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06)
306화. 시에로 여명군 (2)
비명을 듣고 시에로의 패거리들이 달려왔지만 살벌한 아이작의 표정을 보고 다가오지 못했다. 그들에게 시에로의 카리스마가 통했다면 아이작의 카리스마도 통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면서, 자기도 같이 죽겠다고 다짐하진 못할지언정 혼자 살겠다고 도망쳐 나와? 네 목숨이 그렇게 귀하냐? 이 몸뚱이가 얼마나 값비싸길래?”
아이작은 시에로의 귀 한쪽을 붙들고 잡아당겼다.
귀 위쪽이 살짝 찢어지면서 피가 흘러내렸다. 단숨에 잡아 뜯을 수도 있었지만, 고통을 주기 위해 일부러 힘을 덜 주고 있을 뿐이었다.
시에로는 비명을 지르며 부하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결국 보다 못한 한 남자가 다가오려 했다.
“그, 성배기사님, 시에로 사제님은 더 큰 숭고한 목적을 위해…….”
“계속 떠들면 한쪽을 뜯어낼 때마다 네 입안에 쑤셔 넣을 테니까 가만히 있어.”
아이작이 시에로의 어느 부위를 얼마나 뜯어낼지 상상할 수 없었던 남자는 얌전히 입 다물고 물러났다. 시에로는 몇 번 더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도움을 청했지만 소용없었다.
“널 따라온 놈들은 하나 같이 모지리에 멍청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네가 이끌어 따라온 놈들이다! 네가 방향을 가리켰으면 너도 같이 갔어야지, 혼자 도망쳐?”
아이작은 시에로가 제국에 종교적 광기를 불러일으키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에 이미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시에로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건 시에로만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작 또한 여명군을 부추기는 흐름을 만들었으니 그에게도 시에로 못지않은 죄가 있었다.
하지만 시에로가 사람들의 광기를 부추겼다면, 그 자신 또한 그 광기 속에서 죽어야 했다.
이렇게 도망칠 것이 아니라.
“자, 잠깐! 나는 외부에서 지원군을 불러와 그들을 도와주려고……!”
아이작의 눈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혼돈의 눈으로 거짓을 간파한 아이작은 마침내 시에로의 귀 한쪽을 잡아 뜯어냈다.
비명과 함께 핏줄기가 튀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화가 난 건지 그의 눈이 보랏빛으로 물든 눈을 감추지조차 못할 지경이었다.
아이작은 시에로의 귀 반대편도 붙잡았다. 지금까지 네필림의 매력으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왔던 시에로는 처음 당하는 상황이 당혹스러웠다. 그가 아무리 애원해도 아이작의 공포에 상쇄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되어서야 시에로는 진심을 내뱉을 수 있었다.
“이렇게 안 했다면 나는 죽었다고!”
아이작이 동작을 멈췄다.
“뭐?”
“이렇게, 안 했으면, 나는 언제 빛의 법전에 발각되어서 죽었을지 몰랐다고! 너도 알잖아! 내가 살아남을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어! 나를 좋아하고 숭배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서 나를 보호하는 것!”
아이작은 뒷골이 당기는 것을 느꼈다. 시에로의 절규는 아이작의 과거를 정확하게 짚고 있었다.
아이작 역시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빛의 법전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고자 했으니까.
“이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다 같이 미쳐 가는 시대에 나도 그 광기를 이용하지 않았으면 나도 그 광기에 휩쓸려 죽었을 거야! 나는 내 조건 속에서 내가 가진 재능을 쓰면서 살아남으려고 했을 뿐이야!”
“그럼 거기서 죽었어야지!”
“내가 왜? 나는 살려고 그런 것뿐이야! 너도 살려고 사람을 죽였을 거 아냐, 잔뜩 미친 짓을 저질러 왔을 거 아냐! 나는 그래도 내 손으로 죽인 사람은 한 명도 없어! 너는? 산더미처럼 죽여 시체를 쌓아 왔겠지!”
아이작은 점점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말은 아플 만큼 사실이지만, 근본적인 부분부터 잘못되어 있다. 제 손으로 죽여야만 살인인가? 말 몇 마디, 서명 하나로 수백 수천만 명을 죽일 수도 있는 게 인간이다. 그리고 아이작은 자신에게 칼을 겨눈 자들만 상대했다.
자기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외면한 적도 없었고.
하지만 얼마나 사람을 죽였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작은 살아남으려고 미친 짓을 벌여 왔다는 시에로의 말에 약간의 공감과, 자신이 누린 행운을 깨달았다.
‘나도 자칫하면 이딴 놈이 될 수도 있었다.’
그가 이 세계에서 편하게 살 방법만 궁리했다면 시에로처럼 될 수도 있었다.
