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0)
30화. 인간사냥꾼 사냥 (4)
‘4명 정도는 순식간에 정리되는군.’
촉수의 힘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강했다. 아이작도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촉수는 이름 없는 혼돈이 발휘할 수 있는 일종의 ‘기적’으로 취급된다.
그리고 성역에서는 모든 기적의 효과가 강화된다.
아이작이 지힐렛을 처치하고 얻은 성역 효과는 수도원 인근인 이 계곡까지 미치고 있었다. 덕분에 아이작은 촉수가 평소보다 훨씬 강력해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뱀파이어건 뭐건 사람의 형태를 먹는 건 내키지 않지만…….’
쥐를 먹을 때 그러했듯이, 이건 촉수가 먹는 것이다. 아이작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사냥꾼을 향해 다가갔다. 마지막 한 놈은 전의를 잃은 듯 이미 후들거리고 있었다.
붉은 성배 클럽의 성기사라고 할 수 있는 왈라이카 사냥꾼이지만, 어둠 속에서 촉수를 꿈틀거리는 미지의 존재를 눈앞에 두고서는 차분하기 어려웠다.
“사, 살려주십시오.”
왈라이카 사냥꾼은 칼을 떨어뜨리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심문을 위해 당장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작은 헛웃음을 지었다.
“심문이 끝날 때까지는 살아있을 테니 걱정 마라.”
“뭐, 뭐든 말씀드릴 테니…….”
“네가 하는 말을 어떻게 믿어?”
아이작은 그렇게 말하면서 놈의 멱살을 쥐고 혼돈의 눈을 발동시켰다.
[카샤 핀스크(B) / 공포] [직업: 왈라이카 사냥꾼(C+)] [능력: 탈피의 교리, 심장 찬가]이름이나 능력은 아무래도 됐고, 아이작은 주변의 눈도 없겠다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기 위해 집중했다.
[“이건 대체 뭐지? 이런 괴물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어. 역병신을 죽인 게 설마 이놈인가? 이 정도라면 굴마르 공작님이 오시더라도…….”]“지힐렛하고 역시 뭔가 관계가 있었군. 무슨 수작을 꾸미던 중인지 자세히…… 아니다, 됐다. 본인이랑 직접 대화해 봐야겠군.”
아이작은 내면을 들여다보던 왈라이카 사냥꾼을 내팽개쳤다. 놈은 무슨 상황인가 하며 바닥을 기다가 이내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붉은 안개가 바닥에 엎드린 그의 팔다리로 스며들고 있었다.
“자, 잠시만 공작님! 이건!”
놈은 변명을 끝내기도 전에 퍼석 하는 소리와 폭발했다. 뼈와 살점의 파도가 아이작을 덮쳤다. 날카로운 뼛조각은 살갗을 벨 듯 날카로웠지만 아이작은 오히려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어디 똑같은 수작을!”
여덟 갈래 동작이 발동되면서 피보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피보라 뒤쪽에서 아이작을 덮치려던 헤인켈은 아슬아슬하게 검격을 피했다. 그러나 스친 것만으로도 잡아 뜯어내는 듯한 공격이 순식간에 그의 살점을 긁어냈다.
***
콰드드득, 우득!
피와 살점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공격을 피한 헤인켈은 떨어진 곳에서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여덟 갈래는 계곡의 바위들에 검흔을 새길 정도로 선명한 흔적을 남겼지만, 헤인켈의 가슴에는 오직 두 갈래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톱날로 긁은 듯한 상처에서는 피가 울컥거리며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기괴한 검술을 쓴다 했을 때 알아봐야 했는데.”
헤인켈이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렸다.
“이미 멸망한 이교(異敎)의 기적을 쓰고 있군. 대체 그 신의 이름을 어디서 알아낸 거냐? 아는 놈은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어떻게 알아냈냐’라고 물어도 아이작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알아내지 못했으니까.
지금으로선 어떻게 이름 없는 혼돈과 소통하고 그 힘을 빌리고 있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캐릭터 선택할 때 골랐다고 하면 믿어주려나?’
아이작은 촉수가 꿈틀거리는 왼손바닥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게 뭔지 아는 모양이지?”
“너야말로 그게 뭔지 알고 있냐? 하긴, 모르니까 쓰고 있겠지. 무지한…….”
“쉿.”
아이작은 그를 향해 손가락을 올리며 침묵시켰다.
“내가 묻지도 않은 설정 떠들지 말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 거머리 같은 새끼야. 이게 뭐냐고.”
