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저울 반대편에는 (4)
레오노라를 태운 마차는 먼지가 날릴 정도로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방금 본 성배기사에 대해 생각했다.
‘내 인생에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어.’
아이작의 얼굴을 떠올리자 레오노라는 다시 황홀함을 느꼈다.
듣던 대로 잘난 얼굴을 가진 미남이었다. 하지만 레오노라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런 하찮은 외모 따위가 아니었다.
미남 정도는 금을 뿌리는 것만으로도 줄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남창으로 팔 목적이 아닌 이상 그녀는 미남 따위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관심을 갖는 것은 ‘가치’였다.
보물이 가진 가치, 부동산이 가진 가치, 사업이 가진 가치…….
그리고 레오노라는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길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쓰레기 같은 물건도 그녀에게 황금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일 때가 있고, 평범한 흉가도 그녀에게는 멋진 부동산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런 그녀의 ‘감’은 십중팔구 거의 맞아떨어진다.
황금 우상이 그녀에게 베푼 기적이라면 기적이고, 본능적인 감각이라면 감각이며, 그저 그녀의 행운이 낳은 착각이라면 착각이다. 하지만 황금 우상은 다른 어떤 신앙보다 불분명하고 모호한 방식으로 신도들을 가호한다.
그래서 레오노라는 이 재능이 자신에게 부여된 기적이라 믿었다.
덕분에 그녀는 세 자매들 가운데서도 승승장구하며 압도적인 세력을 가질 수 있었다. 요령 없이 성실하기만 한 언니와, 떼쓰고 애교부리면 뭐든 해결된다고 믿는 동생보다 레오노라에게 상단의 미래를 맡겨야 한다고 믿는 상인들도 많았다.
레오노라도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믿음은 흔들렸다.
‘그걸…… 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아이작을 본 순간, 레오노라는 황금이 움직이고 있다고 느꼈다.
고작 황금 동상 같은 것이 움직인다는 말이 아니다.
아이작이 손을 대는 자리, 발을 딛는 장소, 내뱉은 한숨 속에 세상이 황금으로 물들고, 보물들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진귀한 염료와 향신료들이 진열되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그 성배기사가 오크로 태어났다면 칸이 되었을 것이고, 죽은 자였다면 불사 교단에서 섭정의 지위를 노렸을 것이며, 상인으로 태어났다면…… 만상의 물자들을 쥐고 흔드는 대상인이 되었겠지.’
레오노라는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실제로 아이작은 엘릴 왕국에서 엘릴의 대전사 자격을, 빛의 법전에서는 성자 지위까지 받지 않았던가. 들리는 바에 의하면 붉은 성배와 소금 의회까지 쥐고 흔든다는 첩보까지 있었다.
레오노라는 자신이 황금 우상 상단을 이끌 대상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그 믿음은 흔들렸다.
저 압도적인 존재 앞에 재능과 노력, 요령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작을 붙잡는 사람이 대상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레오노라는 아이작을 오래 마주할 수가 없었다. 더 오래 보고 있으면 그의 매력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곁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 황금 행렬에 끌려들어 가 순식간에 성배기사의 ‘자산’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럴 수는 없지.’
다행히 레오노라는 아이작의 가치를 알아보았기에 거리를 두고 조절할 수 있었다.
레오노라는 누군가의 자산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황금을 굴리는 사람이지 황금이 아니다.
아이작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자산이었다.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은 상관없었다. 유부남은 어떤 면에서는 검증됐다는 표식 아닌가. 그 검증인이 브란트 공작가의 여식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외모만 보고 반한 자들은 아이작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오직 자신만이 아이작이라는 존재를 움직여…….
쿠르르르…… 마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자 레오노라의 생각이 끊어졌다. 레오노라는 마부석으로 향한 창문을 열었다. 마차는 갈림길 앞에 서 있었다.
“왜 멈췄지?”
“아가씨, 렌하임 대신 노르덴 항 쪽으로 우회해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부가 담담하게 말했다.
레오노라는 서둘러 남부 오드리프로 가야 했으니, 북쪽으로 크게 우회해야 한다는 마부의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레오노라는 마부의 말을 걸러 듣지 않았다.
“큰 위협인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마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마부는 레오노라가 찾아낸 또 하나의 가치 있는 남자였다. 그녀가 목숨을 맡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에게는 레오노라와 비슷한, ‘위협’을 감지하는 재능이 있었다.
