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05)
305화. 시에로 여명군 (1)
꾀죄죄하고 잔뜩 때 탄 모습이었지만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건 본능의 영역이었다.
시에로 역시 아이작을 본 순간 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둘 다 같은 이유로 즉시 서로의 정체에 대해 입 다문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작이 먼저 서둘러 손짓하며 이 패잔병들을 밖으로 이끌었다.
“나와! 여기서 다 죽을 때까지 버틸 셈인가?”
“하, 하지만…….”
그들은 아이작의 지시에도 얼어붙은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 와중에도 시에로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 벌써 시에로는 문 앞까지 뛰쳐나가고 있었다.
“나와라! 시련을 견뎌 내면 빛의 법전께서 우리의 활로를 열어 주실 거라 하지 않았느냐! 시험은 끝났으니, 나와 함께 빛의 법전께서 보내 주신 사자를 따라나서라!”
“오오!”
그제야 시에로 여명군의 패잔병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뒤따라 나왔다. 아이작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일단 그들을 안내했다.
내심 살아 있는 시에로보다 죽은 시에로가 더 가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하지만 그러면 여기 있는 패잔병들도 다 죽여야 했다.
“쿠루루루루!”
다시 몰려들기 시작한 좀비들을 향해 넬이 브레스를 토해 냈다. 여명군 무리는 난생처음 보는 반투명 드래곤의 위엄에 기가 질렸지만, 성큼성큼 걸어가는 시에로의 뒤만 보고 쫓아갔다. 아이작 역시 좀비 무리를 물리치면서 달려갔다.
그러나 그때, 하늘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팬텀스티드의 비행 소음이었다.
역시 괜히 경보장치를 달아둔 게 아닌 듯, 소란을 듣고 불사 교단의 데스나이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다행히 숫자는 하나뿐인 것 같았다.
아이작은 혀를 차면서 넬에게 도망치는 시에로 여명군을 맡겼다.
데스나이트 역시 도망치는 거지 떼보다 아이작이 더 가치 있는 표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듯, 곧바로 아이작을 향해 날아왔다.
쇄애애애액! 팬텀스티드가 엄청난 질량을 가지고 아이작을 향해 부딪쳐 왔다.
데스나이트는 성기사와의 멋진 엇갈림을 연출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아이작은 멍청하게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이작은 재빠르게 옆으로 피하면서 이삭 검술: 익사자의 손을 사용했다.
무형의 기운이 거칠게 데스나이트의 궤적을 확 잡아 비틀었다. 순간적으로 공간이 단축되는 듯한 느낌을 받은 데스나이트는 날아든 속도 그대로 지면에 머리부터 처박혔다.
콰콰쾅! 아이작은 익사자의 손을 회수하면서 놈의 허리까지 뒤틀어 버렸다. 평범한 기사였다면 이걸로 마무리는커녕 시체 능욕에 가까운 수준의 공격이었지만, 아이작은 이걸로 끝났다는 생각 따윈 조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면에 형편없는 꼴로 쓰러진 데스나이트를 향해 다시 한번 검기를 휘둘러 으스러뜨리려 했다.
콰드드득, 드드득. 그 순간 갑옷들이 낱낱이 분해되면서 빠르게 떨어진 자리에서 재구축되었다. 가장 마지막에 두개골이 복귀하면서 완벽하게 싸울 태세를 갖춘 데스나이트의 형태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젊은 성기사들은 깜빡 속던데, 보기보다 경험이 많은 모양이군?”
“어려 보이나? 사실 내 안에는 서른 살 넘은 아저씨가 들어 있다.”
“아, 그래? 사실 내 안에는 106살 된 할아버지가 들어 있다. 세 배는 더 먹고 오도록.”
의문의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아이작은 장유유서의 율법에 따라 할아버지가 먼저 저승에 가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시에로 여명군은 이제 충분히 떨어져 더 이상 눈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슉, 텅!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아이작이 루앗딘 열쇠를 단숨에 내려쳤다. 데스나이트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에 놀라면서도 그의 부족한 관록을 비웃었다.
언데드는 먹거나 잘 필요도 없다. 보통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연습만 했다’라고 한다. 하지만 언데드는 그 두 가지를 할 시간에도 연습을 할 수 있다. 그것도 컨디션 조절조차 필요 없이.
데스나이트는 제국의 검술 사범도 감탄할 정교한 동작으로 아이작의 검을 걷어냈다. 아주 약간의 각도만 어긋나도 검이 부러지고 머리가 부서질 수도 있었지만, 데스나이트에게는 숨 쉬듯 쉬운 일이었다.
‘교만의 대가를 치를 시간이구나, 어린놈.’
