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18)
318화. 너의 가격은 (3)
“오실 줄 알아? 그야 그렇겠지.”
아이작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카훌린을 거둬들였다.
샬록은 반경 수 킬로미터 안에만 있으면 아이작 위치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다. 아이작이 오드리프 항 근처에 도착한 지 하루가 지났으니 이미 진작에 알았을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도망치지 않은 걸 보니 일단 배신하진 않은 것 같았다.
샬록은 각본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엉덩이를 걸쳤다.
“군대와 함께 오실 줄 알았더니 혼자 오셨군요? 이사크레아 여명군의 명성이 자자하던데, 시에로 여명군은 반대로 크란 요새에서 머리 박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명군 본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살아남을지나 모르겠군요.”
“크란 요새라면 이미 해방됐다. 시에로 여명군은 후퇴했고.”
샬록은 놀란 표정을 했다가 재빨리 머리 굴리는 표정이 되었다.
아이작이 바로 동남쪽으로 가는 걸 봤으니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이제 이 정보를 어떻게 돈으로 만들지 궁리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가 딴 길로 새게 둘 생각이 없었다.
“거기서 귀찮은 저주를 붙여왔다.”
“귀찮은 저주요? 잠깐, 불사 교단의 저주입니까?”
“그래. ‘세금과 죽음은 피할 수 없다’라는 저주인데, 혹시 알고 있나?”
샬록은 경악한 표정으로 아이작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용건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건지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나 아이작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샬록은 난처한 얼굴로 뺨을 긁었다.
“어, 흠. 그게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 목에 현상금이 걸려있을 텐데? 그 액수에 변화나 어떤 형상이 보이지는 않나?”
“아니, 어떻게 제 재능에 대해 그렇게 잘 아시는지…… 으음,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성배기사님께 걸린 현상금은 레오노라 아가씨가 건 10만 닢이 전부가 아닙니다.”
“전부가 아니라고?”
“예. 정확히는 측정 불가였습니다. 지불하고 싶은 존재도, 지불을 저지하려는 존재도 있지만, 정가를 지불하는 게 가능한 존재도 없었습니다. 손가락 한두 마디씩 잘라 값을 매기는 거라면 가능하겠지만…….”
아이작은 샬록이 처음 만났을 때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탓하지는 않았다. 샬록이 자신의 재능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게임 상의 지식으로 어림잡아 말한 것은 자신이었다.
재산 밑천을 숨기려 든 샬록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 지금도 측정 불가라는 건가?”
“조금 변화가 생기긴 했습니다. 하지만 돈이 아니라 워낙에 추상적인 개념이라서 알 수가 없습니다.”
“추측도?”
샬록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람입니다.”
아이작은 잠시 생각했다.
목숨에는 목숨. 납득할 수 있는 세금 기준이다.
다만 불사 교단에서 누구의 목숨을 요구했는지가 관건이다. 구체적인 목숨을 요구했다면 아마 얼굴이 보였을 테지만, 추상적이라면 어떤 기준을 맞추는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난처하군.’
자기 목숨 살리자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이작에게도 껄끄럽다.
막상 그때가 되면 저지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썩 내키지 않았다.
그의 이런 점을 노리고 불사 교단이 세금을 매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든 저렇든 행동을 결정하려면 구체적인 세금 기준을 알아야 했다.
***
아이작은 잠시 생각을 마친 뒤 별다른 방법이 더 없겠다고 판단했다.
“어쩔 수 없군. 레오노라는 어디 있지?”
“레오노라 아가씨요? 그야 황금우상 상단 본점인 베시아 저택에…… 설마 찾아가시려구요?”
샬록은 레오노라의 재능을 모른다. 둘이 유사한 재능을 가졌음에도 삶의 방향성을 완전히 다르게 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안부 인사나 전하려고.”
“아, 그게…… 사실 이렇게 아이작 님이 성큼성큼 베시아 저택으로 가면 제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아, 아니. 사실 제 체면이 중요한 건 아니고요, 그래도 제가 용병대장으로서 밥값은 한 게 있어서요.”