아이작은 시에로와 달리 이름 없는 혼돈의 선택을 받았고, 게임을 클리어해서 역사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에로에게는 들키면 언제 살해당할지 모르는 혈통만 있을 뿐이었다. 광기가 흘러넘치는 시대에 그 광기를 이용하는 법을 알아차렸을 뿐이다.
아이작은 시에로를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설득됐다는 것은 아니었다.
“고작 그게 널 따르는 사람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도망쳤으면서 하는 핑계냐? 쓰레기 같은 놈. 그따위 생각으로 집단을 이끄니까 시에로 여명군이 그 모양 그 꼴이지!”
아이작은 남은 귀 한 짝까지 떼어낸 뒤, 그의 얼굴을 한 번 더 후려갈겨 이빨을 몽땅 뽑아냈다. 엉망이 된 시에로는 더 이상 비명도 못 지르고 널브러졌다. 갈라진 시에로의 목에선 색색거리는 신음만 흘러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가 죽을 자리는 이곳이 아니었다. 시에로가 죽을 자리는 그가 끌어모은 부하들이 학살당하는 현장이었다.
아이작은 놈이 출혈로 죽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 뒤,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이제부터 너는 네 선택에 책임을 지게 될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거야. 도망 못 쳐. 죽어도 내가 널 살려 내서 책임지게 만들 거다.”
시에로의 흐리멍덩한 눈에 의문이 담겼다. 아이작은 그 눈빛도 마음에 안 들어서 뺨을 한 대 더 갈긴 다음 말해 줬다.
“지금부터 크란에 고립된 네 쓰레기들을 구출하러 간다. 네 처분은 거기서 네가 보여 주는 모습에 따라 결정하겠다.”
***
아이작은 시에로의 목덜미를 쥐고 성큼성큼 다시 그을린 황야를 향해 걸어갔다. 시에로는 비척거리면서도 자포자기한 듯 아이작이 가는 방향을 따라 걸었다.
아이작은 불쾌했다.
이 세상에 도래한 이래 이렇게 불쾌한 적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할 수 있는 총력을 다해 크란이라는 도시를 싹 쓸어버리고 싶었다.
시에로와 시에로가 남긴 흔적을 싹 다 지워 버리고 싶다는 이유로.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그러자 이름 없는 혼돈이 아이작의 동요된 감정 상태를 지적하듯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작은 한번 심호흡을 하고, 자신의 분노가 비정상적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가 시에로에게서 느낀 불쾌함은 거울 속 자신에게서 용서할 수 없는 결점을 본 듯한 분노였다.
아이작은 시에로가 살아남을 방법이 이 길밖에 없었다는 것도, 자신의 재능을 활용할 방법이 이것뿐이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했다.
이해가 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었다.
만약 이름 없는 혼돈의 가호가 없었다면, 게벨이라는 친절한 스승이 없었다면, 수도원장이 청렴하고 성실한 인품으로 고아들을 돌봐주지 않았다면 자신도 이런 꼴이었을지 모르니까.
그걸 부정하기 위해 더 분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그래서 아이작은 그걸 정정하기 위해 시에로를 끌고 가고 있었다.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이 쓰레기에게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아이작은 시에로를 위해 죽기 살기로 도와줄 생각이었다. 이름 없는 혼돈이, 게벨이, 수도원장이, 그에게 친절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동안 시에로에게도 이 세상에 선의가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세상은 악의만큼이나 선의도 충분하다고. 운이 나빠서 너를 피해 갔을 뿐, 썩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그 과정에서 시에로가 충분히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 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작은 평생 찜찜함을 안고 살아가야 할 테니까.
***
터벅.
멈춰 선 아이작의 눈앞에 거대한 바위 절벽과 우뚝 솟은 검은 성채가 보였다. 그리고 그 밑에 엄청난 숫자의 좀비 떼들이 허우적대며 물결치고 있었다. 지성이 희박한 좀비들에게는 성벽은 넘을 수 없는 장벽이다. 덕분에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크란의 성채는 아직 저항 중인 것 같았다.
‘진짜 위협은 저놈들이겠군.’
아이작은 허공을 날아다니는 팬텀스티드 서넛을 자세히 주시했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언데드를 부활시키는 것은 보통 리치의 몫이므로 어딘가에는 리치도 있을 것이다.
자포자기한 모습이었던 시에로는 물결치는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들을 보자마자 허겁지겁 허리를 숙였다.
“자, 잠깐만. 서, 설마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왜 아니겠나?”
“잠깐, 그 드래곤도 없고, 자네가 이끈다는 그 이사크레아 여명군은 어디 가고 혼자…… 으아아악!”
