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7)
27화. 인간사냥꾼 사냥 (1)
아이작은 뱀파이어들이 마음껏 움직이지 못하는 틈을 이용해 재빨리 칼을 찔러넣었다. 아이작은 최대한 체력을 아끼기 위해 오직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고 판단할 때에만 칼을 휘둘렀다. 때문에 그의 칼이 번뜩일 때마다 피와 재가 튀어 올랐다.
뱀파이어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밀리면서 계곡의 그늘진 부분으로 후퇴하자 기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세와 기상의 열세를 받아들인 뱀파이어들이 차분하게 대응을 시작했다.
조직적인 반격이 시작되자 아이작은 일단 거리를 벌렸다.
‘힘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동작을 최대한 아껴야 해.’
다행히 아이작을 상대하던 뱀파이어들은 그에게 상처 한두 군데를 입은 자들이었기 때문에 쉽사리 달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작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이솔데와 게벨의 상태를 살폈다.
게벨은 셋을 상대로 몰아붙이고 있었고, 이솔데는 홀로 객지를 떠도는 이단심문관답게 한 놈 정도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솔데는 오히려 아이작을 걱정했던 건지 감탄하는 기색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 아가씨가 내 실력을 직접 본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겠군.’
균형이 깨진 것은 게벨이 상대하던 세 놈 중 한 명의 목을 날려 버리면서였다.
한 놈이 쓰러진 후에도 놈들은 패색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지만,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게벨은 일방적으로 뱀파이어들을 찍어누르고 있었다.
아이작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시선을 돌린 뱀파이어의 가슴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놈은 기겁하며 검을 쳐내려 했다.
순간 아이작의 검이 마치 뱀처럼 기묘하게 휘어져 들어가며 심장을 꿰뚫었다.
살과 뼈가 통째로 뜯겨 나가며 짐승이 물어뜯은 듯한 구멍이 남았다. 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상처를 들여다보다가 빈 자리에 손을 허우적거렸다.
“이 녀석들 성기사입니다!”
뱀파이어 중 하나가 비명 지르듯 소리쳤다.
“엄밀히 말해 성기사는 아무도 없지만 말야.”
아이작이 중얼거렸다.
이단심문관과 은퇴한 성기사, 그리고 성기사 지망생뿐이다. 그러나 성기사라는 외침에 뱀파이어들은 이를 갈면서 거리를 벌리려 했다.
게벨과 아이작은 놈들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이어가려 했으나, 갑자기 머리 위에 그늘이 드리워져 멈칫하고 말았다.
‘무슨?’
머리 위에 붉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걸 본 게벨의 표정은 사색이 되었고, 반면 뱀파이어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번졌다.
붉은 안개가 계곡을 단숨에 덮쳐 왔다.
콰드드드드득.
붉은 안개가 계곡을 덮친 순간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붉은 안개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뱀파이어 둘을 마치 이빨이라도 달린 것처럼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뱀파이어 둘의 시체는 산산이 분해되어 안개와 한 몸이 되었다.
붉은 안개는 뱀파이어들의 시체를 모두 먹어 치웠지만, 살아있는 다른 뱀파이어는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놈은 이제 이쪽을 노리듯 꿈틀거렸다.
붉은 안개의 실루엣이 언뜻 사람의 형상을 띄었다가 다시 흐려졌다. 동시에 빠르게 아이작을 향해 쇄도해왔다.
그러나 아이작은 이 정도면 충분히 시간을 끌었다고 생각했다.
뱀파이어들과 마주한 순간부터 기도문을 준비하고 있던 이솔데는 눈앞에 닥쳐오는 붉은 안개를 향해 꾸짖듯 마지막 시구를 외쳤다.
“……그리고 주인께서 틈새 밖의 빛을 길들여 우리에게 보여주셨으니!”
순간 찬란한 빛이 계곡 안을 가득 채웠다.
찬란한 빛에 휩싸여, 도저히 구체적인 형상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어두컴컴하던 계곡 안은 순식간에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백지 같은 볕 아래 놓이게 되었다.
엄청난 광채에 붉은 안개는 순식간에 씻기듯 사라졌다.
아이작은 눈이 아픈 와중에도 그 빛으로 이루어진 짐승을 바라보았다.
밝은 빛에 휩싸여 있어서 정확한 실루엣은 볼 수 없었지만, 거대한 나비 날개를 가진 고양잇과 형태의 짐승이었다.
