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58)
Subject Here – 258화. 말발굽과 화약 (1)
“성기사가 황금우상 상단의 상인의 목을 쳤다고!!”
어떻게든 교단의 광기를 걱정하고 통제하려 애쓰는 사람은 아이작만이 아니었다.
제국의 존엄, 제국의 권위, 제국의 위대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제국의 생계를 책임지는 발트제메르 황제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제까지 그는 어떻게든 교단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조금이라도 그 권위를 되찾아 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교단이 제국을 목 졸라 죽이지 않도록 애쓰고 있는 쪽에 가까웠다.
“대체 어쩌자고? 다른 상인도 아니고 황금우상 상단 상인의 목을 쳐?”
“상단의 배가 시에로 여명군에게 약탈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근방에 있던 성기사가 그걸 보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서 항의했더니, 분개한 성기사가 상인의 목을 날려버렸다고…….”
“그 성기사 놈은 대가리가 장식인 거냐! 장식이라서 남의 대가리도 그냥 툭툭 치면 되는 줄 안 거냐! 아니, 성기사 놈들 대가리가 텅텅 빈 건 이미 알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상인 놈은 차라리 관청에 항의를 할 것이지 왜 교단에게…….”
발트제메르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화를 내다가 주변의 신하들이 숨 막히는 표정으로 땀을 흘리는 것을 보고 분노를 멈췄다. 자신의 뿔이 눈부실 만큼 밝게 타오르고 있으며, 그 열기에 신하들이 힘겨워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발트제메르는 어지간해선 자신의 감정을 뿔로 발현할 만큼 드러내지 않는다. 주변에 민폐고 자시고를 떠나서, 자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남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그의 감정을 흔들어 놓았다. 평소라면 속으로 감정을 삭였을 일이지만, 이미 최근 몇 번이나 벌어진 비슷한 사태로 그의 인내는 한계에 가까워진 상태였다.
발트제메르는 회의실 테이블을 짚은 채 일어나, 주변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회의에 참가한 신하들은 자신의 등 뒤로 걷는 황제가 섬뜩해서 숨도 쉬기 힘들어했지만, 그는 화난다고 신하들을 찔러 죽이는 광인이 아니었다.
그가 찔러 죽이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교황.”
발트제메르가 불현듯 중얼거렸다.
“교황 성하께서는 이번 사태에 뭔가 성언이 있으시더냐? 분명 나보다 먼저 보고를 들었을 터인데.”
“……저희 측 사제로부터 들었사온데.”
정보국 역할을 맡고 있는 제국 기사단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배에 금화가 얼마나 실려 있었는지 물었다고 합니다.”
발트제메르는 실소를 흘렸다.
신하들은 다시 뿔이 불타오를까 봐 걱정했지만, 황제는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다.
발트제메르는 껄껄 웃다가, 마음속으로 교황을 열다섯 번쯤 죽인 다음, 인자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평정심을 되찾았다.
“황금우상 상단에 조의를 표하고 약탈당한 화물에 대한 보상과 죽은 상인에 대한 조의금을 충분히 치를 것을 약조해라. 배에는 뭐가 실려 있었지?”
“다행히 값비싼 물건은 아니고, 밀과 보리였습니다.”
발트제메르는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가려다가 문득 뭔가 걸려서 되물었다.
“밀과 보리? 사건 발생 지역이 레휘스 항이로군. 제국 남동부. 그쪽은 흉작이라고 하지 않았나?”
“예.”
발트제메르는 본능적으로 상황을 추측했다. 아마 황금우상 상단은 흉작으로 굶주리고 있는 레휘스 지역에서 식량을 값비싸게 팔려고 했을 것이다. 아니면 흉작에 관계 없이 적게나마 추수한 것을 박박 긁어모아 납품받은 것이거나.
하지만 때마침 거기에는 시에로 여명군이 있었다.
그들이 적선을 요구했든 좀 더 합리적인 가격을 요구했든, 황금우상 상인은 아마 고깝게 나왔을 것이다. 결국 분개한 시에로 여명군은 상인을 때려눕히고 약탈을 벌였다.
약탈에 과연 여명군만 가담했을까? 지역 주민도 합류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지역에 상주하는 성기사는 상황을 일부러 무시했을 것이다. 성기사단도 결국 지역 주민들과 부대끼는 이웃이니까. 하지만 상인은 그런 성기사에게 화를 내고 모욕하다가 결국…… 싹둑.
‘빌어먹을.’
진실은 모른다.
