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34)
334화. 눈과 칼 (7)
쩡, 쩌억!
아이작의 검과 데라 헤만의 검이 강하게 연달아 부딪쳤다.
가장 실력이 좋은 성기사부터 이변을 알아차렸다. 검이 부딪치는 소리부터가 달라진 것이다. 그제야 뭔가 이변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린 성기사들은 눈을 부릅뜨고 대결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정확히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깨달은 자는 데라 헤만 뿐이었다. 나머지는 갑자기 밀리기 시작한 데라를 당혹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데라는 그들의 시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칼센 아닌가.
자신이 상상하고 예측하고 공부해 온 칼센의 움직임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이토록 변화무쌍하고 강력한 검세를 펼칠 수 있는 자는 칼센 뿐이다.
자신이 보고 겪었던 칼센 밀터.
데라 헤만과 맞서던 아이작의 검은 살기 넘치는 괴물이 심연 속에서 울부짖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리, 극도로 정제된 기세만이 느껴졌다.
데라 헤만은 본능적으로 먼 동부의 눈 폭풍을 떠올렸다. 불사교단은 망자의 냉기로 지독하게 추운 날씨를 만들어 낸다. 사막에 흩날리는 눈 폭풍은 피할 곳조차 없어 순식간에 생명을 잡아먹는다. 날카로운 눈송이는 비수와도 같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냥감을 잡기 위해 도사린 사냥꾼이 있다.
눈 폭풍은 그저 사냥꾼을 숨겨 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발이 빠지는 눈, 휘청거리는 바람조차 이용당한다. 칼센은 눈 폭풍을 지배하는 사냥꾼이었다. 그리고 데라 헤만은 그 사냥감에 불과했다.
‘왔구나! 돌아왔구나, 칼센!’
사냥감 취급을 받았음에도, 데라는 굴욕감 대신 흥분과 회한을 느꼈다.
칼센이 대체 어떤 변화를 거쳐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상대는 바로 자신이 겨뤄보고 싶었던 바로 그 칼센이었다.
‘그래, 너도 놀고 있지는 않았겠지! 나 역시 네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얼마나 강해졌을지 수도 없이 상상하며 나 자신을 단련해 왔다! 네가 어떤 괴물이 되어 나타나더라도 꺾을 수 있게!’
얼마나 달라졌을지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설마 그 칼센이 성배기사가 되어 나타난 것인가?
아니, 이제는 상관없다. 데라는 재대결의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의 갈망은 더욱 강하게 불타올랐다.
‘이번에야말로 너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겠다!’
파스스스스…… 데라 헤만이 든 루앗딘 열쇠의 불꽃이 한층 더 밝게 타오르더니, 백색의 불꽃으로 바뀌었다. 그 맹렬한 불꽃 속에 데라 헤만 또한 진정한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칼센 밀터조차 본 적 없던 천국의 사자가 포효했다.
쾅! 아이작의 몸을 빌린 칼센이 움찔했다. 사납게 몰아치던 눈 폭풍이 사자의 포효에 깨져 나갔다. 그 안에 사냥꾼은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불타오르는 사자가 곧바로 쉬지 않고 밀어닥쳤다.
칼센은 반격을 위해 재차 칼을 휘둘렀지만, 데라는 오히려 반대로 찍어 눌렀다. 사냥꾼의 날카로운 비수는 사자의 발톱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작은 상처 따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듯 몰아붙이는 데라의 공격에 칼센이 다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데라 헤만이 익힌 황금사자 성기사단의 검술을 단적으로 요약하자면, 압도적인 힘과 체력으로 찍어누르는 것이다. 물론 일반인 수준의 힘과 체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당연히 기적과 축복으로 무장한 상태라야 가능했다.
축복과 기적을 남들보다 수십 배 받을 수 있는 데라는 말 그대로 황금사자 성기사단의 검술을 익히기 위해 태어난 성체였다.
칼센은 놀라움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꼈다.
‘……진보했군. 반 박자 느리지만 압도적인 체력과 기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동작을 역으로 이용할 줄 알아.’
피지컬이 압도적이면 전술은 다소 부족해도 괜찮다.
강대한 기적, 뛰어난 검술.
그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칼센보다 약간 느린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단 뒤따라 잡으면 적당한 시점에 균형을 깨뜨리고 어느 타이밍에 찍어 눌러야 상대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알고 있었다. 상대가 더 큰 힘을 발휘할수록 더 강한 반격으로 돌려준다.
