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62)
Subject Here – 262화. 올칸 규율 (2)
로튼해머는 폭발하는 대포들을 보면서 희열을 느꼈다.
며칠 동안 쇠르를 두들겨 대던 대포가 오크 포병들을 찢어발겼다. 성기사들이 오기 전에 일찌감치 대열을 바꿔서 포병들을 지켜야 했던 보병대 역시 애매한 타이밍에 폭발에 휩쓸려 대열이 흐트러진 상태였다.
브리엔트 성기사단은 혼란에 빠진 오크 무리들에게서 피 냄새를 맡았다.
사나운 야수로 돌변한 성기사들이 파죽지세로 돌격해 오크들을 찢어발겼다.
콰드드드득!
연기 속에서 휘청거리며 일어나려던 오크 하나가 순식간에 말발굽에 짓밟혀 뭉그러졌다. 어설프게 빨리 정신을 차린 오크가 대열을 갖추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덕분에 놈은 좋은 목표가 되었다. 창 한 자루가 놈의 뺨을 꿰뚫고 질질 끌고 가다가 내동댕이쳤다.
허겁지겁 달려 나오는 오크 부대의 본대를 본 로튼해머가 우렁차게 외쳤다.
“우측으로!”
구호에 맞춰, 성기사단은 한 몸이 된 듯 재빠르게 말의 고삐를 틀었다. 아슬아슬하게 스쳐나간 보병대의 최전방은 톱날에 긁혀 나간 듯 너덜너덜해졌다. 성기사단은 정면으로 충돌하는 대신 포병들을 마무리 짓는 섬멸 공격을 이어 갔다.
성기사들은 단순한 기사가 아니며, 그들의 무기는 검이나 창뿐만이 아니었다.
“당신의 편린을 허락하소서!”
불을 붙이는 것은 빛의 법전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기적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는 조금 전 폭발에 휘말리지 않은 화약들이 주변에 산적해 있었다.
기적을 발휘하기에 딱 적당한 거리였다.
다행히 불발되어서, 혹은 장전된 것이 아닌 비축된 화약 더미 근처에 남아서 살아남았던 오크들은 다시 또 지옥을 겪게 되었다. 성기사들은 화약 상자를 볼 때마다 지체 없이 기도문을 외워 폭파했다. 덕분에 전방에 합류하려던 오크들 역시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기사들이 가는 곳마다 불꽃과 비명이 난무했다. 애초에 빛의 법전을 상대로 화약을 꺼내 온 것이 잘못이었다.
아이작을 통해 적들의 위치와 정보, 약점, 화약고 상황을 모조리 파악해 둔 브리엔트 성기사단은 거침없이 올칸 규율을 유린했다.
그들은 집단이라기보다 하나의 생물처럼 움직였다. 거대한 칼 한 자루가 오크 무리를 단숨에 베어 내고 있었다.
머리를 무릎보다 높은 곳에 두고 있는 오크들은 모조리 머리가 날아갔다.
“개같은 성기사놈들─!”
그때 연기 저편에서 누군가 찢어지는 고함을 내질렀다.
로튼해머는 상대의 화려한 머리 장식을 보고 상당히 지위가 높은 자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비로 한쪽 팔과 다리가 날아간 상태였지만, 앉은 상태로 성기사단을 향해 소리치는 기백만은 대단했다.
“다시 돌아와서 반드시 네놈들을 죽여 주마!”
로튼해머는 감탄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놈의 옆에 놓인 화약 상자를 본 것이다.
유폭에 휘말리지 않고 남아 있는 화약들이었다.
머리 장식을 쓴 오크, 코르알이 손에 든 횃불을 본 로튼해머는 이대로 정면충돌하면 놈이 화약을 폭발시킬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로튼해머와 코르알의 입가에 광기 어린 미소가 동시에 떠올랐다.
브리엔트 성기사단은 돌격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코르알은 화약 더미에 횃불을 쑤셔 박았다.
어마어마한 폭발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의심하지 마라, 빛의 축복을!”
코르알을 산산 조각낸 폭발이 삽시간에 브리엔트 성기사단을 집어삼켰다.
그러나 브리엔트 성기사단의 주위에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불꽃은 그들을 덮치는 대신 부드럽게 밀려났고, 그만큼 열기가 주변으로 더욱 크게 확산해 나갔다. 브리엔트 성기사단은 이 성스러운 광경에 경외감을 동반한 신열에 빠져, 계속 돌격하면서도 기도문을 멈추지 않고 중얼거렸다.
이윽고 브리엔트 성기사단은 불꽃을 휘감은 채 대열 그대로 폭발 밖으로 뛰쳐나왔다. 온몸에 불꽃을 두른 성기사단의 모습은 오크들에게 새로운 충격과 공포를 안겨 주었다.