Subject Here – 정황과 상식만으로 추측한 것뿐이다. 솔직히 누굴 탓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약탈당한 배와 잘린 상인의 목만 남았으니, 그 결과를 책임질 뿐이다.
게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상인의 목을 잘라 버리면, 나중에 레휘스 항에 흉작이 들더라도 대체 누가 식량을 팔러 가겠나?
‘애당초 이런 식으로 여명군을 유도한 미친 교황이 문제다.’
발트제메르는 결국 사태의 근원을 교황으로 결정했다.
제국의 모든 빈곤이 황제의 부덕이듯, 신도들의 양심적 빈곤 또한 교황의 책임 아니겠는가. 그리고 솔직히 상인의 목을 벤 지역 성기사의 성정은 몰라도 교황의 성정에 대해서는 발트제메르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품고 있었지만, 감히 꺼내 들 엄두를 못 냈던 마음속 비수 한 자루를 꺼내 들기로 결심했다.
회의실 테이블 주변을 걷던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자리에 앉은 황제는 한쪽에 놓인 서류 한 장을 손끝으로 툭 짚었다.
이솔데가 한 주교에 대해 조사하고 정리해 올린 서류였다.
카틴 라헬 주교.
황제가 마음속으로 점지해 둔 추기경 후보였다.
“추기경 선거가 언제지?”
“최대한 빠르게 진행한다고 했으니 분명 이번 달 안으로…….”
발트제메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번 추기경 선거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여명군을 성공시키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여명군 이후에도 제국이 살아 있으려면 교황이 죽어야 했다. 그리고 황제는 할 수 있다면 그 시기를 앞당기고 싶었다.
‘만약 교황을 다시 뽑아야 한다면…… 그 전에 추기경 중 적어도 둘은 내 편으로 만들어 놔야겠지.’
쿵쿵쿵.
발트제메르가 모진 결심을 하던 그때, 갑자기 회의실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발트제메르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전 회의를 방해했다는 것은 중요한 소식이라는 뜻이다. 이내 문을 열고 창백한 표정의 전령이 들어왔다.
“폐하. 교단에서…….”
“교단에서 뭐? 성기사가 또 상인의 목을 잘랐다더냐?”
발트제메르는 놀라지도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이어지는 전령의 말은 그를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교단에서 올칸 규율을 침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
“올칸 규율? 올칸 규율이 움직였다고?”
아이작은 놀란 표정으로 피난해 온 피난민에게 물었다.
이사크레아 영지는 동쪽에서 갑자기 밀려온 피난민들로 인산인해였다. 대부분 영지 동쪽, 쇠르에서 온 피난민들이었다. 마침 추수를 앞두고 있던 데다 많은 식량을 비축해 두었던 아이작은 그들을 먹여 살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올칸 규율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예. 변방 공국들이 오크 유목민 무리에게 약탈당했고, 적어도 100기 이상의 무리를 목격했다는 목격담이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피난민은 절망감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듣자 하니 교단에서 올칸 규율을 도발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처음 듣는다. 올칸 규율은 성지와도 거리가 먼데 왜?”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길을 잘못 든 거지 여명군 무리가 미친 짓을 벌이든가 했겠지요. 황금우상 상단 상인의 목도 벴다는데 못 할 게 있겠습니까?”
아이작은 그 말에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성기사가 황금우상 상단의 목을 벴다는 이야기는 이미 캐틀린을 통해 들었다. 거지 여명군이 상인을 해쳤다면 암암리에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 보복했겠지만, 상대가 성기사라면 그들에게도 난감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올칸 규율을 건드려서 얻을 이익이 없어.’
저 오크 유목민 무리는 수백 년 전 과거, 올칸이라는 선지자가 모든 오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떠나면서 시작되었다. 인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류 계층은 오크다. 대륙의 변방 중에서도 변방, 거의 외경에 가까운 곳에 속하기 때문에 제국과 엮인 역사가 거의 없다.
신앙의 차이 때문에 흑제국에 속해있긴 하지만, 불사 교단이 살점 있는 것들을 저열한 욕망에 시달리는 하등한 존재로 취급하듯 올칸 규율도 언데드를 영혼이 뼈에 갇힌 불쌍하고 약한 것들로 생각한다.
때문에 동맹의 결속력도 그다지 강하지 않은 편인데, 간단히 말해 게르토니아 제국과 엘릴 왕국이 서먹한 사이였던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런 올칸 규율을 굳이 건드려서 전쟁에 끌어들이는 것은 교단이 여명군에 자발적으로 사형을 선고했다는 뜻과 다름없다.
