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저울 반대편에는 (1)
“보호 교리라니, 어린애한테 무슨…….”
이야기를 듣고 보니 사망 보험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안젤라에게는 특정한 지식을 봉인하는 보호 교리의 기적이 걸려 있었는데, 이것이 그 지식에 대한 발설 자체는 물론 생각하거나 지식을 고려하는 등 의식의 접근 자체를 봉쇄하고 있었다.
안젤라가 말을 할 수 없었던 이유가 불사 교단이 건 기적 때문이었던 셈이다.
“대체 애한테 무슨 지식이 있다고 그걸 막으려고 이 난리를 칩니까?”
“글쎄요. 상당한 고급 교리입니다. 최소한 주교급 이상은 되겠군요. 지식을 발설하는 것도, 저희가 지식을 추출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아이작은 불사 교단이 너무 오래 산 나머지 노망이 나서 미친 짓을 벌였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교단에서 가장 오래 산 불사황제 베셰크도 고작 300살이다. 실제로 정신 나간 언데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사 교단원이라면 가지고 있는 공통의 인식이 있다.
어린아이는 지키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
그게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라서라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어린아이의 영혼과 뼈는 언데드가 되기에 미성숙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언데드가 되면 사망했을 당시 나이의 인격과 뼈대를 고스란히 가져가게 된다. 어린 뼈를 기르는 악취미가 있는 게 아니라면, 치어를 잡은 어부처럼 ‘더 자라서 돌아와라’하는 느낌으로 풀어주거나 보호해 주게 된다.
‘물론 의도야 어찌 됐든 그놈들 나름의 선의라고 생각해야지. 어찌 됐든 어린이를 보호하는 것은 공동체를 위해서라도 당연히 갖춰야 할 최소한 소양 아닌가?’
불사 교단은 그게 다소 강박적인 영역에 닿아있을 뿐이다.
아이작은 안젤라가 불사 교단과 관련된 어떤 비밀스러운 지식에 접근했다고 가정해 보았다. 그런데 그 과정에 무언가 잘못되어서 불사 교단의 고위직─아마도 리치─에게 걸렸다. 리치는 어린애를 죽이는 대신 그냥 빡세게 보호조치를 취하고 돌려보냈다.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그 전에 안젤라가 어떻게 그런 일에 휘말려 들었는지 알아봐야겠지만.
아이작은 안젤라가 혼자 그런 곳에 갔을 리는 없으니, 부모가 함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안젤라는 시라크사에서 발견했지. 사망 보험에 가입한 자들을 집단 화형하려던 장소에서…….’
그리고 사망 보험 가입자 대다수는 바다 건너, 불사 교단이 점령한 영토를 불법 침입했다가 만들어진다. 빛의 법전에서 퍼뜨리는 무시무시한 소문들과 달리, 그 사막에 발을 딛는다고 얼어 죽거나 영혼을 빨아 먹혀 죽지는 않는다.
언데드가 모여있는 곳이 아니라면 제법 살기 비옥한 땅도 있고, 동식물도 풍부한 편이다. 약간 어떤 관대한 언데드의 보호하에 풀어 놓고 방목하는 느낌으로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히 전원 사망보험 가입자들이지만.
설령 불사 교단원과 마주친다 해도 그냥 데면데면하게 인사하고 지나갈 수도 있다. 모든 빛의 법전 교단원이 사람을 태우지 못해 안달 난 광신도가 아니듯이, 걸어 다니는 해골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 살을 발라내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들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흡혈귀나 오크들보다 안전하다. 욕망이 희박한 존재들이니까.
놀랍지만 불사 교단의 영토도 결국 사람 사는 땅이다.
‘안젤라의 원래 부모가 불사 교단 영토로 넘어갔다가 함께 시라크사로 돌아온 사람이라고 가정해 보자면…….’
여러 후보군이 있지만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쉽게 들락거리는 직군이 있다.
아이작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사제에게 한 사람을 불러오도록 시켰다. 사람들은 전혀 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의 이름을 듣고 어리둥절했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잠시 후, 도착한 캐틀린은 아이작이 예상했던 답변을 들려주었다.
“예. 이 아이는 황금우상 상단 소속이군요.”
***
많은 신앙들이 그러하듯 교리와 믿음의 형태는, 지방과 문화, 전통에 따라 달라진다. 그중에서도 황금우상 상단은 정해진 거점 국가가 없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무역상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셀몬인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래 소금 의회 소속의 한 가문이었는데, 고향을 잃은 이들은 한 곳에 적응 못 하고 끊임없이 방랑해 왔습니다. 그러다 어떤 신앙도 믿을 수 없고,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단은 돈밖에 없다는 믿음이 생겨 혈족 단위로 황금 우상에 귀의했지요.”
