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61)
Subject Here – 261화. 올칸 규율 (1)
아이작은 올칸 규율이 다시 오기 전까지 부지런하게 정찰병을 돌리고 성벽을 보수했다.
또한 수시로 넬을 타고 날아가 멀리서 올칸 규율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했다. 몇 번인가 행군하는 군세를 향해 뇌격을 퍼부어 볼까도 했지만, 상공 400미터쯤 되는 거리에서 대포를 아슬아슬할 정도로 쏘는 모습을 보고 포기했다.
잘못 맞아 고립되기라도 하면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몰려오는 군세를 보고서야 아이작은 확신했다.
‘대약탈이 맞군.’
선두부대로 보이는 숫자만 물경 수천.
그런 부대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갈래가 남쪽에도 더 있다고 했으니 얼추 계산해도 10만 정도의 군세를 예측할 수 있었다.
엘릴 왕국에서도 내전을 치를 때 제대로 부딪친 숫자는 만 명도 되지 않았는데, 그 열 배는 되는 대군세가 전부 전쟁하러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평범한 나라가 저런 짓을 하면 망한다. 지금의 제국처럼.
저놈들도 망하겠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놈들이 아니었다.
아이작은 올칸 규율 시나리오에서 대약탈이 무엇을 위한 약탈이었는지 떠올려 보았다.
올칸 규율의 목적은 어울리지 않게도 ‘지식’이다. 그것도 신들에 관한 지식, 우르반수스의 비밀에 관한 지식. 그리고 현재 대륙에서 가장 많은 지식이 모여 있는 장소는…….
‘리히트하임 검열청의 비밀서고.’
교황이 머물고 있는 성도(聖都)에서도 가장 은밀한 장소다.
올칸 규율로 플레이하게 되면 플레이어는 제국을 반으로 갈라서 죽인 다음. 그 시체에서 지식을 꺼내 간다. 성지를 수복하려던 빛의 법전 교단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결과지만, ‘그런 미래도 가능하다’라는 게 아이작이 게임에서 경험해 본 결과였다.
‘그리고 이 대약탈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사훌란 칸과 명천사인 만생자.’
사훌란 칸은 어디선가 이 무리를 주도적으로 지휘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명천사 만생자는…… 게임을 경험해 본 아이작조차 형태도 생각도 추측이 불가능한 존재다. 당장 아이작 곁에 있을 수도 있고, 어딘가의 바위 언덕에서 이끼를 갉아 먹는 중일 수도 있다.
대약탈을 중단시키려면 이 둘 중 하나라도 죽이든가 설득해야 했다.
***
후욱.
밤하늘을 가로지른 넬이 거대한 날개를 접고 성벽 위에 안착했다.
성벽 위의 횃불에서 불씨가 거세게 날렸다. 처음에는 드래곤 가까이 가지도 못했던 병사들도 이제는 이 반투명한 드래곤에게 제법 익숙해진 눈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누비며 그들 대신 먼 거리를 정찰해 주는 존재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작은 어느새 어설프게나마 복구가 끝난 성벽 위를 걸으며 말했다.
“성벽 복구가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
“자재며 물자며, 쇠르에는 풍족한 편이니까요.”
자클렛이 으스대며 말했다. 한때 이곳의 강도단이었던 그녀에게는 ‘합법적’으로 쇠르의 물자를 징발해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꽤 재밌는 듯했다.
그리고 뒷거리의 무법자 출신답게 갱단이나 불법적으로 비축해 둔 자산들을 찾아내 모조리 이사크레아 령으로 보내는 마차에 실어서 보냈다. 아이작의 명령이었다. 숨겨져 있던 금화들도 오크들의 손에 농락당하는 것보다 성배기사의 숭고한 여정에 사용되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길 것이다…….
“그런데 이 성벽 복구가 의미 있는 일인가요? 그 대포라는 물건이 성벽을 아주 작살을 내놨던데요.”
“놈들이 성벽을 깨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놈들은 복구된 성벽을 보고 우리가 성벽에 매달리고 있다고 착각하겠지.”
대포가 오버 테크놀로지라곤 해도 용도는 한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부숴도 기어 올라가기 어려운 언덕이나 강이 둘러치고 있는 해자 부분은 대포를 쏴 봐야 의미가 없다. 결국 포구가 향하는 곳은 평야와 이어진 곳이나 성문 쪽이다. 아이작은 그들이 성벽에 화약을 낭비하게 만든 다음, 마침내 들이쳐 왔을 때 성대한 환영 인사를 해 줄 생각이었다.
“지시한 물건은 준비했나?”
“넵. 아직 잔뜩 쌓여 있더군요.”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장이 쇠르인 것은 불행인 동시에 다행이었다. 방어하기에 좋은 도시는 아니지만, 무역의 요충지라는 점은 구하기 힘든 물자도 쉽게 구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게다가 아이작이 지시한 물건은 최악의 악성 재고였다.
