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59)
Subject Here – 259화. 말발굽과 화약 (2)
쿠구구구구…….
엄청난 폭발과 함께 파편이 흩날렸지만, 실제 오크 무리가 입은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아이작은 오크들이 대열을 정비하지 못하도록 재차 뇌격을 이어갔다. 벼락이 땅을 지질 때마다 비명과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아이작 님!’
그때 헤사벨의 경고가 들려왔다. 아이작이 재빨리 넬의 움직임을 틀어 급상승한 순간,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포환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늘을 가로지른 대포는 그대로 쇠르 어딘가에 떨어져 굉음을 일으켰다.
‘사석포로 대공사격을 해? 미친놈들인가.’
아이작을 향한 포격이 빗나가자 오크 무리에게서 욕설 섞인 고함이 들려왔다. 아이작은 그들을 향해 다시 뇌격을 퍼부었지만, 이번에도 생각만큼 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체구는 다소 작지만 질긴 피부와 강인한 체력은 오크들의 종족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애당초 그들은 죽음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쾅, 콰쾅!
아이작을 향한 예리한 포격이 몇 차례 더 날아오자 낮은 고도에서 정확한 공격을 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기적을 쓰고 있군. 대포에 조상님의 가호라도 붙어 있는 건가…….’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농담이 아니다. 올칸 규율은 무당을 통해 대포에 조상신의 가호를 붙여 놓는다. 아이작은 넬에게 별도로 움직이도록 지시하고, 높이가 낮아졌을 때 뛰어내렸다.
“카타왈 백호장! 악마 놈이 내려왔습니다!”
“오냐, 제 발로 내려오다니. 놈의 머리통을 잘라 와라! 대포에 넣고 쏴주마!”
화려한 머리 장식을 쓴 오크가 크게 포효하며 칼을 휘둘렀다. 이내 오크 서너 명이 휘어진 만곡도를 들고 아이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기를 꺼낼 필요도 없었다. 카훌린의 예리한 날은 단숨에 오크의 칼과 몸통을 동시에 베어 버렸다. 싸우는 속도와 달리는 속도에 차이가 없었다.
오크들이 공기 저항만큼도 아이작을 막아서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카타왈이라는 오크 백호장은 아이작이 드래곤을 타고 다닐 때 못지않게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말을 뒤로 물리며 소리쳤다.
“그물탄 방포!”
쾅! 아이작이 아직 오크들과 싸우고 있음에도 굉음과 함께 포환이 날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범한 포환이 아닌 쇠 그물이 뭉친 포탄이었다. 눈앞에 있던 오크가 쇠 그물 눈 크기만큼 잘게 썰리면서 아이작을 향해 쏟아졌다.
그제야 아이작은 검기를 꺼내 들고 쇠그물을 베었다.
쇠그물은 거칠게 썰려 아이작 곁을 스쳐 지나갔지만, 오크들의 핏물을 온통 온몸에 뒤집어쓰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오크들은 코앞이나 다름없는 거리에서 대포를 쐈는데도 무사한 아이작의 모습에 사태가 심상찮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작은 전신에서 피와 살점을 뚝뚝 흘리며 다시 놈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제야 오크들은 백호장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일사불란하게 말에 올라탔다.
겁을 먹어서가 아니다. 그들의 전투는 말에 올라탄 다음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백호장 역시 이미 말에 올라탄 뒤였다.
“만만찮은 놈이다! 퇴각 지연전 개시!”
아이작 주변에 있던 오크들이 썰물 빠지듯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뒤따라가 몇 놈의 등을 베었지만 말이 달리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 화살 한 대가 도망치던 카타왈 백호장의 말을 꿰뚫었다. 헤사벨이 쏜 화살이었다. 카타왈은 꽥하는 고함과 함께 말에서 떨어져 나뒹굴었다. 오크들은 잠깐 멈춰 섰지만,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카타왈은 힘겹게 일어나 다가오는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아이작은 어차피 오크들을 전부 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심문할 수 있는 한 놈만 잡을 생각이었다.
그때 카타왈은 곁에 놓인 대포로 달려가 불씨를 집어 들었다.
“죽여 버리겠다!”
이 시대에 대포란 오버 테크놀로지고, 오크들 역시 놀라운 명사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포로 사람을 사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작이 아니라 일반인이라 해도 대포를 향해 달리는 게 아니라면 맞출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아이작은 인상을 찡그리며 멈춰 섰다.
“하지 마라.”
