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금지된 지식 (4)
비밀 서고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에 아이작과 바슐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도서관장의 목소리가 여기저기 울려 퍼지자 서고 곳곳에서 상자가 덜컹거리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상자를 깨뜨리고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불안감 속에서, 도서관장은 지팡이를 바닥에 딱 내리꽂았다.
순간 강력한 기세가 주변을 짓누르면서 난동부리던 상자들을 찍어 눌렀다. 아이작은 숨을 멈추고 도서관장을 지켜보았다.
바슐이 다급히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냐?”
“누군지 모르겠지만 먼저 저 관을 열었어요. 그래서 안에 있던 사람의 백사병이 진행되면서 죽어 버렸어요.”
누군가 ‘지식’을 빼돌렸다는 것을 뜻한다.
그게 이름 없는 혼돈의 이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쨌든 도서관장에게는 무단 침입과 자료 훼손이라는 끔찍한 범죄이고, 아이작에게는 원하는 자료를 얻을 기회를 빼앗아 간 것이다.
검열청 비밀 서고를 제외하면 혼돈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는 장소 따위 아이작은 알지 못했으므로, 사실상 망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아이작은 이 사건의 여파로 맹인 파수꾼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도서관장을 죽여서 시간이라도 벌어야…….’
“어르신, 잘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관이 열려있던 것은 아닙니까?”
그때 갑자기 바슐이 도서관장에게 말을 걸었다. 도서관장의 눈이 희번덕거리며 돌아갔다.
“뭐?”
“비밀 서고라는 게 누가 감히 들어와서 건드릴 수 있는 공간은 아니잖습니까? 그러면 처음부터 보관이 잘못됐던 게 아닐까요? 제 생각에는 관을 누군가 열었다면 안에 있던 사람도 나와서 돌아다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무단 침입이냐, 관리 부실이냐.
어느 쪽이든 도서관장의 책임은 면할 수 없겠지만, 도서관장은 그 사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는 듯했다. 비밀 서고의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긴 하지만,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내 바슐과 도서관장은 쑥덕거리며 관의 주변 상태와 침입자 여부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장이 맹인 파수꾼을 불러와 조사를 시작한다는 최악의 상황이 한걸음 물러난 듯하자, 아이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결국 이름 없는 혼돈의 이름은 알아내지 못한 셈이잖아. 대체 어떤 놈이…….’
아이작은 씨근거리며 다른 단서라도 혹시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이곳은 검열청 비밀 서고다. 다른 단서가 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때 아이작의 눈에 성서를 덕지덕지 감아 놓은 책장이 보였다.
거대한 상자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괴물보다는 책이 그나마 만만했다. 어쩌면 도움이 되는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이작은 책장의 책들을 둘러보다가 문득 한 곳에서 시선을 멈췄다.
정확히는 그 책의 제목보다 저자명에서 멈췄다.
흰올빼미.
아이작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으려다가 멈춰 섰다. 방금 도서관장이 봉인이 멋대로 뜯어졌다고 광분했는데 눈앞에서 다른 봉인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촉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작이 손을 뒤로 빼기도 전에 자신도 모르게 기어 나온 촉수가 멋대로 책을 꺼내 들었다. 회수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촉수는 단숨에 책의 봉인을 북 찢어 버렸다.
휴지를 뜯는 것보다 가벼웠다.
봉인이 찢어지자마자 촉수는 그대로 책을 씹어 버렸다. 말 그대로 길게 입을 찢더니, 송곳니와 이빨로 책을 찢어발겼다.
우둑, 뚝, 뚜둑.
아이작이 경악하며 촉수를 붙들었지만, 어째선지 촉수는 아이작의 의사에 반항하며 강제로 책을 먹어치웠다.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어렸을 때 수도원에서의 일을 제외하고 처음이었다.
이것이 반드시 아이작에게 필요한 행위라는 듯이.
다음 순간 아이작의 머릿속에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그가 본 것이 아니라, 촉수가 먹어 치우고 있는 책의 내용물이 신경을 타고 머릿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촉수는 책 안의 내용을 ‘포식’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건지는 몰라도 아이작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책은 ‘우르반수스를 엮는 실타래들에 관하여’라는 제목이었다.
저자 흰올빼미.
그리고 첫 문장은 ‘나는 안 팔리는 작가다’로 시작했다.
