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8)
28화. 인간사냥꾼 사냥 (2)
해가 저문 계곡은 평지의 밤보다 어두웠다.
한밤중에 뱀파이어들을 상대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던 게벨과 아이작은 서둘러 계곡 밖을 향해 나섰다. 이솔데도 불필요한 위험에 빠지고 싶은 생각은 없는 건지 둘을 빠릿하게 따라왔다.
언제 습격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작은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다.
성기사단은 일단 ‘유사시 버티기만 하면 되는 수단’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적은 성기사단이 달려오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을 것이기에 버티기만 하면 이길 수 있었다.
“놈들이 다시 돌아올까요?”
“겁나냐?”
게벨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작은 발끈하는 대신 담담히 승률을 계산해 보았다.
“아궁이 짐승을 본 이상 밤이라도 놈들이 함부로 달려들긴 힘들겠죠. 하지만 이단심문관 아가씨가 아궁이 짐승을 밤새도록 부를 수는 없을 테니…….”
“아마도 아궁이 짐승을 먼저 불러내게끔 만들겠지.”
그리고 지친 이솔데가 아궁이 짐승을 돌려보내고 나면, 헤인켈 굴마르 공작이 다시 나타날 것이다.
요점은 간단했다.
이쪽이 가진 패는 아궁이 짐승, 저쪽이 가진 패는 굴마르 공작.
어느 쪽이든 패를 먼저 꺼내는 쪽이 지는 거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아이작 일행은 아궁이 짐승 없이 한밤중에 왈라이카 사냥꾼들과 싸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대충 승률이 반반 정도 되려나?’
낮에 보여준 왈라이카 사냥꾼들의 한심한 실력은 기대 이하였지만, 밤이라면 다를 것이다. 놈들이 붉은 성배 클럽의 성기사로 취급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게다가 숫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도 가늠해야 했다.
반반으로 계산하긴 했지만 이쪽 세 명 중 한두 명은 죽거나 중상을 입을 것으로 가정해야 했다. 물론 아이작 본인이 죽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촉수를 쓰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 계산한 거니까.’
만약 이번에도 치명상을 입고 촉수가 튀어나온다면 칼센에게 벌어졌던 일이 똑같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 주변의 모든 것을 다 집어삼켜 버리는 것이다. 이솔데도, 게벨도.
설령 어떻게 살아남더라도 촉수를 들킨다면 이솔데만큼은 확실히 죽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이단심문관한테는 비싼 값을 받아내기로 하고…… 당장 내가 살려면 일단 이 둘을 떼어놔야겠어.’
아이작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면서 위로 향했다.
계곡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지듯 실루엣들이 달리고 있었다. 소리도 없고 기척도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마치 안개가 빠르게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이작의 시선을 보고 게벨과 이솔데도 눈치챈 듯 발걸음을 서둘렀다.
다행히 붉은 안개는 보이지 않았고, 놈들의 수도 많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놈들이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어디에 매복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단심문관님, 나방의 교리를 쓰십시오.”
“예!”
게벨의 조언에 이솔데는 순순히 기적을 사용했다. 그녀의 옷에서 먼지 같은 잿가루가 날림과 동시에 어둠 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이전에 사냥꾼들에게 들킨 적이 있었지만, 그때에는 아이작이 던진 미끼에만 주의를 기울이느라 그런 것이었다.
이솔데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들을 추적하던 왈라이카 사냥꾼들의 움직임에 이상이 생겼다. 놈들 입장에서는 가장 주의해야 할 상대가 이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위협이 사라진 셈이니 동요하는 것이 당연했다.
다만 놈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
쉿쉿 거리는 날카로운 신호음이 계곡 사이로 울려 퍼졌다. 동시에 머리 위쪽에서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후욱!”
게벨은 한 대를 화살을 단숨에 검으로 쳐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묘기를 할 자신이 없던 아이작은 재빠르게 계곡의 바위에 몸을 숨겼다. 바위에 박힌 화살에는 묵광 처리가 되어있었다. 인간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놈들다웠다.
동시에 뒤쪽에서 왈라이카 사냥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은 낮에 겪은 수모 때문에 꽤나 이를 간 듯 기세가 흉흉했다.
아이작은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위쪽에 둘, 아래에 둘.’
