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6)
26화. 수색 및 섬멸 (3)
아이작은 의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이솔데를 향해 말했다.
“일단 말씀하신 대로 조사를 진행해 보도록 하죠. 아, 그런데 이단심문관님?”
“예?”
“만약 불사교단 족속들이 여기 있다고 친다면, 이 임무의 정체성은 뭐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정찰? 조사? 토벌?”
당연하지만 아이작은 지금 이 임무의 목적이 불사교단 권속들에 대한 토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렇게 백제국 깊은 곳까지 그 허연 뼈다귀들이 직접 기어들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지에서도 얼마든지 ‘징집’이 가능한 것이 언데드 족속들이다.
때문에 아이작도 이번 임무가 정찰이나 조사, 만약의 경우가 벌어진다 해도 경호 정도라고만 생각했을 뿐 토벌하겠다느니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솔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1차적으로는 조사입니다만, 발견 즉시 토벌로 바뀝니다.”
이솔데의 당당한 태도에 아이작은 당황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단심문관이 아무 생각도 없이 적들이 매복 중인 장소로 오진 않았을 것이란 것이 떠올랐다. 이솔데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만약의 경우 시간만 끌어주신다면 놈들을 쓸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만약의 경우 시간을 끄는 것. 그것이 아이작과 게벨의 임무인 듯했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곡 깊은 곳으로 향했다.
***
그 사이 계곡 깊은 곳에서는 아이작이 뿌린 혼돈의 자손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계곡 안쪽에 어떤 놈들이 있는지 찾아내라. 확실하게.’
지힐렛과의 전투를 통해 혼돈의 자손들은 쥐 떼마냥 불어났기 때문에 정찰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이솔데는 신중하게 석상 하나하나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엄청난 이단의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 말대로 무너진 사원의 잔해들이 계곡 곳곳에 가득했다.
“사람들은 왜 이 역병신이라는 걸 위해서 사원까지 지었을까요? 역병이 뭐가 좋다고.”
아이작이 투덜거리며 물었다.
‘네임리스 카오스’에서 그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아홉 신앙이면 충분했다. 나머지 고대신이니 어쩌고 하는 것들은 게임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다른 게임에서 ‘고대신’이라면 무시무시한 히든 보스 떡밥이거나 그렇겠지만, 네임리스 카오스에서는 기껏 해봐야 필드 보스 수준이었던 것이다. 반면 다른 신들은 대부분 천사를 통해 명령을 전달할 뿐, 불사 황제를 제외하면 신이란 존재는 얼굴 맞대기도 힘들었다.
“옛날에는 신이 아주 많았다고 하더군요.”
이솔데는 의외로 선선하게 대답해 주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에 신의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아마 옛날 이 지역에 큰 역병이 돌았을 겁니다. 사람들이 많이 죽으니까 역병에 이름을 붙이고 신으로 모시면서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었겠지요.”
“용서요?”
“가뭄이 들면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빌고, 홍수가 일어나면 비를 멈춰달라고 빌잖아요. 그렇게 역병의 신은 치유의 신이 되기도 하는 겁니다.”
‘치유의 신 지힐렛이라. 병을 준 놈은 약도 줄 수 있다는 논리군.’
아이작은 대충 그렇게 이해했다.
“하지만 빛의 법전이 루앗딘을 통해 여명의 석판을 내려주면서 이런 잡신들은 뭉개지고 사라졌지요.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다른 여덟 신앙들도 있잖습니까?”
이솔데는 못 들은 척했다. 그녀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숨겨진 말이 뭔지는 아이작도 금방 알아차렸다. 고대신들을 뭉개고 없애버린 것은 빛의 법전뿐만이 아니라 아홉 신앙 모두가 합의해서 한 일이다. 이것은 게임 설정에서도 나오는 사항이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등대지기 루앗딘이 여명의 석판을 들고 나타난 일은 야만의 시대와 이성의 시대를 가르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때부터 일명 ‘빛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니까.
빛의 시대라 불리는 천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고대 신앙들은 박멸되고, 빛의 법전에 협력하거나, 복종하거나, 조화를 이루게 된 여덟 신앙만이 살아남았다. 마지막에 등장한 불사교단조차도 빛의 법전이 주도하는 질서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직 이름 없는 혼돈만이 사라졌지.’
아이작은 이 미묘한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이름 없는 혼돈이 분명히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아홉 신앙’이라고 언급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후두두두둑.
그때 아이작은 절벽 위쪽에서 떨어지는 자갈을 발견했다. 이솔데도 계곡 위쪽을 올려다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먼저 행동을 취한 것은 아이작이었다.
“저기!”
툭, 투툭.