***
나는 안 팔리는 작가다. 그러나 그게 나의 잘못이겠는가, 그저 이 시대 사람들과 내 취향이 맞아떨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사람들의 취향은 늘 변하고 예측할 수 없다. 그것과 같은 흐름을 타는 것만으로도 분명 주류의 반열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소재를 찾아서 리히트하임 비밀 서고에 몰래 숨어 들어갔다가 맹인 파수꾼에게 잡혀서 명천사가 된 지도 어느새 170년이 흘렀다.
천사가 된 후 처음 맡았던 엘릴과의 전쟁은 호쾌한 맛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작가 출신의 천사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우르반수스의 개연성 작성에 매번 실패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솔직히 내 생각이지만, 우르반수스 개정만을 염두에 둔다면 훌륭한 사제나 성기사보다는 나 같은 작가 출신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루앗딘이 그러하다.
내가 안 팔리는 작가인 반면 이 새끼…… 아니, 이 존경하는 명천사는 탁월한 감각을 타고났다. 아마 등대지기 일을 하는 동안 혼자서 망상하는 시간이 많아서 그랬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세계의 법칙을 바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설명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은유를 통해 사람들이 세상의 섭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사제들은 번개가 천둥신의 진노가 아니라 뇌운의 양극과 음극이 분리되면서 각기 다른 지점으로 유도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정말로’ 이 세계가 그렇게 이루어졌다고 믿게 되었다.
이 세상은 원하는 자에게 원하는 기적을 준다.
이 세상이 ‘그런’ 질서로 이루어져 있길 바란다면 ‘그런’ 질서로 이루어지게 된다.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자가 곧 세상의 질서인 셈이다.
이제 베스트셀러 작가 루앗딘이 세운 시장 질서 아래, 다른 신들조차 그의 작법과 문장을 따라 하기 급급하다.
왜냐면 사람들이, 신도들이, 시장이 그걸 원하니까.
즉, 이 세상 자체가 빛의 법전의 기적이다.
안정적이고 견고하며 튼튼한 ‘물리법칙’ 아래 돌아가는 세상. 내일도 오늘과 같은 미래를 보장하는 세상. 빛의 세기가 세상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상이다.
손수 세상을 재단하고 깎아 내어 훌륭한 지금의 세상을 만들어 냈으니, 그야말로 빛의 법전의 으뜸 가는 명천사이며, 제일의 신자, 최초의 교황이라는 명성에 걸맞다. 나 같은 비주류 작가들은 이렇게 골방에 숨어 질투하기 바쁠 것이다.
이제 세상은 여섯 번째 계절의 아름다움과 보라색 달을 찬양하는 시구가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지.
(중략)
다만 루앗딘에게 단점이 있다면 그의 망상과 달리 이 작품은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루앗딘은 자신의 가장 큰 지분을 주장하고 싶겠지만 빛의 법전의 이름을 훔쳐 쓰고 있을 뿐인 그에게는 한계가 있다. 최소 아홉 개의 원고가 매일 연재되고, 그중 하나만이 현재에 엮이면서 하나의 실타래로 출품되어 역사가 된다.
그러나 역사가 되었다고 그걸로 끝이 나느냐? 이 세상과 인간, 우리, 만물은 기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이 믿는 바대로 세상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이 이루어진 대로 사람이 믿는다는 뜻도 된다. 사람들은 ‘세상은 원래 그렇다’라고 믿게 되는 관성이 있으니까.
사람들의 의식 총집체─우르반수스─를 개변하려는 시도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사람 세 명이면 없는 칼타랄시스도 만들어 낸다.
부모님이 강에서 빠져 죽은 고아가 있다고 쳐 보자.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그 아이의 부모가 칼타랄시스에게 분열─포식─당했다고 계속 주장하면, 고아는 없는 기억과 감정을 키우며 증오를 품게 된다. 심지어 이 세상은 믿는 바대로 세상이 이루어지므로, 역사 개변은 물리적인 변화마저 가져온다.
이런 방법은 후발주자 작가들에게도 상황을 역전시킬 만한 매력적인 방법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루앗딘이 정리한 심심하고 재미없는 꼴알못 세계 대신, 섹스와 폭력, 파괴, 불사, 미지 따위가 ‘당연히’ 넘쳐나는 세상으로 만들어 버리면 그들도 잘 팔리는 작가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세계 최고의 지성과 품위가 넘치는 꼴알못 그 새끼, 아니, 루앗딘을 제외하고는 그 시도에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루앗딘도 뛰어넘지 못한 최고의 흥행 작가도 존재한다.
행운, 우연, 재능을 빙자한 터무니없는 전개로 매번 루앗딘에게 분노를 선사하는 혼돈에게 찬사를.
