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60)
Subject Here – 260화. 말발굽과 화약 (3)
올칸 규율의 대약탈의 시작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약탈인가.
시기가 시기인 만큼 전자에 가능성을 더 크게 둬야 했지만, 그렇다면 아이작 혼자 힘만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다.
아이작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것뿐이다.
이 오크 유목민들은 한번 대약탈을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전쟁 기계다.
그들은 미래지향적인 건전한 소비와 순환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무는 모조리 베고, 산은 죄다 파헤치고, 불태우고, 훔친 기술로 뚝딱뚝딱 자신들이 원하는 것으로 만들어 낸다.
세상의 화로가 장인 주도의 정밀한 수공예 공방 중심이라면, 올칸 규율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방식으로 굴러간다.
‘그러다 망한다’라는 경고도 소용없다. 실제로 이들은 그냥 망한다.
시원하게 가진 자산을 다 탕진하고 망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다시 시간이 자산과 인구를 복구시켜 줄 때까지. 때문에 어울리지 않게도 이들에게 최고로 가치 있는 약탈 대상이자 소중한 보호 대상은 바로 ‘지식’이다.
지식은 아무리 써도 소모되지 않으니까.
올칸 규율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에는 스스로의 목숨도 포함된다. 역설적이게도 올칸 규율이 진작에 세상을 정복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전술과 기술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발달한다.
그러나 올칸 규율은 영혼의 불사성을 믿기 때문에 용감하고 쉽게 죽는다. 처음에는 올칸 규율의 공격에 당황하고 두려워하겠지만, 결국 다른 신앙들은 거기에 맞는 대응법을 고안해낸다. 올칸 규율은 그 대응법에 대한 대응법을 고안하기 전에 다 죽고 환생하러 간다. 그들이 다시 쳐들어오는 것은 수십 내지는 수백 년 뒤 일이다.
‘……그 말은 즉, 올칸 규율이 전쟁을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다 죽일 때까지는 막을 수 없다는 뜻인데.’
당연히 아이작에게는 그럴만한 힘도 능력도 없다.
적어도 대등한 전력, 제국군이나 다른 신앙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올칸 규율의 대약탈은 항상 제국에 끔찍한 사태였기 때문에 여명군을 즉시 이쪽으로 돌리지 않는 한 막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빛의 법전 교단이 천년 왕국 도래를 포기하고 제국을 지킬까? 그놈들이?’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아니다.
제국이 싹 다 불타버려도 여명군은 성지로 향할 것이다. 믿을 건 제국군뿐이다.
혹은 다른 신앙들.
그도 아니면 아이작의 개인적인 인연들을 의지하거나.
***
두두두두두…….
거센 말발굽 소리와 함께 쇠르 시 안으로 한 무리의 성기사들이 달려왔다.
성기사들은 흰 갑옷들을 반짝이며 공포와 두려움으로 삭막해진 도시에 새로운 빛을 드리웠다. 최선두에서 달리던 성기사가 이내 아이작 앞에 멈춰 섰다.
로튼해머였다.
“아이작! 이렇게 일찍 신세를 갚을 수 있다니 기쁘군. 적들은 어디 있나?”
“바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로튼해머 단장님. 지금 적들은 물러난 상태입니다. 그러니 당장은 싸울 일이 없겠군요.”
“그래? 그러면 일단 짐을 풀도록 하지.”
로튼해머는 몇 가지를 성기사들에게 지시한 뒤 말에서 내렸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아이작에게 다가왔다.
“올칸 규율이 침공해 왔다고 들었네. 사실, 오크에 대한 보고를 한 게 쇠르만이 아니야. 남쪽에서도 몇 군데서 오크들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들었지.”
“남쪽에서도 말입니까…….”
“총 세 갈래로 오는 듯하더군. 왈라이카 왕국을 우회해서 오느라 좀 빈 부분이 있고, 하지만 아무래도 주공이 될 만한 곳은 이곳, 쇠르기는 해.”
역시 대약탈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이작은 대약탈이 왜 촉발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빛의 법전 교단이 올칸 규율을 공격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여명군이 한참인 와중에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Subject Here – “교단이? 혹시 시에로 여명군을 말하는 건가? 그럴 리가. 아무리 멍청해도 그럴 리가 없네. 무능해서가 아니라 그럴만한 머리가 없어서야. 올칸 규율이 근거지 삼은 만 사하르 평원에서 오크 부락이 있는 곳까지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을걸.”