흉악해지긴 했지만 낮에 봤던 얼굴이었다.
‘낮에 둘은 붉은 안개가 조각내 버렸으니 이게 전부인가?’
아이작이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들어 찔러 들어갔다. 낮과 똑같은 공격에 왈라이카 사냥꾼은 귀까지 입이 찢어지는 미소를 지으며 비웃었다. 놈의 손이 마치 안개처럼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움직였다. 낮과는 확연하게 다른 우아하고 정교한 동작이었다.
‘쉽지 않겠군.’
아이작의 검끝이 왈라이카 사냥꾼의 검과 맞닿았다. 그대로 튕겨 나가는가 싶은 순간 둘 모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와득, 하는 소리와 함께 왈라이카 사냥꾼의 검이 꿰뚫렸다. 덕분에 놈의 손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아이작과 사냥꾼, 모두 상황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검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작은 그대로 검으로 왈라이카 사냥꾼의 입 안에 쑤셔 넣었다. 놈의 칼이 함께 쑤셔 박힌 덕분에 녀석은 스스로 얼굴을 벤 꼴이 되었다.
“아히히아아!”
“뭐라고 하는 거야? 얼굴이 반쪽이 됐네.”
아이작은 의외의 결과에 놀라긴 했지만 황급히 검을 빼냈다. 이미 균열이 간 왈라이카 사냥꾼의 검은 얼굴에 박힌 채로 박살 났다. 녀석은 허우적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뭐지? 이놈들 왜 아직도 약하지?’
하지만 아이작은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왈라이카 사냥꾼들은 확실하게 강해졌다. 놈들의 움직임은 낮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교해졌고, 동시에 우아해졌다. 게벨조차도 왈라이카 사냥꾼을 단숨에 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아이작의 검이 더 빠르고, 정교하고, 부드러웠을 뿐이다.
‘어…… 혹시 나 강한 건가?’
물론 이 셋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것이 게벨이니, 게벨에게 강한 실력자가 붙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따져볼 변수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아이작은 자신의 실력이 평균 이상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심지어 성기사들 수준에서도 통할지 모른다.
아이작은 놈을 향해 다시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히아!”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왈라이카 사냥꾼이 다시 뭐라고 소리쳤다. 보통 사람이라면 죽겠지만 뱀파이어답게 녀석의 얼굴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다만 얼굴에 부서진 칼날이 박힌 통에 발음이 어려워 보였다.
게벨을 상대하던 다른 왈라이카 사냥꾼은 그 모습을 보고 도와주려는 듯했지만, 게벨의 매서운 검격을 떼어 놓기도 어려웠다.
쾅, 쾅. 게벨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굉음과 함께 놈의 칼이 갈대처럼 낭창낭창하게 휘어졌지만 쓰러지진 않았다. 힘으로 맞서려고 했다면 진작에 부러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진 않았다. 게벨은 놈에게 착실하게 부상을 입히다가 마침내 발등에 칼을 꽂아 넣었다.
발이 뚫린 놈,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놈, 둘 다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은 분명했다. 계곡 위에서 이솔데를 찾아내려 애쓰던 놈들도 상황을 그렇게 판단한 게 분명했다.
쐐액! 텅, 터텅!
다시 머리 위로 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계곡의 비탈에 붙어 있던 안개가 기마병처럼 돌진해 왔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 상황에서도 차분했다.
‘놈들의 목적은 우리가 아니야. 이솔데를 찾아내는 거다. 이솔데가 없어야 그 붉은 안개가 모습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
지금은 이 자리에 이솔데를 붙잡아 놓기 위해 아이작 일행을 공격한 것이다. 실제로 이솔데는 공격도 못 하고 떠나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유사시 그녀가 아궁이 짐승을 불러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실력은 모자라지만 왈라이카 사냥꾼들의 판단도 잘못된 것은 아닌 셈이다.
‘다만 실력이…… 한참 모자라군.’
그들도 아이작과 한밤중에 이 정도로 싸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후우우우욱.
안개가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며 점점 중무장한 기사의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리 없는 말이 소리 없이 달려왔다. 아니, 다리가 없는데 그것을 달려온다고 묘사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저 유령처럼 미끄러져 내리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덮쳐올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마주하는 게벨의 시선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는 담담히 검을 세울 뿐이었다. 아이작은 게벨과 등을 마주 댄 채 긴 숨을 내뱉었다.
