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눈과 칼 (4)
파츠츠츠츠츳!
아이작의 머리 위로 시커먼 구체가 생겨났다. 카훌린이 주변의 빛을 빨아들이면서 생겨난 기현상이었다. 일대에 바람이 휘몰아치며 낙엽과 모래가 어지럽게 흩날리고, 성기사들마저 앞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건 대체……?!”
“사악한 이단의 증거다!”
부관이 경악하는 사이 솔트나가 헛소리를 내뱉었다. 빛의 법전이면서도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모양새를 보여주니 그런 소리를 한 것이다. 하지만 데라 헤만을 비롯해 어느 정도 수준 높은 성기사들은 그것이 상급 검술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성물과 검기, 검술의 조화가 기이한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이미 그들도 겪고 봐 온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아이작이 보여주고 있는 저 강대한 힘의 덩어리는 이제껏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데라 헤만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저 시커먼 덩어리를 향해 다가가는 배짱이 대단했지만, 저렇게 강력한 힘이라면 피한 뒤 기회를 노리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데라는 오히려 아이작을 향해 파고들었다.
아이작은 그런 데라를 본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런.’
아이작은 데라가 더 다가오기 전에 단숨에 이삭 검술: 사상지평선으로 내리쳤다. 시커먼 검기와 데라가 뽑아 든 루앗딘 열쇠가 정면에서 부딪쳤다.
쿠쿠쿠쿵…… 폭풍처럼 터져 나온 돌풍이 수도원을 휩쓸었다. 성기사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리면서도 역사에 남을 이 한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겨우 먼지가 바람에 휩쓸려 날아갔을 때 드러난 것은 아이작과 데라를 중심으로 산산조각 난 중정의 모습이었다. 벽과 바닥이 괴물이 할퀴고 지나간 것처럼 기이한 형태로 으스러져 있었다.
하지만 가장 참혹한 것은 다름 아닌 아이작이었다. 아이작은 폭발의 여파를 혼자 받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상처투성이였다.
물론 맞은 편에 선 데라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흠집조차 나지 않을 것 같던 순백의 갑옷은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였고, 가면도 곳곳이 깨진 상태였다. 아이작은 그 가면 너머에서 데라의 기형적인 눈들을 보았다.
가면 밖으로 드러난 세 개의 눈이 아이작을 응시했다. 아이작은 그 눈과 마주하는 순간 힘이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동시에 루앗딘 열쇠가 아이작을 향해 날아들었다.
쉭, 텅! 까드드득, 득! 아이작은 간신히 카훌린을 들어 막아냈다. 어떻게든 힘을 쥐어짜서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힘겨워 보이는 모습이 선명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부관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처음부터 강력한 수를 던진 게 성배기사에게 독이 됐군요.”
“강력한 수? 방금 그게 검술이란 말이오?”
“대단한 상급검술입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한순간에 갈갈이 찢겼겠지요. 우리 단장님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렇게 강력한 수라면 반동도 클 텐데, 어지간히 자신했던 모양입니다.”
부관의 말대로 아이작은 막아 내기 급급한 모습이었다.
다만 부관은 데라 헤만 단장이 대체 어떻게 그 강력한 상급검술을 튕겨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둘의 싸움을 유심히 지켜본 끝에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정말로…… 칼센 밀터의 영향을 받은 건가?’
아이작은 칼센 밀터와 데라 헤만의 결투 결과가 칼센의 압승으로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으니, 이후로 데라 헤만이 칼센 밀터를 꺾기 위해 그 싸움을 죽어라 복기하고 단련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부관은 이 싸움이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이작이 칼센 밀터의 숨겨 둔 제자인지, 혹은 그의 배교자 기사단 소속인지는 몰라도, 칼센의 영향이 짙게 느껴졌다.
그리고 데라 헤만은 바로 그 칼센 밀터를 다시 꺾기 위해 무수한 시간을 바쳤다. 이미 그는 결투 당시의 칼센 밀터가 재회하더라도 찍어 누를 수 있을 정도로 분석을 마친 상태였다.
‘결판났군.’
아이작은 버티기에만 급급했다. 아니, 당장이라도 데라가 그를 고꾸라뜨릴 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데라는 아이작에게서 뭔가를 기대하는 건지 쓰러뜨리지 않고 몰아붙이기만 하고 있었다.
콰득! 그러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작의 손목이 기묘한 각도로 꺾이면서 더 이상 칼을 쥘 수 없는 상태가 되자 카훌린이 튕겨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데라가 순간 멈칫하더니 당장이라도 아이작을 벨 듯 칼을 올렸다.
그때 헤사벨과 부관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부관은 다급히 데라를 말리고, 헤사벨은 아이작을 감쌌다.