만 사하르 평원은 사흘 밤낮을 걸어도 언덕이나 산을 찾기 힘든 아득한 평원이다. 물이나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막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시에로 여명군이 어지간히 길을 잘못 들어도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럼 교단이 공격했다는 말은 오해거나, 핑계일 수도 있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하지만 인제 와서 그게 중요하겠나 싶군.”
로튼해머는 짧게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사실 오크를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올칸 규율 자체와 맞서 보는 건 처음이네. 자네는 맞붙어봤지? 그 이교도들은 어떤 놈들인가?”
“으음…… 맞서 보신 적 없으면 좀 이해하기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아이작은 일단 오크들이 남기고 잔 대포와 화약의 잔재들을 가지고 로튼해머에게 설명했다. 다행히 로튼해머는 대포와 화약에 대한 개념과 환생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했다.
폭발은 빛의 법전에서도 일상적인 기적이었으니까.
환생도 언데드의 망령과 빙의 개념 정도로 이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대포와 화약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전장의 변화에 대해서는 받아들이는 게 조금 늦는 것 같았다.
“성벽의 상태를 보아하니 성이 쓸모없어진다는 건 이해하겠네. 그런데 기병대가 활약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니? 그 포환이 성기사의 기적도 뚫는단 말인가? 대포도 기적의 일종인가?”
“보통은 아니지만 기적을 씌울 수도 있을 겁니다. 놈들의 악마적인 명중률에는 분명 기적이 개입해 있거든요.”
아이작은 대포의 등장=기사의 몰락이라는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알려진 바와 달리, 기사의 몰락이 화기의 발달과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즉시 기병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발달하기 전까지는 포병의 천적이 기병이기도 했다.
기병대 자체는 그 뒤로도 한참 뒤, 심지어 20세기 초까지도 존재했다. 하물며 기적으로 몸을 보호하고 평범한 기병보다 배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성기사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제가 말하는 건 이 새로운 전장의 변화에 여러분이 바로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겁니다. 아직 대포와 화약, 환생하는 미친놈들을 상대하는 게 처음이니까요.”
대포로 인한 전장의 비약적인 증가, 폭발과 굉음으로 인한 인마의 충격, PTSD, 화약 냄새와 매캐한 연기, 피탄된 땅의 크레이터, 탄막, 저격 등등 고려해야 할 변수와 전술의 변화는 아득하다.
그나마 보병이 맡은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존의 성기사단은 전장에서 우직한 방어력과 속도를 중점으로 한 정면 돌파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이 전장에서는 다른 전술과 다른 사고를 가져야만 했다.
아이작은 그것을 즉시 가르치고 적응시킬 자신이 없었다.
‘언젠가는 적응하고 오크들을 도살하는 살육 기계가 되겠지. 하지만 그게 이번 전장은 아니야.’
로튼해머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자신이 성인으로 받들기로 하고 존경을 표한 아이작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이작의 우려를 받아들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새로운 적이니 새로운 전술이 필요하겠지. 귀 기울여 들을 테니 부디 아낌없이 말해 주게.”
그러다 문득 로튼해머는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도 이번이 처음 싸우는 거 아닌가? 이전에는 서쪽에서 임무를 수행했으니 올칸 규율을 마주친 건 이번이 처음일 텐데, 꽤 잘 아는 거 같군.”
‘아차.’
아이작이 뭐라고 변명할까 생각하던 찰나, 그를 구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작, 여기 있었군.”
게벨이었다. 자클렛과 리하르트 백작도 보였다.
이사크레아를 비롯해 근방에서 올 수 있는 지원 병력 대부분이 도착한 것이다. 로튼해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게벨을 마주하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했다.
“게벨,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군. 수도원에서는…….”
그때 게벨이 난처한 얼굴로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로튼해머는 입을 다물었다.
게벨의 신분은 떳떳한 편이 아니다. 물론 정체를 안다고 해서 아이작이 비호하는 그를 누가 어쩌지는 못할 테지만 그냥 입 다물고 있는 편이 낫다.