[아궁이 짐승(A)]이 세계에서 신을 찬양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빛의 법전의 찬란한 빛, 그 영광의 불꽃에 홀려 다가가다가 나방처럼 불에 타 죽은 존재들도 허다하다. 그리고 ‘아궁이 짐승’들은 아궁이 속의 잿더미 속에서 재탄생한 존재들이었다.
‘……뭐 그런 설정이지. 중요한 건 바로 그 짐승에게 광휘 효과가 있다는 거고.’
아궁이 짐승은 천사나 신수 같은 초월적 존재를 제외한 소환수 중에는 상위권에 속하는 존재다. 하지만 형태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소환자의 역량에 따라 크기와 힘이 달라진다.
그러나 아궁이 짐승이 공통적으로 가진 속성이 바로 ‘광휘 효과’.
태양빛과 같은 효과를 가진 이 특성은 아무리 작은 놈이라도 뱀파이어를 상대로는 극상성이었다.
역시나 뱀파이어들은 아궁이 짐승이 나타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이솔데는 소환을 오래 유지하지 않고 금방 돌려보냈다. 아궁이 짐승이 사라지자 계곡은 상대적으로 밤이라도 된 것처럼 어두워졌다. 이솔데는 소환의 여파인지 다소 창백한 표정으로 묵주를 만지작거렸다.
“놈들이 사라졌군요.”
아궁이 짐승이 아니라 천사나 제대로 된 신수였다면 도망가는 것도 용납하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여기까지가 이솔데의 한계였다.
“추적해야죠!”
이솔데가 일부러 힘차게 말했다. 아이작은 그녀가 아직 소환할 여력이 있음을 의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추적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게벨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단심문관님.”
“왜죠?”
“곧 밤이 되거든요.”
게벨은 하늘을 걱정스럽게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
계곡에는 밤이 빠르게 찾아온다.
아직 하늘이 밝을 때 전투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뱀파이어들이 쇠약해지긴 했어도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깊은 계곡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밤까지 되어 버리면 아이작 일행은 정말 제 실력을 발휘하는 진짜 왈라이카 인간 사냥꾼들을 상대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 주변에 널린 뱀파이어들이 남긴 흔적과 증거품들을 수집해야만 했다.
“다 살펴봤어요?”
“그럭저럭. 다만 놈들이 어중이떠중이 구울이 아니라 왈라이카 사냥꾼이라는 것밖에 모르겠던데.”
아이작 일행의 기습이 워낙에 성공적이었던 탓에 놈들은 수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갔다. 그렇다고는 해도 야영 중이었던 터와 장비뿐이었지만, 이솔데는 그게 세상 보물인 것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봐요. 이단심문관님. 그건 나가서 살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바닥에 엎드려 모닥불 밑바닥까지 살펴보던 이솔데는 아이작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뭐 좀 알아냈어요?”
“별로 쓸만한 건 없군요…….”
“어쩔 수 없죠. 애당초 뱀파이어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것도 아니고…… 아니지, 뱀파이어 공작이 개입했다는 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 아닐까요?”
아이작이 별 생각 없이 말했다가 경악하는 이솔데의 시선과 마주쳤다.
“뱀파이어 공작? 그걸 어떻게?”
“예? 아, 그거야…….”
아이작은 자신이 뱀파이어 공작을 언급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실 아까 그 붉은 안개의 정체를 아이작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이미 아이작은 왈라이카 왕국이 섬기는 신앙, ‘붉은 성배 클럽’으로 엔딩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작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들을 마치 추리해 낸 것처럼 언급했다.
“뭐, 그야 뱀파이어가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을 할 리가 없으니까요. 대낮에 일반인인 척하고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보아하니 이곳은 초소쯤 되는 것 같군요. 아마 더 안쪽에 그 귀한 신분이 쉬고 있던 동굴이나 임시 숙소가 있을 겁니다. 왈라이카 사냥꾼들을 호위로 거느리는 거창한 신분이라는 거죠.”
이솔데는 입을 살짝 벌렸다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작은 이 정도로 넘어간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사실 아이작은 그 공작의 이름도 맞출 수 있었다.
헤인켈 굴마르.
“실력도 범상찮더니 왈라이카 사냥꾼들의 행동 방식에 대해서도 잘 아시는군요. 예. 왈라이카의 왕족인 헤인켈 굴마르 공작이 개입한 것 같습니다. 이건 중요한 단서지요. 하지만 역병신과의 관계를 알아낼 단서가 없군요.”
게벨이 딱딱한 어투로 물었다.
