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68)
Subject Here – 268화.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같이 (3)
“아니, 왜 길을 막고 있는 건데!”
“내가 오크처럼 보이나? 성도에 납품하는 물자라는데 왜 말을 안 들어?”
“대체 뭐가 문젭니까? 응? 자, 병사 나으리, 이러지 마시고 대체 무슨 일인지나 말씀해 주시면 성의를 좀 더 표시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시는 것만 조금…….”
성도 리히트하임의 근교 마을.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지나가는 행상인들과 사제, 순례자들을 상대로 관문 역할을 해 오던 마을은 전에 없는 난리통을 겪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지나갈 수 있었던 길이 갑작스럽게 제국군에 의해 차단된 것이다.
제국군은 ‘동부에서 올칸 규율이 침공해 와 성도 방위에 나섰다’라는 공문을 내걸었다. 하지만 까마득한 저 동쪽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성도의 문을 걸어 잠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깟 야만인들, ‘문명화된’ 제국군과 빛의 법전 교단이 합심해 일격에 분쇄하면 그만 아닌가.
때문에 사람들은 은밀하게 리히트하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수근거렸다.
“에잇, 그만하시오! 들어갈 수 없다고 하지 않았소!”
제국군 장교는 자신의 손에 금화를 쥐여주려던 상인의 손을 떨쳐내며 소리쳤다. 금화를 내던지는 것은 장교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으나, 그 역시도 정말 이야기해 줄 것이 없었다. 금화 두 개라면 지어내서라도 상인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줬겠지만, 상인은 장교가 청렴한 군인이라고 믿어버렸는지 두 번은 권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는다고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아우성이었다.
누군가는 당장 리히트하임에 납품하지 않으면 썩어버릴 음식들을 여기서라도 팔려고 장사판을 벌였고, 순례길이 막힌 방랑 수도승들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항의했다. 결국 제국군 장교가 검을 뽑아 들고서야 뒤로 물러났다.
“조용하고 물러나라! 황제 폐하께선 성도에 심각한 위협이 닥친 것을 알고 군을 몰고 가신 것이다! 지금 리히트하임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붉은 성배의 첩자들로 알겠다!”
병사들이 살벌하게 창까지 들이대자 인파는 주춤대며 흩어졌다. 하지만 병사들의 얼굴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성도를 방어하기 위해 오기는 했는데, 이건 아무리 봐도 포위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천벌 받을 짓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
그리고 그 모습을 아이작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도 마찬가지군.’
쇠르에서 이곳, 리히트하임 근교까지는 넬을 타고 빠르게 올 수 있었다.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온 덕분이었지만, 리히트하임에 접근할수록 넬이 비행을 버거워했다.
울텐하임과 마찬가지로, 층층이 쌓인 신화와 전설에서 비롯된 막대한 신성력이 리히트하임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엘릴 쪽 천사의 피가 섞인 넬은 감히 접근하기를 어려워했다. 결국 아이작은 넬을 숲속에 대기시켜 두고 홀로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말을 구해 볼까 접근한 마을마다 모두 제국군에 의해 차단되어 있었다. 팬텀 스티드를 소환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그 사악한 짐승을 성도 근처에서 소환했다간 녹아내릴 것이 분명했다.
‘이 정도면 이미 제국군은 리히트하임을 포위한 거나 마찬가지야. 발트제메르가 위력 시위만 벌이다가 교단이 알아서 굴복해 주는 게 베스트긴 한데…….’
그보다 더 나아가면 제국은 자멸한다.
여명군은 고사하고 올칸 규율에 의해 뭉개질 것이다. 아이작은 황제가 이런 무리수를 두는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근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황제 폐하께서 교황 자리까지 차지하시려는 거 아냐?”
“쉿, 이 사람이 천벌 받을 소리를. 황제 폐하께서 얼마나 신실하신 분인데 그러겠나?”
“아니, 그래도 성도까지 이렇게 둘러싸고 있을 정도면…….”
“으음, 하긴. 황제 폐하는 성체시잖나? 그 욕심 많고 뚱뚱한 대머리 교황보다는 나을지도 모르지. 여명군도 더 잘 지휘하실 것 같고.”
다른 곳은 몰라도 황제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인 것 같았다. 대부분의 불만이 여명군 이슈 때문에 교단에 쏠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발트제메르 황제가 대단한 인물인 것은 사실이지.’
