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인간사냥꾼 사냥 (3)
헤인켈이 창을 놓고 안개처럼 미끄러지며 물러났다.
창이 피 먼지가 되어 사라지자 게벨은 휘청거리며 무너질 뻔한 것을 간신히 버티고 섰다.
누가 봐도 헤인켈의 피해가 더 심했다. 하지만 헤인켈은 태연하게 게벨을 바라보고 있는 반면, 게벨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헤인켈의 상처에서 붉은 안개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빠르게 살점을 잇기 시작했다.
“부하의 몸속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왔는데도 오히려 반격을 하다니…… 대응이 빠르군, 성기사. 제대로 갑옷을 입고 기적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어려운 상대였겠는걸.”
헤인켈은 드러내 놓고 나타나지 않았다. 제 부하의 가죽 속에 몸을 숨기다가, 근접했을 때 몸속에서 튀어나와 공격한 것이다. 형태의 변환이 자유로운 뱀파이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게벨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이작은 게벨이 기적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가 성기사 직위를 내려놓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빛의 법전이 그에게서 기적을 거둬갔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던 탓이다.
헤인켈의 시선이 아이작에게 잠시 머물렀다. 경계심보다는 호기심이 더 강하게 담긴 눈빛이었다.
오히려 그는 경계심 담긴 시선을 이솔데에게로 돌렸다.
“아궁이 짐승을 소환해라, 이단심문관. 아니면 당장 죽을 테니.”
“……그리고 주인께서 틈새 밖의 빛을 길들여 우리에게 보여주셨으니!”
이솔데의 고함 같은 기도문이 터져 나온 순간, 계곡에서 밤이 사라졌다. 아궁이 짐승이 다시 한번 그 잿더미 속에서 몸을 드러냈다. 헤인켈 굴마르 역시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녹아내리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강대해도 뱀파이어가 이 광휘 아래서 버틸 수는 없었다.
“그게 너희 죽음을 조금은 늦춰주겠지…….”
이내 헤인켈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밝은 빛 아래서 아이작은 게벨의 상태를 서둘러 살폈다.
상처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원래 왈라이카 사냥꾼들은 ‘사냥감’의 피를 많이 흘리게 하는 것을 부도덕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큰 상처를 입히지 않는 것을 덕목으로 삼는다.
게벨 역시 외상은 적었지만 심한 내상을 입은 것으로 보였다.
“아이작 씨!”
이솔데가 다가왔다. 그녀가 불러낸 아궁이 짐승은 작은 나방 정도의 크기였다. 일부러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작은 것을 부른 것 같았다.
“죄송해요. 설마 자기 부하의 몸속에 숨어있다가 몸을 산산조각 내면서 나타날 거라곤 생각 못 했어요. 게벨 씨와 아이작 씨만 있다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작은 이솔데의 표정을 보고 헤인켈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게벨은 이제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러면 이제 이단심문관이 아궁이 짐승을 불러내도 헤인켈을 일시적으로 쫓아낼 뿐이다. 이솔데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아궁이 짐승을 돌려보낸다면 헤인켈이 다시 습격해올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일행을 모두 죽이고 말 것이다.
“어쩔 수 없군요.”
하지만 헤인켈이 한가지 계산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제가 남아서 유인하겠습니다. 게벨 씨를 데리고 계곡을 빠져나가 주세요.”
이솔데는 아이작의 말에 경악했다.
“아이작 씨!”
“희생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모두가 살아 나갈 방법이었다.
아이작은 헤인켈에 대해 강한 분노와……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저는 이단심문관님은 몰라도 게벨 씨는 꼭 살려 보내야겠습니다. 제게 생각이 있으니 시키는 대로 하세요. 둘이 같이 나가세요.”
***
후우우우욱.
계곡의 으슥한 틈 사이로 붉은 안개가 밀려들었다. 이내 붉은 안개는 한곳에 모여 뭉치다가 이내 헤인켈 굴마르 공작의 모습으로 변했다.
심판의 검에 찔린 부위는 아직 낫지 않고 부글거리며 치유가 이어지고 있었다. 권능이 직접 맞닿은 부위는 치유가 어려웠다.
헤인켈은 고개를 돌렸다. 아궁이 짐승의 광휘가 닿지 않는 계곡의 은밀한 어둠 속에 붉은 눈동자들이 빛나고 있었다.
헤인켈은 그 어둠 속의 눈동자들에게 말했다.
“준비는 끝났다. 아궁이 짐승이 사라지면 모조리 죽여라.”
“예, 공작님.”
12명의 사냥꾼들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전원 왈라이카 사냥꾼들이었다.