“단장, 단장님! 재판정에 올리기로 했잖습니까! 지금 베면 안 됩니다! 이사크레아 여명군을 생각해 주십시오!”
다행히 데라 헤만은 칼을 내려치지 않았다. 그는 싸울 때보다도 더 흥분한 듯 핏발 선 눈으로 아이작을 노려보다가 천천히 칼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다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정을 떠났다.
부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이작을, 그리고 다른 성기사들을 돌아보았다.
“아이작 이사크레아. 승부가 결정되었으니 현 시간부로 당신의 이사크레아 여명군 지휘관 자격을 박탈합니다. 그리고 이단심문관 솔트나 컬베인이 당신을 이단 혐의자로 기소했습니다. 공정한 재판이 이뤄질 때까지 당신은 우리 황금사자 성기사단에서 구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날벼락 같은 말이었기에 즉시 반발이 터져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작은 반항은커녕 패배한 사람답지 않게 차분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데라보다도 차분한 그 모습에 부관은 뭔가 찜찜함을 느꼈지만, 성기사들에게 손짓했다.
“데려가 모셔라.”
***
모든 성기사단 수도원에는 이단과 배교자, 이교도를 구속하기 위한 감옥이 만들어져 있다.
물론 그 지하 감옥에 갇히는 사람의 대부분은 몰래 수도원을 빠져나가 술 마시다가 걸린 수습기사들이지만.
밀리샤르 수도원 지하에도 마찬가지로 지하 감옥이 지어져 있었다.
다만 다른 감옥과 다른 점은 창밖이 바다로 뻥 뚫려있어서 파도가 칠 때마다 해수가 스며들어 온다는 점이었다. 벽면은 거칠고, 춥고, 눅눅하고, 비린내 나고, 여러모로 최악의 감옥이었다.
“이름 높은 성배기사님을 이런 곳에 모실 순 없다는 거 압니다만, 부디 재판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분명 공정한 결과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감옥까지 아이작을 안내한 성기사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감옥이 대개 그러하듯 기적이 발동되는 것을 막기 위한 기도문과 금제가 걸려있었지만, 너무 오래 방치된 탓에 정상적으로 작동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작 역시 사고 칠 생각은 없었다. 성기사들은 안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아이작의 감옥으로부터 멀찍이 거리를 둔 채 소근거렸다.
“성배기사에 관한 소문이 절반만 사실이어도 이깟 감옥은 종잇장 아니야?”
“단장님이 지키고 계시잖아. 탈출하면 바로 모가지인데 어쩌겠어?”
아이작은 쓰게 웃었지만, 굳이 반박하진 않았다.
‘결국 이런 꼴까지 보는군.’
아이작은 감옥 내부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부활의 성자’에 대한 예우로 갑옷은 빼앗기지 않았지만 무기는 전부 빼앗겼다. 물론 아이작의 진짜 무기는 몸 안에 숨겨져 있었다. 함부로 꺼내서 휘두를 수는 없는 무기지만.
아이작은 거친 바닥에 몸을 뉘며 헤사벨을 불렀다. 헤사벨은 아이작의 탈출을 도울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수도원에서 쫓겨난 상태였다.
‘헤사벨.’
‘…….’
‘헤사벨?’
‘……왜 져줬어요?’
헤사벨은 뭔가 심통이 난 기색이었다.
아이작이 콧대 높은 이단심문관처럼 성기사 단장까지 꺾는 모습까지 보길 기대했던 모양이다.
하기야, 지금 이 상황은 아이작이 미리 이야기해 둔 시나리오와 다르다.
‘져준 게 아니다. 진짜 이길 수 없었어. 아니, 이겨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대결 직전, 아이작은 정말로 데라 헤만을 꺾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삭 검술: 사상지평선으로 데라를 내려치기 직전, 그가 되려 안쪽으로 파고들어 온 순간 모든 계획을 다 취소했다.
데라는 아이작이 무슨 검술을 펼치건 다 받아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이작이 수련한 검술의 근간을 찌르는 반격이었다.
아이작이 아직 수도원의 쥐나 잡아먹는 풋내기였던 시절, 그는 수만 번에 걸쳐 칼을 휘두르고 찌르고 내려치면서 검술을 단련했다.
아이작에게는 어마어마한 재능이 있으므로, 기초만 쌓아두면 어마어마한 재능을 통해 그다음 단계를 얼마든지 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작의 바로 그 ‘어마어마한 재능’은 칼센 밀터에게서 비롯되었다.
즉 아이작이 쌓아온 검술의 기초는 칼센에게서 스며 나오는 것이었다.
아이작이 무슨 검술을 펼치든 간에 그 기초는 칼센의 검술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리고 데라 헤만은, 지난 패배 이후 오로지 칼센을 꺾기 위해 기초부터 공략하기 위해 다져왔다.
