이었다.
타천사가 아니라 사람, 아니, 동물이 이 정도 규모로 죽어 있어도 충격적일 것이다. 그런데 한때 신성을 품었던 존재인 타천사가 이렇게 ‘살처분’ 당한 모습은 그 자체로 신성모독적이었다.
살처분.
그렇다. 아이작은 다른 표현을 상상해 낼 수 없었다. 이것은 일방적인 학살의 현장이었다.
울스텐은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쓸만한 광물이 있는지 탐색하다 타천사 일부를 몇 군데서 발견했었다네. 이상하게 느껴져서 뒤져보니 이런 곳이 나왔지. 자네가 채취하도록 허락한 타천사는 이 거대한 무리의 손가락 끝에 불과했네.”
울스텐은 아이작의 표정을 보고 말을 이었다.
“혹시나 했는데 자네도 몰랐던 모양이군.”
“……전혀 몰랐습니다. 이건…….”
아이작은 게임상에서 이 비슷한 이벤트가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없다. 타천사가 대규모로 발굴되는 이벤트? 그런 게 존재할 리가 없다.
아이작은 매장된 타천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다. 오로지 빛의 법전의 타천사만이 돌로 변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것들은 빛의 법전 쪽 기천사였다. 타천사들은 돌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던 상태 그대로 돌로 변해 버린 것이다. 덕분에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생생함과 역동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으스러지고 엮이고 상처 입은 것까지도 고스란히 보여서 으스스한 느낌을 자아냈다.
아이작은 그들을 살펴보다가 구도가 기묘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곳도 살펴보자, 타천사들의 모습에서 공통된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뭐가 이상한가?”
“전부 뒤집혀 있네요.”
“뒤집혀? 타천사가?”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울스텐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기야 천사들의 외형은 기천사라고는 해도 일반인들이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 한눈에 딱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수차례 천사를 본 적 있는 아이작은 천사들이 전부 서 있는 모습이 아닌 지하를 향해 뒤집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날아오르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지하로 파고들려는 것처럼…….’
아이작은 천사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비록 일방적이기는 했으나 천사들의 상태로 보았을 때, 그들은 무언가와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것도 그들이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부상자와 죽어가는 자들까지도 뒤엉켜 무게로 짓눌러 버릴 정도의 적이었다.
타천사들은 바로 그 적과 싸우다 땅속 깊은 곳에 파묻혀 돌이 되어 버렸다.
‘왜?’
아마도 빛의 법전이 그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아이작은 어떤 끔찍한 역병을 상상했다. 싸우던 적으로부터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오염된 천사들. 빛의 법전은 이들을 회수하는 대신 그대로 타천시켜서 영원한 어둠 속에 적과 함께 가두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행해진 살처분.
확실한 것은 이 천사들의 적은 지하의 존재라는 것이다.
아이작은 아직도 토사 아래 파묻혀 있는 타천사들을 보면서 스산한 기분을 느꼈다.
“……울스텐. 혹시 몰라 묻는 건데, 이 아래는 파지 않았지요?”
“으음, 사실 이 주변을 좀 더 발굴해 볼까도 했는데 이걸 보고 있자니 그럴 의지도 싹 사라지더군. 원래 있던 타천사도 건드릴 엄두가 안 나서 내버려 두고 있었네. 혹시 잘못 건드리다가 깨어나기라도 할까 봐.”
천사는 한 명이 있든 천 명이 있든 위협적인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규모와 숫자라면 그 자체로 천문학적인 재앙이나 다름없다. 이 정도 규모의 천사를 동원할 수 있는 존재라면 대적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리라.
아이작은 굳이 이것들을 건드리다가 오월의 검이 찾아와 ‘너처럼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아이는 싫어’하면서 자신을 슥삭하는 상황을 맞고 싶지 않았다.
‘결국 바닥을 기든, 발을 핥든, 얌전히 명천사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살아남을 길인가?’
***
“호르헬 형제님…… 제 미욱한 배움으로는 아직 천상의 대계를 잘 모르겠습니다.”