“셀몬인? 셀몬 상인들 말씀하시는 겁니까?”
사제의 반문에 캐틀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지요. 여튼 그래서 돈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이라는 평판을 듣기도 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작이 불쑥 입을 열었다.
“불사 교단까지 가서 밀무역을 할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
캐틀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사 교단 영토라고 해서 반드시 죽거나 보험 계약을 강요당할 일은 없지만, 장사를 하려면 어쨌든 불사 교단원을 만나야 한다.
냉기를 풀풀 뿜어내는 해골바가지와 흥정을 하는 것은 보통 담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상대방에게는 ‘이 같잖은 상인을 죽여 버리고 물건을 빼앗은 다음, 육체는 내 갈빗대를 닦아 주는 노예로 만든다’라는 옵션이 항상 열려 있을 테니까.
즉, 어지간히 돈에 미친 놈들이 아니고서야 하기 힘든 일이란 뜻이다.
물론 불사 교단측도 필요한 물건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쉽게 저지르지는 않는다. 시에로 여명군도 황금 우상 상인을 약탈하는 걸 보면 누가 누굴 지적할 일도 아니고.
“그리고 셀몬 상인들은 어디서든 같은 혈통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어릴 때부터 손목 안쪽에 문신을 새깁니다. 보통 팔찌나 매듭으로 숨깁니다만…….”
캐틀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안젤라의 손목을 뒤집어 보여 주었다. 깨진 닻 모양의 문신이 조그맣게 새겨져 있었다. 가족 단위로 방랑하는 경우가 많은 민족이기 때문에 그녀 역시도 불사 교단 영토에 들어갔었던 것이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젤라의 부모는 셀몬 상인이었군. 그럼 사망 보험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야. 불사 교단 측에서 거래를 트는 조건으로 사망 보험을 요구했을 수도 있으니까.”
해제가 쉬우니 거절하기 어려운 선택지도 아니다.
그런데 뭔가 잘못되어서 안젤라는 지식을 봉인당하고 시라크사까지 내쫓기게 되었다.
아이작은 그게 궁금했지만, 보호 교리까지 걸려 있는 지식을 쉽게 알아낼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는 일단 어디부터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약간 우회하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안젤라, 불사 교단에서 누굴 만났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안젤라는 의아한 눈으로 아이작을 바라볼 뿐 필담을 하거나 손짓도 보여 주지 않았다. 대답을 넘어서 아예 질문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상당히 철저하게 걸린 기적이었다.
‘그러니 애가 말도 못 하지.’
그때 캐틀린이 아이작의 지도를 펼치며 질문했다.
“안젤라, 부모님께서 어디 머무셨었니?”
그 말에 안젤라가 반응했다. 부모님에 관한 정보는 딱히 제약당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가 손가락을 멈춘 곳은 지도의 한구석이었다. 그 손가락이 닿은 장소를 보고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아이작이 되물었다.
“성지? 성지 루아에 머물렀었다고?”
불사 교단이라해도 무역을 허락하는 곳은 수도 역할을 하고 있는 성도 우샤크 정도다.
성지 루아는 워낙에 철저한 방비와 보호 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언데드조차 들락거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수백 년을 버틸 수 있는 언데드가 작정하고 보호하는 요새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럴 리가요. 아무리 셀몬 상인이라도 성지 루아는 방문하기 힘들 텐데…….”
“보호 교리에 의해 잘못된 정보를 인지하고 있는 걸 수도 있습니다. 강력한 보호 교리는 사실을 감추는 것보다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것이 더 안전…….”
당황하는 추측과 부정이 흘러나오는 사이, 다시 안젤라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녀는 황금우상의 거점 도시인 비네스에서 시작해서 미르미아를 거쳐 다시 한번 성지 루아 위에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을 옮겨 시라크사로 향했다.
그녀의 가족들이 움직인 동선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인지 능력이 정상이라는 증거였다.
한참의 침묵 끝에 아이작이 입을 열었다.
“안젤라가 성지 루아에 방문했다고 쳐 보지요.”
모두의 시선이 아이작을 향했다.
“거기서 이 어린애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알았기에 평생 입도 못 열게 만들었을 것 같습니까?”
어쩌면 귀중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인지 사제가 몸을 기울이며 안젤라를 바라보았다.