“네 임무는 이미 실패했어. 그렇다고 쫓겨나진 않을 테니까 걱정 마라. 차기 상단주 지명권을 너한테 준다니까?”
어차피 아이작이 기대한 샬록의 역할은 ‘오드리프에 도착할 때까지 레오노라가 선을 넘지 않게 하기’에서 끝났다.
이미 오드리프에 도착했으니, 이제는 찾아가서 직접 본인에게 으름장을 놓으면 그만이다.
아이작은 점잖게 샬록에게 자존심 세우지 말라고 경고하려다가, 그의 말이 묘하게 끝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밥값은 해야겠다는 게 아니라 밥값을 한 게 있다고?’
똑똑. 무슨 뜻이냐고 추궁하려던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장님, 조명 준비됐는데 리허설 재개하시나요? 안 할 거면 퇴근시켜달라고 합니다.”
샬록을 기다리다 못해 직접 찾아온 배우들이었다.
아이작이 대충 대답해 돌려보내라는 손짓을 하자 샬록은 아이작의 눈치를 힐끗힐끗 보고는 한숨을 쉬며 문고리를 돌렸다.
쾅. 문이 살짝 열린 순간, 여배우가 부서지라 박차며 들이닥쳤다.
여배우의 손에 들린 스틸레토를 본 아이작은 샬록의 그 끔찍한 각본이 결국 사달을 일으켰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아이작에게 꽂혀있었다. 칼끝도, 발걸음이 향하는 곳도 정확히 아이작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콰득! 갑작스러운 기습에 아이작은 칼을 뽑아 들 틈도 없이 급히 왼손으로 스틸레토를 막아냈다. 왼손바닥이 꿰뚫렸지만, 통증은 거의 없었다.
아이작은 촉수가 드러나기 전에 여배우의 손목을 부러뜨렸다.
하지만 그때 이미 여배우의 다른 한쪽 손에는 또 다른 스틸레토가 쥐어져 있었다.
쉭, 쉬쉭! 스틸레토가 바람을 가르며 아이작의 목을 매섭게 연달아 찔러 들어갔다.
전문적인 솜씨. 그제야 아이작은 간신히 여배우의 가슴을 걷어차 뒤로 밀쳐냈다.
“샬록, 이 미친 자식이…….”
분명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걷어찼다. 하지만 여배우는 순식간에 부러진 뼈들을 원상복구 시키고 있었다.
샬록은 벽에 기댄 채로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하하, 성배기사님께서 하던 대로 계속 공격해도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고 왈라이카 인간사냥꾼을 고용해? 미쳐서!”
이미 아이작도 ‘웃는 문어’ 주점에서 듣기는 했지만, 설마 정말 그러기야 하겠나 싶었다. 부담이 너무 크다. 적대적 이교도라는 것도 그렇고, 뭣보다 흡혈 식인귀 집단을 어떻게 믿고 옆에 둔단 말인가.
그냥 흉흉한 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지만, 혹시 몰라서 극장에 들어오기 전에 헤사벨이 주로 머물던 장소를 참고해 주변을 수색했다.
어둡고 습하고 비좁은 곳. 바퀴벌레가 사는 곳과 비슷하다.
하지만 확인 결과 아무도 없었다.
샬록은 인간사냥꾼들을 숨겨둔 게 아니라, 대놓고 배우로 쓰고 있었으니까.
아이작은 뒤이어 뛰어 들어오는 다른 배우들을 보고 주저 없이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붉은 성배 클럽의 신도들의 외모는 평균적으로 아름다우니 배우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겸사겸사 흡혈 식인귀들을 배우로 쓰자는 발상을 하는 미친 자는 게르토니아 신성제국 안에 샬록 밖에 없을 것이다.
