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26)
326화. 갈까마귀가 우는 소리 (2)
아이작은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벨만과의 회담 자리에서 미다스의 손 정체가 원숭이 손이라는 것을 안 뒤로, 아이작은 적극적으로 성물을 되찾겠다고 하는 대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 모습이 벨만에게는 다소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신들이 찾고 있는 ‘손’이란, 사실 그렇게 편리한 물건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죠?”
아이작이 미칠 노릇이 이거였다.
원숭이 손 설화는 여기서 전해지지 않는 게 분명했으니까. 아이작이 끝까지 원숭이 손 찾기를 거절한다면 ‘단지 안젤라를 내어주기 싫어서 고집부리는’ 걸로 보일 수밖에 없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그 강력한 성물이 과연 아무런 제약도 없이 힘을 빌려주기만 할까?”
아이작은 카훌린을 검집에서 살짝 꺼냈다. 수확자의 낫을 흡수한 그의 독특한 칼날 형태에 맞춘 새로운 검집이었다. 이 역시 황금 우상 상단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이 칼은 엘릴이 전장에서 쓰던 칼이다. 하지만 이런 강력한 성물에도 한계가 있어. 심지어 나는 엘릴의 심장을 꺼낸 단검도 손에 넣은 적 있다. 그건 기적을 상대할 때는 유용하지만 사람을 상대할 때는 식칼만도 못했지.”
신들이 쓰던 성물이라 해도 만능은 아니다. 아니, 심지어 신들조차 그렇다.
그 어떤 신이라 해도 신도들을 100% 통제하고 자기 뜻대로 세상에 횡포를 휘두르진 못한다. 다른 신과 천사들의 견제를 받으니까.
그런데 알려지지 않은 성물 하나가 세상을 뒤엎을 수 있다는 것이 정상일까?
레오노라는 재밌다는 듯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흠, 신기하군요.”
“뭐가?”
“아이작 님은 ‘손’의 능력을 믿는군요. 저는 아버지께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노인네가 망령 들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마음 깊이 믿고 있지는 않아요. 다만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저 외에 다른 누구도 손에 넣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 사실 레오노라의 반응이 ‘소원을 들어주는 성물’에 관해 들었을 때 상식적인 어른이 보일 수 있는 성숙한 태도다. 세상에 칼이 하나밖에 없다면, 당장 누굴 해칠 생각이 없어도 일단 손에 넣고 보는 것이 안전하다.
하지만 아이작은 원숭이 손이 소원을 들어주는 것을 보았으니 할 말이 없다.
“당장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좋아요. 어차피 손을 회수하려면 한참 먼 미래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도 역경으로 가득할 테니까.”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다스의 손은 추측건대 성지 루아에 있다.
왜 다른 곳도 아니고 성지 루아에 있는 것일까? 어쩌면 불사황제 베셰크가 우르반수스와 지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장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거, 현재, 미래가 붕괴된 기괴한 공간인 탓에 원숭이 손 같은 특이점이 나타난 것일지도.
“가벼운 이야기나 해보죠. ‘손’이 있다면 어떤 소원을 빌 건가요?”
아이작은 죽어도 원숭이 손에 소원을 빌 생각은 없었지만 레오노라가 그런 이야기를 꺼내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소원이라.’
아이작이 이 몸에 처음 빙의했을 때 가졌던 목적은 ‘살아남기’였다. 그 소원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지만, 지금은 그 목적에서 가지가 뻗어나가고 성장하며 더 복잡해졌다.
‘더 강해지는 것’, ‘내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 ‘인정, 명예, 부’…… 하지만 그 중 소원을 빌면서까지 애타게 원하는 것은 아직 없었다.
“……그쪽부터 먼저 말해보지. 백금 결사대는 왜 그렇게 열심히 손을 찾아다닌 거지?”
“레오노라.”
“뭐?”
“레오노라라고 불러주세요. 그리고 계속 반말하면 나도 반말한다. 몇 살인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나보다는 어리지 않니?”
“네, 누나.”
아이작은 비꼬듯이 말했지만 어쩐지 레오노라는 썩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레오노라 양은 빌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까?”
아이작은 말 놓고 친근하게 이름 부르느니 차라리 존대하는 것을 선택했다. 여전히 레오노라는 아직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레오노라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도 소원을 빌지 못하면 좋겠어요.”
“예?”