(중략)
기존의 역사의 개변을 시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해당 역사를 ‘당연히 그렇다’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 의지의 총의에 반항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는 천사조차도 견디기 힘든 일이며, 그 역사가 다른 천사들과의 이익 관계에 엮일 경우 상황은 훨씬 더 어려워진다.
때문에 본 필자는 우르반수스 개변에 필요한 조건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작가.
먼저 우르반수스를 관조하고 이동할 수 있는 신적 존재, 즉 천사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천사들의 시간과 시야는 평범한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차원적이다. 우르반수스를 관측하려면 반드시 천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오지랖 넓은 천사들이 방해하는 것을 막으려면 무조건 천사가 하나 이상 있어야 한다. 천사들은 언제나 서로의 발목 잡기에 진심이다. 이는 같은 신앙의 천사라 해도 마찬가지다.
둘째, 개연성.
역사 개변이 기본적으로 ‘기존에 있던 소설의 리메이크’라는 것을 잊지 마라. 이것은 1+2가 원래 4였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1+2가 4가 되기 위해서는 1이 2를 만나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고, 3의 불온한 계획으로 인해 비극적인 이별을 맞이했으나, 마침내 역경을 극복하고 4가 되었다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가 인간을 충분히 설득하여 1+2에게는 4가 합당하다는 결론을 내려 줄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천사와 주인공, 모두 살아남는다면.
셋째, 주인공.
대행자로 선택되어 직접 세상에 접촉할 수 있는 생물(적당한 지성이 있는 종류를 추천)을 준비한다.
대행자는 역사 개변의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영웅의 탄생에 열광하기 때문에 영웅이 탄생하는데 벌어진 사소한 오류(왜 이 주인공은 화장실도 안 가고 뭘 하든 주변 사람들이 둥기둥기 좋아해 주기만 하는지)는 눈감아줄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천사는 대행자를 조력하거나 다른 천사를 견제할 뿐, 결코 주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천사가 주인공이 되면 사람들은 역사 개변에 불합리함을 느낀다. 이는 심각한 개연성 오류를 불러와 실패하게 된다.
또한 대행자는 먼저 우르반수스의 압력에 짓눌리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견고한 정신과 의지를 가진 존재라야 한다. 역사를 개변하기도 전에 사회적 압력에 짓눌리는 자라면 이미 그 시점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번외로, 나는 시의성을 하나 더 꼽고 싶다. 너무 최근에 벌어진 역사의 경우 기억이 아직 생생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또한, 천사들이 주목하고 있는 큰 시간대의 경우 견제당할 확률도 커진다.
즉,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시간대에 개변할 기회가 생긴다.
이쯤 되면 역사 정정을 막을 방법을 궁금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는다.
천사들의 견제와 방해로 심하게 틀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어쨌든 개입 자체는 막을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 개변을 어렵게 만드는 방법은 존재한다.
하나, 역사적 변수를 여러 갈래 대입하는 것. 신앙들의 이익 관계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건드리기가 어려워진다.
둘,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목적성을 분명하게 해 두는 것. 갑자기 목적에서 어긋날 경우 독자들은 심각한 혼란을 느낀다.
셋, 정말로 원치 않는다면 혼돈을 끌어들일 것.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본인조차도.
나는 이것들을 아주 잘했으며, 그 엘릴조차도 내 적수가 되지 못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격언의 가장 훌륭한 예시랄까.
(중략)
같은 맥락에서 등대지기 또한 선지자 출신치고는 훌륭한 작가이나, 최근 보여 주는 모습은 결국 근본을 뛰어넘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가 그토록 미워하는 혼돈을 대체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안정된 미래만큼이나 변화하는 내일을 원한다. 내일은 더 낫기를, 더 좋아지기를, 더 크고 웅대해지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좋아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
솔직히 이 꽉 막힌 사제들이 완급조절과 개연성, 클리셰, 고난과 인정과 보상에 대해 알기나 할지 의문이다…….
***
“아이작!”
아이작은 자신을 거칠게 흔드는 손길에 정신을 차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슐이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어깨 너머에 경직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도서관장의 눈까지.
“지금 뭐 하는 건가? 봉인에 손댄 건가?”
바슐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도서관장이 물었다.
아이작은 지금 이 눈앞의 모습이 자신이 책을 삼킨 순간과 큰 차이가 없는 찰나라는 것을 느꼈으나, 머릿속은 책 내용을 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거 대답을 어물거리며 망설인 순간 도서관장이 차갑게 말했다.
“데라 헤만, 즉시 비밀 서고로. 보라색이 파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