쾅, 쿵! 아이작을 따라 나온 인간사냥꾼들이 벽을 따라 뛰거나 지붕 위로 뛰어오르며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오드리프에 회자될 악몽 같은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
아이작은 빠른 속도로 거리를 내달렸다.
그는 베시아 저택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안다. 때문에 가야 할 길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오드리프가 제국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이며, 이런 외곽에서 베시아 저택이 있는 곳까지는 사람의 발로 아무리 빨리 달려도 한나절 가까이 걸린다.
특히 갑자기 어디선가 불쑥불쑥 추적자가 튀어나오는 상황 속에서는.
쉭, 터텅! 매섭게 날아든 화살 너댓 발이 아슬아슬하게 아이작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화살이 벽과 바닥에 꽂힌 순간, 폭발하듯이 붉은 창칼들이 솟아올랐다. 아이작은 저 너머의 색채로 빠르게 몸을 휘감아 급소를 방어할 수 있었지만 몸 곳곳에 상처가 생겼다.
단숨에 창칼에 꿰어 난도질당할 뻔한 아이작은 이를 갈았다.
‘보통 인간사냥꾼들이 아니야. 적어도 왕가 친위대급인데?’
왈라이카 왕국은 다른 국가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계급주의적 사회다. 혈통이 바로 계급이자 힘의 기준이다. 그중에서도 왕가 친위대는 세 갈래의 왕족 혈통 중에서도 공식 승계 서열에 끼우기 애매한 자들이 임명되는 자리다.
즉, 개개인의 자질 차이는 있어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최소한 처음 만났을 때의 헤사벨 수준이라는 뜻이다.
물론 지금의 헤사벨은 그때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성장하긴 했지만, 처음 만났을 때에도 결코 약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때도 아이작은 헤사벨을 촉수를 쓰지 않고는 이길 방법이 없었다. 특히 지금은 잘난 공녀님이 아니라 무리 지어 사냥하는 전문 사냥꾼들이니 더 위험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놈들을 고용한 거지? 돈에 움직일 놈들이 아닌데?’
콰콰쾅! 하늘에서 핏방울들이 흩뿌려지는가 싶더니 수십 자루의 창들이 아이작을 노리고 쏟아져 내렸다. 아이작은 욕설을 중얼거리며 카훌린으로 창날들을 후려갈겼다. 예리하기만 할 뿐 강도 자체는 약한 것인지 쉽게 부서졌지만, 인간사냥꾼들의 목적은 성공했다.
아이작이 거리로 빠져나가기 전에 멈춰 세운다는 목적을.
탁, 타타탁. 벽과 창문, 지붕, 골목 곳곳에 순식간에 붉게 빛나는 눈동자들이 채워졌다. 모두 하나 같이 빼어난 외모의 선남선녀들이었지만, 얼굴은 무표정하고 진한 혈향을 풍겼다.
“공격하지 않고 저지한다는 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거겠지. 뭐냐?”
아이작은 이들이 이유 없이 샬록에게 고용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보았다.
아마 돈이 아닌 맞아떨어지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작은 이미 그 목적을 대충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예측대로, 골목 한쪽에서 모피코트를 걸친, 퀭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 걸어 나왔다.
붉은 성배 신도, 그중에서도 계급이 높은 사람이 눈에 띄게 늙거나 피로한 모습을 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왈라이카 사회에서는 외모가 곧 계급이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외모에 신경 쓰지 못할 정도의 압박을 받고 있으며, 동시에 그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격이 높다는 뜻이다.
“헤사벨은 어디 있나?”
그녀의 첫마디가 떨어진 순간 아이작은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이다.
“하스텔 굴마르 공작?”
어지간해서는 자신의 성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이 히키코모리 여공작이, 자신의 영지, 국토를 넘어서 심지어 적대 신앙의 영토에 발을 디뎠다.
이유야 뻔했다.
지금 굴마르 가문은 ‘빛의 법전 성배기사의 수족’으로 일하고 있는 헤사벨 때문에 얼굴을 못 들고 있을 테니까. 심지어 분열 예식도 회수하지 못하고, 가호해주던 천사도 침묵에 빠졌다.
