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갈까마귀가 우는 소리 (1)
아이작은 일단 대답하기 전에 침착하기 위해 애썼다.
아이작을 가리키는 호칭은 무수하게 많지만, 그는 한 번도 ‘유부남’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
심지어 아이작은 이솔데와 공식적으로 결혼식조차 올리지 못한 상태였다.
적당한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아이작은 벨만이 무안해하지 않도록 차분하게 대답했다.
“저는 레오노라 베시아 양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아버지, 설명 드렸잖아요. 저와 성배기사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레오노라도 변명을 덧붙였지만, 벨만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네가 평소에 이자에 대해 설명하던 것만 보면 맞는 거 같은데.”
대체 레오노라가 여기 있는 동안 자신에 대해 뭐라고 떠들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이런 비건설적인 대화에 관심 없었다.
“제 입장은 충분히 설명 드렸습니다. 설득이 더 필요하시다면 따님께 여쭈십시오.”
납득하든 말든 그것은 벨만의 몫이다. 거기에 대해 이해를 구걸하다시피 변명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이작의 단호한 태도에 벨만은 눈살을 찡그렸지만 조금 누그러진 듯 입을 열었다.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둘째 애가 조금 어휘와 발상이 남달라서 말이지.”
“그건 그렇지요. 오해하실 만합니다.”
아이작은 벨만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공감대를 만들려면 중간에 낀 사람을 흉보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벨만은 다시 또 눈살을 찌푸렸다.
“왜 오해지? 자네는 내 딸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나? 내 딸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나?”
“……저는 레오노라 베시아 양에게 비즈니스적 흥미 외에는 조금도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설명 드립니다. 저는 이미 결혼했으니 따님의 외모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아이작은 대체 이걸 얼마나 설명해야 하는 걸까 생각했지만, 벨만에게는 모범적인 답안인 듯했다. 그제야 슬며시 벨만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우면서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렸다.
“사업? 그렇지. 내 딸이 사업 하나는 잘하지. 성배기사의 위명은 많이 들었는데, 공과 사가 철저한 것이 아주 마음에 드는군.”
벨만은 아이작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아이작은 벨만이 생각한 것보다 팔불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이코패스 여자에게 정을 주기도 어려울 텐데, 저것도 저것 나름대로 대단하다.
“성배기사의 인품을 의심하다니, 실례했소. 사실 둘째 애도 혼기가 찰 만큼 찼는데, 짝을 전혀 찾아보려는 노력을 안 해서 말이지. 그러던 와중에 하루 종일 성배기사 이야기만 하니 신경 쓰일 수밖에.”
“이해합니다.”
심지어 상대가 유부남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때문에 아이작도 인내심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황금 우상 상단과는 꾸준히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기도 했고.
***
벨만은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레오노라와 아이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는 소파 손잡이를 탁탁 두들기다가 떠보듯이 물었다.
“레오노라와 문제가 있었지만 잘 해결됐다고 들었소. 손을 잡고 동업 관계를 맺기로 했다면서?”
“그렇습니다.”
“레오노라가 최근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사업이 뭔지 알고 있소? 사실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소만.”
“예. 사실 그것 때문에 이번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레오노라 양이…….”
그때 레오노라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대기 중이던 하인과 하녀들을 모두 내보내고 손수 접객실 주변에 커튼을 하나하나 치기 시작했다. 벨만은 레오노라가 커튼을 모두 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레오노라가 다시 돌아오고서야 벨만이 계속하라는 듯 찻잔을 흔들었다.
“……‘미다스의 손’을 찾고 있다지요?”
벨만은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벨만이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거요? 추궁하는 것은 아니고, 정말 궁금해서 그렇소. 다른 신앙과 엮인 적도 없고, 우리 신앙 안에서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정보거든.”
“계시를 통해 들었습니다.”
아이작은 이 세계의 만능 개연성을 꺼내 들었다. 자신이 이미 황금 우상 상단 승리 조건을 달성한 적 있다고 설명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벨만은 아이작의 대답에 쓰게 웃었다. 아무리 만능 개연성 언어라고 해도 벨만의 귀에는 ‘알려 줄 수 없음’으로 들린 것이 분명했다.
“신들께서 개입하셨다면야. 그러면 빛의 법전 교단도 알고 있소?”
“아니오. 저 외에는 모릅니다.”
