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29)
329화. 눈과 칼 (2)
두두두두…… 서쪽으로 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검붉은 후드에 갈까마귀 인장을 단 이단심문관들은 한참을 달리다가 선두가 속도를 늦추자 함께 멈춰 섰다. 아직 갈림길이나 쉴 곳이 나온 것도 아니었기에 이단심문관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 쉬었다 가지.”
솔트나가 얼굴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많이 안 좋으십니까?”
이단심문관이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최대한 회복시켜 두긴 했지만, 상처가 사라진다고 내부적으로 남은 자잘한 통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상처는 자연 회복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이쯤이면 황금 사자 성기사단이 곧 도착할 거다. 합류해서 다시 오드리프로 향하도록 하자.”
솔트나의 말에 이단심문관은 당황해 그를 바라보았다.
“여명군 본대에 합류해 교황 성하를 찾아뵙고 아이작 이사크레아의 정체에 대해 보고하는 것이 우선 아닙니까?”
“이미 까마귀를 보내 대화 내용을 낱낱이 보고드렸다. 놈의 시커먼 속내는 이미 전부 알린 셈이야. 그보다는 데라 헤만과 합류하여 아이작을 징벌하는 것이 우선이다.”
얼핏 듣기에는 그럴싸한 말이었지만, 지금까지 오랫동안 솔트나와 함께 해온 이단심문관들 귀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까마귀를 통해 보고하는 것은 기밀 누출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들이 상당 부분 생략된다. 즉, 솔트나가 아이작을 심문하고 주변 조사를 통해 얻어낸 결과를 온전히 보고하려면 반드시 대면 보고를 해야 했다.
그리고 솔트나는 즉시 교황을 만나 보고 해야 할 만큼 중대한 정보를 알아낸 상태였다.
성배기사의 이단 혐의점이 아주 가능성 높다는.
성자인 동시에 차기 명천사로 지명받았으면서 배교했던 칼센 밀터의 예가 있기 때문에 시급을 요하는 사항이었다. 그런데 솔트나는 보고 대신 데라 헤만과 합류하겠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청장님, 다시 한번 생각을…….”
“데라 헤만, 그 벙어리가 무슨 판단을 하고 생각을 하겠냐? 그 정신 나간 칼잡이는 시키는 대로 사람 써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
솔트나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아이작이 요사한 혓바닥을 놀려서 엘릴의 왕이며, 화로 장인이며, 성기사단 단장까지 끌어들인 것을 보지 못했나? 이단은 언제나 간교하고 달콤한 어휘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데라 헤만이라고 예외일 것 같나?”
이단심문간들은 그 말을 듣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솔트나의 생각을 납득할 수 있었다. 심히 중대한 이단혐의자를 발견한 경우, 보고보다 소거가 우선인 경우가 있다. 만약 자신들이 보고하는 사이에 아이작이 데라 헤만을 꼬드겨서 함께 배교해 버린다면?
그때는 너무 늦는다.
“지금은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이단심문관들은 솔직히 솔트나가 얻어맞은 굴욕감으로 감정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금 상사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솔트나의 굴욕은 그들에게도 굴욕적인 일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반으로 나뉘는 것이 좋겠군요.”
솔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나는 데라 헤만과 함께 하겠다. 너희 셋은 교황 성하께 찾아가 상세한 보고를 올리도록. 아이작은 이단 혐의가 아주 높다. 등대지기께서 그를 도구 삼아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칼센과 같이 끔찍한 실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이야.”
***
솔트나가 이단심문관들과 갈라진 지 반나절 후, 서쪽에서 기대하던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도 백색 바탕에 황금색 태양 문양을 가진 깃발이 휘날리는 것이 보였다. 황금사자 성기사단이었다.
성기사단은 빠르게 달려오다가 솔트나 일행을 마주치고 멈춰 섰다. 솔트나는 바로 선두에 선 황금 사자 가면을 쓴 성기사, 데라 헤만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데라 헤만! 데라 헤만 경이십니까? 저는 이단심문청 청장 솔트나 컬베인입니다!”
당연하지만 솔트나는 데라 헤만이 직접 대답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관인 듯한 남자가 말을 몰아 가까이 다가왔다.
성기사는 면갑을 위로 올리고 솔트나를 내려다보았다.
“말씀하십시오.”
솔트나는 일개 성기사가 이단심문관 앞에서 말에서 내려오지 않고 말한다는 사실에 순간 욱했다. 하지만 중요한 명령을 수행 중이던 성기사들을 멈춰 세운 것은 자신이란 사실은 잊지 않았다.