헤인켈이 손짓을 내리자 사냥꾼들이 하나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별다른 작전 지시는 없었다. 그들에게 이런 암습은 끼니를 때우는 것만큼 늘상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헤인켈 역시 이번 일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상시와 달리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고 있었다. 헤인켈은 자신이 뭘 놓쳤는지 돌이켜보았다.
‘게벨이라고 했던가? 실력이 제일 뛰어난 놈이었는데 간을 찔렸으니 더 이상 싸우지는 못할 터. 이단심문관은 아궁이 짐승을 빼면 실력 자체는 사냥꾼 다수를 상대하기 힘들어 보였지. 그러면…….’
헤인켈은 그 곱상하게 생긴 기사 수련생을 떠올려 보았다.
밝을 때에는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어둠 속에서 마주친 그 얼굴은 낮보다 훨씬 또렷하게 보였다. 확실히 기억에 남을 만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검술 또한 보통은 뛰어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뿐이었다.
헤인켈은 자신이라면 10초도 지나기 전에 거꾸러뜨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물론 왈라이카 사냥꾼들에게 정정당당한 대결 따위는 변태나 하는 짓이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의 이야기였다.
자신이 빠지더라도 사냥꾼들이 차륜전을 벌인다면 그 수련생은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질 터였다.
‘그러면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동물적인 감각.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본능적인 감각이 그에게 강한 경고를 내리고 있었다.
육신의 쾌락과 감각을 중요시하는 붉은 성배 클럽은 본능 또한 중요하게 여겼다.
헤인켈은 쓸데없는 불안감이라고 흘려넘기지 않았다. 붉은 성배가 그에게 내린 피의 경고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부관.”
헤인켈 곁에는 떠나지 않은 두 명의 부관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이작이라는 놈이 있다. 함부로 상대하지 말고, 팔다리는 잘라도 좋지만 가급적 생포해라.”
헤인켈은 거기서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계집보다 이쁘장하게 생겼으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다. 둘을 보내주는 대신 인질로 잡히라고 하면 받아들일지도 모르지. 가서 지시를 전달해라. ”
***
왈라이카 사냥꾼들은 어둠 속에서 아이작 일행을 추적하는 것에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아궁이 짐승이 등불처럼 그들의 위치를 표시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그 광휘를 마주했다간 눈이 타 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사냥꾼들이 직접 아이작 일행을 관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빛이 옅어지는 범위에서 포위하며 빠져나가는 자가 없도록 세심하게 추적했다.
하지만 그 추적도 슬슬 끝을 보이고 있었다.
아궁이 짐승은 이미 사라질 것을 강제로 붙들어 맨 것처럼 서서히 빛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왈라이카 사냥꾼들은 수화로 신호를 보냈다.
어둠 속에서 왈라이카 사냥꾼들은 안개처럼 흐릿한 실루엣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끼리는 대낮처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이단심문관도 지칠 대로 지쳤을 테니, 전력이 되기 힘들 것이다.’
‘아이작이라는 수련생은 가급적 생포하라.’
싸울만한 전력이 하나밖에 없다면 사냥은 더 쉬워질 것이다.
이내 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하자 왈라이카 사냥꾼들은 석궁에 화살을 장전했다.
이윽고 아궁이 짐승의 광휘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어둠에 잠긴 계곡에는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만 조용히 들릴 뿐이었다.
사냥꾼들은 일제히 계곡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작 외에는 모조리 화살 꼬치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화살 끝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맸다.
“무슨…….”
어둠 속에 서 있는 것은 아이작 하나뿐이었다.
아이작은 별다른 설명 없이 검을 뽑아 들고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왈라이카 사냥꾼들을 응시했다.
“이렇게 단순해서야 사냥꾼이라고 할 수 있나?”
“속았다! 놈이 아궁이 짐승을 미끼로 썼다!”
아궁이 짐승이 없으면 한밤중에 왈라이카 사냥꾼들을 상대할 방법이 없다. 유일한 구명줄이니 당연히 같이 이동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작은 아궁이 짐승을 오히려 미끼로 쓴 것이다.
그 사이 게벨과 이솔데는 나방의 교리를 써서 먼저 계곡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왈라이카 사냥꾼들 사이에서 긴급한 눈짓이 오갔다. 순식간에 반으로 인원을 나눠 여섯 명이 이솔데와 게벨을 추적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여섯 명은 아이작을 생포하기 위해 다가갔다.
“어차피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생포하기로 한 놈이다. 알아서 항복해 주니 다행이군.”
왈라이카 사냥꾼 중 한 명이 들으라는 듯 비웃으며 쏘아붙였다. 원래 그들은 사냥감을 앞에 두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지만, 속았다는 사실 때문에 모두 화가 나 있었다.