헤인켈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아이작은 헤인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미 그를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헤인켈 굴마르(S) / 정상] [직업: 왈라이카 공작(S)] [능력: 성배의 교리, 붉은 탄원, 비탄의 식, 쾌락의 비밀]공작은 역시 공작이었다.
놈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은 붉은 성배 클럽이 가질 수 있는 기적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 이미 붉은 성배 클럽에서 엔딩을 본 적 있는 아이작은 헤인켈 굴마르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
하지만 질 거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이작은 촉수가 얼마나 강한지 아직 끝을 보지 못했지만, 헤인켈이 칼센보다도 강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촉수한테 맡겨서 죽여 버려도 곤란하지…….’
마지막 남은 왈라이카 사냥꾼을 죽여 버렸으니 이제 놈을 심문해야 했다. 아이작은 혼돈의 눈에 집중해 좀 더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혼돈의 권능이라고? 돌아버리겠군. 설마 혼돈신을 직접 모시는 것은 아니겠지? 어디 금서를 훔쳐보거나 변방의 괴물에게 몸이 잠식된 걸 텐데, 아니, 제발 그래야 하는데…… 예쁘장한 얼굴이 아깝게 됐군.’]아이작이 헤인켈의 내면을 들여다보던 중, 그가 입을 열었다.
“네가 쓰는 힘의 정체에 대해 알고 싶나? 그건 수백 년 전에나 볼 수 있던 힘이다. 요즘 어린 것들은 그 힘이 뭔지도 모를 거야. 죽느니만 못한 꼴로 살고 싶지 않다면 함부로 쓰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아이작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헤인켈을 보면서 어이가 없어졌다.
헤인켈이 촉수를 두려워하는 것은 분명했다. 놈은 은근슬쩍 아이작에게 촉수를 쓰지 말라고 권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작은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이게 위험하다고? 내 피 빨겠다고 덤비는 놈들보다는 건강에 더 좋은 거 같은데?”
“살아있을 때보다 죽어서가 문제지. 신앙이 없는 바르바리들은 죽어서 천국도 지옥도 못 간다. 그런데 네놈은 괴물을 섬기고 있지. 그런 괴물이 다스리는 천국은 어떤 형태겠느냐?”
헤인켈은 약간 초조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항복해라. 어차피 너 같은 잔챙이는 관심 없어. 내 목적은 이단심문관이다. 어차피 네가 몸에 그런 걸 품고 있다는 걸 알면, 이단심문관은 너도 죽이려고 할 거다. 한배를 탄 셈이니 너는 살려줄 수도 있다. 아니, 나와 왈라이카로 가자.”
아이작은 이색적인 제안에 웃고 말았다.
“왈라이카로?”
“너 정도의 미모라면 붉은 성배께서도 기뻐하실 거다. 원한다면 내 양자로 삼아줄 수도 있지.”
왕족의 핏줄을 주겠다는 말이다.
헤인켈이 같잖은 소리로 자신을 회유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작은 그의 내면을 보고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헤인켈은 자신을 양자로 삼아서라도 데려가고 싶어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외모 때문에.
[‘붉은 성배께서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시지. 하자는 있지만 이 정도 아이라면 내게 은밀한 비밀 지식을 하나 더 베풀어주실지도 모른다.’]어이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마냥 어이없는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붉은 성배의 신인 ‘무희’는 생명과 아름다움, 은닉의 권능을 가졌으며 본인 또한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 있었다.
때문에 아이작은 그 매력 수치만으로도 붉은 성배 클럽에서 한자리 꿰찰 수 있었다.
사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공작의 핏줄을 잇는 것은 붉은 성배 클럽에서 최상위 스타트가 될 테니까.
아이작이 네필림이라는 점도 붉은 성배 클럽에서는 큰 단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이작은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굳이 내가 너한테 피를 구걸할 필요가 있을까?”
아이작이 숙이고 들어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헤인켈이 굳은 표정으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그는 혀를 차면서 게벨을 찔렀던 것과 같은 창을 꺼내 들었다.
“좋다. 말로 해서 안 된다면 힘을 써야겠군. 네놈들은 정정당당한 대결을 좋아하지? 장단을 맞춰줄 테니 한번 재주를 보여봐라.”
그러면서 헤인켈은 조건을 더 붙였다.
“서로 기적은 배제하도록 하자. 내가 기적을 쓰면 네 놈은 형체도 안 남을 테니…….”
“쫄아서 하는 소리면서 무슨…….”
촉수를 경계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거짓말도 아니었다. 헤인켈이 가진 기적들은 그만큼이나 막강했다. 자칫 잘못하면 둘이 함께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헤인켈은 창의 명수지.’