마부의 대답에 레오노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마부 본인은 물론이고 그녀를 경호하는 용병들도 산적 떼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저렇게까지 말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레오노라의 시선이 마차 반대편에 앉아있는 소녀, 안젤라에게로 향했다. 레오노라는 이사크레아 영지에서의 따스한 시선 대신, 가치를 계산하는 상인의 유리알 같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해꾼들이 붙은 모양이군. 그렇게 하자.”
“예. 혹시 모르니 어두워져도 쉬지 않고 달리겠습니다.”
마부는 레오노라가 시키는 대로 마차의 방향을 바꿨다.
***
그러나 마차는 오래 달리지 못하고 결국 다시 멈춰 서야 했다.
마부석 창문을 열자 이미 칼을 뽑아 든 마부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차를 끌고 탈출을 강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성배기사입니다. 아가씨.”
“이사크레아 경이라고?”
레오노라는 분명 성에 머물고 있을 아이작이 어떻게 그녀보다 더 빨리 이곳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지름길이라도 있는 건가?
레오노라는 마차에서 내리려 했지만 마부가 손짓을 해 제지했다. 그제야 마부가 꺼내든 검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성배기사가 위협 요소라고?’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레오노라는 동요하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준비를 시작했다.
그 사이, 넬을 타고 단숨에 날아온 아이작은 피곤한 얼굴로 마차를 향해 다가갔다. 분명 렌하임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북부로 방향을 틀어서 한층 더 피곤해진 차였다.
마부는 일단 칼을 꺼내 들긴 했지만 아이작에게서 느껴지는 ‘위협’의 기세에 한숨부터 나왔다.
자신이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눈치 없는 용병들이 말을 끌고 에워쌌지만 아이작은 조금도 긴장한 기색이 아니었다.
“이름 높은 성배기사가 야밤에 도적처럼 무슨 일이시오?”
부디 상대가 이름 높은 성배기사처럼 행동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부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아이작은 전자보다 후자 쪽에 마음의 비중을 두었다.
“안젤라는 그 안에 있나?”
“레오노라 아가씨와 함께 있소. 대화는 잘 마무리 짓고 친척들에게 돌려보내 주기로 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요? 그렇다 해도 이렇게 도적놈처럼 굴면 안 되지. 이런 짓은…….”
아이작은 친척 이야기에 입술을 비틀었다.
“친척이라, 안젤라는 애당초 본명이 아니다. 분명한 건 셀몬 상인의 핏줄이라는 것뿐이야. 그런데 거기서 무슨 단서를 얻고 친척을 찾아냈나?”
“그만. 내가 설명하겠네.”
그럭저럭 준비를 마친 레오노라가 마차 문을 열고 내렸다. 마부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언제든지 뛰어들 수 있는 위치에 섰다.
레오노라는 달빛 아래 다시 아이작을 마주하자 또 황홀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어쩜 이 자는 이런 황무지 같은 땅 위에서도 금은보화를 끌고 다닐 재주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번에 그가 노리는 금은보화가 이미 레오노라의 수중에 들어와 있는 물건이라는 점이 안타까웠다.
“성배기사님 마음속에 의심이 싹텄군요. 아이에게 많은 정을 주신 모양입니다.”
“빨리 아는 대로 말해. 안젤라는 왜 데려가려고 한 거냐?”
“말씀대로 안젤라의 신원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셀몬 상인들은 그 수가 많지 않지요. 하지만 가족단위로 뭉쳐 생활하기 때문에 조사가 금방 이루어집니다. 10살, 여자애, 최근에 부모를 잃음, 근거지는 시라크사, 근래 흑제국을 드나든 적 있음. 이 정도 단서면 거의 정확하게 특정되지요.”
레오노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막힘없는 대답에 뭐가 있다고 확신하고 달려온 아이작조차도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조사에 의하면 그 애 아버지 이름은 타밀, 어머니 이름은 오샤입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타밀의 큰언니는 조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더군요. 만약 틀리더라도, 셀몬 상인들은 수가 그리 많지 않은 혈족입니다. 물어물어 찾아가면 결국 친인척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작은 할 말을 잃었다.
레오노라는 아이작이 의심할 줄 알았다는 것처럼 거침없이 대답했다. 이제 아이작이 레오노라를 의심하는 근거는 ‘너 자본주의가 만든 소시오패스잖아’라는 게임 설정에 의거한 것밖에 없었다.
부모를 잃은 어린 여자애를 안전한 후방, 친척집으로 데려간다.
레오노라의 말에는 근거도 명분도 모두 충분했다.
아이작에게 가능한 것은 억지뿐이다.
“내가 직접 데려가도록 하지.”
