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63)
Subject Here – 263화. 올칸 규율 (3)
“쫓아라!”
경호를 담당한 천호장이 아연실색하여 외쳤다.
하지만 오크들은 아이작을 추적하는 대신 머뭇거렸다. 무당 대부분이 죽어 버렸으니 환생이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당이 죽으면 오크들도 죽음의 공포를 느낄 것이라는 아이작의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천호장은 그런 오크들에게 노성을 터뜨렸다.
“장군 무당께서 부대 내에서 살해당하셨다! 키르마스 무당께서 환생하시면 네놈들을 가만히 둘 것 같으냐!”
그제야 오크들은 화들짝 놀라 아이작을 찾아 추격했다.
환생을 할 수 있는 것은 일반병만이 아니다. 무당들도 당연히 환생할 수 있고, 심지어 환생을 거듭할 때마다 영적 능력이 더 강해진다. 키르마스가 언제 환생할진 모르지만, 그가 책임을 물으면 영혼이 되어 환생도 못 하고 포환이나 나르는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어디서 저런 미친놈이……!”
천호장은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무당들의 시체를 살펴보았다.
드래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진영 한가운데 정확히 떨어져서 장군 무당을 노릴 줄은 몰랐다.
아니, 이런 상황을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아이작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난장판이군.”
터벅, 터벅.
그때 천호장의 등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군영 안에서 말을 타고 다니는 짓이 허락되는 자들은 하나뿐이다. 말에서 내리는 것이 불가능한 오크들. 같은 오크가 아닌, 말의 태중으로 영혼이 들어가 말의 육신을 뒤집어쓰고 태어난 선택받은 전사들.
태생부터 올칸 규율의 성기사로 태어난 이들을 오크들은 칸의 호위병들, 케식이라고 불렀다.
아이작이라면 오크─켄타우로스라고 불렀겠지만 그런 지식은 이들에게 없었다. 켄타우로스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도 하고.
“아틀란 케식.”
거대한 군마의 몸에 말 머리 대신 오크의 상반신이 돋아난 그를 본 천호장은 긴장하며 뒤로 물러났다.
“키르마스 장군 무당께서 당하신 건가? 이렇게 쉽게 죽으실 분이 아니신데.”
케식은 오로지 칸의 명령에만 움직이기 때문에 군제에서 제외되어 있다. 일개 병사조차도 케식을 딱히 상급자로 대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천호장은 케식에게 썩 꺼지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케식이 칸의 명령에만 움직이지만 군제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있는 이유는, 그들이 일종의 처형인이나 감시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만약 부대를 이끄는 만호장이 무능이나 반역의 기미를 보이면 즉시 머리를 잘라가는 것이 파견된 케식의 역할이었다.
칸의 감시관이 이 추태를 목격했으니 천호장의 목이 당장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천호장은 케식에게 칼을 들고 달려든다는 멍청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틀란은 사건 현장을 한 바퀴 돌고는, 키르마스의 시신을 유독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뭐야, 이건? 자기 목을 스스로 찌르신 건가?”
“……그렇소, 아틀란 케식. 보고를 들으니 그렇더군.”
“코르알 만호장 쪽의 상황이 엉망인 것 같아 살펴보고 있다가 이게 무슨 일인지…… 이런 재밌는 일이 벌어질 줄 알았으면 후방에 있을 걸 그랬군.”
아틀란은 이를 크게 드러내며 웃다가 한 방향을 주시했다.
아이작이 달아난 방향이었다.
“나는 놈을 추적할 테니 천호장께서는 볼일 보시게. 코르알 만호장이 전사하여 천호장들끼리 난리가 난 것 같더군. 키르마스 무당까지 돌아가셨으니 더 난장판이 될 게야.”
아틀란의 말에 천호장은 화들짝 놀라 뛰쳐나갔다. 책임을 조금이라도 면피하려면 천호장들끼리라도 말을 잘해 놔야 했다. 성배기사야 하늘에서 떨어진 재앙이니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치더라도 사태 수습만큼은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천호장이 떠난 뒤 아틀란은 등에 맨 두 자루의 만곡도를 꺼내들며 아이작 추적에 나섰다.
‘심상찮은 놈이다.’
빛의 법전은 정주민 무리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자들이다. 분명 강적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초반부터 마주할 줄은 몰랐다. 일단 하늘에서 뛰어내려 무당을 암살한다는 행위 자체가 성기사가 하기 힘든 발상인 동시에 올칸 규율에 대해 잘 안다는 뜻이었다.
이놈은 위험하다.
칸의 친위대로서 아틀란의 본능이 속삭였다.
놈은 칸은 물론이고 이번 약탈 자체를 뒤흔들 수도 있는 놈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제거해야 했다.
