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19)
319화. 너의 가격은 (4)
“저건 대체 뭐야?”
하스텔 굴마르 공작은 눈살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리는 날카로웠지만 선명하게 보이기에는 먼 거리였다. 오직 저게 뭔지 아는 아이작만이 바로 대응했다.
아이작은 바로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앞을 가로막고 있던 인간사냥꾼들이 일제히 일제히 스틸레토를 뽑아 달려들었다.
“꺼져라!”
아이작은 카훌린을 뽑아 단숨에 내려쳤다.
얇은 스틸레토는 묵직한 장검인 카훌린에 닿자마자 부서졌다. 하지만 그것은 습격자들이 의도한 바였다. 인간사냥꾼들의 피로 이루어진 스틸레토는 부서지자마자 녹아내리듯 형상을 뒤틀면서 카훌린을 붙잡았다.
동시에 다른 인간사냥꾼들이 아이작의 갑옷 빈틈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검술에 익숙한 기사를 사냥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아이작 역시 그런 사냥 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마침 카훌린에는 이런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어 있었다.
우두둑! 아이작이 가볍게 손목에 힘을 주고 뒤틀자, 카훌린을 움켜쥐고 있던 혈액의 구속구들이 단숨에 으스러지며 깨져나갔다.
아이작이 깨뜨린 혈액의 구속구는 안쪽부터 시커멓게 변색되어 말라붙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인간사냥꾼들은 당황했지만, 뒤로 빠지기에는 너무 깊게 들어온 상태였다.
아이작은 곧바로 풀려나온 카훌린을 휘둘러 인간사냥꾼 둘을 연달아 베어 올렸다. 한 명은 가슴을 길게, 한 명은 어깨부터 허리까지 베였다. 큰 부상을 입은 둘은 휘청거리며 쓰러졌지만, 몸 안에 피가 남아있는 한 복구가 가능한 상처였다.
“컥, 허억……!”
그러나 기대와 달리 수복은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커멓게 변색된 상처 부위는 복구는커녕 피가 멎지도 않은 채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상처보다 피를 흘리는 것이 흡혈귀에겐 더 치명적인 상황이었기에, 다른 인간사냥꾼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아이작이 크란 요새에서 수확자의 대낫을 파괴하면서 새롭게 획득한 ‘변질된 카훌린’의 능력이었다. ‘산 자에게는 생명력 갈취 효과, 죽은 자에게는 영체 타격 효과’는 붉은 성배 신도들에게 끔찍한 상성을 보였다.
아이작은 카훌린이 놈들에게 충분한 공포를 주길 바랐지만, 그러기엔 인간사냥꾼들 역시 정예한 병력들이었다.
“거리를 벌리고 석궁을 쏴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스텔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인간사냥꾼들은 미끄러지듯 벽을 타고 올라가며 아이작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아이작은 원하던 바를 이루었다.
그는 또다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
“놈의 팔다리를 자르고 창에 꿰어놔라! 튼튼한 놈이니까 죽진 않겠지!”
도망치는 아이작을 보고 하스텔이 히스테릭한 외침을 토해냈다.
그러나 거기에 그녀의 신경을 긁는 또 다른 방해꾼이 끼어들었다.
“놈은 내 몫이라고 말했소, 부인!”
“공작이다!”
시드리크는 아이작을 추격하려는 인간사냥꾼들을 빠르게 레이피어로 찔렀다. 인간사냥꾼은 막아보려 했지만 엘릴의 검사와의 정면승부, 그것도 쾌속을 장기로 삼는 소드마스터의 검술을 상대로는 포착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콱, 콰득, 콰직! 레이피어에 찔린 인간사냥꾼들이 연달아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레이피어로 입히는 작은 상처 정도는 인간사냥꾼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검은 오직 집도하듯 치명적인 부위만을 노렸다.
“심장, 간, 폐! 그대들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부위지!”
불사를 추구하면서도 육체를 포기하지 않은 붉은 성배의 신도들에게 내부 장기란 건드리기 어려운 문제였다. 온갖 기괴한 모습으로 몸을 변형시키더라도 내부 장기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들의 강력한 재생 능력으로도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부위가 있었다. 바로 혈액을 돌게 만드는 심장, 혈액 속에 담긴 기적이 원활히 작동하게 정화해주는 간, 그리고 혈액에 산소를 공급할 폐였다.
이 장기가 손상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인간사냥꾼으로서의 수준과 격이 나뉘었다. 그러나 그 모든 장기가 한꺼번에 손상되었을 때에는 누구라도 반응하기 힘들었다.
인간사냥꾼들은 재생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닌, 재생하기 전에 의식을 잃으면서 그 자리에 픽픽 쓰러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스텔이 이를 갈았다.
“네 녀석, 우리를 관찰했군!”
“하하, 그럼 내가 노닥거리기만 하려고 너희 흡혈귀들과 어울렸겠나?”