기적과는 별개로 상급 검술에 비견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 거리에서는 검보다 창이 유리하다. 그러면서 배려하는 척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지만 헤인켈은 어서 덤비라는 듯 자세를 낮추고 창을 길게 잡았다.
아이작이 결투를 받아들이는 듯 양손으로 검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왼손에서 촉수가 나오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걸 본 헤인켈의 입가의 꼬리가 올라갔다.
‘멍청한 놈.’
신호도 없이 바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애당초 헤인켈은 정정당당하게 싸울 생각 따윈 없었다. 정정당당한 결투는 변태나 하는 짓이니까.
헤인켈은 아이작이 첫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창을 던졌다. 아이작은 그 목표 지점에서 벗어났지만, 창은 손을 떠난 순간 피 먼지로 바뀌었다. 그리고 아이작이 움직인 방향을 따라 새로운 붉은 창이 생겨났다.
콰득!
섬뜩한 소리가 순식간에 계곡에 울려 퍼졌다.
아이작은 헤인켈에게 다가가지도 못했다.
헤인켈은 미소를 지었다. 길게 드러난 입가의 송곳니가 반짝거렸다.
이내 그 이빨을 따라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헤인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그의 목과 척추를 꿰뚫은 이빨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악취와 스멀거리는 살점들의 움직임으로 어마어마한 덩치의 괴물이 그의 몸속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는 것밖에 짐작할 수 없었다.
그 악취 속에는 익숙한 냄새도 섞여 있었다.
그가 앞서 보낸 왈라이카 사냥꾼들의 피 냄새였다.
헤인켈이 당하면서 어이없는 방향으로 날아간 창은 아이작 근처에도 스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이 정체불명의 괴물은 뭐고, 왜 자신을 공격한 건지. 그리고 아이작은 왜 마치 이 괴물이 자기편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가오는 건지.
헤인켈이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 이 개…… 정정당당한…… 결투에서…….”
“뭔 소리야? 정정당당한 결투는 변태나 하는 짓이지.”
***
“이 괴물은…… 네가 숭배하는……?”
헤인켈의 첫 번째 추측은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아이작의 몸을 잠식하고 있는 변방 괴물의 본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뭐야, 모르나? 아, 얼굴이 안 보이는구나.”
아이작은 헤인켈의 얼굴을 쥐고 뒤로 돌려버렸다. 우드득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아이작은 이 정도로 헤인켈이 죽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오랜만이지?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너는 알아봐야지.”
그것은 지힐렛의 사체를 아이작이 다 먹어 치우는 대신 ‘혼돈의 자손’으로 기생시켜 만들어 낸 짐승이었다. 이솔데를 계곡 안쪽으로 끌어들인 정체불명의 짐승이기도 했다.
지힐렛의 외형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붉은 살점과 넘실거리는 촉수들로 이루어진 그것은 그저 여전한 악취를 풍기며 아이작의 명령에 순종할 뿐이었다.
지힐렛의 사체를 모태로 삼아서 그런지 좀 더 복잡한 명령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솔데와 게벨 일행 근처를 지키면서 찾아가는 왈라이카 사냥꾼들을 다 죽여 버린다던가.
‘원래 신의 사체를 모태로 삼아서 강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성역 근처라 그런지 말도 안 되게 세군.’
이제는 아이작의 개가 된 지힐렛은 약하지만 신성마저 가지고 있었다. 천사나 아궁이 짐승처럼 일종의 신수와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다. 다만 천사나 아궁이 짐승은 언젠가 돌아가야 하는 반면, 지힐렛은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조건만 충족된다면 계속 남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막대한 양의 고기를 섭취해야 한다든가.
와득.
지힐렛은 이미 왈라이카 사냥꾼들을 열 명 가까이 먹어 치웠을 텐데도 여전히 배가 고픈 듯 헤인켈의 살갗에 이빨을 더 깊이 박아 넣었다. 입에 흘러들어오는 피가 식욕을 자극하는 듯했다.
아이작은 지힐렛을 자제시켰다. 아직 헤인켈에게 물어볼 것들이 많았다.
아이작은 보랏빛 눈동자로 헤인켈을 응시했다. 그의 왼쪽 눈은 이미 혼돈의 눈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촉수가 넘실거리며 넘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내 성역을 침범하고 내 계획을 망칠 뻔했다. 그러니 심판을 받아야지.”
그 말을 들은 순간 헤인켈이 입을 열었다.
“부…… 붉은 성배의 화신이셨나이까? 저의 주제넘은 월권을 심판하시고자 붉은 살점의 예지자를 보내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