‘진짜 필요한 건 지원군이지만…….’
Subject Here – 아이작은 언짢은 표정으로 서쪽을 보았다. 정찰을 하면서 틈틈이 서쪽도 살펴보았지만 지원군이 추가로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제국군이든 교단이든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저쪽도 슬슬 준비가 된 모양이군요.”
자클렛은 어두운 평원 저편, 수없이 늘어선 불꽃들을 보며 말했다. 올칸 규율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들은 쇠르가 얼마나 준비하든 상관없다는 듯, 느긋하게 진영을 펼치고 대포들을 배치했다.
그들은 정석적인 공성전에 필요한 포위망조차 갖추지 않았다.
‘어차피 함락은 자신들이 원할 때 할 수 있으니, 도망치든 지원군이 오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지.’
로튼해머는 뛰쳐나가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눈치였지만 아이작의 명령을 어기지는 않았다.
“언제부터 시작될까요?”
“오늘부터 시작되어도 이상할 게 없지. 대포에는 눈이 없으니.”
오크들의 성질이 얼마나 급하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아이작은 자신의 대답을 후회했다.
오크들의 공격은 바로 그날 밤, 대대적인 포성과 함께 선전포고조차 없이 시작되었다.
***
쿠쿠쿠쿠쿵…….
아련히 들려오는 포성이 들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연달아 이어졌다. 쇠르를 난타하는 포탄들의 행렬은 밤을 지나 해가 뜨고 지고, 다시 밤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작작 좀 해라, 이 개자식들아!”
포성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한 자클렛이 퀭한 눈으로 성벽 위로 뛰쳐 올라가 소리 질렀다. 물론 그녀의 말에 대답해 준 것은 또 다른 포성들이었다. 얄팍한 성벽은 포탄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없었기에, 그녀는 다른 병사들의 손에 붙들려 내려와야만 했다.
자클렛의 상태는 쇠르 안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 대부분의 상태이기도 했다.
강인한 정신력을 갖춘 성기사들은 수면 부족과 굉음에도 끄떡없이 출격 준비를 해 둔 상태였지만, 병사들은 슬슬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공황 발작을 일으키는 자들마저 나오고 있었다.
그때쯤 되자 아이작은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나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쇠르를 뭉개 버릴 생각인가?’
아이작은 지난번에 왔던 정찰대처럼 저들도 핀포인트 사격 후 점령을 시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쏘는 포탄들은 쇠르의 성벽들을 모래사장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대포는 소모품이다. 이 정도로 쏴댔으면 적지 않은 대포가 터지거나 휘어지고, 화약도 어마어마하게 낭비했을 것이다. 쇠르가 큰 도시긴 하지만 이 정도까지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비효율적이라니, 올칸 규율에 안 어울리는 생각을 했군. 저놈들만큼 비효율적인 종족이 없는데.’
어쩌면 그냥 눈에 제일 먼저 보인 대도시라서 일단 다 퍼붓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다음 일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그리고 비슷한 추측을 게벨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네 전략은 알겠다만, 아이작.”
게벨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네 전략은 상대방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때 통하는 전략이 아닌가 걱정되기 시작하는구나. 놈들에게 ‘그렇게 화약을 낭비하면 나중에는 대체 어떻게 싸울 거냐?’라고 훈계해 봤자, 놈들은 알아먹지도 못할 거다. 나중에 가서야 ‘그때 좀 적당히 쓸걸’이라고 후회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때 우리가 이미 이 돌구덩이 아래 파묻혀 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전략도 준비해 뒀으니 걱정 마세요.”
아이작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전장이 아이작이 바라는 대로 흐를 거라는 꿈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이작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상대방에게 압도적인 힘이 있다면 이쪽도 쓸 수 있는 카드가 제한되기 마련이다.
아이작은 때를 기다리기 위해 쇠르의 지하, 골루와루를 잡아먹고 점령한 자신의 성역으로 향했다. 아이작이 그곳에서 여전히 두근거리는 심장에 손을 가져다 대자, 쇠르 전역으로 뻗은 신경을 통해 속속들이 그의 몸처럼 느껴졌다.
이 감각을 통해 아이작은 지난 며칠간 올칸 규율의 병영 위치와 부대 배치, 보급 경로까지 속속들이 파악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걸 알아낸다 해도 아이작이 당장 공격할 수는 없었다.
그저 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도록 준비하기만 할 뿐.
‘슬슬 시작될 때가 됐는데.’
아이작은 더듬더듬 쇠르의 영토를 살펴보다가, 아직 덜 자란 밀알을 스다듬었다. 밀알은 바람을 타고 느슨하게 파도를 이루며 전쟁에 상관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밀대가 아이작을 향해 인사하듯 허리를 숙였다.
아이작은 눈을 떴다.
그는 즉시 칼을 움켜쥐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Subject Here – 때가 왔다.