Subject Here – 그에 비해 교황은 솔직히 선거에서만 뽑히면 아무나 될 수 있다. 약간 속되게 말하면 사제들끼리 하는 인기 투표다. 천사들은 명령에만 복종한다면 교단의 권력에 관여하지 않으므로 황제가 직접 교황이 되겠다고 나서도 반대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성지 점령이라는 거국적인 목표를 생각하면 교황보단 교황─황제가 나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개념도 아니다.
에델레드와 사훌란 칸이 그러하듯, 엘릴, 올칸 규율, 불사교단에서도 최고지도자가 곧 신의 대리인이다. 오히려 천상의 권력과 지상의 권력이 분리된 제국이 특이한 경우였다.
아이작은 이 상황이 대단히 곤혹스러웠다.
이건 게임상에 존재하지 않는 시나리오였다.
물론 황제가 대단한 인간이고, 많은 업적을 세우긴 했지만, 교황을 공격하고 그 자리마저 좌지우지한다? 이런 건 본 적이 없었다.
‘……혹시 내 행적이 그의 야심을 키운 건가? 원래 야심 터진 인간이긴 했는데.’
만약 황제의 쿠데타 시도가 성공하고 교황─황제가 되면 어떻게 될까?
아이작 개인으로서는 기쁜 일이지만 과연 기쁘기만 한 일로 끝날까? 게임에서 여덟 번이나 승리한 그도 가본 적 없는 길이라 가늠하기 어려웠다.
‘일단 성도에 도착해서 생각하자. 우선 황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야지.’
아이작은 어떻게 병사들을 지나칠까 고민하다가 곧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대로 한복판으로 병사들을 향해 다가갔다.
제국군 장교는 또 다가오는 사람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가 그의 외모가 심상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작 이사크레아다. 황제 폐하의 부름을 받고 가는 길이다.”
“아, 아, 아이작 이사크레아? 성배기사? 성배기사님이십니까? 하, 하지만 아, 아무도 통과시키지 말라는 리옹 후작님의 지시가…….”
“리옹 후작의 명령이 황제 폐하의 명령보다 우선인가?”
네필림으로서의 권위, 태도, 설득력이 장교를 찍어누르고 있었다. 여기서 혼돈의 눈이라도 쓰면 오줌이라도 지리겠지만 그 정도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장교는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힘겹게 말했다.
“시,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이라도…….”
“신분?”
아이작은 칼 두 자루를 양손에 들고 살짝 검집에서 꺼냈다.
“하나는 루앗딘 열쇠고, 하나는 성검 카훌린이다. 이거라면 내 신분을 증명할 수 있겠지.”
황제가 워낙 열정적으로 아이작의 업적을 홍보한 덕분에 장교도 카훌린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교가 보기에 아이작이 보여 준 칼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아이작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만약 끝까지 아이작의 출입을 거절할 경우, 저 천사도 살해한 성배기사의 칼이 뽑히는 걸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나름 진귀한 경험이겠으나 제국군 장교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성배기사는 황제 쪽 측근인 브란트 공작의 사위이기도 했고, 리옹 후작과도 절친하다고 들었다. 동시에 교단의 성기사이기도 하니 문제가 될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통과하십시오.”
“아, 그리고 말 한 마리도 필요한데.”
“……빌려드리겠습니다.”
제국군 장교는 그 유명한 성배기사가 말도 수행원도 없이 왔다는 사실에 의문이 생겼지만, 꼬치꼬치 캐물을 자신은 없었다. 이미 그의 용기는 아이작에게 신분증을 요구한 시점에서 다 소모되어버렸다.
아이작은 순조롭게 제국군 말을 빌려 타고 곧바로 성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쿵쿵쿵, 척! 쿵쿵쿵, 척!
수만에 달하는 병력이 일제히 리히트하임을 포위한 채 도열했다. 그중 리히트하임 정문 앞에서 각 군단이 하나씩 나와 분열 행진을 시작했다. 만 명의 병사들이 한 몸이 된 듯 쿵쿵 발을 울리며 걷다가, 장군의 구령에 맞춰 몸을 돌리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리히트하임 성문 앞에서 동시에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Subject Here – 만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내지르는 고함은 리히트하임 전역에서 들릴 지경이었다. 함성까지 마친 군단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그 자리를 새로운 군단병들이 채웠다.
전통적인 무력 시위였다. 이 많은 숫자의 인구를 동원할 수 있고, 전부 훌륭한 무장 상태를 갖췄으며, 상당한 훈련을 거친 병사들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시위.
황제의 권력과 힘을 과시하는 퍼포먼스였다.
실제로 황제가 끌고 온 이 군단들은 제국군 중에서도 정예 중의 정예였다. 장군들은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무장해 배신할 여지가 없었다.