“모든 사람이 아무에게도 소원을 빌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손’을 갖게 된다면 반드시 그런 소원을 빌 겁니다.”
아이작은 무슨 그런 역설적인 소원이 있나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그녀가 황금 우상 상단만을 해당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지칭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신앙의 신도들은 모두 저마다 자신만의 바람을 담아 기도한다.
자신의 신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다.
레오노라는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소원을 듣는 이도 들어주는 이도 없는 황금 우상처럼.
레오노라의 소원은 마치 신들의 파멸을 비는 것처럼 들렸다.
***
“아이작! 우리 성배기사! 역시 제일 먼저 왔군!”
“투할린,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이작은 웃으며 오드리프에 가장 먼저 도착한 세상의 화로 군대를 맞이했다.
산맥을 가로질러 온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드워프들과 늑대인간 무리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는 것은 상당히 괴상한 결과였지만, 세상의 화로가 숨겨둔 힘을 아는 아이작은 놀라지 않았다.
‘겔리퍼드 산맥 지하에 엄청난 규모의 지하도로와 도시가 지어져 있었지, 아마.’
아직 세상의 화로가 대륙에 영향력을 뻗치던 수백 년 전에 지어진 것들이지만 아직 쓸만한 것들이 많았다. 그들은 그 지하 도로망을 통해 겔리퍼드 산맥 곳곳에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며 오크들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그들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아이작과 인연이 깊은 곳도 있었다.
“아리엣 수도원을 포위하고 있던 오크들을 물리쳤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 머물던 수도원이었지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리엣 수도원은 아이작이 들를까 말까 한참 고민했던 장소였다.
하지만 그때 아이작은 샬록에게 쫓기고 있었고, 겨우 여유가 생겼을 때에는 시에로 여명군, 그리고 수확자에 관련된 문제에 연달아 휘말리면서 여유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투할린이 아리엣 수도원을 들러 구원해준 것이다.
“안 그래도 거기 수도원장이 자네 이야기를 하더군. 어릴 적부터 싹수가 대단했다던데? 기적을 발휘하는 능력은 낙제점이었지만 말이야.”
아이작은 쓴웃음을 지었다.
수도원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작은 예브하르 수도원장의 인정을 받아 어설프게나마 견습 사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 의미 없지만.
“거기 수도원장이 자네에게 전해 달라는 이야기가 있었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글쎄.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니 그대로 전달하겠네. ‘혼란스러운 밤을 걷고 있다면 오직 멀리 보이는 등불만 보고 나아가라.’ ……라고 하더군.”
투할린은 코웃음 치면서 중얼거렸다.
“노인네들은 이게 문제야. 그럴듯해 보이는 경구만 중얼거리면 상대가 알아서 잘 끼워 맞추길 바란단 말이지.”
투할린의 나이에 비하면 예브하르조차 갓난아이나 다름없겠지만, 정직한 드워프인 그에게 뜻 모를 경구를 중얼거리는 것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아이작 또한 투할린의 말에 어느 정도 동감했으나 예브하르의 의도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게벨은 내가 쥐를 먹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 어떻게, 무엇을 위해 먹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예브하르도 내가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뭣보다 예브하르는 ‘신앙의 증명’ 기적을 통해 아이작을 시험하다가 자신의 손을 날려 먹었다. 아이작이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진작에 알아챘겠지만, 모범적인 빛의 법전 신도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보았을까?
지금은 그의 속내를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는 아이작이 ‘어떤 어두운 길을 헤매더라도 빛만을 보고 걷기를’ 바라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잘 끼워 맞춘 거겠지?’
아이작은 예브하르의 조언을 그렇게 이해하고 투할린의 군대가 자리 잡는 것을 도왔다.
세상의 화로에서 파견된 군대는 오드리프 외곽에 마련된 장소에 군영을 펼쳤다.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대규모 무장병력이 도시에 들어오면 아무래도 무역 도시 특성상 위축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로 도착한 군대는 엘릴의 군대였다.
에델레드는 자신들보다 먼저 도착한 투할린을 보고 놀랐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는 뒤집을 수 없었다. 아이작은 에델레드를 통해 시에로 여명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시에로가 여명군에 편입되었다구요?”
“그렇소. 여명군 본대에서 신병 모집관? 비슷한 것을 한다고 들었소. 뿔뿔이 흩어졌던 시에로 여명군도 본대의 깃발 아래 다시 다 모였다고 하더군. 잘된 일이지.”
