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03)
303화. 황금을 쫓는 눈동자 (4)
우당탕탕.
아이작이 촌장의 딸이 끓여준 수프를 세 그릇째 비우고 있을 무렵, 식당 입구에서 요란하게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작이 고개를 돌리자 화려한 망토에 공작새 깃털까지 모자에 꽂은 미중년 남자가 널브러져 있는 꼴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잠깐, 잠깐! 거칠게 굴 건 없잖아! 내 발로 가겠다고 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헤사벨은 단검같이 날을 세운 깃털들로 남자를 겨냥했다.
퉁. 발사된 깃털이 남자의 손가락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박혔다.
헤사벨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한번 칼을 겨눴으면 손가락 하나 정도는 내놓고 대화할 생각을 해야지.”
‘맞는 말이야.’
아이작은 내심 동의했기 때문에 헤사벨을 말리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잠을 못 자게 한 죄는 크다. 어차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할 생각이라곤 눈곱 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어딜 자르고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잠깐! 정 자르겠다면 약지를 잘라라!”
보통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하면 다섯 번째 손가락인 소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헤사벨은 의아함을 느꼈다. 애초에 선택권을 줄 생각도 없었지만, 단지 호기심 때문에 질문했다.
“왜 약지지?”
“존재보다 부재가 더 의미를 가질 때도 있으니까. 내 약지에 머물렀다 떠나간 다섯 개의 반지보다 네가 내지른 단 한 번의 칼끝이 더 오래 의미 깊게 남을 테지. 네 칼을 받고 내 사랑 또한 영원히 비워 두겠다.”
이 와중에 나올 거라고 생각 못 한 정신 나간 소리에 아이작은 수프를 뱉을 뻔했다.
다만 헤사벨은 그 대답이 나름 마음에 든 것 같았다.
“흥, 빛의 법전 영역에서 들을 거로 생각지 못했던 낭만적인 소리구나. 확실히 한 사람에게 메여 살겠다는 말은 어리석은 생각이지.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내가 모른다고?”
“결혼한 상대와의 불륜이야말로 가장 스릴 넘치는…….”
아이작은 헤사벨이 더 정신 나간 소리를 늘어놔서 이사크레아 여명군 평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전에 얼른 나섰다.
“정신 나간 소리로 다른 사람들 정신까지 빼놓을 줄은 몰랐군. 샬록.”
“당신은…….”
샬록이라 불린 남자는 아이작을 올려다보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붙잡혀 온 상대는 아이작이 잘 아는 상대였다.
***
샬록. 황금 우상 상단의 용병대장이자 극작가.
평상시에는 극작가로 활동하지만 형편없는 재능으로 번번이 집안의 재산을 말아먹는 놈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극작보단 다른 곳에 재능이 있었는데, 바로 탁월한 현상금 사냥꾼과 용병으로서의 역량이었다.
덕분에 샬록은 용병으로 활동하면서 한탕하고, 벌어들인 돈을 극작한다고 탕진한 다음 다시 또 용병으로 뛰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헤사벨에게 떠들어댄 헛소리도 딱히 의미가 없는,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드는 소리였다.
“뉘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미모의 성기사와 그가 거느리는 핏빛 날개의 미인을 보고도 바로 그 유명한 아이작 이사크레아를 연상하지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어느 손가락을 자를까요, 아이작 님?”
“오른쪽 약지 끝마디.”
헤사벨은 곧바로 실행에 옮겨 샬록의 오른쪽 손등을 짓밟았다. 그리곤 단숨에 깃털로 내리쳐 손톱 끝을 잘라냈다. 관록 높은 용병대장이라 생각하기 힘든, 가늘게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고작 손톱을 잘랐을 뿐인데 터진 비명에 아이작은 한숨을 쉬며 의자를 끌고 왔다.
“다음에는 정말 피를 볼 거야. 극작가 양반.”
“으, 아, 으. 어? 안 잘렸군요? 역시 자비 넘치는 성배기사님…….”
“아니, 네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내가 직접 다질 필요도 없어. 너를 저기 뒤쪽에서 간절하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오크에게 넘겨주면 그만이야.”
샬록의 시선이 그제야 아이작의 뒤쪽, 우치우라 백호장에게로 향했다. 우치우라는 씩씩거리며 샬록을 노려보고 있었다.
우치우라가 당한 끔찍한 꼴을 보고 샬록은 숨을 들이켰다.
아이작은 당장 샬록을 비슷한 꼴로 만들어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아이작이 그의 목숨을 붙여 둔 이유는 단지 레오노라와 황금 우상의 관계 때문이었다.
“네가 날 추적했지?”