‘촉수는 쓸 수 없지만…… 촉수처럼.’
아이작은 지힐렛을 처치할 때 썼던 상급 검술을 떠올렸다. 정확한 동작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마치 스킬처럼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이작은 자신의 몸에서 여덟 개의 촉수 팔이 넘실거리며 솟구쳐 나오는 것을 상상했다. 상상 속의 촉수들은 단숨에 유령 말의 돌진을 저지하고, 머리를 베고, 심장을 후벼파고, 왈라이카 사냥꾼을 끌어내리고 팔다리를 뜯어내고, 머리를 으스러뜨렸다.
그리하여 놈들의 부정한 피로 성역을 더럽힌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아이작은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
아이작을 향해 달려가던 왈라이카 사냥꾼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여리게만 보였던 아이작에게서 말도 안 되는 괴이한 기세가 느껴졌다. 왈라이카 사냥꾼의 머리에 갑자기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신성모독을 저지르고 있다는 비논리적인 생각이 스쳤다.
‘붉은 성배시여!’
비명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그가 비명을 내뱉기에는 너무 늦었다.
다음 순간 왈라이카 사냥꾼은 땅에 머리부터 처박혔다. 힘없이 바닥을 구르던 왈라이카 사냥꾼은 일어나려 애썼다. 하지만 곧 자신이 머리통만 남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잠시 아이작의 실루엣이 흐려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작은 마치 여덟 개의 톱날들을 든 것처럼 그의 몸을 으스러뜨리듯 찢어발기며 스쳐 지나갔다.
사냥꾼의 몸은 이제 어설프게 형체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불길하고 흉한 검술이었다.
‘바르바리들의 영역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검술이…… 어떻게 빛의 법전 영토에?’
왈라이카 사냥꾼은 이 말도 안 되는 짓에 항의하듯 입을 뻐끔거렸지만, 이제 그의 목은 목소리를 내기에 적합하지 않은 형태였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아이작도 잘린 머리통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굉장한 공복감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아…… 지힐렛을 먹어두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군.’
공복감은 심리적인 것일 뿐, 아직 살점 저장고에는 고기가 적잖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방금 펼친 상금 검술이 강력한 만큼 여러 번 쓰기 힘든 기술임은 분명했다.
[상급 성기사 검술 숙련도 상승!(Lv 2)] [조합된 상급 검술의 이름을 정해주세요.]겨우 두 번 썼을 뿐인데 레벨이 올랐다. 아이작은 저번에도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발란체 성기사단도 아발란체 검술이라고 지었잖아? 그러면…….’
촉수 검술이라고 할까 했지만 남에게 소개할 때 민망해질까 싶어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다고 아이작 검술이라고 하는 것도 민망했다.
‘이삭 검술. 그리고 여덟 개의 검흔이 남으니까 여덟 갈래라고 하지 뭐.’
지금부터 이 동작은 ‘이삭 검술’의 ‘여덟 갈래’ 동작이다. 아이작은 그렇게 정했다.
[이삭 검술: 여덟 갈래(A)가 완성되었습니다.]아이작은 그 동작이 스킬처럼 머릿속에 박히는 것을 느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포만감을 소모하는지도 깨달았다.
아이작은 온몸이 뻐근함을 느끼면서 게벨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쓰러뜨릴 정도라면 게벨도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을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았을 때 본 것은 예상 외의 것이었다.
“게벨 씨!”
붉은 망토가 너울거리는 늙은 왈라이카 사냥꾼이 게벨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고 있었다.
뱀파이어 공작, 헤인켈 굴마르였다.
게벨도 헤인켈의 가슴팍을 찌르고 있었지만 힘이 더 이상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헤인켈은 게벨을 끝장내려는 듯 어깨에 힘을 주었지만, 불현듯 등 뒤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나방의 교리를 사용한 이솔데였다.
소리도 없이 나타난 이솔데가 헤인켈의 등을 찔렀다. 깊게 파고든 심판의 검이 맹렬한 열기를 피워올리며 헤인켈의 살과 피를 태웠다. 이솔데가 힘껏 검을 뽑아 내자 피보라가 튀면서 헤인켈 공작의 배부터 옆구리까지 길게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