렌하임 성당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
라마리에 주교는 아이작에게 성당 예산의 반년 치 예산을 빼앗기다시피 한 뒤,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천상의 대계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천년 왕국의 도래를 앞둔 지금은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천년 왕국이 정말로 도래하기 전까지 그는 자기 밑의 수도사들과 학생들, 사제들을 먹여 살려야 할 책임이 있다.
호르헬은 라마리에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어떤 배움이 필요하십니까, 라마리에 형제?”
“아이작이 중요한 인재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신실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교단에 대한 예의나, 그가 보여주었던 행적들도 그렇지요. 등대지기께서는 어찌하여 감히 천사들과 거래를 하려 드는 자를 이름 지어주시려 하시는 겁니까?”
호르헬은 라마리에에게 믿음과 지성이 부족하다며 타박하지 않았다. 다만 딱하다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라마리에 뿐만이 아니라 아이작이 예비된 명천사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많은 사제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호르헬은 그들의 그런 속 좁은 태도가 대단히 못마땅했다.
아이작은 정말로 명천사의 반열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뛰어난 업적과 실력,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만약 아이작 같은 자가 열 명만 더 있었다면 빛의 법전은 이미 천년 왕국의 도래를 옛날에 완수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방금 피 같은 돈을 잔뜩 뜯긴 라마리에에게 ‘네놈이 무능하고 멍청해서 그런 거 아니냐’라고 쏘아붙여서 상처를 줄 필요는 없었다. 대신 호르헬은 차분하게 설득했다.
“그야 아이작이 거짓 선지자로서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지요.”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습니다. 천년 왕국의 도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하지만 아이작 같은 자가 과연 적합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형제는 거짓 선지자의 역할이 뭔지 모르는 듯하군요.”
호르헬은 라마리에를 설득한다기보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신도들은 어리석은 양 떼요, 파수자 회의는 양치기견입니다. 우리는 양치기의 말을 따라 양떼를 통제하려 하지만, 그 많은 양 떼를 통제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지요. 그런 양을 울타리로 몰아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을 때리거나 사납게 짖는다거나?”
“그런 방법에는 한계가 있지요. 그리고 양들이 겁먹어 오히려 달아날지도 모릅니다. 훨씬 더 간단한 방법이 있지요.”
“간단한 방법이라면…….”
호르헬은 왼손은 주먹을 쥐고 오른손에는 손가락 하나를 펼쳐서 움직였다. 주먹 쥔 손이 펼쳐진 손가락을 따라가는 듯한 모양새였다.
“양들은 선두의 한 마리가 움직이면 본능적으로 뒤따라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걸 이용하는 거지요.”
호르헬은 펼쳐진 손가락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이 양을 거짓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거짓 선지자가 앞장서서 울타리 안으로 뛰어들면, 다른 양들도 뒤따라 들어가지요. 그 울타리 안에서 털이 벗겨질지, 도축될지, 혹은 안온한 안식처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면서요. 우리는 그 거짓 선지자만 통제하면 됩니다.”
호르헬은 그렇게 말하며 양손을 동시에 움켜쥐었다. 라마리에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랑 수도승은 설명을 보충했다.
“거짓 선지자는 본래 만인의 숭배와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게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그 숭배와 사랑은 우리의 양치기께서 씌워준 관이요, 선물입니다. 그걸로 파수견인 형제가 놀라고 질투해서야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형제님. 자세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마리에는 큰 꾸중을 들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준 호르헬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울타리 안에 들어온 양을 상상하다가 문득 거짓 선지자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 등대지기께선 아이작을 정말로 명천사로 임명할 생각은 아니겠군요?”
라마리에의 질문에 호르헬은 피식 웃었다.
“저희가 감히 어찌 천사들의 대계를 읽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다른 양들을 도축하더라도 거짓 선지자까지 굳이 해칠 이유는 없지요. 훌륭한 거짓 선지자는 아주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런 거짓 선지자가 말을 잘 듣는다면…… 때때로 양치기의 애정을 받아 특별한 이름이 붙기도 하지요.”
이름 지어진 양.