레오노라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그렇게는…… 곤란한데요. 성배기사님.”
“그래.”
레오노라의 대답과 동시에 아이작은 카훌린을 뽑아 들었다. 만약 레오노라가 ‘그렇게 하십시오’라고 대답했다면 사과하고 보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으로 아이작은 확신을 얻었다.
계속해서 의심하고 있지만, 확신할 수 없던 사실이었다.
“안젤라가 ‘미다스의 손’의 위치를 알고 있나?”
내내 차분하던 레오노라의 표정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
계속 의심했다.
황금 우상 상단에 속한 안젤라의 부모는 왜 목숨 걸고 성지 루아까지 찾아갔을까?
그곳에서 뭘 찾기 위해?
보통 사람들은 그 질문에 쉽게 답변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작은, 황금 우상 상단으로 엔딩을 본 그는 답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곳 어딘가에 황금 우상의 최고 성물, 미다스의 손이 있기 때문이다.
황금 우상 상단의 승리 선언 조건인 ‘미다스의 손’.
아이작이 네임리스 카오스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본 엔딩이자, 가장 어렵고, 가장 난해한 엔딩이었다. 미다스의 손 승리가 까다로운 이유는 딱히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황금 우상 상단이 가진 세력이 약하고 큰 신앙적 버프를 기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똥캐로 공략하는 사람들의 업적달성용 콜렉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그 결말이라는 것이 온 세상을 황금으로 물들이는 것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악취미란 말인가? 내막을 따져보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이작은 당장 거기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건 미다스의 손이 성지 루아에 있다는 점이다.
다만 미다스의 손은 눈에 보이는 그런 성물이 아니라, 모호한 개념의 형태로 존재한다. 불사황제 베셰크가 지상과 천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나타난 일종의 변칙 개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현실에 고정시키려면 특별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때문에 아이작은 안젤라와 그녀의 가족들이 미다스의 손을 찾아내는 법까지 알아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미다스의 손이라니?”
레오노라는 억지로 목소리를 억누르며 반박했다. 미다스의 손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당연했다. 실제로 마부를 비롯해 용병들까지도 의아한 눈빛을 나눌 정도였다.
“모르는 척해도 이미 다 알고 있다. 미다스의 손은…….”
황금 우상 상단이 이 판도를 뒤집고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라고 말하려던 찰나 레오노라가 다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잠깐, 잠깐. 알겠으니까 그만 말씀하시죠. 그 얘기를 함부로 떠들면 저는 이 자리에 있는 제 사람들을 다 죽여야 합니다.”
그녀의 말에 경악하는 용병들의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아마도 사형 집행자가 될 가능성 높은 마부만이 검을 고쳐 잡았다.
레오노라는 용병들에게 힐긋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호위 임무는 끝났으니 먼저 렌하임으로 가서 대기해라.”
용병들은 군말 없이 곧바로 말을 돌려 떠났다. 경호 인력을 줄이는 그 모습에 아이작은 대담함을 느꼈지만, 어차피 용병 따위 몇 명이 있어도 문제가 될 가능성은 없으니 현명한 행동이었다. 용병들이 충분히 멀어지는 것을 본 레오노라는 다시 아이작에게로 시선을 돌려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미다스의 손은 성지 루아에 있습니다. 그리고 황금 우상 상단, 그중에서도 셀몬 상인들은 그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요.”
“그런데 처음으로 단서 비슷한 것을 가지고 나온 사람이 안젤라였던 거군.”
“놀라운 결과였지요. 왜 오드리프가 아니라 시라크사로 복귀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왜겠어?”
아이작은 냉정하게 레오노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애 머리를 뜯어서라도 뒤져볼 사람이라는 걸 아니까 그런 거겠지.”
수도원의 사제조차도 안젤라가 백치가 될 가능성을 감수하고 성물을 써서 보호 교리를 걷어내자고 말했다. 레오노라는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그보다 더 극단적인 수를 쓸 수도 있었다.
아이작의 말에 레오노라는 부정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슬프면서도 서늘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아이작은 그 미소를 보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깟 황금이 그렇게 중요한가? 황금 만드는 손이 그렇게 갖고 싶어서 애 머리를 뒤져?”
“……황금을 만들다니요? 그런 게 왜 필요하죠?”
레오노라의 얼굴에 의아함이 담겼다. 아이작은 그녀가 또 같잖은 연기를 하는 건가 했지만 레오노라는 미묘한 표정으로 아이작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내 그녀는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아하, 성배기사께서는 미다스의 손이 뭔지 모르고 계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