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16)
316화. 너의 가격은 (1)
당연하게도, 시에로가 이단심문관을 따돌리는 일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시에로가 ‘이단심문관을 맞이할 준비를 하겠노라’며 자신의 짐을 챙기러 갔을 때, 이미 그곳에는 이단심문관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시에로의 행동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도망치다가 걸린 게 아니라 마치 만나러 찾아온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었다.
“시에로 사제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솔트나 컬베인이라고 합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 사내는 이단심문관이라 믿기 힘든 굵은 몸매에 평범하고 선량한 인상의 30대 남자였다.
하지만 어깨에 단 붉은 갈까마귀 견장을 본 순간 이미 시에로는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이단심문관 중에서도 교황청 직속으로 움직이는 중앙의 이단심문관들. 교단의 사형집행관들이라 불리는 자들의 표식이었다.
시에로가 얼어붙어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자, 솔트나는 빙긋 웃으며 손뼉을 짝 쳤다. 그제야 시에로는 정신이 번쩍 들어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갑자기 찾아와 놀라신 모양이군요. 하지만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시에로 사제님을 뵈러 찾아온 것이 아니니까요. 아, 아예 아니라고는 못하겠군요. 시에로 사제의 훌륭한 인성과 업적을 치하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제 인성과…… 업적이요?”
“불사 교단의 사악한 술수로 인해 여명군이 양 떼같이 흩어지는 와중에, 오직 시에로 사제님께서 오롯한 등대처럼 죽음과 추위의 폭풍우로부터 크란 요새를 지켜내시지 않았습니까? 칭송받아 마땅한 훌륭한 업적입니다. 천사들도 흡족해하실 겁니다.”
시에로는 소문이 어디부터 와전된 건가 생각했다.
자신은 아이작에게 질질 끌려갔을 뿐이고, 요새를 지켜낸 것도 아이작이며, 마침내 요새를 구원한 것 역시 아이작이 불러들인 엘릴의 군대였다. 시에로가 한 것은 엉엉 울면서 끌려다닌 것밖에 없다.
그러다 곧 자신의 생각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단심문관의 입 밖에 나온 이상,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교단이 ‘이것이 진실이다’라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교, 교단의 성려에 감사합니다.”
불과 며칠 전의 시에로였다면 이런 날로 먹은 업적에 흡족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어 하나하나를 내뱉는 것이 꺼실꺼실한 밤송이를 토하는 것 같았다.
솔트나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다소곳이 모았다.
“심지어 기적이 사제님의 몸에 임하기까지 하였으니, 누구도 더 이상 시에로 사제님의 권위를 의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대로 쭉 업적을 쌓아가시면 마침내 천년 왕국이 세워졌을 때, 시에로 사제님 역시 높은 권좌의 곁에서 이름 불리는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저 역시 그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뛰는군요.”
“감사, 감사합니다…….”
성체에 대해 언급되자 시에로는 반사적으로 손으로 모아쥐고 만지작거렸다. 이단심문관 앞에서 그나마 떳떳할 수 있는 부분은 성체뿐이었다.
찬사의 말들이 이어졌지만, 시에로는 잠시도 안심하지 못했다. 이런 치하의 말 따위는 그냥 전령 사제를 보내도 충분하다. 굳이 이단심문관, 그것도 중앙의 이단심문관이 파견되었다는 것은 십중팔구 누군가를 매장할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건 그렇고, 최근 귀한 분을 만나 뵈었다고 들었습니다.”
솔트나가 눈을 깜빡이면 눈꺼풀로 바늘을 쏘지 않을까, 손가락을 까딱이며 독 분무가 뿜어져 나오지 않을까 하며 긴장하던 시에로는 의외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누굴 가리키는 말인지는 분명했다.
“에, 에델레드 폐하 말씀이십니까?”
솔트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예. 아이작 이사크레아 경을 만나 뵈었다고 들으셨습니다.”
또 한 번 이단심문관에 의해 시에로의 발언이 정정되었다.
여기서 시에로가 아니라고 부정하면 이단심문관의 기기묘묘한 방법에 의해 진실의 즙이 짜여지는 수가 있기 때문에, 시에로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맞습니다. 성배기사가 저를…….”
시에로는 아이작은 찬양하려다가 문득 ‘이단심문관이 그를 왜 찾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벌어진 일도 아이작의 업적이 분명한데, 그 사실을 매장하고 자신에게 주려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시에로는 문득 소름이 돋았다.
그의 추정이 맞다면 아이작은 정상적인 성기사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찜찜한 무언가다. 단지 자신과 같은 네필림이기에 덮어주려 했을 뿐이었다.
“저를?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셨지요. 시에로 사제님?”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크란 요새를 지키는데 ‘조력’해 주셨지요.”