이건 아이작도 자신할 수 있었다. 그의 대답에 벨만은 다소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사실 황금 우상 상단은 무력 집단이랄 것이 없기에, 신앙끼리 경쟁하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없다. 때문에 그들은 붉은 성배보다도 더 조용하게 계획을 진행시켜야만 했다.
“아버지, 말씀드렸다시피 성배기사님은 미다스의 손이 정확히 뭔지 모르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안다 해도 그 정도뿐일 거예요.”
레오노라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이작은 미다스의 손이 황금을 만드는 성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레오노라는 그것이 ‘틀렸다’고 말했다. 벨만도 그 이야기를 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하지만 미다스의 손이 뭔지 설명하기 전에 조건을 맞춰야 하오. 요식행위에 불과하지만, 성배기사께서 우리 부상단주와 ‘동업자’ 계약을 맺었다고 하니…….”
벨만은 손가락에 끼고 있던 많은 반지 중 하나를 꺼내 아이작에게 내밀었다.
보석이 없는 단순한 백금 반지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자 자글자글한 문양과 글귀가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이작은 이 반지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레오노라를 믿고 귀하를 ‘백금 결사대’에 초청하는 바요.”
백금 결사대. 황금 우상 상단 안에서도 최상위층 기밀조직이었다. 황금 우상 상단이 단순한 상인 조합을 넘어서 전 세계와 신앙들에 개입하고 쥐고 흔들어 댈 수 있게 만드는 비밀결사였다.
그들은 이익, 혹은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도시에 기근을 일으키거나 전쟁을 사주하는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
미다스의 손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대의 일루미나티나 프리메이슨 같은 조직이지…… 내가 여기 초대받다니 감개무량하군.’
아이작이 황금 우상 상단으로 플레이할 때에는 백금 결사대의 수족으로 활용되는 것이 전부였다. 그 과정에서 내분이 일어나 백금 결사대가 전멸하는 사태가 일어난 뒤로는, 레오노라의 개인적인 충견에 가까웠고.
‘그마저도 레오노라의 비인간적 행보에 질려서 결국 갈라서고 엔딩을 봤지.’
사실 그때 아이작과 함께 한 동료가, 아이러니하지만 샬록이었다. 이번에는 그 정도로 가까운 관계는 안 될 것 같지만.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상단주의 초대로 반지를 받았다. 타 신앙임에도 레오노라의 동업자라는 이유로 반지를 받다니, 벨만이 레오노라에게 보내는 신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이작은 백금 결사대에 대해 잘 모르는 척하며 반지를 받았다. 사실 이 반지를 받는다고 극적으로 뭐가 달라지진 않는다. 성물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특별한 능력은 없다. 단지 황금 우상 상단의 제한 없는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한도 없는 블랙카드라고나 할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지간한 기적보다 나을지도 모르겠군. 아니, 사실 나도 이쪽이 좋지만.’
아이작이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자 마치 맞춤형처럼 자연스럽게 딱 맞았다. 벨만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원래 백금 결사대에 가입할 때면 특별한 의식을 치르고 이명도 지어야 하는데, 아이작 군은 이미 미다스의 손에 대해 알고 있으니 생략하도록 하겠소.”
반지를 받자마자 호칭이 ‘성배기사’에서 ‘아이작 군’이 되었다. 아이작은 이 거리낌 없이 대하는 태도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럼 미다스의 손에 대해 설명하기 앞서, 우리 백금 결사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지. 백금 결사대는 455년 전, 당시 상단주였던 로헤르트가…….”
“아버지.”
레오노라가 탁 소리 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벨만은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가 불만 어린 태도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의식도 생략하고, 이명 짓기도 생략했다. 그런데 우리 결사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도 생략해야 하느냐?”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듣는 건 우리 가문만 짊어져도 되는 고통이에요. 아이작 님은 눈곱만큼도 관심 없을 테니 중요한 이야기나 하세요.”
“칫.”
연도를 이야기한 순간부터 의식을 멀리 떼놓고 멍때릴 준비를 하고 있던 아이작은 레오노라의 칼 같은 반응에 고마움을 느꼈다.
결국 벨만은 모든 앞선 설명을 다 떼어내고 중요한 몸통만 설명했다.
“미다스의 손은 ‘소원을 들어주는 성물’일세.”
“……소원이요?”