절벽과 절벽 사이로 거대한 실루엣이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산짐승인가 했지만, 명백히 이질적인 실루엣이었다.
이솔데의 눈이 커졌다.
“저건 대체?!”
“안쪽으로 갑니다!”
아이작과 게벨은 우선 칼을 뽑아 들었지만 움직이는 대신 이솔데를 바라보았다. 이솔데는 굳은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더니, 호루라기를 길게 불었다.
삐익─.
계곡을 찢는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지자 하늘 위로 갈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아이작이 이미 기생충을 심은 적 있는 그 갈까마귀였다. 갈까마귀는 이솔데와 호흡이 오랫동안 맞았는지 곧바로 계곡 위에서 짐승을 쫓아 날아갔다.
“따라갑시다!”
이솔데는 갈까마귀의 동선을 쫓아 움직였다. 먼 거리에서도 그녀는 갈까마귀가 어디에 있는지 놓치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짐승은 계곡과 계곡 사이, 절벽 틈이나 모퉁이 너머로 언뜻 실루엣을 보이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맹렬한 추격 때문에 도저히 도망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유인하는 기색이 선명했다.
‘그리고 실제로 유인하는 게 맞지.’
짐승의 정체는 바로 아이작이 만든 혼돈의 자손이었다. 덩치가 커다란 생물을 모태로 만든 탓에 커졌지만, 덕분에 이렇게 눈에 띄는 임무를 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특유의 형태 때문에 정확한 실루엣을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좋아. 이대로 유인하다가 계곡 밖으로 내보내면…….’
여기에 뭔가 있었지만 달아났다는 뜻이 될 테고, 추적 대상을 잃어버린 이솔데는 결국 사태를 마무리 지을 것이다. 어차피 불사교단의 사제는 죽었으니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정 깔끔하게 끝내고 싶다면 저 혼돈의 자손을 이솔데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줘도 된다.
***
“잠깐만, 아무래도 우리를 유인하는 것 같습니다!”
짐승이 아슬아슬하게 잡힐 듯 말 듯 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움직이자 이솔데도 상황을 파악했다. 이동속도가 느려지자 자연스럽게 추적하던 정체불명의 짐승 역시 동작이 느려졌다. 갈까마귀를 통해 동선이 그대로 잡히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유인하고 있다면 매복이 있다는 뜻 아닙니까?”
“그렇다고 저 불길한 짐승을 놔줄 수는 없지요. 두 분은 천천히 따라와 주십시오.”
이솔데는 그렇게 말하더니 목걸이를 입가로 가져가 무언가 기도문을 외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누덕누덕한 잿빛 가루들이 흘러나오더니 순식간에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나방의 교리.’
아이작이 이미 파악했던 이솔데의 능력 중 하나였다.
빛의 법전은 빛을 상징한다. 나방은 빛을 쫓는다.
나방의 교리는 그 중 교단 안에서 은밀한 행동이 요구되는 사람들이 배우는 교리의 기적이었다.
눈앞에 있는데도 길가의 자갈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해진 이솔데는 곧장 지금까지와는 다른 동선으로 추적을 재개했다.
만약 저 짐승이 아이작 일행을 유인하는 중이라면, 나방의 교리를 사용한 이솔데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솔데가 짐승에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아이작은 그녀의 움직임을 보고 혼돈의 자손을 조심스럽게 조작할 수 있었다.
“…….”
이솔데는 나방의 교리를 사용하고도 거리를 좁히지 못하자 초조해진 기색이었다.
그때 아이작에게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들려왔다.
아이작이 뿌린 혼돈의 자손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시체라고?’
모태가 된 쥐의 사고력이 낮은 탓에 정확한 메시지를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시체가 있다는 것은 긴장할 만한 소식이었다. 혼돈의 자손은 시체를 향해 다가가려다가 움츠러들었다. 누군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 순간, 혼돈의 자손으로부터 의지 전달이 툭 끊어졌다. 상대를 눈치채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다. 강해봤자 고양이 정도의 전투력이긴 하지만, 이렇게 맥없이 당했다는 것은 야생 짐승에게 당한 것이 아니란 뜻이다.
‘전부 모여서 조사해.’
아이작은 혼돈의 자손들을 조종해 시체가 발견된 지역으로 몰아넣었다. 사냥이 아니라 추적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의지가 끊어진 장소는 지금 있는 곳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설마 진짜 매복이 있었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이작은 놀랐다. 성역의 제단을 장악한 이후, 그는 수도원과 인근 지역을 모두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한 기색이라곤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누군가 나타났다는 것은 성역의 능력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존재거나, 지난 밤 사이에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이솔데 씨!”