카타왈도 아이작이 정말로 멈춰 서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Subject Here – “그냥 얘기만 하고 풀어 주마. 아직 한창때 육신이고, 장비도 좋은 거 같은데 목숨이 아깝지 않냐? 어차피 네 놈을 죽여 봤자 소용없다는 거 알아. 그냥 얘기만 하고 보내 주마. 불 내려놔.”
아이작은 카타왈을 설득하기 위해 올칸 규율의 눈높이에 맞춰서 말했다.
분노로 타오르던 카타왈의 눈이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동요해서가 아니라 아이작이 이런 말을 할 줄 예상하지 못해서였다.
“너…… 뭐냐? 우리에 대해 잘 아는 거 같군.”
“조금 알지.”
올칸 규율은 환생을 믿는다. 아니, 실제로 환생을 한다.
그것도 기억까지 고스란히 가지고.
올칸 규율 신도들이 죽음을 맞이하면 일시적으로 영혼이 빠져나온다. 그리곤 즉시 가장 가까운 올칸 규율의 사제, ‘무당’에게로 저절로 이동했다. 무당은 환생할 순서와 가족을 점지해 다시 태어나게 만든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영혼이 소실되는 경우는 없잖아 있지만 올칸 규율에서 태어나는 오크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많게는 수십 번 넘게 환생한 괴물도 있었다. 때문에 올칸 규율은 가족 개념이 희박한 대신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아이들은 당연히 공동 육아고.
물론 이 체제도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잘못 문제를 제기했다가는 ‘환생’ 당하는 수가 있다.
흑제국은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불사’를 누리는 자들의 동맹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흥미가 생겼나? 그럼 질문 하나씩 교환하지.”
아이작의 말에 카타왈은 히죽 웃었다.
“관심 없다. 지옥에나 가라.”
카타왈은 대답과 동시에 횃불을 대포 안쪽에 쑤셔 넣었다. 대포 내부에는 남은 화약과 장약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이작이 가까이 오면 폭발시키려고 했지만 그가 이미 알아차린 이상 소용없었다.
아이작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엄청난 폭발이 쇠르의 대로 한복판을 뭉개 버렸다.
***
아침이 되고서야 아이작은 오크 무리가 완전히 빠져나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청에서 겁에 질린 채 농성하던 관료와 귀족들은 벌벌 떨면서 기어 나왔다. 병사들은 엉망이 된 도시를 돌아다니며 피해 상황을 확인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성배기사님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면 저희는…….”
상인회와 귀족들이 선출한 쇠르 시장은 아이작의 손을 붙들고 몇 번이나 감사를 표했다. 아이작은 쇠르만 한 대도시가 대략 오크 무리 100여 명에게 이 정도로 격파당한 것에 대해 할 말이 많았지만, 그를 탓할 수만도 없었다.
제국은 올칸 규율과 엮인 적이 드물고, 대포 자체가 올칸 규율에서도 최첨단 기술에 속하는 비밀 병기다.
뭣보다 여명군이다 뭐다 하면서 병력이 대거 빠져나간 데다, 치안력 약화로 병사들이 외부 경계 대신 도시 내부에만 집중했던 탓도 컸다.
“아닙니다. 같은 신앙의 신도로서 당연히 도와야 할 일이지요. 그보다 언제 다시 오크들이 돌아올지 모릅니다. 대포는 전부 회수했습니까?”
“예, 아, 예. 병사들 보고를 들어보니 그 무시무시한 불 뿜는 쇳덩이? 대포라고 했던가요? 그건 총 3개가 전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부 파괴되어서…….”
아이작은 회수된 대포들의 상태를 보고 실망했다. 아이작이 처음에 벼락으로 지진 것과 카타왈이 화약을 넣고 터뜨린 것은 당연히 쓸 수가 없었고, 남은 것 하나도 도망치기 직전 내부에서 폭파시켜 쓸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철저한 놈들이었다.
쇠르 시장은 대포를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지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대체 이 야만인 놈들이 어디서 어떻게 이런 무기를 만든 겁니까? 화로장인이라도 있답니까?”
아이작은 긴 한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올칸 규율의 신인 올칸은 사후세계를 방랑하면서 천국을 약탈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사후세계의 비밀과 지식들을 신도들에게 속삭여 준다고 합니다.”
“……신들을 약탈해요? 그런 게 가능합니까?”
“지극히 오크들의 신답지요. 하지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이나 기적뿐이어서 고유한 철학이나 문화, 예술 같은 것은 전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야만인이죠.”
판타지 테크노 바바리안.
이 세계의 오크들을 관통하는 정확한 표현이었다.