결국 공작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헤사벨, 분열 예식. 두 가지만 내놔라. 그럼 놓아주겠다.”
하스텔 굴마르는 피곤해서 더 할 말도 없다는 듯, 신경이 잔뜩 곤두선 말투로 말했다. 아이작은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기다리고 있으면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혹시 돌아가서 기다릴 생각은 없어?”
아이작은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엘릴이 아이작에게 의뢰한 것도 그거였으니까. 하지만 하스텔은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녀는 화를 낼 힘도 없다는 듯 손가락을 흔들었다. 하스텔을 호위하기 위해 함께 한 인간사냥꾼들은 일제히 스스로가 화살이 되어 날아들었다.
아이작 역시 맞대응으로 난리를 치려 한 순간, 하늘에서 다른 누군가가 또 떨어졌다.
“만 개의 칼날 사이로 꽃들이 흩날렸노라!”
까드드드드득! 갑작스럽게 골목에 피어난 무수한 강철의 꽃잎들이 만개했다. 인간사냥꾼들은 졸지에 칼날 폭풍으로 몸을 들이민 꼴이 되었다. 수많은 칼날들이 피에 물들어 등불에 비산하면서 보석 같은 형상으로 빛났다.
인간사냥꾼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 상처를 수복했다. 밤이고, 기껏 해봐야 찔리거나 베인 상처뿐이었기에 회복은 빨랐다. 문제는 이 새롭게 등장한 존재였다.
아이작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시드리크를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샬록이 고용했다는 엘릴의 소드마스터가 너였나?”
“일단은 돈 받았으니 적대관계인 걸로 해두지요. 이 자의 목숨은 나의 것이다. 이빨을 보이지 마라, 감히 탐내지 마라! 아름다운 짐승들아!”
어쩐지 에델레드가 끌고 온 군대에 안 보인다 했다.
하기야 시드리크야 원래 자유롭게 방랑하던 사람이니 갑자기 군대와 함께 행동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소드마스터의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다. 곤란한 타이밍에 마주하게 되니 꽤 반갑기도 했고.
그때 하스텔이 찌푸린 얼굴로 시드리크를 향해 쏘아붙였다.
“시드리크 경, 자네가 성배기사를 잘 안다기에 내 부하들에게 찝쩍대는 것도 봐주고 있었다. 샬록에게 우리를 고용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것도 자네였다면서, 이렇게 욕심부리긴가? 그렇게 독점할 거면 애당초 혼자 싸우지 그랬나?”
아이작은 시드리크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시선을 회피할 뿐이었다.
샬록이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인간사냥꾼을 고용했나 했는데 ‘믿는 구석’이 바로 시드리크였던 것이다. 심지어 시드리크의 추천으로.
결국 아이작의 시선을 견디다 못한 시드리크가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인간사냥꾼들은 이미 도시에 와 있었습니다. 솔직히 헤사벨 양이 했던 말도 있으니, 한번 만나보고 싶더군요.”
“제발 어디 안 보이는 데 가서 죽어.”
“헤사벨 양에게 이르진 말아주십시오.”
아이작이 분을 삭이며 씨근거렸다.
몰래 잠입해서 판을 뒤집을 생각이었나 하고 기대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정도로 머리가 좋은 인간이 아니었다.
아이작, 시드리크, 인간사냥꾼들이라는 기묘한 삼각구도 속에 아무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 균형은 오래가지 못하고 깨졌다. 아이작은 밤하늘 너머에서 끔찍한 귀곡성이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었다.
무엇인지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이작은 행동 방침을 정했다. 무조건 저 소리가 안 나는 방향으로 도망치기.
그 방향에 인간사냥꾼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아무튼 저것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에.
끼아아아아…….
새롭게 복구된 수확자의 대낫이, 갈라진 구멍과 틈새로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내며 오드리프 상공에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