아이작은 엉겁결에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이솔데는 즉시 멈춰 섰다. 그 순간 그녀가 앞서가던 동선으로 화살 몇 대가 꽂혔다. 그중 한 대는 이솔데를 향해 날아들었으나, 몸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잿빛 가루들을 관통해 지나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여파로 나방의 교리가 깨진 것인지 이솔데의 모습이 드러났다.
“누구냐!”
게벨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계곡을 울렸다. 그러자 계곡 바위틈 사이에서 사냥꾼 복장에 석궁을 든 사람 대여섯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근 마을에서 온 사냥꾼 같았다.
“죄, 죄송합니다. 방금 전에 기괴한 짐승이 머리 위를 지나가서 그 짐승인 줄로만 알고…….”
“그렇다고 화살을 마음대로 쏘아붙이나!”
아이작은 화를 내면서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사냥꾼들은 고급스러운 복장의 이단심문관과 수도사 복장의 아이작과 게벨을 보고 잘못 건드렸다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특히 아이작이 화를 내며 다가오자 그들은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다.
네필림 특유의 매력이 이번에는 그들의 죄악감을 압박하는 형태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도 그 짐승을 쫓고 있는 중이니 용서하겠습니다! 그 짐승은 어디로 갔습니까?”
“저쪽으로 절벽을 타고…….”
그 순간 아이작은 벼락같이 손에 들고 있던 칼을 휘둘러 남자의 목을 찔렀다. 동시에 게벨과 이솔데도 호흡을 맞추듯 빠르게 달려들었다.
감히 자신들을 공격한 것을 용서할 수 없다든가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그들 셋은 이미 사냥꾼들을 보자마자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솔데는 일반인 사냥꾼이 나방의 교리를 꿰뚫고 공격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게벨은 그들의 석궁이 사냥꾼이 쓰기에는 너무 고급스럽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아이작은 자신이 찌른 남자의 손에 혼돈의 자손을 죽이고 남은 피가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챙, 까드드드득!
어떤 기합이나 합의된 소통도 없이 동시에 공격이 이루어지자 사냥꾼들은 순식간에 부상을 입고 밀려났다. 하지만 당장 죽은 사람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이 평범한 사냥꾼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컥, 헉, 그르르륵!”
심지어 아이작에게 목이 꿰뚫린 사냥꾼마저도 뒤로 물러나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아이작은 놈의 구멍 뚫린 목에서 피가 넘실거리며 살갗을 꿰매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솔데 역시 그걸 발견하고 으르렁거리듯 이를 갈았다.
“왈라이카 인간 사냥꾼들?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왔나!”
왈라이카는 흑제국과 백제국 사이에 있는 군소국가 중 하나다. 수많은 분쟁 속에서 여기저기 빌붙으며 살아남은 국가답게 역사가 복잡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흑제국에 더 가까운 세력으로 분류되었다. 그들의 귀족층이 바로 언데드였기 때문이다.
흔히들 뱀파이어라고 부르는 흡혈 종족이었다.
그리고 이 귀족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위해 ‘인간 사냥’을 자주 나서곤 했다.
“쳐, 라!”
아이작에게 목이 꿰뚫린 뱀파이어는 그들 중에서 지위가 꽤 높은 놈이었던 건지 부상당한 목으로도 지시를 내렸다. 뱀파이어들은 정체가 탄로 났다는 것을 깨닫고 검집에서 검붉은 칼을 뽑아 들었다.
왈라이카 귀족들이 사용하는 무기였다.
아이작은 약간 긴장했다.
‘왈라이카 귀족이라면 게임 상에선 성기사와 동급의 전력이었는데…….’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뱀파이어들은 성기사 여섯 명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성기사들 간에도 수준 차이는 있지만 뱀파이어들은 특히나 인간을 상대하는데 최적화된 존재들이다.
아이작은 이번 전투가 꽤 힘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컥, 허억!”
하지만 정작 싸워보니 생각보다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아이작은 눈앞에 달려드는 뱀파이어의 검을 아래서 위로 가볍게 쳐내고 칼을 비틀어 팔을 베었다.
다른 뱀파이어들도 주춤거리며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내 실력이 이 정도였나?’
아이작은 자신의 검술이 실전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함을 느꼈지만, 금방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햇볕 때문이군.’
이곳은 계곡이 깊은 곳이다. 그래서 빛이 드는 부분이 많지 않았지만, 드문드문 비치는 햇볕만으로도 그들에게 고통을 주기 충분했다. 그들의 습격이 실패했을 때 사냥꾼인 척하고 넘어가려 했던 것도 아직 낮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잘됐군.’
아이작은 정정당당한 싸움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이 흡혈귀들이 당황하는 사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지금 상황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