칼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담겼다.
아이작이 했던 말이 옳았다.
고민도 않고 단번에 ‘꺾을 수 있다’고 단언한 자신의 말은 교만이었다. 데라 헤만은 뼈를 깎는 단련과 수행을 거쳐온 것이 분명했다. 그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칼센은 솔직하게 데라에게 깊은 감명을 느꼈다. 데라를 꺾은 것은 칼센의 수많은 승리 중 하나가 아니었다. 그의 경력 가운데 앞줄에 세워놔도 좋을 만큼 확실하게 명예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가 이겨.’
왜냐면 지금 이 자리에는 칼센과 데라, 둘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쾅, 콰득, 까드드득!
도무지 사람과 사람이 칼을 맞대는 것이라고 믿기지 않는 소음과 풍경 속에, 밀리샤르 수도원의 중정은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매섭게 몰아치는 기세만으로도 돌벽과 기둥에 상처가 쭉쭉 남았다. 자칫 휘말리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성기사들은 이 전투를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쩡! 그러던 중, 다시 또 한번 이변이 벌어졌다.
이번에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데라 헤만이었다.
그는 눈 폭풍 속에서 사냥꾼이 아닌, 또 다른 심연의 괴물을 느꼈다.
***
아이작은 뜨거운 물 속에서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칼센 밀터의 기억이, 경험이, 지식이, 기세가, 깨달음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격렬한 전투 속에 칼센의 모든 것이 근육 세포 곳곳에 스며들고 있었다. 아이작은 칼센이 살아온 수십 년의 생애를 단 몇 분간의 전투를 통해 녹여내고 있었다.
칼이 한번 부딪칠 때마다 그의 몸은 제련되는 듯 두들겨졌고, 상처가 생길 때마다 강렬한 표식이 기억 속에 잊히지 않을 만큼 남았다.
짧은 호흡조차 차가운 물 속에 담금질 당하는 것 같았다.
끔찍할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성공적이었다.
칼센의 경험과 지식을 흡수할수록, 아이작은 칼센의 자아가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이작 자신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칼센이 주도권을 넘겨준 것이 아니라, 마치 처음부터 그가 칼센이었다는 것처럼.
‘가라.’
희미해지는 칼센의 자아가 아이작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나와 데라, 다음의 시대는 너다.’
아이작은 약간 몽롱한 기분으로 칼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데라는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칼을 휘둘러 막아 낸 후 밀어붙이려다가 움찔 뒤로 물러섰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성기사들은 그 사실에 놀랐다.
‘그 시커먼 구체에도 정면으로 맞섰는데 여기서 물러나?’
아이작의 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데라는 뭔가 오싹해지는 기분과 함께 불쾌감을 느꼈다. 저 정도는 그냥 맞았어도 기적으로 무장한 갑옷조차 뚫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본능은 상대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칼센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자와 사냥꾼이 싸우던 눈 폭풍 한가운데 새롭게 난입한 괴물이었다.
아이작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흐리멍텅한 눈으로 휘청거렸다. 데라는 칼센을 다시 내놓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그러나 칼센을 집어삼킨 아이작은 곧 눈 폭풍 그 자체가 되어 달려들었다.
이삭 검술: 여덟 갈래가 저마다 데라 헤만을 집어삼키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것은 설산이 뒤집혀 데라를 덮치는 눈사태의 형상처럼 보였다. 그 속에 산을 뒤집어엎는 괴물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건…… 대체!’
데라는 그 자신도 상급 검술로 받아쳤다. 터져 나온 빛줄기가 시커먼 기세들을 하나하나 불태워 버렸다. 그는 기적과 성체를 믿고 어느 정도는 상처 입는 것을 감수하면서 파고들었다.
살기 넘치는 검일수록 격파당했을 때 리스크가 크다. 아직 칼센의 흔적을 지우지 못한 아이작에게는 파고들 틈이 충분했다.
콰득, 콰드득! 데라의 갑옷과 몸에 팔다리가 날아가고도 남을 만큼의 타격이 가해졌지만, 여전히 사지는 붙어있었다.
사지가 붙어있기만 하면 문제없다고 판단했는지, 데라는 여덟 갈래의 중심부를 파쇄하며 아이작의 몸통을 양단할 공격을 내질렀다.
까가가가각!