다만, 병사들은 자신들이 성도에서 이런 무력시위를 벌이는 이유를 완전히 다르게 알고 있었다. ‘파수자 회의’라는 사악하고 부패한 사제들이 교황을 인질로 잡았고, 그들로 인해 제국이 피폐해지고 있다고.
이 과정에서 파수자 회의는 거의 사교도 급의 사악한 집단으로 묘사되었다.
수도와 루주베르크에서 괴물이 나타난 것은 전부 그 파수자 회의가 저지른 일이라고.
결국 제국군 병사들은 자신들이 교황을 구출하기 위해 출정한 신성한 군대라고 믿었다. 혹은 그렇게 믿고 싶었거나.
디트리히는 다섯 번째 군단이 함성을 내지르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얼굴을 매만졌다. 성도의 문은 여전히 굳게 잠긴 채 침묵하고 있었다.
“이게 통할까요?”
이런 무력시위가 통하는 적은 이미 사기가 꺾이고 훈련 수준이 낮은 자들일 때 일이다. 디트리히는 황제가 피를 보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냥 들이닥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황제는 웃으며 대답했다.
“통해.”
발트제메르는 자신하고 있었다.
“저 안에 있는 사제들은 전쟁이라곤 경험해 본 적 없는 책상물림들이 태반이다. 방구석에서는 열심히 전쟁을 부르짖지만, 전쟁이 막상 문 앞으로 찾아가면 벌벌 떠는 놈들이지. 놈들은 나를 탓하기보다 ‘그 신실한 제국군이 이곳까지 찾아오게 만들다니, 교황은 대체 뭘 하는 건가?’하고 있을 거다. 자기편을 탓하는 게 더 쉬우니까.”
발트제메르가 노리는 것은 내부 분열이었다. 성도 리히트하임 코앞까지 들이닥치긴 했지만 성기사들과 사제들의 피를 흘리기에는 부담이 크다. 백성들의 비난도 비난이고, 교단도 결국 황제가 품어야 할 백성들이다.
리옹 후작이 옆에서 즐겁다는 듯 말했다.
“대충 반응이 예상되는군요. ‘당장 천사를 불러 저 이단을 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교황께서는 뭘 하는 거지? 뭐? 카틴 주교를 일반 사제직으로 파문? 추기경 후보 아니셨어? 그럼 황제는 당연한 요구를 하는 건데 우리 교황이 멍청한 짓을 해서 이 사달이 난 거라고?’ 나 참, 똥통에 빠져 사니 자기 똥구멍에서 냄새나는 줄도 모르는 놈들입니다.”
“저들이 이렇게 해서라도 문제의식을 깨달으면 충분하네, 리옹.”
황제는 자신의 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 안에도 뜻있는 자들이 있을 것이야. 나는 우리 병사들의 함성이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줬으면 하네. 내 요구는 단 하나, 추기경 선거를 공정하게 치르게 해달라는 것뿐이니까.”
물론 그 뒤에 숨겨진 순서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 뒤 후안을 교황으로 내세우고, 짧은 치세 기간을 거쳐 황제에게 교황직을 ‘양위’한다. 그리하여 비로소 지상의 권력을 모조리 인간의 손에 넣는 것이다.
하지만 디트리히는 쉽게 걱정을 접지 못했다.
“만약 몰릴 대로 몰린 교황이 천사를 불러 신명재판을 요구하면 어쩌지요? 끌려 내려가는 것보다는 그걸 선택할 인간입니다.”
천사들의 속뜻을 알 수 없는 이상 신명재판은 도박수나 다름없다.
“하, 그러라지!”
리옹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황제 역시 신명재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빛의 법전의 목적은 천년 왕국의 도래다. 나는 그 역시도 교황보다 더 잘 해낼 자신이 있지. 교황은 서두르는 게 고작이야. 반면 나는, 내 뿔은, 내 운명은 정복과 전쟁을 위해 태어났다.”
천사 앞에 서더라도 발트제메르는 당당할 자신이 있었다.
그의 운명은 온 가족이 불타 죽었던, 그에게 빛나는 뿔이 돋아났던 시기에 점지되었으므로.
발트제메르의 운명은 이미 그 연기와 화염 속에서 시작되었다. 이제 그 운명이 도달점에 다다른 것뿐이었다.
끼이이이익.
일곱 번째 분열 행진이 끝났을 무렵, 굳게 닫혀있던 리히트하임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굳은 표정의 후안 주교와 성기사, 사제 몇 명이 서 있었다.
황제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