“무슨 말씀…… 아, 예. 예. 맞습니다. 제가 아이작 님을 찾아냈습니다!”
헤사벨의 날개 끝이 손가락 가운데로 향하자 샬록의 말이 빨라졌다.
이번에는 헤사벨이 물었다.
“어떻게?”
“샬록에게는 사람의 ‘값’을 보는 재능이 있다. 돈이 될 만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재능이지. 심지어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은은한 후광처럼 보일 정도라고 하더군. 저 녀석은 그걸 현상금 사냥꾼에 쓰는 거지.”
이것만큼은 샬록이 숨기려 들 게 뻔했기 때문에 아이작이 대신 대답했다.
샬록은 입을 쩍 벌렸다.
그야 당연했다. 지금까지 그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 말하지 않았었으니까.
레오노라의 재능이 장래성까지 고려한 종합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라면, 샬록의 재능은 ‘가격표’를 볼 수 있는 것에 가까웠다.
게임에선 동료로 영입 시 다른 캐릭터들의 머리 위에 ‘가격’이 나타나는 걸로 표시된다. 높은 가격일수록 크고 화려해지는데, 이걸 이용해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작은 이 사실을 일부러 자기 입으로 밝혀 샬록의 기를 꺾어놓았다.
“그래. 내 머리에 ‘현상금’이 얼마나 걸려있나?”
샬록의 눈에는 아이작의 머리에 매겨진 ‘값’이 보이고 있을 것이다.
샬록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금화 10만 닢입니다.”
그 순간 우치우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뭐라고 웅얼웅얼 소리쳤다. 그는 당장 샬록에게 달려들 듯이 화를 냈지만 아이작이 무서워서 소리만 지르는 것 같았다.
“저놈은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거냐?”
“……제가 성배기사님께 2만 닢이 걸렸다고 말했거든요. 잡는 데 성공하면 반씩 나누자고 했죠.”
동업해놓고 9만 닢은 혼자서 홀랑 먹으려고 했다는 뜻이다. 과연 황금 우상 상단의 용병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샬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저놈들이 성공할 리도 없겠지만, 성공했더라도 저와 나눌 생각이 없었을 겁니다. 저까지 슥삭하고 2만 닢을 꿀꺽 할 생각하고 있었겠죠.”
“내 목을 가지고 잘도 그런 협상을 했군? 그래. 10만 닢짜리 목표를 상대하는데 겁도 안 나던가?”
그러자 샬록은 슬쩍 눈치를 보면서 헤사벨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쪽을 보고 더 겁나서 항복하기로 했는데요.”
“……헤사벨? 헤사벨이 왜?”
“이 아가씨한테는 20만 닢이 걸려있어서…….”
“20만? 헤사벨한테? 대체 누가?”
“왈라이카 왕국의 하스텔 굴마르 공작이…….”
헤사벨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스텔 굴마르가 누군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헤사벨의 혈통적 부친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낳고 기른 사람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버지라 부르고 따르는 사람. 그가 헤사벨 목에 현상금을 내건 것이다.
아이작은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현상금을 걸었다는 건 본인이 나올 생각은 없다는 뜻이겠지.”
헤사벨보다 현상금이 밀린다는 사실은 굴욕적이었지만, 왈라이카 왕국에서는 헤사벨을 민족 반역자 내지는 매국노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 당연했다.
“어쨌든 극작가 양반, 잠깐 산책 좀 하자고.”
***
아이작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샬록과 어깨동무를 하고 바싹 붙었다. 샬록의 표정이 다시 얼어붙자, 아이작은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마을을 네 용병단이 포위하고 있지? 당장 화살 내리라고 해.”
“아이참, 무슨 말씀을.”
샬록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을 슬쩍 들어 올려 뭔가 수신호를 보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이작은 살기가 잠잠하게 가라앉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황금 우상 상단이 직접 고용한 용병들은 평범한 용병들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샬록이 이끄는 ‘극단’이라고 불리는 용병단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자들만으로 꾸려져 있었다.
즉, 용병대장인 샬록은 아무 생각 없이 항복하려고 기어들어 온 게 아니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온 자였다.
비범한 자를 평범한 방법으로 잡을 수는 없을 테니까.
“황금 우상 상단이 대놓고 제국에서 성배기사의 목에 현상금을 걸 수는 없었을 테니 너에게 하청을 맡겼겠지. 그래, 우리 극작가께서는 나를 잡을 각본이 좀 나오나?”
“으음, 글쎄요…… 사실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싸우는 셈이라 저희가 좀 불리하긴 합니다.”
“손발이 묶인 상태라?”