에델레드는 백제국 동맹의 일원으로서 순수하게 축하했다. 병사들은 능력 없는 지휘관을 벗어나 더 큰 군대에 편입되었고, 시에로 역시 죄를 크게 추궁당하지 않고 직책을 얻었으니 잘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 내막을 읽어 냈다.
‘결국 붙잡힌 모양이군.’
아이작은 시에로가 여명군 본대의 발목을 잡아주길 기대했지만 이제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새장에 붙잡힌 카나리아처럼 빛의 법전 프로파간다를 울부짖을 그의 미래가 선했다.
‘아쉬운 결과지만 잡힌 이상 유일한 선택지였겠지. 함부로 반전 운동을 하다가 살해당할 수도 있고, 거지 여명군도 우왕좌왕 흩어지다가 각개격파 당할 수도 있으니까. 큰 군대와 보조를 맞추는 쪽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을지도…….’
긍정적인 면을 더 찾자면 여명군 본대를 상대하기 위해 불사 교단이 더 많은 전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말은 이사크레아 여명군을 짓누를 압력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이작은 시에로를 여전히 좋아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만나보고 싶긴 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는 조금이나마 달라지려는 모습을 보았으니까. 그 의지가 다시 꺾일지, 아니면 여전히 타오르고 있을지 궁금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군대는 로튼해머 단장이 이끄는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의 군대였다. 로튼해머는 벌써 진을 친 앞선 군대들을 보고 혀를 찼지만, 순순히 납득했다.
로튼해머는 애초에 속도에 비중을 두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낙오된 제국군과 흩어져 있던 은퇴 성기사, 사제 등을 끌어들이는 데 주력했다. 그 덕분인지 군대의 규모는 오기 전보다 훨씬 더 커진 상태였다.
“실력이나 인품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시오. 등하맹인들의 지휘를 받는 것보다는 성배기사의 깃발 아래 모이는 것이 낫겠다고 하더군.”
로튼해머는 새롭게 합류한 성기사들과 기사들을 소개했다. 아이작은 기뻐하며 그들 하나하나의 손을 붙잡고 합류에 감사 인사를 표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은퇴한 지 오래인 성기사, 교단에 환멸을 느끼고 떠난 사제, 주군을 잃고 떠돌던 기사들…… 갑옷도 장비도 제각각이고 문양도 통일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기사단이라기보다 용병대에 가까워 보였다. 탈영병 출신인 게벨은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작은 진심으로 그들의 합류에 기뻐했다.
아이작에게 부족한 것은 ‘빛의 법전 성기사’로서의 정당성이다.
백제국이라는 넓은 깃발 아래 모이긴 했으나, 결국 외국인, 이교도 출신 연합 여명군이다. 거기에 빛의 법전 출신 성기사나 사제가 한 명이라도 더 모인다면 환영이었다.
특히 교단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라면.
***
‘대충 내가 생각했던 순서대로 도착했군.’
아이작은 도착한 순서대로 서열과 세력표를 정리했다.
이들 중 가장 강한 건 투할린이다. 아이작도 솔직히 투할린과 일 대 일 승부를 벌이면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빛의 법전의 군대’가 아니라 ‘백제국 연합의 군대’이기 때문에 부지휘관 정도는 다른 신앙인이 맡는 것이 그림이 좋았다.
투할린은 경력도 풍부하니 참모장이나 지휘관으로서도 나쁘지 않다. 나이도 많으니 다른 신앙인들과 마찰이 생겨도 중재하기 쉬울 테고.
물론 투할린 본인이 불같은 성격을 드러내면 문제겠지만.
‘좋아. 그러면 이 정도로 정리하고 다음 단계를 밟으면 되겠군.’
여명군 본대가 동쪽으로 가는 와중에 아이작이 남쪽으로 온 이유가 있었다. 이제 다음 수순으로 넘어갈 차례였다.
하지만 아이작의 생각은 그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갑자기 예상치 못한 전언이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작.”
어느 날 게벨이 아이작을 다급히 찾아와 말했다.
“이단심문관들이 너를 찾고 있다. 솔트나 컬베인이라는 놈이다.”
아이작은 이 상황에 기시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때와는 정반대로, 불길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갈까마귀떼가 오드리프 상공에서 사납게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