그것이 무엇을 은유하는지는 라마리에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라마리에는 어쩌면 이미 이름 지어진, 혹은 지어졌던 천사들 중에서도 그런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그런 불경한 생각을 감히 입 밖에는 내지 않았다.
칼센도 그런 훌륭한 거짓 선지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꼬여서 그가 갑자기 실종되었는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거짓 선지자들의 운명은 모두 똑같다.
호르헬의 말대로 어떤 화려한 치장을 하건 인간은 신에 의해 키워지는 양 떼에 불과하다. 자신이 양에 불과하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거짓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거부하는 순간, 보통의 양으로 전락할 뿐이다.
그것은 단순한 도축 대상이다.
흰올빼미가 그랬던 것처럼.
***
아이작은 타천사들의 무덤을 보며 순한 양으로서의 삶을 사는 자신을 상상했다.
나쁘지 않았다. 애당초 그의 목적이기도 했고, 빛의 법전 성기사로서의 목표이기도 했다. 성전을 완수하고 성지를 수복하고, 마침내 도래한 천년 왕국에서 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 그쯤 되면 빛의 법전도 자신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름 없는 혼돈의 승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름 없는 혼돈은 나를 왜 선택했던 거지?’
물론 아이작은 이름 없는 혼돈의 교리도, 목표도 따를 생각도 없다. 아니, 애당초 그런 게 있는지나 모르겠다. 아이작의 고민에도 이름 없는 혼돈은 온전히 그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듯 고요할 뿐이다.
아이작은 타천사들을 바라보다 문득 어떤 이벤트가 생각했다.
‘대규모 타천사’는 아니지만 ‘대규모 천사’들이 등장하는 이벤트가 존재한다.
바로 게임 도중이 아닌 결말부의 ‘승리 선언’ 때의 이벤트였다.
마침내 빛의 법전이 승리하고 ‘천년 왕국’이 도래했을 때, 수천의 천사들이 천상에서 내려와 이 땅이 신의 것이 되었음을 선언한다.
세상의 화로 엔딩인 ‘재탄생’ 승리 선언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화로 속에 던져진 천사들을 장작 삼아 타오른 빛의 법전이 비로소 대지거죽을 깨뜨리고 걸어 나온다. 엘릴이 그토록 바라는 ‘대전쟁’에서는 천사들로 이루어진 군단이 천상과 지상과 지옥을 아우르는 전쟁을 벌인다.
모두 막대한 천사가 필요하며, 빛의 법전과 관련되어 있다.
천년 왕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의 화로는 애당초 화로 속에 들어가 재탄생할 존재가 빛의 법전이라고 믿고 있다. 엘릴은 빛의 법전으로부터 교단이 아닌 자신이 ‘정의’임을 인정받는 것이 목표다. 그것을 위한 전쟁이고.
‘그럼 칼센이 여기서 승천 의식을 치르려 했던 것도…… 이 천사들 때문이었나?’
어쩌면 칼센이 어린 신으로 재탄생했을 때 밀리지 않도록 비축한 병장기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히려 그를 통제할 수 있도록 숨겨두었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이 땅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서 봉인해 둔 뚜껑 같은 걸지도 모르고.
뭐가 어쨌든 그것은 아이작의 손안에 있다.
이건 체스 말이었던 사람도 체스 플레이어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애초부터 아이작은 체스 말이 될 수 없는 존재였다.
‘오히려 나는 체스판에 난입한 괴물이지.’
‘원래’ 아이작은 칼센에게 죽었어야 했다. 네임리스 카오스 세계관에서도 그 점은 바뀌지 않는 과거의 영역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살아남아 이 커다란 판 위에 올라왔다.
그 말은, 아이작이 체스말이 아니라 난입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리고 체스말을 두는 자들은 이 예상치 못한 존재에 당황하며, 누군가는 치우려 하고 누군가는 이용할 기회를 노리며 손을 뻗고 있었다. 그 말은 아이작이 곧 룰을 따라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체스판의 플레이어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이작은 막연하게나마 어떤 그림을 상상했다.
자신만의 승리 선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