***
Subject Here – 아이작이 빠져나간 방향은 오크 부대가 있던 후방의 우거진 숲이었다. 키르마스가 머물던 곳이 최후방에 가까운 곳이었으니 두터운 전방의 병력을 뚫고 쇠르 쪽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크게 우회하거나, 넬을 타고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아이작이 달아나면서 남긴 살육과 파괴의 흔적은 고스란히 발자국이 되었다. 이내 말을 타고 목숨 걸고 쫓아온 오크 병사들이 아이작을 쫓아 숲 안으로 뛰어들었다.
대도시 근처에 있는 숲들이 으레 그러하듯, 이 숲은 일부러 돼지 같은 가축들을 방목해 키우기 위해 관리된 숲이었다. 덕분에 길을 막는 나무나 넝쿨 따위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이작이 숨기에는 충분했다.
아이작은 그곳에서 복귀하는 대신 진입하는 오크들에게 차근차근 지옥을 보여 주었다.
“괴, 괴물!”
오크 병사는 거칠게 창을 휘둘러댔지만 상처가 나는 것은 애꿎은 나무들뿐이었다.
그와 함께 들어왔던 병사들은 이미 어딘가로 사라졌다. 살아남은 오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도저히 인간이라 생각할 수 없는 ‘무언가’의 움직임과 아주 조금씩 남은 동료들의 파편뿐이었다.
무당도 없는데 저 괴물에게 잡아먹히면 무사히 환생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저 괴물이 저승을 떠돌며 방랑하는 영혼을 잡아먹는다는 혼돈의 괴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오크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이 숲에 사악한 무언가가 있다. 그건 절대로 성기사가 아니다. 어쩌면 그 성기사도 이미 잡아 먹혔을지도 모른다.
바스락.
“누구야! 누구냐고!”
오크는 비명을 지르며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곳에 보이는 것은 나무뿐이었다. 높은 나무들 때문에 어두운 숲은 실루엣만 간신히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저 나무들 사이 어딘가에 그 괴물이…….
저 나무가 원래 저렇게 가까이 있었나?
오크는 불현듯 한 나무에서 시선을 멈췄다.
짧은 몸통에 비해 기이할 정도로 길고 풍성한 가지는 세상에 없는 문양을 그려내고 있었다. 어설프게 나무를 ‘흉내 내는’ 그것의 존재를 의식한 순간, 오크의 머릿속이 싸늘하게 식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크의 시선을 눈치채자 의태를 그만두고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백 갈래의 나뭇가지, 아니 촉수들이 하늘거리며 오크를 향해 ‘걸어왔다’.
그것은 여인의 몸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좌우로 크게 찢어져 있었고, 그 위로 수술 같은 촉수들이 수백 갈래 뻗어 나와 나뭇가지처럼 뻗어 있었다.
촉수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있자 오크는 점점 이 세상에 대한 현실감을 잃었다. 동시에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질서와 규율이 이 무도하고 광기에 찬 혼돈 앞에서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버텨 왔는지를 깨달았다.
괴물, 아니, 헤카틀리가 다가와 오크에게 속삭였다.
“에비.”
오크는 그대로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헤카틀리는 쓰러진 오크가 심장마비로 죽은 것은 아닌가 염려하며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때 숲을 헤치고 아이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크의 피로 피투성이가 된 아이작은 헤카틀리를 보자마자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끔찍하게도 생겼군.”
“겁을 주고 돌려보내라 하여 시키신 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도 반은 죽이고 남은 반은 반쯤 죽여서 돌려보내고 있었다. 살아남은 놈들은 올칸 규율의 부대 안에 공포를 퍼뜨릴 것이다. 이름 없는 혼돈이 영혼을 먹어 치운다는 소문과 함께.
그리고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올칸 규율 사제(B-)’를 포식하였습니다.] [‘죽은 신의 내장’ 특전으로 섭취 효율이 상승합니다.] [‘영적 교감(임시)’ 특전을 습득하였습니다.] [임시 특전은 소화될 때까지 축복이 유지됩니다.]키르마스는 포식하지 못했지만 무당들을 검기로 죽이면서 영혼의 파편을 흡수한 덕분에 얻은 특전이었다. 물론 대단한 특전은 아니고, 간단히 영혼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고 말할 수 있는 정도였다. 다른 신앙의 기적들은 후천적인 데 반해, 올칸 규율의 기적은 환생을 통해 태어나면서부터 얻을 수 있었기에 포식을 통해 습득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아이작은 영혼들이 무당에게 돌아가지 못하게끔 흩어놓거나 방해하면서 붙들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아이작에게는 영혼을 움켜쥘 수 있는 ‘죽은 자의 손아귀’ 장갑이 있었다.
이 숲에 들어왔다가 죽은 영혼들이 복귀하지 못했다는 사실만 알아도 오크들의 동요는 커질 것이다.
그때였다.
