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64)
Subject Here – 264화. 올칸 규율 (4)
무기의 역사는 선형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흔히들 진화를 ‘더 나은 존재’로 바뀌어 가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그런 것은 주머니 괴물들에게나 일어나는 허상이다.
진화는 ‘살아남은 것’이다.
그것이 날카로운 이빨 때문이든, 어마어마한 번식력 때문이든, 다리가 빨라서든 상관없다. 멸종은 약하다고 봐주지 않고 강하다고 지체되지 않는다. 인간이 살아남은 것은 협동력과 집단 지성 덕분이지, 결코 개개인이 잘나서가 아니다.
전쟁과 무기 또한 마찬가지.
어느 한 종류의 무기가 ‘최강’ 자리를 길게 차지하는 법은 없다. 인류의 악의는 상대방을 더 쉽게 죽이고 도살하기 위해 최강을 끌어내릴 준비를 한다.
한때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이번에 또 다시 파탄에 빠뜨릴 수 있었던 올칸 규율의 기병대 또한 같은 일을 마주하려 하고 있었다.
이미 ‘최강’에 대한 공략법을 숙지한 아이작에게는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다.
“당겨─!”
막 돌 언덕을 뛰어오른 기병이 발견한 것은 갑작스럽게 돌무더기 아래서 튀어나온 말뚝 방책들이었다.
콰드드득! 날카롭게 깎인 방책 끝에 부딪힌 말들이 기수와 함께 처참한 모습으로 꿰여 죽었다.
평평할 정도로 무너져 버린 성벽은 오히려 올칸 규율 기병대의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되어 버렸다. 곳곳에서 비슷한 장애물에 꿰여 말들이 처참한 꼴로 쓰러졌다. 뒤늦게 기병대의 돌격이 저지된 것을 깨달은 천호장들이 재빨리 명령했다.
“성벽 뒤에 방책이 있다! 활을 쏴라!”
기병대는 섣불리 언덕을 넘어가는 대신 우회하며 그 너머로 화살을 쏴댔다. 오크 경기병들은 검술 실력도 뛰어나지만, 대부분 수준급의 궁수였다.
환생을 통해 수도 없는 경험을 쌓아 왔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라도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쏴대는 활이 제대로 맞을 리가 없었다. 언덕 너머에서 비명이 들리지 않자, 천호장은 척후병들을 보내 확인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개…….”
적들은 방책을 세워 놓자마자 바로 도망친 것이다. 성벽을 끼고 싸우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방책을 끼고 싸울 거라고 예상했던 천호장들은 어이가 없었다.
이번 적들은 뭔가 이상했다.
“뭔가 꺼림칙하다. 세 갈래로 나뉘어서 가도록 하지.”
다른 천호장도 동의했기에 별 이견 없이 정문과 남문, 그리고 무너진 성벽을 통해 진입했다. 어차피 무너지기는 매한가지여서 별 차이는 없었다. 쇠르 안으로 진입한 경기병들은 도시 안의 상황을 보고 다시 한번 난감해했다.
도시 곳곳이 포격으로 무너지고 붕괴되어 제대로 지나갈 수 있는 길이 한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기마술이 뛰어나도 장애물을 뛰어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적당히 좀 뭉개 놓지, 빌어먹을…….”
보통 이 정도로 뭉개 놓았으면 적들은 그 전에 항복하거나 정신이 나가 벌벌 떨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적들은 충만한 살의와 함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오크 기병들은 익숙지 않은 시가전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야 했다.
“매복하기 좋은 위치가 많다. 주의하도록.”
그때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한 무리의 궁수들이 무너진 건물 위에서 나타나 일제히 오크 기병들을 향해 활을 쏘았다.
퍼퍼퍽! 갑작스러운 사격에도 불구하고 피해는 크지 않았다. 화살은 오크의 질긴 가죽을 깊게 뚫지 못하거나, 말들을 놀라게 하는 데 그쳤다.
오히려 코웃음 친 오크들이 재빨리 말을 타고 달려가면서 쏘아붙인 화살 몇 대가 궁수들을 쓰러뜨렸다.
“쫓아라!”
매복해 있던 궁수들이 다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천호장은 그들의 형편없는 무장과 실력을 보았을 때 기껏해야 민병대 수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때문에 그는 저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퍼걱. 머리가 그대로 석궁 화살에 꿰뚫려 맞은편 벽에 박히는 순간까지도.
날아간 충격으로 목뼈가 부러진 천호장의 몸이 인형처럼 달랑거렸다. 그 자리에서 즉사한 천호장은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영혼 상태에서나 볼 수 있었다.
“심상찮은 저격수가 있다! 최대한 빨리 돌파해!”
천호장을 잃은 기병대는 당황했지만, 다른 천호장이 곧바로 지휘를 맡았다. 명사수인 그들에게 저격은 새롭지 않은 개념이다. 특히나 조상님의 가호를 받은 화살은 산도 넘어가 적을 뚫는다 할 정도로 무서웠다.