그들은 아이작이 미끼이자 인질이 되기 위해 남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작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비웃었다.
“항복?”
“반항하면 칼부림 한 번에 손가락을 하나씩…….”
“아아아아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비명이 터져 나왔다. 6명의 왈라이카 사냥꾼들이 게벨과 이솔데를 쫓아간 방향이었다.
왈라이카 사냥꾼들은 정숙을 덕목으로 삼기 때문에 비명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그들은 당황해하면서도 아이작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직 기사가 살아있는 모양인데, 어차피…….”
하지만 비명은 한 번으로 멈추지 않고 여러 번, 연달아 터져 나왔다.
왈라이카 사냥꾼들은 씨근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그들은 자신들의 동료들이 당하고 있다는 것보다 그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에 더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한밤의 정적을 깨뜨리는 비명은 설령 피해자의 것이더라도 충분히 천박한 것이다.
오직 조용히 흐르는 피와 그 피를 삼키는 목울대의 소리만이 한밤에 허락되는 예절이었다.
아이작은 삐딱하게 서서 물었다.
“무슨 상황인지 안 봐도 되겠어?”
결국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상황 파악만을 위해 두 명의 사냥꾼을 더 보냈다. 네 명의 사냥꾼만으로도 아이작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심산이었다.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내가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모른다는 것. 그게 네놈들이 여기서 죽는 이유야.”
자꾸 말을 끊고 들어오는 아이작의 말투에 사냥꾼은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이작은 느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는 네놈들이 어디서부터 언제까지 쫓아오는지 계속 지켜봐 왔다. 딴 데로 안 새고 멍청하게 쫄래쫄래 따라오는 모습도 봤지. 너희는 계속 내 수중에 있었어.”
헛소리.
왈라이카 사냥꾼은 비웃으며 아이작을 향해 덮쳐들었다.
하이에나 떼가 동시에 사냥감을 물어뜯듯이, 왈라이카 사냥꾼들은 저마다 다른 팔다리를 노리고 덮쳤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작의 팔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아이작의 팔은 순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휘어져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졌다.
그게 무엇인지도 깨닫기 전에, 촉수가 놈들 중 하나의 머리를 꿰뚫었다. 왈라이카 사냥꾼의 몸뚱이가 망가진 인형처럼 휘적거렸다.
아이작은 바로 채찍처럼 촉수를 휘둘렀다. 동료가 당하는 모습을 보고 대비하던 사냥꾼은 검으로 촉수를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촉수는 그대로 그를 휘감아 버렸다.
그리고 가득 붙어있는 빨판마다 달린 이빨들이 놈의 살갗을 물어뜯었다.
“끄아아아아악!”
그들이 그렇게 천박하다고 여기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이작은 그대로 놈을 팽이처럼 휘둘러 버렸다.
물고 있던 살점들이 일제히 뜯기면서 사방에 선혈이 튀었다. 정신없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왈라이카 사냥꾼들의 얼굴이 동료의 피로 흠뻑 젖었다.
아이작은 촉수로 사냥꾼을 움켜쥔 채 다른 한 놈을 향해 철퇴처럼 휘둘렀다. 사냥꾼은 허둥지둥 팔을 들어 올려 막으려고 했지만, 충분한 무게와 속도가 합쳐지면 방어 동작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다.
쾅. 굉음과 함께 두 사냥꾼은 한 덩어리로 뭉쳐졌다.
[‘뱀파이어’를 포식하였습니다.] [‘죽은 신의 내장’ 특전으로 섭취 효율이 상승합니다.] [‘흡혈’ 특전을 습득하였습니다.] [‘흐릿한 그림자(임시)’ 특전을 습득하였습니다.] [임시 특전은 소화될 때까지 축복이 유지됩니다.]아이작은 새로 획득한 ‘흡혈’ 특전을 이용, 한 덩어리로 합쳐진 왈라이카 사냥꾼들의 체액을 피부로 흠뻑 빨아들였다.
놈들의 몸통이 풍선처럼 짜부라들었다.
“피를 빤다는 게 이런 맛이군.”
어둠 속에서 아이작이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모든 게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순식간에 혼자 남은 왈라이카 사냥꾼은 자신이 뭔가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게 빛의 법전 수도원의 수련생이라고?!’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존재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저건 빛의 법전에 속한 존재가 아니었다.
좀 더 어둡고 포악한 영역, 원시적이고 혼란한 근원으로부터 기어 올라온 존재였다.
어둠 속에서 아이작이 보랏빛으로 일렁이는 눈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여긴 나의 성역(聖域)이다. 발을 잘못 디딘 대가를 치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