***
올칸 규율의 영광스러운 선봉부대를 맡은 코르알 만호장은 시원하게 박살 나는 쇠르를 기분 좋게 바라보았다. 박살난 성벽의 잔해 위로 막대한 연기와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대부분의 오크 유목민들이 그러하듯, 코르알 역시 ‘평평’한 것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넓은 평원에 불쑥 튀어나온 성의 존재란 그들에게 기이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에 불과했다. 그랬던 성벽이 납작해진 수준으로 낮아지자 코르알은 쾌감마저 느꼈다.
모든 것은 역시 그들이 사는 세상처럼 평평해야 옳다.
비록 저 성벽을 깎기 위해 대약탈 내내 쓰라고 보급받은 대포와 화약을 절반 이상 썼지만, 상관없었다. 아니, 아예 이 자리에서 다 쓰고 떠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면 그들은 훨씬 가벼운 몸으로 제국을 유린할 수 있을 테니까.
그때 젊은 무당 한 명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코르알 만호장님, 키르마스 무당께서 적의 역습에 주의하시랍니다.”
“으음? 인제 와서?”
코르알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들이 공성전을 수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게르토니아 제국에 속하지 않은 변방의 공국이나 왕국을 숱하게 박살 내 놓았다. 그리고 대개 저 정도로 박살 난 도시 안에 있는 놈들은 육신이나 정신, 둘 중 하나가 제정신이 아니다.
반격할 여력이 있다면 이미 진작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르알은 미신을 존중하는 만호장답게 ‘적들이 모래알이라도 던진다더냐?’하고 비웃지 않았다. 그 역시 들은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키르마스 무당께서 죽은 정찰병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셨지. 카타왈 백부장이 웬 드래곤과 괴물 같은 성기사에게 죽었다고.”
그 드래곤을 몇 번이나 하늘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대포에 꼼짝 못 하고 달아나긴 했지만, 대포가 없다면 반격도 불가능할 것이다. 코르알은 갑자기 불안해진 기분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뒤늦게 화약을 지금이라도 아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문득 그는 이상한 것을 느꼈다.
“응?”
“왜 그러십니까?”
“아니,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길래.”
그러다 코르알은 눈을 가늘게 뜨고 쇠르를 응시했다.
“아까보다 연기가 더 크게 피어오르는 것 같군. 불이라도 났나?”
납작해진 쇠르에서 아까보다 훨씬 크고 짙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 연기가 그들 방향으로 날아오면서 시야를 서서히 가리기까지 했다.
밤중에도 아무렇게나 막 쏴대는 상태였기 때문에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독한 연기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다 문득 이게 어디선가 맡아본 냄새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브 냄새?’
두두두두두…….
그때 어디선가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아스라이 울려 퍼졌다. 말발굽 소리에 익숙한 코르알은 바로 그것이 기병들의 말발굽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쇠르에서 피어오른 연기에 뒤섞여, 한 무리의 기사들이 달려 나오고 있었다.
여명의 햇살을 부서뜨리며 달려오는 그 갑옷을 본 코르알은 전전 생애에서 본 악몽을 떠올렸다. 코르알은 분노와 흥분의 노성을 터뜨렸다.
“빛의 법전 성배기사들이 온다! 놈들을 대포밥으로 만들어 줘라─!”
코르알은 웃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그는 이미 중갑기사들이 대포알에 피떡이 되어 뭉개지는 꼴을 몇 번이나 보았다. 특히 이 포탄들은 올칸 규율의 기적, ‘환생하지 않고 대신 후손들을 위해 봉사하는 조상님들’의 가호를 받은 포탄이다. 오크들의 경이로운 명중률과 대포의 내구력의 배경에는 바로 오크 조상님들의 가호가 있었다.
코르알은 곧 피 먼지가 되어 사라질 성기사들을 상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성기사들이라도 이건 못 피한다! 방포!”
쾅! 다음 순간, 굉음과 함께 코르알의 바로 옆에 있던 대포가 폭발했다. 성기사를 위해 특별한 화약을 채워 넣었던 대포는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오크들을 모조리 찢어발겼다. 코르알 만호장조차도 멀쩡하지 못했다.
아득한 이명 속에 그는 간신히 일어났다. 오른쪽 다리와 팔이 날아간 상태였다. 주변을 둘러보자, 혹사당했던 대포들이 폭발하거나 산산조각 난 모습들이 보였다. 그나마 발사된 대포도 어이없을 만큼 황당한 먼 곳에 떨어졌다.
그 사이 브리엔트 성기사단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성기사들의 말에는 뭔가 쉴 새 없이 연기를 내뿜는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코르알은 그 주머니에서 나오는 냄새가 익숙한 꽃 냄새라는 것을 깨달았다.
로어커스.
로어커스의 효과는 마법, 즉 기적의 저항력을 낮추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올칸 규율의 과잉 적용된 기적이 대포들을 폭발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