로튼해머 또한 간만에 아득한 종교적 법열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은 죽여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명백한 적이다.
로튼해머는 그 단순함이 마음에 들었다.
두두두두두…… 그때 로튼해머의 귀에 자신들의 것이 아닌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Subject Here – 중갑을 걸친 그들과는 다른, 경쾌한 발굽 소리였다.
좌측에서 뒤늦게 올칸 규율의 그 유명한 기마병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법열에 들뜬 성기사들은 어마어마한 숫자의 기마병들을 보고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금방이라도 뛰어들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로튼해머는 성기사단의 역할이 여기까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사단의 돌격은 일시적인 충격에 불과하다. 대포는 올칸 규율의 극히 일부 전력에 불과할 뿐, 그들의 실제 전력은 어마어마한 수의 기병대다.
올칸 규율의 진정한 힘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로튼해머는 자신들에게 내려진 빛의 법전의 축복을 맹신하지 않았다.
그는 지체 없이 명령했다.
“쇠르를 향해 후퇴!”
성기사들은 기대에 반하는 아쉬운 명령에도 곧바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그들은 퇴각하면서도 맡은 임무를 잊지 않았다. 그들은 올칸 규율의 후방에 남아 있는 화약들을 향해 기도문을 외웠다.
이내 화약들에 불이 붙어 폭발하기 시작하자, 겨우 따라붙으려 했던 기병대는 다시 또 엉망진창이 되었다. 로튼해머는 껄껄 웃으면서 바로 달려갔다. 기병대가 간신히 추격을 재개했을 때, 이미 브리엔트 성기사단은 쇠르에 거의 입성하기 직전이었다.
대승이었지만, 로튼해머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통쾌하긴 했어도 큰 의미가 없는 승리다. 대포는 저들의 유희에 불과했다.
이제 만 명에 가까운 기병대가 쇠르를 공격할 것이다.
‘아이작이 잘해주어야 할 텐데.’
***
아이작은 브리엔트 성기사단과 함께하지 않았다.
브리엔트 성기사단에게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쇠르에 남은 이사크레아 경비대와 게벨에게도 맡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작에게는 아무에게도 보여 줄 수 없고 떳떳하지도 않지만,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아이작 님, 장군 무당의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아이작은 지힐렛으로부터 들려온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힐렛은 일찌감치 오크 한 마리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내부에 잠입한 상태였다. 아이작이 성역의 심장으로 병영 배치는 파악할 수 있지만, 쉴 새 없이 위치를 바꾸는 오크 개개인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작의 목적은 장군 무당이었다.
장군 무당은 죽은 오크들의 영혼을 수습하고 끌어모으는, 일종의 주교에 가까운 무당이었다. 그 아래 무당들은 그냥 무당이나 작은 무당이라고 불리며, 아무래도 장군 무당과는 받아들일 수 있는 영혼의 격이나 크기가 달랐다.
‘장군 무당을 죽이면 놈들의 환생에 지장이 생긴다.’
올칸 규율의 환생은 완벽하지 않다.
평상시에도 100명 중 1명꼴로 영혼이 실종되는 일이 생긴다. 대규모 전쟁 상황이라면 그 비율은 더 커진다.
이런 영적 실종은 시체에서 무당에게로 영혼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생기기 때문에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위험이 커진다.
실종된 영혼은 천국이나 지옥에서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올칸 규율의 오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만약 장군 무당이 죽어 버리면?
올칸 규율의 오크들은 환생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빠질 것이다.
오크들의 용맹은 환생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
죽더라도 다시 새롭고 건강한 육신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확신.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죽음에 대한 공포가 되살아날 수밖에 없다.
[키르마스 무당님, 코르알 만호장이 자폭했습니다!]아이작은 지힐렛의 귀를 통해 목소리를 들었다. 동시에 그의 눈으로 ‘키르마스’라고 불린 무당을 보았다. 아이작이 미리 알려 준 바대로, 키르마스는 다른 무당과 거의 비슷한 복장을 입고 있으나 오색의 귀걸이를 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아이작은 곧바로 움직였다.
‘지금.’
아이작을 태운 채 날고 있던 넬이 급강하를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브리엔트 성기사단이 휘젓고 있는 전방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넬을 발견하는 속도는 늦을 수밖에 없었다.
“키르마스 무당님!”
작은 무당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키르마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넬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벼락이 작은 무당을 불태워 버렸다. 키르마스를 노렸던 아이작은 혀를 찼지만, 이렇게 쉽게 해결될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키르마스는 눈을 부릅뜨고 넬을 향해 제문(祭文)을 중얼거렸다. 아이작은 넬의 움직임이 순식간에 둔해지며 휘청거리는 것을 느꼈다.
Subject Here – 환생하지 않은 오크들의 영혼들이 넬에게 엉겨 붙으면서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가라.”