벨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작은 예상치 못한 미다스의 손의 정체에 당황했다.
“저는 황금을 만들어 내는 성물인 줄 알았습니다만.”
“흠, 그럴 수도 있지. 누군가는 황금을 아주 많이 갖길 바랄 수도 있을 테니. 하지만 그따위 것이라면 우리가 이런 결사대까지 만들어서 찾아다닐 필요가 없지 않나? 아니, 파괴하기 위해서 찾아다니겠군.”
황금 우상 상단이 ‘황금을 만드는 성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들었다.
아이작은 놀라긴 했지만 납득했다.
‘그러고 보니 황금 우상 상단으로 플레이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보상이 나오면 무조건 금전적 이득과 관련된 것으로 골랐었지. 그 선택지들이 누적되어서 결과에 영향을 준 건가?’
그 결과가 황금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다.
그 풍경을 떠올리자 아이작은 문득 ‘소원을 들어준다’는 단순명쾌한 성물이 얼마나 강력하고 엄청난 위력을 품고 있는지 깨달았다.
소원을 들어주는 성물에 대한 전설은 많고, 실제로 각 신앙마다 비슷한 성질의 성물도 가끔 있다. 하지만 모두 제한적이거나 만만치 않은 페널티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미다스의 손은 말 그대로 그것은 손에 넣는 것만으로도 세계를 짓밟아 버릴 수 있는 힘을 품은 성물이다.
아이작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런 성물이 제한 없이 풀려있어도 괜찮은 건가? 강력한 힘에는 그만큼 강력한 견제를 받을만한 페널티가 있을 텐데.’
그때 벨만이 말했다.
“사실 자네가 미다스의 손을 언급했을 때에는 상당히 놀랐다네. 사실 그 이름은 우리가 진짜 성물의 이름을 숨기려고 붙인 가칭이었거든. 다른 신앙이나 전설에서 단서를 찾아내더라도 매치되지 않게 하려고 말이야.”
“진짜 성물의 이름이요?”
그리고 벨만의 뒤이은 말을 들은 순간, 아이작은 미다스의 손이 품고 있는 엄청난 페널티를 깨달았다.
“그래. 미다스의 손의 진짜 이름은 ‘원숭이 손’이라네.”
***
옛날 옛적에,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어느 날 세 가지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원숭이 손’을 우연히 얻었다. 남자는 약간의 돈을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다음 날 아들이 사고로 인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죽고, 보험금으로 남자가 원하던 돈이 나왔다.
절망에 빠진 남자는 아들을 살려 달라는 두 번째 소원을 빈다. 그러자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환희하며 문을 열려고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참혹한 모습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남자는 황급히 아들을 무덤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세 번째 소원을 빈다. 그 뒤 문을 열어보자 보이는 것은 조용하고 황량한 거리뿐이었다…….
이것이 아이작이 ‘원숭이 손’이라는 설화에 대해 기억하는 대략적인 줄거리다. 소원을 이루어 주되, 결코 소원을 비는 자가 원치 않는 형태로 소원을 이루어 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
‘이 원숭이 손이 저 원숭이 손과 같으란 법은 없겠지만.’
하지만 그 정도 페널티는 있어야 미다스의 손이 품은 강력한 힘이 이해된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게임 속 캐릭터가 황금 좀 가지고 싶다고 해서 온 세상을 황금으로 물들이고 싶어 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것도 ‘원숭이 손’ 효과라면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애초에 ‘미다스의 손’ 설화도 욕심을 부리다가 파멸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지. 그렇게 보면 아예 대놓고 힌트를 준 셈이었군.’
아이작은 그리스도 없는 이 세계에 어떻게 공교롭게 같은 이름이 있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 세계에 끌려온 것도 이해 못 할 일이다.
어쩌면 아이작의 선배쯤 되는 그리스 철학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군요.”
오드리프의 성벽 밖. 레오노라는 아이작과 함께 걷고 있었다.
뒤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나무를 베고 풀을 자르면서 땅을 다지고 있었다. 그 유명한 ‘이사크레아 여명군’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군대가 전부 도시로 들어올 수는 없기 때문에 군영을 펼칠 땅을 미리 다져두는 식으로 환영 인사를 대신했다.
레오노라는 그 땅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손’ 이야기를 들은 뒤로 줄곧 그런 것 같은데, 무슨 고민인지 들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