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73)
Subject Here – 273화. 금지된 지식 (3)
머리 위의 불빛이 심하게 깜빡거리자 바슐과 아이작은 작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리고 점멸하는 불빛 속에서 모든 것이 멈추다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존재와 부재. 동과 부동, 관측과 은폐 사이에서.
깜.
그것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빡.
바슐과 아이작 사이에 나타난 것은 지팡이를 든 한 사제복 차림의 노인이었다. 바슐은 갑자기 나타난 노인을 보고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노인은 바슐이 안중에도 없는 듯 쪼그려 앉더니, 아이작이 내동댕이친 상자를 더듬더듬 손으로 만졌다.
‘장님인가?’
바슐은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이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님 노인은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하지만 산산조각 난 그릇은 다시 붙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깊게 한숨을 내뱉더니 갑자기 지팡이를 휘둘러 아이작의 머리를 내리쳤다.
“이놈!”
딱. 바슐은 놀라서 반쯤 검을 뽑아 들었지만, 분명 대응할 수 있었을 아이작이 꼼짝도 안 하고 머리를 얻어맞는 모습을 보고 멈췄다.
아이작은 머리를 두어 차례 더 얻어맞고서야 고개를 숙였다.
“녹색 봉인 물품을 깨뜨리다니, 정신이 있는 게야 없는 게야!”
“죄송합니다. 관장님. 제가 실수했습니다.”
“너!”
노인은 고개를 돌려 바슐을 바라보았다.
바슐이 흠칫 놀라 바라본 순간 지팡이가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바슐은 자신이 볼 수도 반응할 수도 없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이미 자신이 맞는 것은 예정되어 있었고, 그 중간 과정을 생략한 느낌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너는 아랫놈도 관리 못 하고, 뭐 하는 놈이야!”
“죄…… 죄송합니다.”
그제야 바슐은 상황을 알아차렸다.
이 관장이라는 존재가 인간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작은 그를 일부러 불러낸 것이다. 키도 크고 두건 구멍으로 언뜻 보이는 외모가 나이도 많아 보이니, 바슐과 아이작을 상급자와 하급자로 착각한 듯했다.
그때 아이작이 노인에게 말했다.
“관장님, 사실 찾고 있는 물건이 있습니다.”
“찾고 있는 물건?”
“예.”
아이작은 힐긋 바슐을 바라보았다가 노인에게 물었다.
“이름 없는 혼돈에 대해 찾고 있습니다.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바슐은 놀란 얼굴로 아이작을 보았다. 그가 찾는다는 자료가 설마 이름 없는 혼돈과 관련된 것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대놓고 묻는다고 설마 이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말해 줄까 싶었다.
“이름 없는 혼돈에 관한 자료?”
노인은 혼잣말을 하더니 자신의 눈가를 더듬었다.
바슐의 걱정과 달리 노인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이름 없는 혼돈에 관한 것은 전부 최소 보라색에 보관 중이군. 따라와라.”
***
“저건 대체 뭐냐?”
바슐은 노인의 뒤를 따라가면서 당혹스럽다는 듯 물었다.
아이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비밀서고 도서관장, 바르테오 돌로무스예요. 비밀서고의 모든 자료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죠. 여기서 뭘 찾으려면 저 사람 없으면 안 돼요.”
“아는 사이야?”
“아뇨. 그건 아닌데, 맹인 파수꾼이라는 이름이 더 유명하긴 하죠.”
Subject Here – “…….”
바슐은 빛의 법전 명천사 가운데, 엘릴 다음으로 이름 지어진 천사의 이름을 듣고 얼어붙었다.
아이작이 정확히 원했던 반응이었다. 아이작은 그가 충분히 놀라는 모습을 본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시공간을 왜곡하면서 비밀서고를 통째로 혼자 관리하는 존재가 평범한 인간인 줄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저건’ 맹인 파수꾼의 생전 모습의 편린이니까.”
일종의 자아가 입력된 기계장치다.
맹인 파수꾼이 직접 입력하고 만들어 낸 기천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기천사답게 오직 정해진 기능에만 충실할 뿐이었다. 눈앞의 비밀서고 도서관장은 자료를 찾고, 관리하며, 훼손을 막는 것에만 그 기능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이작은 ‘훼손해도 괜찮은’ 물건을 찾기 위해 한참을 돌아다녔었다.
“위험하지는 않나?”
“뭐, 물론 맹인 파수꾼을 직접 만나면 위험하겠지만…… 대개 우르반수스를 두루 돌아다니며 서고를 관리하기 때문에 여기서 마주칠 확률은 극히 낮아요.”