Subject Here – 하지만 지금 화살은 솔직히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저격을 피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저격수를 제거하는 것. 그럴 수 없다면 최대한 빨리 자리를 이탈해야 한다.
오크 기병들은 궁병들을 쫓는 동시에, 궁병을 피한다는 이상한 개념에 시달리며 전력 질주했다.
포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거리에서 잔해를 피해 추격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도망치는 병사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얼마든지 도망쳐라, 놈들이 어디 숨어 있는지 알려 주겠군…….’
매복이 있으리란 점은 예상할 수 있었다.
능숙한 베테랑 전사들인 그들에게 단병접전은 환영할 일이었다.
때문에 골목 끝에 늘어선 병사들과 방책을 보았을 때 그들은 오히려 비웃었다. 방책 따위의 장애물은 이미 오래전에 극복한 수단이다.
선두의 오크 기병들은 재빨리 방책 뒤에서 대기 중인 병사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커다란 사각 방패에 막혔지만, 그 사이 2열의 오크들이 쇠사슬 갈고리를 걸어 단숨에 잡아당겨 무너뜨렸다. 방책은 충격에 강한 장애물이지 버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급조한 방벽들은 간단하게 무너져 내렸다.
당황하는 병사들의 얼굴을 본 오크들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담겼다.
그들은 도망치는 병사들을 도륙하기 위해 골목을 돌파해 광장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것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또 다른 오크 무리였다.
“엥? 너희는 남문에서 오기로 한…….”
“뭐야, 왜 여기 있어?”
“집결, 집결!”
광장은 동시에 달려 들어온 수많은 기마병 무리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소속과 지휘관이 다른 기마병들이 뒤엉키면서 상황 파악도 보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뒤늦게 밀려 들어온 다른 경비병들이 한층 더 광장을 복잡하게 메웠다.
그 자리에 모인 천호장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하나였다.
함정.
쇠르의 무너진 건물과 복잡한 골목은 그들을 한쪽으로 몰아넣기 위한 포석이었다. 가끔 벌어지는 매복과 지연전 또한 비슷한 타이밍에 몰아넣기 위한 것이었다.
‘아니, 이걸 함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들은 이미 이곳에 매복이 있다는 것을 예측했으면서도 달려왔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적들을 순식간에 꺾어 쓰러뜨리고 점령하기 위해.
따라서 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그들의 승리가 더 확실해졌다는 뜻이었다.
허나 천호장은 공기 중에 떠도는 지독한 로어커스 타는 냄새 속에 가려진 냄새를 맡았다.
“술.”
누군가 쏜 불화살이 바닥에 흩뿌려진 도수 높은 술에 불을 붙였다. 기화된 알코올이 순식간에 폭발하듯 타올랐다. 쇠르 잔존병들이 주섬주섬 긁어모은 화약들이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폭발의 충격과 불꽃들에 안 그래도 난장판이었던 광장이 한층 더 난리가 났다.
“작은 폭발이다! 놈들이 장난질을 했을 뿐이다! 말들을 진정시켜라!”
천호장들은 병사들을 수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실제로 쇠르에 수천 명을 단숨에 불태워 죽일 만한 연료는 없었다.
허나 ‘함정’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이작은 쇠르 방위를 맡은 자클렛과 게벨에게 혼란을 주문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이는 혼돈을.
“성기사다─!”
광장 한편에서 갑옷을 번쩍이며 성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브리엔트 성기사단은 일제히 찬송가를 외쳤다. 노랫소리에 호응하듯 광장 곳곳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일제히 더욱 크게 타올랐다.
경험이 풍부한 오크들은 차분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말들은 아니다. 털이 달린 데다가 환생도 할 수 없는 말들은 미친 듯이 날뛰고, 다른 말들에게도 혼란을 전염시켰다.
성기사단과 함께 시청 쪽에서 병사들이 대열을 이루고 걸어 나왔다. 긴 낫과 도끼로 조를 이룬 병사들이 혼란에 빠진 기마병들에게 달려들었다.
긴 낫을 든 병사가 등을 보인 오크를 찍어 끌어내린 뒤, 도끼를 든 병사가 머리통을 쪼개 놓았다. 일련의 작업들이 기계적으로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오크의 발악 같은 반격에 당하는 병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혼란한 상황에서 비좁은 장소에 억지로 갇혀 있는 오크들이 조직적인 반격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도 뒤로 빠지려는 백호장들의 고성, 명령과 어찌할 바를 몰라 허우적거리는 병사들이 뒤섞여 엉망진창이었다.
“말에서 내려! 차라리 내려서 싸워! 놈들은 우리보다 반도 안 되는 징집병들이다! 죽여!”
그 사이 천호장들은 예리하게 병사들의 수준과 무장 상태를 파악했다. 성기사들을 제외하면 별것도 아니다. 천호장 중 하나가 그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재빨리 최전방에 서 있던 후줄근한 복장의 늙은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남자의 눈빛이 번뜩였다.