“예. 평범하게 높으신 분이었으면 인질을 잡든, 집에 불을 지르든, 교단을 매수하든 해서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불리한 처지를 만들었겠지요. 하지만 이런저런 수도 못 쓰게 하고 오직 성배기사님만 잡으라고 하니 힘없는 저희는 불리할 수밖에요.”
“봐줬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아닙니까?”
“멍청한 놈. 레오노라는 너희들이랑 자기 목숨을 살리려고 그런 거야. 내가 고립무원 처지가 되고, 사회적으로 눈치 볼 일 없어지게 되면 어떻게 나올 거 같냐?”
샬록은 아이작에게 아버지뻘 되는 중년이었지만 아이작이 쏟아내는 막말은 가차 없었다.
저 나이 먹고 예술 한다고 맨날 마누라 바꾸고 재산 탕진하는 놈은 애새끼 취급을 해도 합법이다. 어쩌면 물리학 교과서인 빛의 법전 성전에도 그렇게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너희가 선을 지키니까 나도 선을 지켜 주는 거다.”
“……그렇군요.”
샬록은 그다지 납득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래봤자 일개 성기사가 황금 우상 상단을 상대로 뭘 어쩌겠나 하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레오노라 아가씨는 원하는 게 있으면 반드시 얻고야 마는 성격입니다. 이사크레아 여명군으로 오드리프를 직접 압박하게 되면 그분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텐데요. 성배기사님이 소문과 달리 무서우신 분이란 건 알겠지만, 그럼 서로 상처만 남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네 협조가 필요하다. 샬록.”
“저요?”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작이 샬록을 보자마자 죽이지 않은 이유는 그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협상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협박을 하긴 했지만.
“차기 상단주는 레오노라로 낙점된 분위기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에 샬록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그렇지요. 그분만 한 성과를 올리는 분도 없으니.”
황금 우상 상단은 다른 신앙과 달리 베시아 가문이 독점한다.
원래 여러 가문이 총의를 모아 추대하곤 했지만, 백 년 전에 베시아 가문이 정적들을 모두 제거하면서 독점체제를 이뤄냈다. 베시아 가문이 다른 경쟁자들을 제거한 이유도 ‘대표 가문들이 타 신앙 및 국가와 영합해 상단 전체의 이익을 축소시키려 했다’는 것 때문이었으니, 실로 황금 우상 상단다운 결정이었다.
그 결과 황금 우상 상단의 중립성은 지금까지도 유지될 수 있었다.
베시아 가문의 지상 목표는 상단 전체의 총자산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다른 상인들도 이 목표만 달성할 수 있다면 베시아 가문의 형제자매들이 서로 어떤 혈투를 벌이고 독점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레오노라의 독단적 행동일 뿐, 황금 우상 상단의 총의와는 관계없는 거지?”
“……그렇지요?”
“나는 오드리프로 가서 직접 상단주, 벨만 베시아에게 따질 생각이다. 지금 레오노라가 대단히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는 것과 이 모험적 행동이 상단의 이익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경고를 할 생각이야.”
아이작의 말에 샬록은 입을 벌리고 할말을 찾아 헤맸다. 한참 후에야 단어가 떠오른 샬록은 겨우겨우 말을 이었다.
“그게 가능하기만 하다면야 평화적으로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성배기사님이 가지고 있는 자산이 황금 우상 상단의 숙원사업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비용이 문제가 아닐 텐데요.”
“비용은 항상 문제야. 감수할 수 있는 정도의 문제인지가 중요한 거지.”
“허, 참. 성기사에게서 들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한 적 없는 옳으신 말씀이시군요. 그래요. 성배기사님이라면 할 수 있다고 쳐보죠. 그럼 제게 바라는 건 뭡니까?”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해.”
“예?”
아이작은 웃으며 샬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지금까지 하던 그대로, 용병을 고용하고 지방 귀족이나 산적들을 매수해서 나를 공격하고 있다고 보고해. 내가 지치고 말라가고 있다고. 얼마 안 남은 것 같다고. 내가 오드리프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야.”
“……지금 황금 우상 상단의 용병대장을 매수하시는 겁니까? 제가 레오노라 아가씨에게 얼마나 받고 일하는지는 알고 있습니까?”
아이작은 그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할 생각이 없었다.
샬록은 자신이 아이작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고, 심지어 반격조차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 계획이 현실성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죽은 샬록보다 살아있는 샬록이 레오노라의 계획을 분쇄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적당히 어르고 달랠 필요가 있었다.
‘용병에게는 돈이 주인님이지.’
“네게 차기 상단주의 지명권을 주지.”
[연재] 죽은 신의 성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