Subject Here – 아무리 교단이 어리석은 짓을 해도 일부러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올칸 규율은 대규모 약탈을 벌이려고 벼르고 있었고, 흘러들어온 시에로 여명군을 핑계로 공격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시에로 여명군이 멍청한 짓을 했든, 올칸 규율이 적당히 핑계 대고 옛 버릇 못 고친 것이든 상관없다.”
여명군이 코앞인 상황인 만큼, 올칸 규율이 일시적인 약탈을 위해 왔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역사에는 올칸 규율이 울텐하임 코앞까지 쳐들어와서 약탈을 벌인 기록이 있다.
“자클렛, 즉시 전투 준비를 해라. 일단 쇠르로 가서 상황을 파악해야겠다. 렌하임과 리하르트 백작에게도 지원을 요청해. 렌하임에 지원을 청할 때에는 브리엔트 성기사단의 로튼해머 단장을 직접 만나 청해라. 그리고 중앙의 델리아 리옹 후작에게 성배기사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더라는 전갈을 보내라.”
아이작이 피난민을 통해 소식을 들었으니, 중앙에는 이미 정보가 들어갔을 것이다. 적의 구체적인 규모나 피해지역, 충돌 이유까지.
어쩌면 그의 지원 요청이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제국군은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황제가 벌써 교단을 들이받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
아이작은 주변에 지원을 청한 상태에서 먼저 넬을 타고 날아올랐다.
혹시라도 구출해야 할 중요 인물이 있을 수도 있으니 동행 인원은 헤사벨 뿐이었다. 이미 해가 진 초저녁이었지만, 쇠르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이곳저곳에서 불타오르는 화염이 보였다. 올칸 규율은 약탈 후 방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종의 ‘그들만의 의식’이다.
‘오크들이 맞군.’
오크라 하면 일반적으로 야만적인 약탈 부족을 생각하지만, 이 세계에서 올칸의 종교적 감화를 받은 오크들은 조금 다르다.
야만적인 약탈 부족인 것은 맞지만, 상당한 체계를 갖춘 실리주의적인 약탈 부족이다.
‘헤사벨, 오크들을 본 적 있나?’
‘예? 몇 번 본 적 있긴 한데…… 피를 빨아 본 적은 없어요.’
‘싸워 본 적은 없지?’
‘예.’
‘가까이 가지 말고 활만 쏘되, 계속 움직이면서 싸워라.’
헤사벨은 아이작의 생경한 경고에 의아해했지만, 귀에 새겨들었다. 이내 아이작이 낮게 저공 비행하면서 쇠르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쇠르는 이미 함락 직전인 듯 곳곳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병사들이 도시 시청을 중심으로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게 오래 못 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벽이…….’
헤사벨은 성벽 곳곳이 파괴된 흔적을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기적이나 일으킬 법한 파괴의 흔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올칸의 기적이 아니었다.
유목민이라 하면 성벽이 있는 도시를 공략할 방법이 마땅찮은 야만인을 예상하지만, 이 오크들에게는 아직 제국조차 갖추지 못한 수단이 존재했다.
그때 시청 앞으로 오크들이 무언가를 끌고 나왔다. 아이작은 예상했던 물건이 드러나자 짧게 신음했다.
그것은 대포였다.
오크들은 시청 안에서 농성 중인 병사들을 향해 씩 웃어 주고는 크게 외쳤다.
“방포하라!”
쾅! 불을 뿜는 굉음과 함께 수십 개로 쪼개진 돌들이 시청을 두드렸다. 그중 커다란 돌은 기어코 시청의 빈약한 문짝과 함께 뒤에 있던 병사를 찢어 놓았다.
헤사벨은 그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저건 대체?’
‘대포다. 올칸이 신들로부터 훔친 지식 중 일부지.’
단 한 줄의 쇠사슬을 상징으로 삼는 올칸 규율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오로지 하나의 규율만을 강조한다.
자유로울 것. 특히 신들에게 얽매이지 말 것.
신앙이 신앙에 얽매이지 말라 이르는 모순적인 교리는 오크들을 꿰뚫는 철학이자 규율이었다. 아이작은 그래서 그들을 향해 한층 더 자유로워질 기회를 주기로 했다.
넬이 저공비행을 시작하자 공기를 찢는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뒤늦게 하늘을 올려다본 오크들이 뭐라고 외친 순간, 넬의 입에서 벼락이 뿜어져 나왔다.
불안하게 쌓여 있던 화약들이 유폭되면서 오크 무리가 사방으로 비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