실용적이라면 실용적이지만, 저승의 올칸이 지식을 추가로 전달하기 전에는 그 진보가 더디다는 단점이 있다.
Subject Here – ‘왜 공부해야 하지? 지식을 훔치면 되는데.’
일반적인 문명과는 완전히 상식부터가 다른 종족이다.
때문에 올칸 규율과 가장 사이가 안 좋은 신앙은 다름 아닌 세상의 화로 교단이었다. 애초에 올칸 규율의 가장 큰 특징인 ‘환생’ 자체가 세상의 화로에서 훔쳐 온 비밀이었다. ‘재탄생’이라는 신성한 개념을 훔쳐 온 것이었기에, 드워프들은 오크만 보면 찢어 죽이고 싶어 했다.
제일 많은 기술을 약탈당했는데, 심지어 그 기술에 대한 존경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
‘대포도 사실 세상의 화로가 먼저 만든 건데…… 제국에도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던 물건을 올칸 규율이 들고나왔으니 또 뒤집어지겠군.’
***
아이작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피해 상황 조사를 대략적으로 마친 병사가 다가와 보고했다. 시장은 보고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에 비해 피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니 다행입니다.”
올칸 규율이 거의 도시 절반을 헤집고 다닌 것에 비해, 불타거나 무너진 곳은 많지 않았다. 성벽과 망루, 시청 정도. 성벽 밖의 민가가 상당수 불탄 것과는 반대였다.
“저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포면 도시를 뭉개 놓고도 남았을 텐데…….”
대포란 게 화약을 보통 잡아먹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굳이 도시를 뭉개기 위해 대포를 쓸 이유는 없다. 아이작은 오크들이 상당히 효율적으로, 그리고 핵심 목표만을 노리고 움직였음을 깨달았다.
‘평범한 약탈이 아니군.’
이런 핀 포인트식 공격은 점령을 위한 포석이다. 도시에 불을 지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대도시에서는 화재가 금방 번지니까.
아이작은 그 의미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놈들이 정찰대 내지는 선봉대에 불과하다는 거지.’
아마 놈들은 약탈 겸 정찰을 겸해서 민가 몇 군데를 들쑤셔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쇠르의 방비가 약한 듯하자, 자기들만으로도 공략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실제로 아이작이 오지 않았다면 그랬을 터였다.
아이작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올칸 규율의 대약탈이 시작된 건가?’
올칸 규율로 엔딩을 본 적 있는 아이작은 상황이 심각하게 흐를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자신의 어떤 행동이 문제였는지는 몰라도, 어디선가 시작된 나비효과가 올칸 규율마저 움직이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묻는 건데, 붙잡힌 오크 포로는 없지요?”
“아, 예. 한 명도 없습니다. 지독한 놈들. 사로잡히기 전에 전부 자살하거나 동료들이 죽이고 가더군요.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는지…… 놈들은 죽는 것도 무섭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야 포로로 잡히느니 그냥 환생하는 편이 나으니까 그렇겠지.’
올칸 규율은 까다로운 적이다. 오크라는 종 자체가 체력적으로 강인한데, 기술력은 제국보다 뛰어나고, 유목민이라는 특성으로 대부분이 경기병인 데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죽어도 경륜이 그대로 누적되기까지.
적으로 삼기에는 최악의 상대다.
그나마 종 자체의 수명이 짧다는 게 단점인데 그마저도 환생 덕분에 의미가 없었다.
올칸 규율의 침공은 언제나 제국에 있어서 대위기였다. 특히나 지금처럼 내외부적으로 휘청거리는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뭐…… 약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특히나 이미 몇 번이나 올칸 규율의 대침공을 막아 본 적 있는 아이작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그 전에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뿐.
“성벽을 복구하고 침공에 대비하십시오. 최악의 경우 올칸 규율의 대군세가 몰려올 겁니다.”
아이작의 말에 시장은 겁먹은 표정을 했다.
“예? 그, 그러면 차라리 교단이나 제국군이 올 때까지 피난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여명군은 기대도 안 하고, 제국군…… 제국군이 제때 오면 다행일 텐데요. 하지만 막을 방법은 있습니다. 이게 올칸 규율의 전면 침공이라면 반드시 도와줄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아이작은 북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의 은자처럼 숨어 있는 자존심 강한 난쟁이들.
그들이 모루 위의 쇳덩이처럼 으깨 버리고 싶어 하는 놈들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면 분명 관심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난쟁이들이 기대만큼 빠르게 움직일지는 알 수 없다.
‘……누구든 지원이 올 때까지 저쪽에 무서운 소문을 좀 퍼뜨려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