그러나 그 너머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마치 올 줄 알았다는 듯 기다리고 있던 아이작의 카훌린이었다. 그토록 강력한 공격이 견제성이었다는 사실에 데라는 놀랐다.
‘내 움직임이 읽혔다고?’
하지만 이 정도면 어차피 승부를 내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데라가 든 루앗딘 열쇠가 주변의 모든 색을 없애버릴 정도로 밝게 타올랐다. 황금사자 성기사단의 상급 검술이자, 역대 단장들 중에서도 달성한 이가 몇 없는 상급 검술이 그의 손안에서 발현되었다.
천사가 지상에 내려와 죄인을 벌할 때 휘두르던 형상을 담은 검.
단죄의 검.
칼센을 꺾기 위한 비장의 수로 준비했던 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데라는 다시 한번 믿지 못할 모습을 보았다.
아이작이 그의 동작을 마치 거울처럼 모사했기 때문이었다.
불가능한, 하지만 불길한 상상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이미 그의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데라 헤만의 검이 하늘로 치솟은 순간, 하늘부터 지상까지 벼락같은 빛줄기가 내리꽂혔다.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무시무시한 섬광과 굉음이 모두의 눈과 귀를 막았다.
그 자리에 있던 성기사들은 아이작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죄인을 처형하기에는 호사스러운 참수 방식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간신히 시야를 회복했을 때, 드러난 모습에 성기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이작이 아래에서 위로 베어 올린 듯한 모습으로 칼을 든 채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두 동강 난 루앗딘 열쇠가 널브러진 채 잿빛으로 식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데라 헤만이 바로 그 앞에 얼굴을 움켜쥔 채 무릎 꿇고 있었다.
파슥, 파스슥…….
그리고 그의 손가락 사이로 부서진 가면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이작의 압승이었다.
***
누가 봐도 결과가 명백한 상황이었지만 너무도 충격적인 모습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황금사자 성기사단 단장인 데라 헤만은 무릎 꿇고 있고, 성기사들의 명예로운 상징인 루앗딘 열쇠는 반토막 나서 굴러다니고 있다.
무엇보다 단죄의 검이 격파당했다는 사실에 성기사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단죄의 검은 인간이 감히 천사를 흉내 낸, 때문에 오직 천사가 직접 가르쳐 줘야만 배울 수 있는 상급 검술이다. 천사가 아닌 인간이 단죄의 검을 막아낸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 모든 광경은 신성모독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끄으으으…….”
그때 아이작은 정신을 차린 듯 멈춰 있던 동작을 풀었다.
온몸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칼센이 자신의 몸으로 상급 검술을 써대고, 또 그의 경험을 무리해서 익힌 여파가 뒤늦게 돌아오고 있었다. 온몸의 근육이 경련하고 통증을 호소하는 가운데, 아이작 또한 버틸 힘이 없어서 주저앉았다.
‘지금 다람쥐가 칼을 물고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겠군.’
아이작은 솔트나가 원한을 품고 달려들 가능성을 염려했다. 부디 다른 성기사들에게 명예가 있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하지만 데라 헤만에게 시선을 돌린 아이작은 생각을 고쳤다. 지금은 다람쥐나 솔트나보단 데라 헤만을 걱정해야 할 것 같았다.
그의 부서진 가면 사이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데라 헤만은 아이작과 검이 맞부딪치던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확실해. 내 검술을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흉내 냈다.’
단죄의 검을 아이작을 향해 내리꽂던 순간, 아이작은 검의 궤도를 교묘하게 틀어서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그러나 하늘에서 빛이 떨어지던 형상과 마찬가지로, 아이작 또한 지저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시커먼 기운을 뽑아 맞부딪쳤다.
그 기운이 부딪친 궤적 또한 교묘했다. 데라 헤만보다 반 박자 느렸던 주제에 그의 약점을 공략하기에 충분한 위치에서 충돌시킨 것이다. 바로 그의 가면 바로 앞에서.
천사의 단죄를 막아내는 검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굳이 부른다면 역천(逆天)이 적당할 것이다.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불경한 어감에 데라 헤만은 오한을 느꼈다. 아이작은 대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베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기에 그런 검술을 형상화할 수 있는 건가?
데라는 손안에 가득 담긴 피 웅덩이를 응시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것도 오랜만이다.
이럴 때면 항상 그녀가 나타난다.
일곱 개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하얗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