비정상적인 집념이다. 이전 결투의 결과가 얼마나 상처였는지에 대한 반증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사상지평선을 급하게 취소하느라 반동을 내 몸으로 다 받아냈다. 이후로도 상급 검술로 데라를 상대하기 어려웠지. 크고 강력한 검술일수록 더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았으니.’
데라 헤만의 검술은 물론 뛰어나다. 하지만 아이작보다 월등하게 뛰어난가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사실 데라 헤만의 그런 대응을 단지 첫수에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아이작은 반격을 당해 바로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알아차린 뒤에 아이작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상성을 따지자면, 이런 최악의 상성이 또 없다. 데라 헤만은 말 그대로 아이작을 잡아먹기 위해 준비된 덫 같은 존재였다.
결과적으로 패배했으니, 모두 정해진 수순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이작이 아닌 칼센 밀터였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 데라 헤만이 단련하는 사이 칼센 밀터도 앉아서 놀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칼센은 칼 한 자루로 명천사의 지위를 보장받고 신의 자리까지 노리던 자다. 엘릴 이래 최강의 검사라 할 수 있었다.
아니, 최소한 아이작에게 1, 2년의 세월이 더 있었다면 또 달랐을 수도 있다.
‘차라리 리히트하임에서 한번 붙어보는 쪽이 나았을지도…… 아니, 그러면 내게 붙은 칼센의 흔적을 읽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아이작이 온전히 검술의 차이 때문에 진 것은 아니었다.
아이작이 어떻게 데라 헤만을 꺾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천사가 개입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작이 준비해 둔 보험은 아직 준비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때까지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그래서 아이작은 데라와의 결투를 찜찜하게 끝냈다.
데라 헤만이 갈증을 느끼게끔.
전력을 다했어도 졌겠지만, 뭔가 이유가 있어서 져준 것처럼 느끼게끔 제 실력을 다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직 시간은 있다. 솔트나와 함께 왔을 때부터 알아봤다. 데라는 나를 바로 죽이지 못해. 재판을 치르기 전까지 시간이 있을 테고, 어쩌면 한 번쯤 더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너는 그때까지 밖에서 기회를 엿봐. 준비가 되면 네 도움이 필요하다.’
‘……그 전에 데라 헤만이 냅다 쳐들어와서 시원찮은 놈이니 죽여 버리겠다고 하면요?’
아이작은 그럴 일은 아마 없을 거라고 대답하려다가 멈췄다.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어, 단장님. 오셨습니까? 예? 성배기사요? 문을 열라구요?”
아이작은 식은땀을 흘리며 창문을 부수고 바다로 뛰어들어도 자신이 탈출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
데라 헤만의 커다란 덩치가 좁은 감옥 안에 들어오자 아이작은 없던 폐쇄공포증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성기사들은 수갑이 채워진 상태긴 했지만 성배기사와 독대하겠다는 단장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데라가 손짓을 하자 그들은 얌전히 물러났다.
데라가 먼저 말할 리는 없었기 때문에 아이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통역할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데라 헤만은 부관을 부르는 대신, 자신의 황금사자 가면을 천천히 벗었다. 아이작은 그 얼굴을 보자 없던 눈알 공포증도 생기는 기분을 느꼈다.
가면 아래 얼굴은 수십 년 동안 햇빛을 받지 못한 탓인지 도자기처럼 새하얗고 깨끗했다. 하지만 그 밋밋한 얼굴에 일곱 개의 눈동자가 아이작을 똑바로 응시하자 본능적인 거북함이 밀려올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지 못한 것’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다. 저 상태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기적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죽었을 인간이 부자연스러운 형태로 연명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빛의 법전의 질서에 대한 부정이기도 했다.
[너는 약했다.]문득 아이작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작은 이게 데라 헤만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몸에 겹겹이 중첩된 수십 개의 기적들 중에는 의지를 전달하는 것도 있는 듯했다. 가면을 벗어야 사용할 수 있는 듯했지만.
[너는 칼센보다 훨씬 약했다.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그 실력으로 천사들을 쓰러뜨리고 엘릴의 검객들을 무릎 꿇렸지?]“당신이 강하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까?”
아이작은 지금 이게 빛의 법전 내 최강자로 일컬어지는 성기사가 하는 말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데라 헤만은 뭔가 버거운 듯 다시 가면을 썼다. 아이작이 보기에 그것은 마치 산소호흡기를 입에 대는 모습처럼 보였다.
잠시 후, 다시 가면을 벗은 데라 헤만이 속삭였다.
[……나는 약해. 강한 건 칼센 같은 자들이지. 너도 그런 존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겠군. 약한 척을 하는 거냐, 아니면 정말로 약한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