아이작은 넬을 풀어주며 뛰어내렸다.
키르마스는 갑자기 자신의 눈앞으로 성기사 하나가 뛰어 내려오자 급히 제문 읊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은 애당초 휘저어댈 생각으로 왔으므로 곧바로 키르마스를 향해 최선을 다한 공격을 퍼부었다.
성검 카훌린의 끝에서 흉포한 검기가 돋아났다.
이삭 검술: 여덟 갈래가 발동되면서 줄기줄기 갈라진 검기들이 일제히 머리 여덟 달린 사나운 괴수가 되어 순식간에 주변 모든 것을 찢어발기며 달려들었다. 그 기세에 스친 것은 몸통이든, 무기든, 땅이든 상관없이 난잡하게 뜯겨나갔다.
그리고 그 끝에는 장군 무당 키르마스가 있었다.
“이놈!”
키르마스가 다급히 크게 일갈했다. 평범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일대에 폭풍 같은 바람이 밀어닥치며 막사들을 내동댕이칠 정도의 목소리였다. 마치 수천 명이 동시에 한 목소리로 외친 듯했다.
아이작의 여덟 갈래 또한 휘청이며 깨져 버렸다. 하지만 아이작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곧바로 카훌린의 가속 능력을 발동하며 칼을 휘둘렀다. 소드마스터가 아닌 이상 막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콰드드드득! 뼈와 살갗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아이작은 얼굴을 찡그렸다.
카훌린은 키르마스의 심장을 꿰뚫는 대신 그의 손등만 뚫은 상태였다. 카훌린은 검기와 그 예리함에도 불구하고 키르마스의 손등에 박힌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이작은 키르마스의 몸과 동공이 빠르게 경련하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벌써 강신을? 카훌린을 막아 낼 정도라니, 대체 몇 명이나 받아들인 거야?’
올칸 규율의 무당들은 영혼들을 몸 안에 받아들일수록 그에 상응하는 힘과 체력을 갖게 된다. 대신 무당의 몸을 차지하려는 영혼도 많아지기에 정신이 붕괴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1,023명의 영혼을 받아들였는데도 내 뼈를 뚫다니, 대단한 놈이구나.”
키르마스가 천 명의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천 명의 완력이 카훌린을 움켜쥐고 있는 셈이니, 꼼짝달싹 안 하는 것도 당연하다.
장군 무당을 처치하는 것이 쉽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키르마스가 이런 괴물일 줄은 아이작조차 몰랐다.
키르마스는 주변에 다른 오크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다. 아이작을 제지하는데, 그들이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아이작 역시 키르마스의 배후에서 발톱을 꺼내려 하는 지힐렛을 제지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네가 그 성배기사인가? 제 발로 걸어들어오다니 고맙구나. 네 영혼을 산산이 찢어…….”
아이작은 천편일률적인 협박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쥐고 있던 카훌린을 손에서 놓았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키르마스는 당황하며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침착하게 손에서 카훌린을 뽑아 들고, 거꾸로 쥐더니, 스스로의 목을 향해 푹 찔러 버렸다.
천 명의 힘으로 찌른 칼은 가볍게 목뼈까지 관통해 버렸다.
[성검 카훌린(EX)] [엘릴이 직접 전장에서 휘두른 실전용 검. 세상에 없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그 어떤 일에도 부러지거나 날이 상하지 않는다. 하루 세 번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을 가속시킬 수 있다. 엘릴의 대전사가 아닌 사람이 손에 쥐면 스스로의 목을 찌른다.]아이작은 카훌린에 붙은 친절한 보안 시스템을 떠올리며 쓰러진 키르마스의 목에서 카훌린을 뽑아 들었다. 키르마스의 몸에 강신해 있던 영혼들이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갔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오크들과 무당들은 이게 무슨 농담인가 하는 표정으로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지?”
아이작은 웃다가, 곧 싹 미소를 지우면서 무당을 향해 달려들었다.
놈들이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을 때 무당을 한 놈이라도 더 죽여야 오크들의 패닉이 더 커질 것이다. 연달아 무당 목의 셋이 달아나자 그제야 고함과 비명 속에 호위병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뒤늦게 도착한 호위병들은 바닥에 쓰러진 무당들을 보고 겁에 질렸다. 당장 여기서 저 괴물 같은 놈에게 죽었다간 환생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작 역시 저들을 전부 죽일 생각도 능력도 없었기에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콰르르르…….
갑작스럽게 흘러나온 저 너머의 색채가 아이작의 몸을 가리며 오크들에게 방향감각 이상과 환청, 환통을 안겨 주었다.
겨우 그들이 시야를 되찾았을 때 남은 것은 죽은 장군 무당 키르마스를 포함한 여덟 무당의 시체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