하지만 감히 이단심문관 앞에서 ‘진실’을 정정할 자신이 없었던 시에로는 적당한 타협안을 내밀었다. 크란 요새를 지킨 건 나다. 아이작은 도와주었을 뿐.
‘혹시 교단은 아이작을 견제하고 싶은 건가?’
선동과 협잡질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시에로는 예민하게 정세를 파악했다.
확실히 아이작의 이세크레아 여명군은 대활약을 하며 잘나가고 있다. 그 와중에 시에로 여명군은 말도 안 되는 처참한 패배를 겪었다.
교단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군요. 하지만 시에로 사제님의 활약에 비하면 크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이교도의 힘을 빌린 자의 활약이 어찌 칭송받을 만하겠습니까?”
묘하게 견제하는 듯한 발언까지. 시에로는 머리에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설마…… 교황청은 시에로 여명군과 이사크레아 여명군을 경쟁시키려는 건가?’
터무니없는 구도에 시에로는 오한이 솟아올랐다. 그렇게 되면 아이작이 지시한 ‘반전 운동’은 차치하고 더욱 열정적으로 불사 교단을 향해 뛰어들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솔트나의 질문들은 그 이상, 더 위험한 영역을 가리키고 있었다.
“성배기사를 곁에 두고 관찰하면서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들어본 적 없는 기도문을 읊조린다거나, 수상한 사역마를 두고 있다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지식을 알고 있다거나 하는 등의.”
아예 대놓고 저격하는 질문들이 나오자 시에로는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이단심문관이 저런 말을 묻는다는 것은 ‘뭐라도 좋으니 음해해 봐라. 널 쥐어 짜내기 전에’라는 뜻이다.
질문을 던지는 솔트나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시에로는 솔트나와 눈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쳤다.
기이할 정도로 반짝이는 눈. 유리알 눈동자.
지독한 빛의 법전 광신도에게만 발현된다는 그 눈동자였다.
“자. 잘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교도와 어울리는 성기사를 가까이하는 것은 부정한 일인 것 같아서요.”
“그렇습니까? 하지만 크란 요새에서 발생한 불길한 검은 기둥에 대해 시에로 사제님께서 색다른 해석을 내놓으신 것 같았습니다만. 성배기사와는 제법 가까운 사이 아니었는지요?”
시에로는 무릎부터 허물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벌써 다른 병사들에 대한 심문을 마쳤단 말인가?
솔트나는 유리알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시에로를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시에로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물러났지만, 어느샌지 주변에 다른 이단심문관들이 몇 발자국 떨어져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기도문의 한 자라도 읊조린다면 그들이 단검을 빼 들어 목에 꽂을 것이다.
“피는 흘리던가요? 피는 무슨 색이었습니까? 홍채의 색에 대한 보고가 제각각이었는데, 어떤 게 맞습니까? 배교자 바테나 크란과 독대했다는 보고도 있던데 무슨 대화를 나눴습니까? 강력한 저주에 걸렸다고 들었는데 어떤 저주였는지는 아십니까?”
쏟아지는 질문의 폭포수. 무슨 기적이라도 깃든 것인지 단어 하나하나가 시에로의 마음을 후벼파며 구멍을 내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착각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성체 하나만으로는 교단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 애초에 황제가 그 뿔로 교황청을 들이받으려다가 무슨 일을 당했는가?
시에로는 피 대신 불경한 진실들을 토해낼 것 같은 충동을 느꼈다.
이 정도 압박은 이단심문관의 심문법 중 가장 가볍고 기초적인 것이다.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면 그는 절대로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만!”
그 순간 시에로의 본능이 눈을 떴다.
생존절대주의에 기반한 기만과 현혹, 선동, 협잡의 재능이.
“지금 감히 누굴 음해하는 것인가! 성배기사는 단신으로 언데드 대군을 뚫고 들어와 신도들을 구출하고 상을 바라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진 존귀한 이다! 그 훌륭한 인성과 업적을 치하하지는 못할망정 이런 음해라니? 교단은 성배기사의 공을 질투하는 것인가?”
갑자기 터져나온 시에로의 우렁찬 목소리에 솔트나는 움찔했다. 하지만 그의 눈이 동시에 더욱 가늘게 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에로는 지금 실패하면 어디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을, 핍박받은 신도에 대한 애타는 안타까움으로 바꿔 피를 토하듯 비난했다.
“물론 크란 요새를 지켜낸 것은 빛의 법전 신도들의 신앙심이 한데 뭉쳐 빛을 발한 덕분이다. 나는 그들의 빛을 한데 모았고, 성배기사는 칼로써 그들의 분노와 신앙을 표출했을 뿐이지! 여기에 누구의 공이 더 큰지 다툴 이유가 있는가?”
“뭔가 오해하신 듯합니다. 시에로 사제님. 저희는 그저 아이작에 대한 많은 의문점을 정리하고자…….”