아이작은 모일만한 사람이 다 모인 듯하자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올칸 규율을 어떻게 저지할지 이야기해 보죠.”
Subject Here – ***
브리엔트 성기사단과 이사크레아 영지의 병사들, 리하르트 백작의 병사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최대한 빨리 모일 수 있는 자들은 모였다. 그 외에는 올칸 규율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면 지원보다는 자기 영지를 지키는 데 급급할 가능성이 더 컸다.
나머지는 제국군이나 교단의 병력이 올 때까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때까지 버티는 데 필요한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아이작은 성벽 위에서 전략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 진행은 올칸 규율에 대해 잘 아는 아이작이 주도했다.
“우선 쇠르는 포기할 생각입니다.”
“……뭐라구요?!”
내심 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끼워 줘야 했던 쇠르 시장이 경악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할 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포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쇠르는 무역도시라 수비하기에 적당한 곳이 아닙니다. 사방이 탁 트인 평야에, 강은 오염되기 쉽고, 성벽도 낮고, 무너진 데다, 포위당하기도 쉽고, 빨리 지원해 올 병력도 없습니다. 고작 100명 남짓한 정찰대에 뚫린 도시가 대체 어떻게 농성을 합니까?”
“하지만…….”
“조용.”
로튼해머는 근엄한 한마디로 쇠르 시장을 입 다물게 만들었다. 위엄보다는 그가 성벽 위에 올려놓은 머리통만 한 망치가 더 큰 역할을 한 것 같았지만.
아이작은 로튼해머에게 눈빛으로 감사를 표하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쇠르만 한 도시를 순순히 내어주기도 아깝지요. 피난이 전부 완료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일단 쇠르를 중심으로 최대한 지연전을 펼치되 놈들이 쇠르를 먹은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작은 그러면서 쇠르 시장을 위해 잊지 않고 말을 덧붙였다.
“물론 이후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빨리 수복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 전력만으로는 이곳에서 계속 버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쇠르를 먹은 것만으로도 어떻게 만족하게 만든단 말인가? 만약 이게 기록에서나 보았던 대약탈의 전조라면 이 정도로 만족할 리가 없는데. 매력적인 선물이라도 준비해 둘 생각인가?”
이전의 대약탈은 제국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것은 물론이고 울텐하임까지 위협한 바 있다. 올칸 규율의 목적이 단순히 약탈일 뿐이기에 치명적인 타격은 그다지 없었고, 결국은 죄다 쫓아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빛의 법전은 이들을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성지를 차지하고 눌러앉는 데 성공한 불사교단과는 달랐다.
“매력적인 선물도 좋지요.”
아이작은 턱을 스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비싼 선물은 마련해 줄 능력이 없습니다. 저는 소박하고 가난한 성배기사라서요. 그래도 선물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법은 알고 있습니다.”
아이작은 씩 웃으며 쇠르 시장을 바라보았다.
“시장님. 이전에 로어커스에 투자하신 적 있지요?”
갑작스러운 로어커스 이야기에 시장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쇠르의 시장을 강타했던 고가의 식물, 상인이고 농부고 죄다 사들이느라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바람에 시장을 교란했던 그 꽃은 시장에게도 악몽이었다.
“……뭐, 투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때 한 송이도 안 산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탓하는 건 아닙니다. 얼마에 사셨었나요?”
쇠르 시장은 자꾸 불편한 이야기가 나오자 헛기침을 했지만 결국 실토했다.
“꽤 비싼 값에 사긴 했지요.”
“그러다 갑자기 시장 가격이 폭락했지요. 값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셨습니까?”
쇠르 시장은 시장 가격을 폭락시킨 장본인인 성배기사가 저런 말을 하자 놀리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작의 얼굴은 진지했다.
“……제발 본전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제 전략입니다.”
쇠르 시장은 이해 못 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때 게벨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말했다.
“쇠르를 점령하는데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게 만들 생각이라는 뜻이군. 그래서 쇠르를 점령한 것만으로도 본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맞습니다. 저는 올칸 규율에게 값비싼 포장을 해줄 수는 없습니다.”
아이작은 곧 전장이 될 쇠르 앞 평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손에 든 게 똥이라면 그 속에서 돌만 찾아도 기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