“다소 무리를 써서라도 교리를 깨뜨려 볼까요?”
“무리요?”
“렌하임 성당에 이교도의 기적을 깨뜨리는 성물이 있습니다. 그거라면…….”
“아니, 어떤 건지 알 것 같군요. 잘못하면 백치가 되는 성물 아닙니까. 됐습니다. 그런 방법뿐이라면.”
“하지만…….”
아이작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물론 귀한 정보일지도 모르지만, 뭔지도 모를 정보 때문에 어린애를 다치게 할 정도로 우리는 급하지 않습니다. 목숨을 걸려면 어른들이 걸어야지요. 그런 거 없이도 해낼 수 있습니다.”
허세가 아니다. 애초에 아이작은 안젤라에 대한 정보 없이도 성지를 공략할 생각이었다. 만약 그녀가 가진 정보가 충분히 귀하다면 희생도 줄어들고 성공률도 올라갈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린애를 전쟁터로 끌고 갈 이유가 못 된다.
안젤라에게 보호 교리를 건 불사 교단의 누군가조차 그녀를 무사히 돌려보냈는데, 아이작이 다치게 한다고?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하지만 아이작 님, 안젤라가 평생 벙어리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무슨 기적에 걸려 있는지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위험한 교리가 추가로 발견될 수도 있어요.”
캐틀린의 말에 아이작은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타협점을 찾아보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일단 상회 상부에 문의해 보겠습니다. 셀몬 상인들이 독단적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을 리는 없으니 상부에서도 뭔가 알고 있을 겁니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 우상 상단이라고 해서 딱히 안젤라의 주박을 해제할 방법을 알고 있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그녀의 가족들이 무엇 때문에 성지 루아까지 갔는지는 알 수도 있을 것이다.
***
캐틀린이 황금 우상 상단으로 가장 빠른 파발을 보내 보고를 보낸 사이, 아이작은 원정 준비를 재개했다. 계획대로만 끝난다면 새해가 시작되기 전에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정확히 게임상에서 여명군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훨씬 빠르긴 하지. 여명군은 사실상 훨씬 앞당겨 시작된 셈이니까…….’
마침 때맞춰 좋은 소식도 들려왔다.
“사훌란 칸의 군대가 쇠르에 최소 병력만 남기고 남쪽으로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올칸 규율의 군대가 쓸데없는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나 정찰하던 엘릴의 기사들이, 드디어 변화를 관찰한 것이다. 칸이 꼬리를 말고 달아나는 것이 아틀란 때문인지, 사훌란의 콧대가 부러진 탓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단 이사크레아 영지 공략이 불가능해 보이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 것은 분명했다.
“남쪽이라면 대약탈을 그만둔 건 아닌가 보군요.”
리안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남쪽은 상당수 도시가 격파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제국 경계선이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다더군요.”
여명군이 나름 몰려있을 텐데 참으로 가관인 꼴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올칸 규율의 그 움직임도 오래 가진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올칸 규율은 결국 성지를 향해 진군하는 교황의 ‘진짜’ 여명군과 부딪치게 될 테니까. 그놈들도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이쪽을 뚫으려 애쓴 것일 텐데, 결국 불가능해졌다.
‘그나저나 남쪽으로 가는 내내 오크 얼굴이나 보게 되겠군. 그러면…….’
아이작의 고민이 다시 시작되려던 찰나, 갑작스레 알림음이 들려왔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다른 신앙으로부터 거둔 승리에 만족합니다.] [이름 없는 혼돈의 명성을 높인 당신의 성취에 만족합니다.]새로 보는 형태의 메시지였다.
‘뭐? 내가 이름 없는 혼돈의 명성을 높여?’
아이작의 이름이라면 모를까 이름 없는 혼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교단도 사실상 이사크레아 새벽기도회라는 새로운 이름에 교리조차도 완전히 다르고.
아이작은 어이가 없었지만 이름 없는 혼돈은 그걸로 만족하는 듯했다. 그리고 다음 이어진 메시지에 아이작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혼돈의 포상이 주어졌습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에게 ‘감춰진 제례’ 특전을 부여했습니다.]아이작은 스킬 이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곁에 있던 리안나가 의아한 눈으로 보았지만 아이작은 그녀의 시선을 신경 쓰지도 않았다.
스킬 설명을 보기도 전에 아이작은 이게 무슨 스킬인지 알 수 있었다.
아이작이 혼돈과 관련된 보스급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원통해 하던 개사기 스킬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