게벨이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은 순간, 천호장과 그 말이 단숨에 두 동강이 나서 쪼개졌다.
그 경악스러운 모습은 달려들려고 했던 병사들까지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Subject Here – 천호장은 미칠 노릇이었다.
분명 적들은 별것도 아니고, 그들은 적보다 수도, 질도, 사기도 충만했다. 그런데 대체 왜 지고 있는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뿔나팔을 꺼내 다시 한번 돌격 지시를 내리려던 순간, 목을 푹 찌르는 통증에 숨 대신 피를 내뱉었다.
아까 보았던 붉은 화살이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마지막 남은 천호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들은 차근차근 올칸 규율의 머리부터 제거해 나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더 많은 오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 순간 전투의 종지부를 짓는 외침이 들려왔다.
“키르마스 장군 무당께서 당하셨다─! 무당들이 적들의 급습으로 죽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천호장의 마지막 의식은 경악하며 달아나는 오크들의 발길에 짓밟혀 끊어졌다. 그의 영혼은 무당을 찾아 방황하겠지만, 너무 늦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
상대가 자신보다 우월할 때, 이기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상대가 스스로 가진 능력보다 무능하게 만드는 것.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손을 묶고, 발도 묶고.
아이작의 군세는 그 과정을 차근차근 해냈다.
대포를 제압하고, 만호장을 잡고, 무당을 죽이고, 좁은 골목으로 끌어들이고, 명령체계를 흐트러뜨리고, 말과 무기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올칸 규율의 역사상 남을 무능이었지만, 그 무능을 이끌어 낸 것은 아이작의 전략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작전이기도 했다.
아이작은 이 방법이 두 번 다시 통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무당은 더 철저하게 보호될 테고, 화약 낭비도 안 할 것이고, 정보도 없는 도시에 말을 타고 돌격한다는 미친 짓도 안 할 것이다. 아이작이 또 다른 방법으로 무능을 이끌어 낼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그리고 눈앞의 상대, 아틀란은 무능과 거리가 먼 상대였다.
‘올칸 규율의 영웅이 될 자…… 칸의 오른손.’
칸의 내놓은 아들이라는 말은 일종의 농담이다. 애초에 올칸 규율은 자기 씨라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기 속에 나이 많은 아저씨 영혼이 들어가 있으면 아무리 모성애 넘치는 엄마라도 그를 아들로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아틀란은 정말로 특별했다.
왜냐면 칸과 그의 애마 사이에서 나온…… 사랑의 결실이었기에.
때문에 아무도 아틀란을 칸의 자식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케식이 모두 번식이 불가능한 체질이라는 점도 그렇고.
둘은 한참 침묵하며 서로를 살폈다. 서로가 만만찮은 상대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아이작은 아틀란이 엘릴 신앙이었다면 소드마스터 정도는 진작에 이루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눈치만 볼 거지, 성…….”
아틀란의 입이 떨어진 순간 아이작이 눈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예측대로 아틀란은 상당히 아슬아슬하게 아이작의 검을 막아 냈다.
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아이작은 즉시 이삭 검술: 익사자의 손을 발동하며 아틀란의 몸을 뒤흔들었다. 균형이 무너지는가 싶은 순간 아틀란은 되려 발을 크게 구르면서 아이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만곡도를 내려치려는 듯 들어 올리자 아이작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순간 아틀란의 앞 말발굽이 아이작의 가슴을 강타했다.
아이작은 공성추에라도 얻어맞은 기분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아틀란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연달아 공격을 퍼부었다. 아이작은 뭔가 억울함을 느꼈다. 아틀란은 네 발을 현란하게 움직여 균형도 무너지지 않았고, 무게도 더 나갔다. 칼이 부딪칠 때마다 튕겨 나가는 것은 아이작이었다.
속도도 지구력도 아틀란이 앞서 나갔다.
‘나도 저렇게 튼튼하게 태어났으면……! 아니, 생각해 보니 나는 성기사잖아? 그럼 기적을 써야지.’
엘릴의 결투도 아닌데 정정당당하게 싸워 줄 이유가 없다.
애초에 그 엘릴과의 결투에서도 딱히 기적을 아끼진 않았고.
아이작은 검을 두 손으로 쥐고 휘두르는 동시에 아틀란의 머리를 향해 저 너머의 색채를 흩뿌렸다. 그러나 아틀란 역시 예상했다는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엄청난 폐활량으로 색채를 날려 버렸다.
그러나 아이작의 노림수는 다른 것이었다. 그는 왼손을 살짝 비틀어 흩어진 저 너머의 색채 속에서 심연의 손아귀를 불러냈다.
콰두두두두! 거의 아틀란의 말 몸통만 한 촉수가 튀어나와 그의 몸을 휘감더니, 단숨에 거대한 나무에 처박았다. 촉수 아래서 피를 철철 흘리는 아틀란의 몸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