솔직히 하스텔은 시드리크를 얕보고 있었다.
엘릴의 소드마스터라고 했지만 너무 쉽게 유혹당했고, 너무 빈틈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적당히 꼬드겨서 붉은 성배의 신도로 만들 생각까지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오히려 시드리크가 그동안 자신들의 약점을 분석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하스텔은 어쩔 수 없이 직접 나섰다.
시드리크가 문제가 아니다. 그녀의 목적은 아이작이었다. 이미 인간사냥꾼 몇 명이 우회해 아이작을 쫓고 있긴 했지만, 그들만으로 아이작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공작인 그녀가 직접 나서야 했다. 저런 녀석에게 발목을 잡힐 순 없었다.
그녀의 손끝이 지휘하듯 움직였다. 그러자 바닥에 쓰러졌던 인간사냥꾼들이 벌떡 일어났다. 그들은 관절을 기괴하게 비틀면서 시드리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시드리크는 황급히 다시 그들의 약점을 찔렀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의 내장은 여전히 파괴당한 상태 그대로였다.
“좀비? 아니, 설마…….”
하스텔은 인간사냥꾼의 몸속에 흐르는 피를 조작해 그들의 몸을 인형처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관절이고 근육이고 상관없이 걷거나 뛰는 동작만 수행하면 충분했기 때문에 그 형태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하스텔은 인간사냥꾼 하나가 시드리크 가까이 다가가자 오른손으로 비틀어 쥐어짜는 시늉을 했다. 동시에 인간사냥꾼의 몸이 폭발하면서 수백 개의 단검이 되어 시드리크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런 사악한!”
시드리크는 황급히 피의 단검들을 쳐냈지만 전부 막아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단검들 중 일부는 인간사냥꾼의 뼈와 근육이었던 것들과 이어져서, 기괴하고 끔찍한 형태로 시드리크를 찔러 들어갔다. 결국 시드리크는 적지 않은 상처를 입고 간신히 튕겨 나가듯 물러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시드리크의 몸 곳곳은 상처투성이었다. 단검이 박힌 순간 형태를 바꾸면서 상처가 더욱 커진 탓도 있었다.
“왈라이카의 공작이 우습게 보이나, 엘릴의 개야. 내 몸에도 엘릴의 피가 흐른단다. 너희들보다도 더 진하다고 할 수 있지.”
왈라이카의 왕족들, 세 공작가는 번갈아 가며 왕이 되지만 모두 무희의 피를 마신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희는 엘릴의 자식이고, 공작들에게는 바로 그 무희의 피가 흐르니 엘릴의 혈통이 흐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스텔은 비아냥대며 시드리크를 마무리 지을 공격을 준비했다.
그때 그녀가 싸움에 집중하느라 듣지 못했던 귀곡성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하스텔은 지상 가까이 내려와 날아오기 시작한 대낫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저건 또 무슨…… 막아!”
심상찮은 기세를 느낀 인간사냥꾼들 몇 명이 피로 이루어진 그물망을 만들어 던졌다. 어지간한 강철과 비슷한 강도의 그물이었지만, 대낫은 허무하리만치 그물망과 인간사냥꾼들을 동시에 잘라내며 날아들었다.
쇄애애애액!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하스텔은 자신의 손바닥을 손톱으로 그어 피를 뽑아냈다. 그녀의 피에는 무희의 피가 섞여 흐른다.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성물과 같은 힘을 발휘한다.
하스텔은 수확자의 대낫을 향해 피로 이루어진 검을 휘둘렀다.
콰드드득! 한순간 수확자의 대낫이 멈칫거리는가 싶은 순간, 그녀의 시선이 거꾸로 돌았다.
하스텔은 뒤늦게 자신의 피로 만들어진 검이 박살 났으며, 동시에 대낫이 자신의 허리를 잘라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작님!”
인간사냥꾼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대낫은 하스텔에게 관심도 두지 않고 바로 어딘가를 향해 다시 날아갔다.
아이작이 사라진 방향이었다.
“괜찮다. 가벼운 상처야.”
상반신과 하반신이 나뉜 사람이 하는 말치고는 농담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하스텔은 이미 잘려 나간 하반신을 피 안개로 변형시켜 자신의 몸에 이어 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간담이 서늘한 순간이었다. 그녀의 수백 년 인생에서 이런 굴욕적인 순간은 처음이었다.
‘방금 그건…… 불사 교단의 기적인가?’
천사에 비견되는 신성을 품은 무구로, 강력한 죽음의 힘이 느껴졌다. 불사 교단의 기적이 분명했다. 하스텔의 피가 품은 신성으로는 죽음의 신성을 견디기 어려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사 교단의 기적이 아이작을 노리고 있던 것이다.
저 기적의 목표가 온전히 아이작만을 향해서 하스텔이 살아남은 것이지, 그녀를 노린 공격이었다면 즉사했을 것이 분명했다.