“오해? 오해라고? 오해라면서 대체 왜 그런 수상한 질문을 일삼는 건가? 그리고 이교도라니? 엘릴 또한 같은 빛의 법전을 섬기는 신앙의 형제들이다! 빛을 섬기고자 여명군에 합류한 그들의 믿음을 깎아내리는 것인가?”
오히려 역으로 시에로가 질문을 쏟아낼 기세를 보이자, 솔트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주변을 살폈다. 시에로의 우렁찬 목소리 때문에 주변에 여명군 무리가 무슨 일인가 하며 몰려들고 있었다.
이단심문관들이 통제하기에는 너무 많은데다, 애초에 방금전까지 시에로의 연설로 인해 광신도의 반열에 들려던 자들이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이 까마귀 같은 놈들. 전쟁 끝나고 나니까 찾아와서 우리 사제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시에로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안심했다. 당연히 그가 감히 이단심문관을 말로 이겨보자고 한 것은 아니었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찾아오길 바랐던 것뿐이었다. 다행히 시간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았다.
까마귀는 사람이 모이면 도망간다.
이단심문관들도 이런 공개적인 장소는 심문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여긴 듯 물러서기로 했다.
“제가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 같군요. 사죄드립니다. 사제님.”
“괜찮소. 하지만 이런 불쾌한 일은 다시 없었으면 좋겠군.”
“물론입니다. 다음에는 좀 더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분위기로 이야기하지요.”
시에로는 저 발언이 협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화를 낼 틈도 없었다.
이단심문관들은 금방 돌아서서 여명군 행렬을 빠져나갔다. 뒤늦게 도착한 여명군 병사들은 서둘러 시에로 곁으로 모여들었다.
“시에로 사제님, 괜찮으십니까?”
“어디서 저런 무례한 자들이 나타나서…….”
“아니, 아니. 괜찮다.”
시에로는 숨을 가다듬으며 방금 전의 만남을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무엇을 위한 만남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단심문관이 이렇게 접촉했다가 이렇게 쉽게 물러날 리가 없다.
분명 무슨 흉계가 있을 것이다.
***
“솔트나 청장님. 심문이 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 떠나도 괜찮습니까?”
“충분해. 저 광대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건 다 얻었다.”
솔트나 컬베인, 이단심문청의 수뇌이자 이단심문관들의 수장인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시에로 자체는 별거 아니지만, 그 유명세를 고려하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특히 새로 얻은 성체에 대해서는 더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방금 전에 알아낸 진실들을 자신의 팔에 앉아있는 갈까마귀에게 속삭였다.
“교황 성하께. 일전에 보고드렸던 바대로, 시에로는 네필림이 확실합니다. 각성한 성체의 상태로 보아 혈통은 세상의 화로, 혹은 빛의 법전으로 추측됩니다. 예상되는 명천사에 대해서는 별도로 보고서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처분이 취소되지 않았다면 이단심문관 한 명이 남아 사형을 집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아이작을 마저 추적하겠습니다. 끝.”
말을 마치자마자 까마귀는 날아올라 순식간에 하늘의 검은 점이 되었다. 까마귀는 다른 말이나 전령보다 더 빠르게 여명군 본대에 도착해, 교황 성하게 자신이 한 말을 똑같이 읊조릴 것이다.
까마귀가 날아가는 것을 보던 한 심문관이 입을 열었다.
“제가 남아서 사형을 집행할까요?”
“아니, 됐다. 처분명령은 아마 취소될 거다.”
“취소요?”
솔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에로는 그동안 너무 무능하고 통제가 불가능한 멍청이였어. 딱 여명군 분위기를 끌어내는 데까지만 쓸만했지. 여명군이 완전히 붕괴하기 전에 본대로 흡수했어야 했는데 황제며 올칸 규율이며 끼어드는 바람에 실패했다.”
솔트나는 아까 대화했던 시에로 사제의 열정적인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나아진 것 같군. 게다가 성체까지 각성했고. 등대지기께서는 도구 하나도 귀하게 여기신다. 아마 이 또한 등대지기께서 안배하신 대계겠지. 여명군 본대에 편입시킨 다음, 교황청의 선전용 사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 광대에겐 적절한 결말이군.”
시에로와 그의 병사들이, 흩어졌던 패잔병까지 합류한 여명군 본대에 합류한 것은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 뒤의 일이었다.
***
바닷바람이 아이작의 머리카락을 어지럽게 헤집고 지나갔다.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와 수없이 놓인 새하얀 돛과 배를 보면서 아이작은 모처럼 청량한 감상에 빠져들었다. 푸른 만을 둘러싼 새하얀 석벽의 도시는 전쟁과 겨울이 피해 간 것처럼 번화해 보였다.
이곳은 오드리프.
황금우상 상단의 본점이 위치한 제국 남부의 대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