“오드리프에서 아이작 이사크레아를 심문하던 중, 심한 폭행을 당했습니다. 교황 성하의 권위를 담은 서한을 땅에 처박고, 사절을 폭행한 것입니다. 이는 명백히 아이작이 이단 혐의를 숨기려 한 바, 황금사자 성기사단의 도움으로 이 사악한 배교자를 처단하고자 합니다.”
솔트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데라 헤만이 무언가 손짓을 보냈다. 부관이 그 수어를 바로 통역해 솔트나에게 전달했다.
“그런 중대한 혐의가 있다면 왜 바로 교황 성하께 보고드리지 않느냐고 하십니다. 자신은 성배기사를 대신해 이사크레아 여명군을 지휘한다는 임무만을 맡았다고 하는군요.”
“한시가 급한 사안입니다! 아이작을 단지 지휘관 자리에서 내쫓기만 한다면 궁지에 몰린 놈이 본색을 드러내고 흉악한 짓을 저지를지도 모릅니다. 아니, 교황 성하 곁에 간다면 오히려 그게 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솔트나는 절박하게 말했지만 황금사자 성기사단 중 누구도 동조하는 듯한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솔트나는 뒤쪽에서 웃는 성기사까지도 발견했다.
교황을 바로 곁에서 경호하는 황금사자 성기사단이라해도, 이단심문관이 두들겨 맞았다는 말에는 즐거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건 데라 헤만조차도 마찬가지였다.
“단장님께서는 성배기사가 여린 외모에 비해 의외로 기개가 있다고 하십…… 아, 이건 통역하지 말라구요? 알겠습니다.”
솔트나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가 뭐라 하려던 찰나, 부관이 말에서 내려 달래듯 말했다. 아무래도 이단심문관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은 그 역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이단심문관님.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만, 이단심문관님이 생각하시기에 이단 혐의점이 있다면 고소를 진행하고 종교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오드리프에 도착한다면 단장님께서 판결을 내리실 수 있습니다.”
“…….”
재판보단 독과 단검으로 즉결처분한 적이 더 많았던 솔트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아이작이 순순히 재판에 응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곳에는 아이작을 따르는 온갖 잡종 신앙들의 군세가 집결해 있다. 빛의 법전의 권위에 응하리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저희가 보여 준 태도를 용서해 주십시오. 사실 오는 길에 이런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희는 어쩌면 여러분이 도적일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
부관이 손짓하자 후열에 있던 기사가 천에 둘둘 감겨있는 무언가를 실어 왔다. 사람만 한 크기의 그것을 본 순간 솔트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드러난 수의 안에 감겨있던 것은 다름 아닌 앞서 보낸 이단심문관들이었다.
그들은 몸의 체액을 전부 잃은 듯 삐쩍 마른 몸에 신분을 확인할 만한 옷이나 표식을 전부 잃은 상태였다. 솔트나는 방금 전까지 인사 나누던 부하들이 죽은 모습에 한참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 쪽 이단심문관들입니다. 아이작의 짓이 분명합니다.”
“예? 그럼 성배기사가 받고 있는 이단 혐의점이 붉은 성배 쪽입니까?”
“아니, 그자가 거느리고 있는 붉은 성배 클럽의 탕녀가 있습니다. 어쩐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요. 분명 매복하고 있다가 습격한 겁니다.”
솔트나의 말에 성기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부관들은 그들을 조용히 시키고 솔트나의 말을 확인했다.
“증거는 있습니까?”
“…….”
사실 아닐 수도 있다. 솔트나는 오드리프에서 현지 조사를 진행하면서 최근 인간사냥꾼들이 목격되었다는 보고까지 들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리한 단서는 입 다물고 유리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모범적인 이단심문관이었다.
부관은 데라 헤만을 바라보았다.
데라 헤만은 솔트나를 응시하다가 짧게 손짓을 보냈다. 부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일단 동행하도록 하지요. 하지만 마음대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저희가 교황 성하를 모시는 황금사자 성기사단이라는 점을 명심해 주십시오. 모든 것은 질서와 규율대로 진행될 것입니다.”
솔트나는 그 자신이 규율을 집행하는 집행관임에도 불구하고 낯설게만 들리는 단어들에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황금사자 성기사단이 마침내 오드리프 외곽에 도착했다.
