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대적자 (3)
아이작이 올칸 규율을 상대로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바로 다음 날.
동방의 전쟁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엄청난 규모군.’
아이작은 이사크레아 영지로 진입한 산 곳곳에 일찌감치 저 너머의 기생충에 감염된 동물들을 풀어 병력의 움직임을 감시했다.
인파가 어느 수준 이상 모여서 움직이면 그때부터는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라 물결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 특히나 발 딛는 곳마다 닥치는 대로 약탈하는 올칸 군대의 움직임은 해일이 몰려오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실제로 지나간 자리에 황무지만 남으니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다가오는 군대만 물경 수십만으로 추산됐는데, 지평선까지 그 군세가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군세가 이사크레아 영지만이 아니라 남쪽에 두 갈래가 더 있다고 하니, 침략이 아니라 사실상 민족대이동쯤으로 봐야 했다.
‘어차피 죽어도 환생한다 이거지, 빌어먹을 놈들.’
환생은 죽음의 공포를 잊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지식의 단절 또한 막을 수 있다. 생긴 것답지 않게 지식을 귀중하게 여기는 올칸 규율에겐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다.
지식만 보전한다면 인재를 얼마나 잃건, 다시 금방 원래 문명 수준으로 복구할 수 있으니까.
그때 아이작의 시야에 아틀란이 들어왔다.
아틀란은 잠시 멈칫하더니 아이작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활시위를 당기더니, 기생충에 감염된 다람쥐를 단숨에 쏘아 죽였다.
시야가 끊어지자 아이작은 혀를 찼다.
사실 비슷한 일이 이미 몇 번이나 일어났다. 무당이나 케식 등에 의해 감지당한 기생충들이 산 곳곳에서 제거당한 것이다.
‘이제 비로소 신앙을 상대로 싸운다는 느낌이 드는군.’
지금까지 아이작은 다른 신앙들의 호의를 사려 노력하거나, 국소적 게릴라전만을 가끔씩 벌여왔다. 천사들은 그에게 크게 관심 없거나 이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신도들을 풀어 공격하는 것을 자제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전면전을 피할 수 없었다. 아이작이 지금까지 유용하게 사용해 왔던 각종 잡기술과 계략들은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에 의해 제지당할 것이 뻔했다.
푸드드드드…… 아이작은 산 동쪽에서 날아오르는 무수한 새 떼를 보았다.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 진입해 오면서 온갖 산짐승들이 서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마치 재앙의 전조 같은 모습이었다. 실제로 닥쳐오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불안한 분위기는 영지민들도 읽었다.
성배기사의 위명에 기대 맞서 싸우고자 전의를 불태우는 자들도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피난 가야 할지 고민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아이작은 영지민들의 불안한 시선 속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광장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그때 게벨이 그의 뒤를 빠르게 따라왔다. 게벨은 여전히 검술 교관이었으나 그가 오크 기마병을 단숨에 반쪽 내는 모습을 본 뒤로는 모두가 부지휘관처럼 대하고 있었다.
“아이작, 아이들만이라도 피난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
“아뇨. 저 규모면 서쪽이라고 안전한 건 아닙니다. 차라리 아이들은 폐광으로 보내는 게 좋겠어요.”
아이작은 이사크레아 영지를 열심히 지키긴 했지만, 영지를 둘러싸고 있는 겔리퍼드 산맥은 방대하다. 아이작이 전부 감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지만 그곳에는 화전민 마을도 있고, 바르바리 부락도 종종 숨어있다.
그 말은 즉, 올칸 규율의 대병력이 넘어오기는 힘들지만 소수 기동대가 우회 못 할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 정도 군세라면 사훌란 칸이 직접 와서 전장을 챙기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죠. 진작에 병력 일부가 산맥을 뚫고 포위하거나 습격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그걸 막으러 병력을 빼내서 산을 지키게 할 수는 없다. 안 그래도 턱없이 부족한 게 병력이다.
아이작이 걸으면 걸을수록 뒤로 따라붙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브리엔트 성기사단 단장, 로튼해머와 이사크레아 영지 경비대장 자클렛이 다가왔다.
아이작은 자클렛에게 먼저 물었다.
“자클렛, 우리가 쓸 수 있는 병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예. 평소에 게벨 검술교관님으로부터 훈련받았던 병사들이 560명, 이번에 급하게 징집된 민병대원들이 7,815명입니다. 민병대원들 중에 활을 쏠 줄 아는 자들이 400명 정도 됩니다. 화전민 출신들이라 제법 많습니다.”
뒤이어 로튼해머가 말했다.
“브리엔트 성기사단, 종자를 포함해 24명이다. 그리고 제국군 출신 기사들 70명이 합류하기로 했고. 성기사는 아니지만 말도 탈 줄 알고 검술도 제법이니 합을 맞출 수는 있겠지.”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요약했다.