데스나이트는 즉시 백 년 동안 수련한 자신의 비기를 사용해 아이작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작에게는 데스나이트가 예상하지 못한 무기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애초에 아이작은 데스나이트와 검술 대결을 할 생각이 없었다.
콰드드득! 루앗딘 열쇠를 타고 흘러나온 저 너머의 색채가 순식간에 데스나이트의 검을 휘감았다. 오래 버틸 정도는 아니지만 불안정한 상태에서 균형을 깨뜨리기에는 충분한 정도였다. 그다음 아이작의 왼손이 데스나이트의 투구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촉수가 단숨에 데스나이트의 경추를 움켜쥐고 잡아 뜯어냈다.
뼈 몇 개를 잡아 뜯는다고 영적인 힘으로 움직이는 데스나이트가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살아있을 때와 비슷하게 움직이려면 어쨌든 ‘살아 있을 때와 비슷한 상태’라야 한다. 갑자기 네발로 기거나 물구나무서서 걸으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목뼈는 머리를 가누는 데 필수적인 부위고, 머리를 가누지 못하면 균형감을 잃는다. 균형을 잃으면 스스로의 손이 어디인지, 지면은 어디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아이작은 작은 뼛조각 하나 떼어내는 걸로 데스나이트는 갓난아기처럼 만들어 놓은 뒤, 그대로 달아났다.
‘데스나이트를 짧은 시간 안에 죽이는 건 쉽지 않지…….’
다른 데스나이트나 리치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아이작은 적진 한복판에서 버둥버둥 싸울 생각이 없었다.
이 106살 먹은 치매 노인에 대한 처리는 놈들에게 맡기고, 아이작은 시에로 여명군이 달아난 방향을 향해 도망쳤다.
***
거의 산자락 밑까지 도착하고서야 아이작은 시에로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숨이 터지라 달린 덕분에 다들 지쳐서 굴러다니고 있었고, 시에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이작은 그 모습을 딱하다는 듯 보다가 입을 열려 했다. 그러나 그 전에 시에로가 먼저 두 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나의 구원자, 나의 인도자, 나의 형제여! 그대의 손길에 감사를 표하오. 괜찮다면 축성 기도를 올리는 시간을 마련해도 괜찮겠소?”
사제가 전쟁터에서 성기사에게 축성 기도를 올리는 것은 흔한 일이기 때문에 아이작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에로는 축성 기도를 올린다는 명분으로 아이작을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그는 주변에 둘밖에 없는지 끊임없이 확인했다.
결국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아이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밖에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정말이오? 확실히 해야 해서…….”
“그쪽 정체가 들키면 저는 뭐 무사할 것 같습니까? 터놓고 이야기하지요.”
그제야 시에로는 안도한 듯 겨우 숨을 내뱉었다. 그는 눈을 빛내며 아이작을 흥미롭게 이리저리 뜯어보며 살펴보았다.
“그, 소문을 들었을 때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소만…… 정말 그럴 줄은 몰랐소. 그렇잖소? 심지어 성기사라니. 어렸을 때부터 고생이 많았을 텐데 어떻게 버틴 거요?”
“그냥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나는 뭐 노력 안 한 줄 아시오? 하지만 이 선천적인 한계라는 게 있잖소. 아니, 정말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군. 그 유명한 빛의 법전 부활의 성자, 엘릴의 대전사가…… 네필림이라니.”
마지막 말은 시에로도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마치 아이작을 향해 확인을 부탁한다는 듯한 말투였다. 아이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설마 그 유명한 시에로 사제가 네필림일 줄은 몰랐습니다.”
거짓말이다. 사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와닿을 정도로 네필림일 줄은 몰랐다. 아마 네필림들끼리는 뭔가 공명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시에로…….’
하지만 시에로를 바라보는 아이작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여명군이 시작되기 전에 광기와 선동에 불을 붙인 시에로.
무시무시한 매력으로 대중을 선동한 시에로는 순식간에 여명군 무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수십, 수백만에 이르는 군중을 동원했다.
하지만 이 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에 화형대에 오르고, 멍청한 전략에 희생당했으며, 정신 나간 짓들이 일어났는가? 솔직히 그걸 생각하면 즉시 목을 잘라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래도 즉시 목을 치지 않은 이유는 그 광기가 온전히 시에로만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명군은 시대정신이고 천사들이 부추기는 광기였다.
시에로는 단지 유용한 도구였을 뿐.
어쨌든 그런 일들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네필림이라는 혈통이었다.
시에로는 네필림답게 상당히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조금 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잘 씻기고 꾸며 놓으면 다시 또 대중을 선동하기 좋은 외모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왜 여기서 그런 꼴로 있던 겁니까? 여기는 불사 교단의 영토조차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저 언데드며, 데스나이트는 뭐지요?”