아이작은 시에로를 질질 끌고 좀비 대군을 향해 뛰어들었다. 루앗딘 열쇠가 첫 일격에 단숨에 좀비들 서넛을 허수아비처럼 베어 넘겼다.
아이작이 던진 첫 일격은 좀비 군세를 조종하는 의지에 의해 즉시 포착되었다. 군체가 일제히 반응하듯, 성채를 둘러싸고 있던 좀비들이 아이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아아악! 악!”
시에로는 비명을 지르다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좀비를 향해 불꽃을 내뿜었다.
기초적인 발화 기적. 시에로가 사제를 사칭하고 다닐 정도라면 어느 정도 기적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아이작의 예상이 맞았다.
네필림은 부모의 기적을 훔쳐 쓴다. 이걸로 시에로의 모계인지 부계인지, 어느 한쪽은 빛의 법전 쪽 천사라는 게 확인된 셈이었다.
‘설마 형제는 아니겠지. 복잡한 사정은 나 하나면 충분한데…….’
어쨌거나 시에로의 필사적인 저항과 아이작의 검기가 파죽지세로 언데드 대군을 갈랐다. 불꽃의 궤적이 좀비 대군을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연히 오래 갈 수 없는 미친 짓이었다.
“그어어어!”
좀비들이 막대한 숫자를 이용해 아이작을 짓눌러 왔다. 아무리 약한 좀비라 해도 그 질량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아이작이라도 수 톤의 압력이 짓이기기 시작하면 육회 비슷한 것이 되어 버린다.
아이작은 이런 상황에서 유용한 검술을 하나 알고 있었다.
키릭, 카드드득.
아이작은 뼈와 살에 턱턱 부딪히는 팔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어떤 검술 동작을 따라 했다. 이내 폭발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단숨에 주변의 좀비들을 찢어발겼다.
콰르르릉! 아발란체 검술 특유의 산사태가 일어나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자 좀비들은 소리의 속도를 따라 파도치듯 파동을 일으켰다. 그 굉음은 시에로의 고막을 터뜨린 것은 물론, 주변을 맴돌던 데스나이트들의 관심을 충분히 끌었다.
“아, 으아, 으어어…….”
“바보처럼 굴지 말고 따라와.”
아이작은 고막이 나가 휘청거리는 시에로를 붙들고 다시 성큼성큼 걸어갔다. 손바닥에서는 벌써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발란체 검술로 박살 낸 좀비들보다 훨씬 더 많은 좀비들이 다시 또 몰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 폭음은 충분히 신호가 되었을 것이다.
이 소리를 듣는 모두에게.
쇄애애애액! 팬텀스티드가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아이작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이작은 이번에도 익사자의 손길을 사용했지만, 녀석은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급상승하며 회피했다. 아이작에게 먼저 당한 데스나이트가 보고를 게을리하지 않은 모양이다.
“성배기사! 진짜 그 성배기사로군!”
“인상착의가 같다. 알 레트마 님께 보고해.”
데스나이트 하나가 재빨리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러나 아이작은 그걸 얌전히 봐 주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아이작은 다시 한번 이삭 검술:익사자의 손길을 더 빠르게, 그리고 더 정교하게 발동했다. 그 순간 도망치던 데스나이트가 고꾸라지면서 팬텀스티드에서 추락했다.
본 적 없던 묘기에 데스나이트들이 경악했다. 애초에 익사자의 손길은 먼 거리에 있는 상대를 끌어당기기 위한 기술이다. 위력은 경감되지만 넘어뜨리는 것 정도는 간단하다.
떨어진 데스나이트는 분노한 듯 투구 안쪽 푸른 불빛을 넘실거리며 뭐라 소리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창날이 놈의 배를 꿰뚫었다.
“시에로 사제님!”
바로 크란 요새에서 뛰쳐나온 시에로 여명군 무리였다. 놈들은 요새 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시에로가 달려오는 모습을, 아이작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요새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시에로 사제님, 무사하십니까!”
“돌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시에로 사제님!”
고막이 나간 시에로는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목숨 걸고 뛰쳐나오는 모습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데스나이트는 자신의 배를 꿰뚫은, 물론 일개 민병대원이 데스나이트의 갑옷을 뚫을 수는 없기 때문에 단지 망토를 찌른 것에 불과했던 민병대원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 순간, 소리 없이 아이작의 검날이 놈의 머리통을 수직으로 베어냈다.
그리곤 한 손으로 시에로의 목덜미를 잡아 여명군 무리 쪽으로 떠밀며 속삭였다.
“자, 네 부하들이다. 저들이 네 마지막 기회다.”
물론 시에로는 듣지 못했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민병대원들의 모습을 보고 그 의미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연재] 죽은 신의 성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