“만 명도 안 되는 병사들과 백 명도 안 되는 기사들로 최소 십만의 오크들을 막아 내야 하는군요. 그것도 대포도 쏘고 말도 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크들을.”
단순한 10:1 비율이 아니다. 오크들 한 명 한 명이 환생을 거듭하면서 경험치가 쌓인 베테랑들이고, 종족적 특성에서 나오는 우월한 체력도 무시할 수 없다. 솔직히 아이작은 민병대원 셋은 있어야 오크 한 명을 겨우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오크들은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증원될 것이고, 칸이 지휘하고 천사들이 가호한다는 사기 증진 효과까지 있다.
반면 이쪽은? 종교의 광기에서 도망친 난민들과 황제 파문으로 한순간에 나락까지 신세가 추락한 기사들뿐이다.
‘아무리 나라도 이 정도 난이도는 빡센데.’
솔직히 아이작은 전쟁의 승패가 싸우기 전에 이미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그는 객관적으로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예상해 보았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질문이었다.
아이작은 웃으며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지려야 질 수가 없는 싸움이군요. 해봅시다.”
***
쿵, 쿵, 쿵, 쿵.
진군하는 오크들의 걸음 소리가 산 위로 심장박동처럼 울려 퍼졌다. 선봉을 맡게 된 만호장 크락스알은 척후를 보내는 귀찮은 짓 따윈 하지 않았다. 그가 방심했다거나 적을 얕봐서 그런 것이 아니다.
크락스알은 오히려 신중한 오크에 속했다.
그는 숫자가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쇠르를 점령하는 임무를 맡았던 코르알 만호장이 실패한 이유는 단순했다.
숫자가 부족해서다.
“좌측, 너무 돌출되고 있다. 제 3천호대에게 지루하다고 서두르지 말고 걸음 속도를 맞추라고 해. 다른 만호대와 전열을 맞춰야 한다.”
크락스알의 지시는 곧바로 부관의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이루어졌다. 다시 만족스러운 대형이 이루어지자 크락스알은 만족하고 진군을 재개했다.
지금 올칸 규율은 산길을 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세 갈래로 산길을 ‘개척하면서’ 나아가고 있었다. 진군 속도를 조절하는 중심축은 크락스알의 만호대가 맡고 있었다. 당연히 진군 속도는 끔찍하게 느렸지만, 이 막대한 숫자의 오크들이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산은 다져진 흙 무더기 비슷한 것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마치 산을 밀어버리는 듯한 기세로 움직이는 군대를 보면서 부관인 백호장이 염려스럽다는 듯 말했다.
“너무 신중한 것 아닐까요? 피해를 줄이는 것도 좋지만 칸께서 분노하실까 염려됩니다.”
그러나 크락스알은 코웃음 쳤다.
“신중? 쇠르에서 당한 망신을 보고도 신중이란 말이 나오나?”
“하지만 적들은 하찮은 민병대 무리와 성기사 한 줌뿐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정도는 저희 군이 밀어닥치는 것만으로도 짓이겨질 텐데요.”
“코르알 만호장 휘하의 천호장들이 그런 식으로 박살 났지.”
크락스알은 백호장의 말이 같잖다고 여겼지만, 그저 자신의 경험과 지적 충만함을 자랑하기 위해 설명을 시작했다.
“적들은 네 말대로 한 줌의 무리에 불과하다. 그래, 병법의 기본은 숫자가 많은 쪽이 숫자가 적은 쪽을 이긴다는 것이지. 개개인의 실력 차가 어느 정도 변수를 창출할 수는 있겠지만 군대 대 군대의 단위에서는 무의미해. 하지만 숫자가 적은 쪽이 숫자가 많은 쪽을 이기는 경우가 있지. 어느 때일까?”
“……잘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르지 않다. 그저 숫자가 적은 쪽이 ‘순간적으로 수적 우위를 차지하는 상황’을 만들었을 뿐이다. 이런 험지 지형이 그런 변수를 창출하기 쉬운 환경이고.”
크락스알은 이사크레아 영지를 감싼 겔리퍼드 산맥의 전경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천혜의 요새가 되기 충분한 산악지형이었다.
그나마 최근 마차가 자주 드나든 듯 길을 확장한 흔적이 있었지만, 대규모 군사가 난입하기에는 어려웠다. 보급이나 지원이 허리에서 끊기지 않으려면 철저한 개척이 필요했다.
“적들은 이 많은 군세를 눈앞에 두고도 전의가 전혀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방벽을 높게 쌓고 있지. 특히 일부 적들은 수준이 아주 높다고 들었다. 이 경우 적들이 할 수 있는 전략은 하나뿐이지.”
“유격전이군요.”