“아…… 그게 최근에 다소 복잡한 사정이 있었는데…….”
시에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사정을 설명했다.
***
시에로 여명군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시에로의 선동에 모여든 군중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민병대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숫자가 모인 그들은 자신들이 교황이 이끄는 군대보다 강력하다는 착각을 하고 말았다.
결국 그들은 여명군 본대보다 먼저 성지를 수복하겠다는 야심 찬 사명감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참고로 말하는데 나는 그 진격을 최대한 늦추려고 애썼소. 진심이오. 불사 교단이 바보 머저리도 아니고 성기사도 사제도 없는 민병대에게 당하겠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도저히 내 힘으로 통제가 안 되더군…….”
네필림이 아무리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해도 그건 주변에 있는 사람들, 기껏 해봐야 목소리가 닿는 사람들 정도다.
수십 수백만의 군중? 그건 그저 어떤 동물적인 본능을 가진 해일과 비슷하다.
올칸 규율의 무수한 군대는 단단한 체계와 수많은 환생으로 훈련받은 병사들이라 가능하지, 일반인은 통제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미 이 시점부터 시에로는 그 해일에 떠밀려 가고 있었다. 자기 목숨을 부지하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그 와중에 그들이 첫 목적지로 선택한 곳이 이곳, 게르토니아 제국과 불사 교단 영토 중간에 있는 소국이자 중립 요새 도시인 ‘크란’이었다.
“크란의 왕은 빛의 법전 신도였소. 나를 환영하긴 했지만, 그…… 여명군까지 환영하지는 못하더군.”
크란의 왕이 아니라 루앗딘이 살아 돌아와도 백만에 가까운 거지 떼 무리를 환영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숫자가 되면 인간이 아니다. 메뚜기떼지.
“크란 왕은 식사와 숙박을 약간 제공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그게, 약간의 다툼이 생겨서…… 약간의 사고가 생겼소. 왕에게 애도를 표하오.”
“……크란을 공격한 겁니까?”
“내 부하들은 ‘적극적 보급’이라고 부르더군. 뭐라고 부르는지는 중요하지 않겠지. 어쨌든 그때부터 여명군은 완전히 고삐를 놓은 것 같았소. 크란을 약탈하고 불태우고…… 그러다 며칠 전 크란의 왕이 돌아왔소.”
“돌아왔다뇨?”
“그게, 음, 크란의 왕은 아마 사망보험 계약자였던 것 같더군. 빛의 법전 신도란 자가 사망보험이라니! 이게 말이 되오?”
아이작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크란은 어쨌든 소국이며 중립 도시다. 빛의 법전 신도지만 사망보험을 들어 두는 정도로 중립을 유지하려 애써 왔을 것이다. 죽기 전에는 해지하는 식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틈도 없이 같은 신앙의 형제들이 자기 영지를 도륙 내버렸다.
그렇게 크란의 왕은 사후세계에서 돌아왔다. 이번에는 자신의 신앙의 형제들을 이끌고.
불사 교단이 외부에 자신의 세력들을 늘리는 정석적인 방법이다. 비슷한 방법으로 엘릴 왕국도 전복시키려 했으니 놀라울 것도 없었다.
놀라운 것은 시에로 여명군이 저지른 참상이지.
‘……아니, 실제 역사에서도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한 적 있으니 놀라운 일도 아니지. 애초에 굶주리고 광기에 찬 군중이 모이면 저지를 일이야 어디든 뻔하지 않은가?’
아이작은 한숨을 내뱉고 질문을 이어갔다.
“그래. 그래서 시에로 여명군은 다 죽고 지금 이 한 줌만 남은 겁니까, 설마?”
“아니, 그럴 리가! 대부분은 이미 도망친 것 같지만, 크란에 아직 상당수가 남아있소. 거기서 결사 항전의 각오를 다지면서 언데드 군세를 영웅적으로 막아 내고 있지.”
아이작이 장담컨대, 그들이 막아 내는 ‘언데드 군세’는 전부 시에로가 끌고 온 여명군 무리들일 것이다. 어제까지 같은 편이었던 형제들이 신선한 좀비가 되어 들이닥치고 있으니, 크란에 있는 자들이 제정신일 리가 없었다.
“아니, 잠깐. 그럼 당신은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아, 그게…….”
아이작은 말끝을 흐리는 시에로를 보고 반사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단숨에 코뼈가 주저앉은 시에로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아이작은 수수깡마냥 나약한 네필림의 코뼈를 보면서 조금 놀랐지만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부하들을 두고 도망치다가 아까 그 창고에 고립된 거군? 맞지?”
아이작의 말에는 더 이상 조금의 경어도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