쐐애애액! 날카로운 파공음과 동시에 화살 한 대가 헤카틀리의 머리를 꿰뚫었다. 머리에 매달려 있던 헤카틀리의 촉수 수백가닥이 뿌리를 잃고 후두둑 떨어졌다.
헤카틀리는 휘청거리다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동시에 숲이 마찬가지로 후두둑 흔들리면서 야생동물들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Subject Here – 그러나 그녀는 이내 꽃이 저물 듯이 몸을 웅크렸다.
아이작은 헤카틀리가 즉사는 아니지만 상당한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헤카틀리, 휴식을 취해라.”
‘예.’
헤카틀리의 장기는 육체적 능력이 아닌 저주나 소환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것도 이런 숲속에서 화살 한 대로 맞췄다고?’
터무니없는 능력이었다.
아이작은 곧바로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다음 순간 나무 한 그루의 허리가 펑 소리와 함께 날아가며 아이작의 코앞으로 화살촉이 밀어닥쳤다. 그러나 극도로 집중하고 있던 아이작은 단숨에 화살을 쳐냈다. 동시에 적의 위치를 특정하고 카훌린의 가속 능력을 사용해 들이닥쳤다.
쾅, 쾅! 단숨에 나무를 두 번 박차 궤도를 튼 아이작은 이내 한 오크, 아니, 말, 아니 오크와 말이 합성한 형태를 발견했다.
‘케식!’
놀란 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놈은 아이작을 향해 각궁을 내던지고 만곡도를 꺼내 들었다.
쾅! 카드드드득.
아이작을 추격해 온 케식, 아틀란의 네 발굽이 길게 궤적을 그리며 물러났다. 만곡도와 함께 두 동강 낼 작정이었던 아이작은 이를 갈았다. 평범한 만곡도도 아니고, 힘도 보통이 아니었다.
“넌 뭐냐, 빛의 법전에 너 같은 성기사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너야말로 뭐냐? 막을 수 있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군.”
“아틀란.”
“아이작.”
둘은 싸가지 없게 통성명을 하고 함께 놀랐다. 아틀란은 이미 죽은 영혼들의 속삭임을 통해 아이작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아이작은 아틀란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칸의 내놓은 자식이 왜 여기에?’
***
“당장 추격해야 한다고!”
“미쳤냐, 돌아가서 키르마스 무당께서 새 만호장을 뽑기를 기다려야 한다!”
“저깟 돌무더기를 상대로 망설일 게 뭐냐! 이미 카타왈 백부장도 혼자서 점령할 뻔했던 도시인데!”
“그때는 빛의 법전 성기사단이 오기 전이었고!”
한편, 오크 기병대는 극도의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코르알 만호장의 지휘를 받아야하는 천호장들은 갑작스러운 지휘관 사망에 자중지란을 벌이고 있었다. 물론 이 상황을 대비한 다음 명령권자가 있었지만, 그는 다른 천호장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만호장이 없다고 새 만호장을 뽑을 때까지 버티는 게 네 놈의 전략이라면 대체 왜 네가 새 지휘관이냐! 네가 만호장 역할을 맡아 지휘를 해야지!”
코르알 만호장 부재 시 지휘권을 맡아야 했던 천호장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하려다가 욕을 먹고 찌그러졌다.
오크들 사이에서 이런 ‘유약하고 방어적인’ 전략은 환영받지 못한다. 게다가 상대는 그들이 수도 없이 함락시켜 왔던 형태의, 이미 초토화된 도시 하나였다.
결국 반강제로 천호장들은 코르알 만호장이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쇠르를 향한 돌격을 결정했다. 아직 키르마스의 죽음조차 알려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성을 평평하게 만들고 싶다’는 코르알의 욕망은 천호장들도 이해하는 바였지만, 이미 그들은 너무 오래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그들을 찾아온 것은 정복의 쾌감이 아닌 처참한 모욕이었다.
어떻게든 이 모욕을 씻어내야 했다.
이 모욕은 쇠르를 돌무더기 비슷한 것으로 바꿔 놓고 그곳에 살던 자들의 피를 퍼부어야만 씻어낼 수 있었다.
“돌겨어어어억!”
두두두두두. 기마병들이 일제히 쇠르를 향해 달려가며 엄청난 먼지를 일으켰다. 그 안에 담긴 파괴적인 힘이 폭풍이 되어 몸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들의 판단은 옳았다.
이미 코르알이 성벽을 뭉개 놓은 시점에서 그들은 충분히 쇠르를 점령하고도 남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실은 코르알 만호장이 없어도 바뀌지 않았다. 평범한 도시였다면 이다음 펼쳐질 일은 올칸 규율의 일방적인 살육전이었을 것이다.
아이작이 올칸 규율에 대한 대비책을 이미 완벽하게 세워 놓고 가지만 않았다면.
“모조리 죽여라!”
첫 번째 기마병이 돌 언덕을 넘어간 순간, 천호장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