“시드리크는…… 벌써 도망쳤군.”
하스텔이 수확자의 대낫에 잘린 사이, 시드리크도 바로 사라져버렸다. 하스텔은 시드리크에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아이작이다.
하지만 시드리크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시드리크는 협조자가 아니라 적이다. 애초부터 견제하고 감시할 목적으로 접근한 것 같군. 만나면 즉시 적으로 간주하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명백한 사실이었으나, 하스텔은 정확히 명시했다.
머리가 아팠다. 오드리프로 와서 아이작을 사냥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체 얼마나 많은 세력이 아이작을 노리고, 동시에 아이작을 비호하고 있는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아이작을 계속 추적하시겠습니까?”
인간사냥꾼 하나가 물었다. 하스텔은 당연히 그러겠다고 하려다가 문득 생각을 바꿨다.
정직하게 추적해서 정직하게 잡는 것은 역시 효율이 떨어진다. 붉은 성배의 교리답지도 않다.
“아이작이 레오노라 베시아에게 원한이 있다고 했나?”
하스텔은 아이작이 어디로 가는지 알 것 같았다.
사냥감을 추적하는 것보다는 함정을 파두고 잡는 것이 붉은 성배의 방식이었다.
***
시드리크와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은 다수의 인간사냥꾼들은 계속해서 아이작을 추적 중이었다. 아이작은 오드리프의 복잡한 골목과 수확자의 추적, 인간사냥꾼들의 견제 때문에 제대로 베시아 저택을 향해 방향을 잡고 달리기가 어려웠다.
하나하나 잡는다면 문제가 아니지만, 다수의 문제가 하나로 엉키자 풀기 어려운 난제가 되었다.
아이작은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붉은 성배, 이거. 나한테 협조하겠다면서 헤사벨 붙여준 거 아니었나?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이런 자잘한 놈들이 따라붙는 거지?’
그때 아이작의 눈앞이 갑작스레 환해졌다. 오드리프의 뒷골목을 벗어나 번화한 대로로 나온 것이다. 대도시답게 오드리프는 늦은 밤임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로를 지나던 행상인 한 명이 갑자기 칼을 들고 튀어나온 아이작의 모습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아이작은 애꿎은 시민들이 휘말리지 않도록 서둘러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인간사냥꾼 하나가 지붕 위에서 아이작을 향해 석궁을 쏘았다.
다른 사람이 맞든 안 맞든 신경도 안 쓰는 궤적이었다.
석궁 화살이 행상인을 꿰뚫기 직전, 아이작은 왼손으로 화살을 막아냈다. 그의 눈에서 참다 참다 폭발한 분노가 흘러나왔다.
“이런 개자식이.”
순간, 아이작의 몸이 지붕 위까지 쏘아지듯 퉁겨져 올라왔다. 카훌린의 가속 능력을 발동시킨 것이다. 하루 세 번뿐인 능력을 이런 졸개들에게 쓰기는 아까웠지만, 어차피 세 번 다 쓴 적도 몇 번 없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지붕 위까지 달려든 적이 없었기에 인간사냥꾼들은 놀라며 황급히 석궁을 겨눴다. 그러나 아이작은 가공할 속도로 인간사냥꾼을 잘게 토막 냈다. 회복 속도가 따라잡을 수 없는 빠른 속도였다.
인간사냥꾼들은 아이작이 자신들을 벨 수 없도록 바퀴벌레들처럼 재빨리 온 사방으로 흩어져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아이작은 기어코 또 하나를 따라잡아 뒤통수를 틀어쥐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베는 대신, 머리를 움켜쥔 상태로 지붕에 내려쳤다.
우지끈. 지붕이 박살 나면서 아이작과 인간사냥꾼은 다락방으로 굴러떨어졌다. 아이작은 발버둥 치는 인간사냥꾼의 뇌에 저 너머의 기생충을 심었다.
콰드득. 기생충이 두개골을 부수고 뇌간을 파먹자 인간사냥꾼의 몸이 움찔움찔 떨리면서 멈췄다. 아이작은 그대로 인간사냥꾼에게 ‘혼돈의 자손’ 능력을 발동시켰다.
우득, 우드득.
삽시간에 기생충이 인간사냥꾼의 살과 뼈, 체액을 빨아먹으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변태하기 시작했다.
파스스스…… 마침내 얇은 허물을 찢으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헤사벨이었다. 그녀는 약간 피곤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이거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네요.”
혼돈의 권속을 소환하는 이 능력이 헤사벨에게도 통할지 어떨지는 아이작도 의문이 많았다. 괴물에 가까운 다른 권속들과 달리 헤사벨은 인간에 가까웠으니까. 그러나 몇 차례의 실험 결과 결론은 명확했다.
태생과 관계없이, 대상이 얼마나 혼돈─아이작의 선택을 받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
오드리프의 끔찍한 밤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개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