리히트하임 비밀서고란 빛의 법전 사람에게는 귀중한 보물창고 같은 곳이지만, 타 신앙 사람들에게는 보물이 득시글거리는 던전 같은 곳이다. 도서관장은 그 던전의 보스 같은 존재고. 하지만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알고 도서관장을 어떻게 다루는지만 알면 곤란해질 일은 없었다.
바슐은 묘한 시선으로 아이작을 보았다.
“너는 정말…… 나도 비밀이 많지만 너는 더하군. 대체 이 모든 걸 어떻게 알고…….”
“준비를 오래 해 왔다고 쳐 두죠.”
물론 비밀서고는 방법을 안다고 해도 아이작도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는 공간이다.
맹인 파수꾼이 그렇게 허술하게 보안을 유지할 리가 없으니까. 일단 지식을 습득해도 들고 나가는 것부터가 문제다. 사물이라면 가지고 나가는 것을 허락할 리가 없고, 배우는 것이라면 습득 과정 자체를 문제 삼을 것이다.
‘일단 자료가 있는 곳까지 도달한 다음에 생각하자. 여차하면 봉인들을 파괴하고 튀는 거야. 그럼 다들 서고에 집중하느라 황제 경호가 허술해질지도.’
그러나 서고 깊은 곳으로 이동하면 할수록 주변의 봉인들이 험악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아이작은 슬슬 자신을 잃었다. 상자를 봉인한 봉인지는 둔해 보일 정도로 두터워지고, 사슬도 배를 묶는 용도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터운 것도 있었다. 어떤 것은 유리관에 갇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살덩이가 쇠사슬에 감겨 꿈틀대고 있었다.
‘잘못 파괴했다간 내가 살아 나가는 게 문제일지도…….’
“대체 빛의 법전은 이런 끔찍한 것들을 왜 보관하고 있는 거지? 당장 성화 속에 던져 파괴해 버리면 안 되는 건가?”
바슐이 불만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역시도 빛의 법전 성기사였던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말아라!”
바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서관장이 버럭 소리쳤다.
“이것들은 전부 빛의 법전이 피로 쌓아 올린 역사다! 과거 루앗딘께서 여명 석판을 들고나오기 전, 빛의 세기가 시작되기 이전의 세계가 얼마나 혼탁하고 미지의 공포로 가득했는지 아느냐? 그때 세상은 이해 못 할 혼돈과 무지, 비문명으로 가득했다. 그 공포들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검열청이 세상을 위협하고 혼탁하게 만드는 것들을 가두고 정돈했다!”
설마 도서관장이 듣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 못 한 바슐은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그런데 불에 태우라고? 지식의 소실은 곧 공포에 대한 극복 경험을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세계에 위협을 가하는 것들은 엄중하게 격리하되, 비슷한 재앙이 닥치더라도 극복할 수 있도록 보관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다. 우리는 예방자요, 경고 문구다!”
“어, 음, 하지만…….”
“사실상 지금 인간들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 빛의 법전 검열청과 이단심문청의 활약 덕분이다. 우리가 아니라면 아직도 인간들은 칼타랄시스나 움 역병, 보라색 달 광인들에게 시달리고 있지 않겠느냐?”
“그, 그게 뭡니까?”
“네가 그걸 모른다는 건 우리가 지금까지 아주 잘해 왔다는 뜻이지! 고맙다는 말은 됐다! 방해나 하지 마라!”
얼떨결에 도서관장에게 혼난 바슐은 씨근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작도 그를 그저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볼 뿐이었다. 하지만 도서관장의 말은 아이작에게도 묘하게 와닿았다.
‘예방자이자 경고 문구라.’
병을 예방하려면 먼저 병을 앓아야 하고, 경고하려면 먼저 그 길을 가봐야 한다. 아직 고대신들이 득시글거리던 천여 년 전, 빛의 법전은 정말 그 시대의 구원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억압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지.’
등대지기는 어쩌면 튀어나온 못들을 전부 때려 박다가 완전무결한 원형의 세상을 원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
도서관장은 문득 걸음을 멈춰 섰다. 주변의 풍경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딱 하나 달라진 것이 있었다. 달큰한 냄새가 공기 중에 어딘가에서 퍼져 나오고 있었다. 아이작은 이 냄새를 맡아 본 적 있었다.
이름 없는 혼돈의 우르반수스가 있는 곳에서 풍겨 오는 냄새였다.
“여기가 보라색 구역. ‘알려져서는 안 되는 지식’ 7단계 이상의 자료들을 보관한 구역이다. 이름 없는 혼돈에 관한 자료는 모두 기밀 사항으로 취급 중이지. 여기서 뭘 찾고 있나?”
Subject Here – 아이작은 다소 긴장하며 입을 열었다.
“이름 없는 혼돈의 이름.”
“이름 없는 혼돈의 이름.”