“헤인켈 굴마르요?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대낮에 붉은 성배의 기적을 쓸 정도로 강한 왈라이카 사냥꾼 집단은 왈라이카 안에서도 헤인켈 공작가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움직일 만한 공작가 사람은 셋뿐인데 후계자가 위험한 여기까지 올 것 같지는 않고, 가주는 최근 그 거성에서 꼼짝도 안 하는 걸로 파악됐습니다. 남은 건 굴마르뿐이죠.”
“상황 더럽게 됐군. 왈라이카의 공작이면 왕족이잖습니까. 그럼 밤에 절대로 마주치면 안 됩니다. 일단 빨리 계곡부터 빠져나가죠.”
왈라이카 왕국은 혈통이 즉 계급 그 자체다.
왕족들은 말 그대로 그들이 모시는 붉은 성배에게서 피를 나눠 받았기 때문에 반신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귀족들은 그런 왕족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권능을 나눠 받는다.
당연히 하위 계급으로 갈수록 힘 또한 약해진다.
왈라이카 왕국은 그런 수직적인 혈통 카스트로 구성된 국가였다.
헤인켈 굴마르는 공작의 형제로, 왕족으로부터 고작 한 다리 건너 피를 나눠 받은 존재였다. 그 힘은 적어도 한 개 성기사단 전체가 나서거나 천사급을 불러내야 격이 맞았다.
지금 이 셋만으로 상대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이솔데의 반응이 이상했다.
“적어도 성기사단은 와야 공작을 상대할 수 있단 말입니다! 이제 밤이 되면…….”
게벨은 이솔데의 얼굴을 보고 말을 멈췄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벌써 성기사단을 불렀군요?”
“예. 오늘 아침에요. 갈까마귀가 갔다 올 정도의 거리니 슬슬 저희가 밖으로 나갈 때쯤이면 브리엔트 성기사단이 도착해 있을 겁니다.”
“증거가 없으면 성기사단을 부를 수 없다더니 무슨…….”
게벨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다가 이솔데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솔데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 증거를 발견할 것이라고 확신했지요. 그리고 이렇게 발견했잖습니까? 뭐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만 이런 건 행동이 앞서가야 하는 법이니까요.”
“성기사단이 왔다 하더라도 아직 우리 옆에는 없습니다. 놈들이 그 전에 습격해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아이작은 이솔데의 표정을 보고, 그녀가 서두르지 않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솔데는 오히려 바로 그 상황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면 반갑지요. 범인들이 도망가면 쫓아가기 힘들 테니까.”
게벨은 이솔데의 발언에 갑갑하다는 듯 아이작을 돌아보았다. 아이작도 한숨이 나온다는 듯 얼굴을 감싸 쥐고 있었지만,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거……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군.’
이솔데의 계획은 아이작이 원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
원래 아이작의 계획은 성역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뱀파이어들이 나타나면서 이 조건은 충족되었다. 이제 이솔데는 성역보다 왈라이카 사냥꾼들을 찾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아이작은 여기서 뱀파이어들을 보고 한가지 계획을 더 추가했다.
이단심문관에게 빚을 지우고 그럴듯한 성과를 남기는 것.
‘성기사단을 불러들였다고? 오히려 좋아.’
아이작은 어차피 성기사단에 입단할 계획이었다. 이솔데가 불렀다는 브리엔트 성기사단에 대해선 잘 몰랐지만, 맘에 들지 않는다면 추천서라도 받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성기사단장과 이단심문관의 추천을 받은 성기사 지망생이라니.
‘괜찮은 데뷔가 되겠군.’
실력도 있으니 귀찮은 수습 과정을 건너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솔데의 계획은 결국 아이작이 목표와 일치하는 셈이었다.
‘그 와중에 내 수도원을 엿먹이려고 한 거지발싸개 같은 놈들을 박살 내는 것도 겸사겸사 할 수 있겠지.’
사실 이쪽이 본심이긴 했다. 저것들이 그의 영역 근처에서 무슨 의도로 움직이는지를 알아내야 했으니까.
다만 상대가 왈라이카의 공작이라는 게 걸리긴 했다.
‘게임상에서는 네임드 보스급인데…….’
칼센보다는 약하겠지만 지힐렛처럼 죽다 만 신보다는 강할 것이다.
아이작은 그놈까지 잡지는 못하더라도 솔직히 이런 상황이라면 이단심문관을 살려서 돌려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라고 생각했다.
역시 최선은 뱀파이어들의 습격 없이 무사히 이 계곡을 빠져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