“그래. 적이 소수정예일 때, 특히 이런 산악지형에서는 유격전이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한다. 척후를 보내면 반드시 격파당할 거다. 나는 전생에 아틀란 케식이 비슷하게 싸우는 걸 본 적 있지.”
크락스알은 몸서리쳐지는 듯 어깨를 털며 중얼거렸다.
“아틀란 케식 정도의 명궁에, 강인한 신체 능력, 조상신들의 축복까지 더해지면 이런 산악지형에서는 잡으려야 잡을 수가 없다. 평범하게 접근하면 이런 험지에서는 우리 숫자가 무의미해지니까.”
다만 이렇게 대열을 이루며 진군할 경우 아이작 측은 유격전은 벌일 수 없게 된다. 유격전은 취약점을 공략하는 것인데, 대열을 이루면 어디를 두드려도 균일한 방어력과 공격력을 보이니까.
***
실제로 아이작도 이 두텁고 무식한 진군 방식을 뚫을 방도를 찾아낼 수 없었다. 시선을 끌지 못하는 상태에서 넬을 타고 강하한다는 것은 화려한 자폭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칸 규율의 진군은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었다. 게르토니아 제국이 확장을 포기하게 만든 겔리퍼드 산맥이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아이작은 거기에 약간의 양념을 더했다.
제아무리 크락스알이라도 깎아지르는 바위 절벽을 기어올라서 진군하라고 무식하게 명령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일부 끔찍한 험지 지형은 우회하도록 지시했다.
“적입니다!”
그리고 그 끔찍한 험지 지형을 지나갈 만한 유일한 개척로에는 어김없이 아이작이 건설한 성곽이 늘어서 있었다. 그곳에서 궁수 몇 명이 성의 없는 사격으로 그들을 방해하고 있었다.
“박살 내버려.”
크락스알이 지시하자 오크 네 명이 민첩하게 대포를 어깨에 짊어지고 폭약을 쟀다. 그 모습을 본 궁수들이 황급히 달아났다. 이내 폭음과 함께 성곽이 폭발 비산했다. 우수수 쏟아지는 성곽을 보던 크락스알은 황당한 표정을 했다.
“또? 또 이깟 하찮은 장애물로 정말 진군을 막겠다는 건가?”
대포로 박살 난 성채는 기어오르기 힘들 만큼 가파른 언덕이 되어 있었다. 적들은 단단한 성채를 쌓는 것보다 박살 났을 때 경사를 따라 산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지형을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한 것 같았다.
이미 이곳 자체가 가파른 지형이었기 때문에 굴러떨어진 돌덩이는 산 밑의 재수 없는 오크의 머리를 박살 낼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크락스알은 신중한 개척을 지시하면서 멈춰 섰다.
길을 개척하는 오크들을 보며 그는 생각에 빠졌다.
‘겨우 이 정도 저항으로 칸의 군대에 맞서고자 한 건가?’
이런 성곽들은 이미 오면서 세 번이나 마주쳤다. 그때마다 크락스알은 무슨 함정이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일일이 대포를 준비해서 박살 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고, 계속해서 시간 끌기용 장애물만 나타날 뿐이었다.
크락스알은 자신이 너무 신중하게 전략을 짠 건가 생각했지만, 이런 생각마저 아이작이 방심하게 만들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병력의 밀도를 높여서 교통로를 개척해라. 통과 후 즉시 후속 부대의 통과를 위해 방어 태세를 갖추도록.”
“크락스알 만호장.”
그때 누군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크락스알의 부대를 보좌하는 장군무당 키마였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크락스알에게 조언했다.
“진군을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소.”
“……서두르라구요?”
크락스알의 질문에 키마 장군무당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크락스알의 전략은 키마와 상의한 뒤 짠 전략이었다. 인제 와서 말을 바꾸는 셈이니 키마도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군무당의 조언을 무시하는 만호장은 아무도 없었다. 우르반수스와 접촉해있는 조상들은 그들과 전혀 다른 시야와 능력으로 무당들을 도우니까.
“산맥 안에 들어온 직후 기이한 기운이 몇 번이나 느껴졌소. 병사들을 해치는 것이라기에는 너무 미약하고, 염탐하는 것이라기에는 일정하지가 않더군. 그런데 이것 좀 보시오.”
키마 장군무당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크락스알에게 보여 주었다. 크락스알은 주머니를 열자마자 풍겨오는 고약한 냄새와 안에 들끓는 벌레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보관을 잘못한 모양이군요.”
“아니, 이건 엊그제 담은 군량이오. 보급품 곳곳에 벌레와 쥐가 끓고 있소. 몇 번 잡았던 그 감염된 쥐새끼들이 아니라 진짜 쥐와 진짜 벌레들. 부패가 가속되고 있는 거요.”
순간 크락스알은 숫자의 맹점을 떠올렸다.
압도적인 병사의 숫자는 동시에 압도적인 소모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