도서관장은 입력하듯이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그는 잠시 고개를 삐딱하게 꺾다가 어딘가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래 걷지 않고 한 관짝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그 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관 안에 있는 자가 알고 있다. 이 관은 ‘썩지 않는 관’이라는 것인데, 사실 한 미친 고대신이 자신의 필멸자 애인을 보관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만든 물건이다. 하지만 이건 사실 시간을 정지시키는 성물이었고, 관 안에 들어간 고대신의 애인 또한 멈추고 말았지. 공교롭게도 그 애인은 이름 없는 혼돈의 사제다. 당연히 그 이름을 알겠지.”
바슐은 ‘이런 식으로 지식의 보관이 이루어지는 거군’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작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관을 열자마자 백사병으로 죽지는 않을까요?”
“당분간은 괜찮을 거다. 백사병도 개인마다 어느 정도 시차가 있으니까…… 하지만 백사병이 진행되기는 하겠지. 즉, 관을 여는 순간 이 자료는 파괴되는 셈이다.”
도서관장은 목을 삐딱하게 꺾으며 말했다.
“해서 위와 같은 이유로 해당 지식에 대한 열람 등급은 추기경급 이상이라야 가능하다. 더불어 5단계 이상의 지식 필터가 필요하군. 유감스럽지만 너는 추기경급은 아닌 것 같은데.”
도서관장의 친절함은 자료를 찾아 주는 것까지만인 것 같았다. 확실히 도서관에서도 책을 찾는 것까지는 자유지만 대출받으려면 자격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거라면 처음부터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사실 저는 후안 추기경의 심부름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후안 추기경?”
“예. 본인은 늙고 뚱뚱해서 가져오기 힘드니까 저더러 확인하고 알려 달라고 하더군요. 참고로 저는 성배기사이고, 부활의 성자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아이작의 뜬금없는 자기 자랑과 수다가 쏟아지자 바슐은 그런 한심한 거짓말에 누가 속겠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당연히 아이작도 속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지금 그가 떠드는 말들은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물쇠 열쇠를 돌리는 것에 가까웠다.
아이작은 전생 시절, 게임 내에서 도서관장과 대화해 본 적 있었다.
도서관장은 상당히 높은 수준을 갖춘 A.I였는데, 키워드를 입력해 그를 설득하면 원하는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운영진은 터무니없이 사기적인 스킬이나 능력을 찾지 못하게끔 자체적으로 필터를 걸어 두었는데, 당연하게도 우회하는 방법이 있었다.
‘할머니가 물려주신 스킬북’이라는 트릭이었다.
‘라는 사기 스킬북 위치를 알고 싶어’라고 하면 필터로 걸리니 도서관장은 당연히 거절한다.
하지만 ‘오래 전에 내가 밤에 잠을 못 이룰 때면 할머니가 머리맡에서 동화책을 읽어주곤 하셨어. 지금은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가끔 아직도 할머니가 읽어 주시던 동화가 생각나. 하지만 그 동화책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그 동화는 바로 라는 스킬북에 있는데…….’ 라고 하면 도서관장의 반응이 달라진다.
즉, 세계 최고의 보안을 뚫는데 ‘감성팔이’가 먹힌다는 뜻이다.
당연히 이 트릭도 오래되지 않아 막혔다. 하지만 아이작은 고인물 답게, 적어도 그가 클리어할 때까지는 막히지 않았던 복잡한 트릭을 알고 있었다.
통할지 안 통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도서관장을 죽이는 것보다는 해볼 만한 시도였다.
“……해서 내가 여기까지 이름 없는 혼돈의 이름을 찾으러 온 겁니다.”
짝짝짝.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던 바슐이 무심코 박수를 치다가 눈총을 맞고 바로 멈췄다. 도서관장은 말이 없었다. 저 주름살 가득한 얼굴은 표정을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이내 그의 입이 열렸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
“겨우 그거 설명하려고 그 긴 이야기를 했나? 젊은 놈이 수다쟁이로군. 빨리 용건 마치고 후안 추기경에게 돌아가게.”
통했다. 아이작은 관 뚜껑을 여는 도서관장의 모습을 보고 환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그다음 순간 바로 일그러지고 말았다.
파스스스스…… 관이 열리기 무섭게 그 안에서 흰 모래가 쏟아져 내려왔다. 도서관장과 아이작, 바슐 모두 얼어붙은 채로 쏟아져 내리는 그 모래를 바라보았다.
무슨 증상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백사병.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는 명확했다. 누군가 아이작보다 먼저 와서 이 관 뚜껑을 열었던 것이다.
도서관장조차 모르게.
도서관장이 분노의 노성을 터뜨렸다.
“어떤 놈이 몰래 들어와 이 귀중한 자료를 훼손한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