사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이작은 그냥 엄청 세고 엄청 많은 군대를 배경처럼 두른 채 데라 헤만을 협박해 볼까 생각했다. 아무리 데라 헤만과 황금사자 성기사단이 대단하다 해도 아이작을 도우러 와준 사람들 전부와는 맞설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작과 함께 마중 나가기로 한 사람은 헤사벨이 전부였다.
마침내 도착한 황금사자 성기사단을 마주하자 아이작은 헤사벨만 데리고 나오길 잘했다고 판단했다. 그에게 얻어맞고 도망쳤던 솔트나가 데라 헤만과 함께 돌아온 것이다.
‘숫자가 많으면 많다고 협박하냐면서 염병을 떨었겠지. 일단은 당당한 분위기를 연출해야겠군.’
아이작은 담대하게 다가오는 성기사들을 향해 다가갔다.
“오셨습니까? 저는 아이작 이사크레아입니다. 변변찮지만 성배기사라 불리고 있습니다.”
황금 사자 가면을 본 아이작은 리히트하임에서의 트라우마가 다시 도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아이작과 함께 잠입했던 바슐이 아직까지도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으니.
헤사벨이 당당하게 아이작 곁에 있자 부관은 빤히 솔트나를 바라보았다. 솔트나는 얼굴이 벌게졌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대표자는 그가 아니었다.
데라 헤만은 아이작을 바라보다가 무언의 손짓을 보냈다.
“성배기사님과의 만남이 참으로 복된 일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날 전달하기에는 아쉬운 소식이지만, 단장님께서는 이사크레아 여명군을 대신해서 이끌라는 명령을 받고 파견되셨습니다. ”
데라 헤만의 손짓은 명백히 부관의 말보다 짧았지만, 부관은 익숙한 듯 외교적 수사를 붙여 통역했다.
“그리고 이단심문관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교황 성하의 성언 하달 과정에서 무언가 문제가 있었는지, 명령 수행에 어려운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하십니다.”
아이작은 대답 대신 팔짱을 꼈다. 그는 솔트나를 노려보면서 준비한 말들을 꺼내놓았다.
“현명하신 교황 성하께서라면 이사크레아 여명군의 특수한 상황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사크레아 여명군은 빛의 법전, 엘릴, 세상의 화로, 이 빛의 법전을 섬기는 세 신앙이 일치단결해 손을 잡은 군대입니다.”
“교황 성하께서도 이 숭고한 동맹에 기뻐하시고 찬사하셨습니다. 때문에 이번 인사이동을 통해 하나가 될 기회가 생길 것이라 하셨습니다.”
“교황 성하의 성려와 현명하신 판단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며 언제든 명령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무슨 개소리를……!”
솔트나가 눈을 부릅뜨고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분명 못 받아들이겠다며 자신을 쥐어패지 않았던가? 인제 와서 발뺌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돌이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나 그가 화를 더 내기도 전에 데라 헤만의 시선을 마주하고 숨을 멈췄다. 가면 너머에서 번들거리는 데라 헤만의 눈동자는 그의 심장을 틀어쥔 것처럼 날카로웠다.
아이작 역시 솔트나를 쏘아보다가 말했다.
“다만…… 이단심문관들이 제 동맹에게 무례한 질문과 실례를 저지른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엘릴을 근친신을 섬기는 거지 깡패집단이라고 하질 않나, 세상의 화로가 땅속에 묻힌 가짜 신을 섬기느라 자기들도 동굴 속에 처박혀 나오질 않는다고 하질 않나…… 심지어 제 부관을 가지고도 음탕한 말을 일삼더군요.”
헤사벨이 상처받은 것처럼 눈물을 글썽였다. 당연히 그 정도로 상처받을 리도 없겠지만, 애초에 들은 적도 없었다. 마주친 적도 없으니까. 하지만 아이작의 말에 성기사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실제로 이단심문관들이 떠들고 다니는 소리기도 했고, 과거 이런 망발로 인해 백제국 간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엘릴은 성배기사였던 재투성이가 화형당하면서, 세상의 화로 역시 이단심문관들에게 교리 해석 과정에서 모욕당해 관계가 두절되었다. 교황의 명령을 전달하면서 이사크레아 여명군의 동맹을 모욕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예의를 갖췄던 솔트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는 뭐라 항변하고 싶은 듯했으나, 아까 대화에 끼어들었다가 당한 굴욕 탓에 입도 벙긋 못하고 있었다.
‘네 선배들이 쌓아온 업보를 갚는 셈 쳐라, 솔트나.’
이래서 평판이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