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38)
338화. 광휘 (4)
“……아직도 미다스의 손을 되찾을 생각을 접지 않은 모양이군요.”
아이작은 분명히 경고해 뒀다. 아이작의 말 그대로 그녀는 아직 미다스의 손을 포기하지 않은 듯했다.
하기야 아이작 말 몇 마디에 포기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과 시간을 낭비해 왔다.
아이작은 돼지 다리를 뜯으며 말했다.
“좋은 밥을 얻어 먹었으니 밥값을 해야겠지요. 대신 확실하게 하도록 하지요. 미다스의 손을 확보하게 되면 제가 제일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문제가 없다는 확신이 들면 넘기도록 하지요.”
“그건…….”
“이건 타협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제 걱정이 기우에 불과한 건지 확인해 보고 넘기겠다는 겁니다. 당신들도 솔직히 그게 어떤 성물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레오노라도 할 말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미다스의 손이 ‘소원을 들어주는 성물’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 기원과 정체에 대해서는 모른다. 아이작이 아는 ‘원숭이 손’과 같은 종류의 불길한 것이라면 황금우상 상단과의 관계고 뭐고 바로 파괴하든가 묻어버릴 생각이었다.
“칼자루를 쥔 건 본인이다 이거군요. 좋습니다. 하지만 그쪽 역시 백금 결사의 일원이라는 것만 잊지 마시길.”
“뭐, 그러죠.”
아이작은 레오노라가 저렇게 말하면서도 절대로 납득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분명 뒤에서 손을 쓸 것이다. 사람을 심든가 매수하든가 해서 미다스의 손을 빼돌리려는 시도를 할 거라고. 그게 레오노라니까.
그녀의 불행한 점은 아이작이 이미 그녀에 대해 너무 잘 안다는 점이었다.
‘미다스의 손을 넣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조치를 취해야겠군.’
하지만 뭐가 됐든 아직은 먼 미래다. 미다스의 손을 손에 넣으려면 그 전에 우선 성지를 수복해야 하니까.
그리고 그 전에 저 악몽 같은 바다를 건너는 게 우선이다.
***
이사크레아 여명군이 배에 타고 필요한 물자를 싣는 작업은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엘릴의 군마들을 싣는 것이 문제가 될 뻔했지만, 엘릴은 왕국에서 대륙으로 넘어올 때도 이미 한차례 배를 타고 건넌 바 있었다. 기사들은 능숙하게 말들을 배에 단단히 고정시켰고, 난동을 부리는 말도 없었다.
아이작이 짐 싣는 모습을 구경하는 사이, 누군가 그의 곁에 다가왔다.
“선생님. 이제야 겨우 혼자 계시는군요.”
“폐하.”
에델레드였다.
아이작이 밀리샤르 수도원에서 빠져나왔을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부하들 앞이라 근엄한 척하느라 티도 잘 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당연히 살아 돌아오시리라 생각했습니다. 데라 헤만 따위가 엘릴의 대전사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지요.”
아이작은 잠깐 빛의 법전 성기사로서 모욕감을 느껴야 할지, 아니면 엘릴의 대전사로서 자랑스러워야 할지 혼란을 느꼈다.
아이작은 정색하며 대답했다.
“데라 헤만은 강한 자였습니다. 저도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요.”
“정말요? 그가 그렇게 강했습니까?”
에델레드는 수심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데라 헤만보다는 이단심문관의 간교한 수작을 걱정했습니다. 빛의 법전에도 명예로운 전사가 많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많은 자가 명예로운 죽음 대신 누명을 쓰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아이작이 사실 데라 헤만보다 천사의 손에 죽을 뻔했다는 점에서 에델레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엘릴의 명천사인 재투성이만 해도 생전 명예로운 성배기사였지만, 이단심문관들에게 붙들려 화형당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에델레드는 이내 밝게 웃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빠져나오시는군요. 전사에게는 힘과 기술만이 아니라 지혜 또한 필요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레이나 힐드에게 그 말씀 좀 꼭 알려주십시오.”
아이작은 알데온 기사단의 유명한 멧돼지 기사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선생님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니 데라 헤만의 실력이 궁금하긴 하군요. 다들 그리 대단하다 대단하다 하던 자를 선생님께서 이리 상처 하나 없이 꺾으셨으니…….”
아이작은 에델레드가 그답지 않은 호기심을 보인다고 생각했다. 에델레드는 기사도 혐오자 아니었나? 누가 더 센가 같은 싸움이라면 지겨워하는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를 자세히 보자 그 내심이 슬쩍 보였다.
아이작은 웃으며 에델레드를 바로 보고 섰다.
“그럼 오랜만에 가볍게 겨뤄보는 건 어떻습니까, 폐하? 데라 헤만의 실력을 가볍게나마 보여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델레드는 환한 표정을 했다.
에델레드는 오랜만에 아이작에게 ‘강습’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순수한 의미에서 강습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으며 얼마나 달라졌는지 스승 앞에서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에 가까워 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체구가 커지고 실력이 늘 때니 당연했다.
‘이렇든 저렇든 소드마스터의 경지지. 한참 뽐내고 싶어 할 때군.’
아이작은 카훌린을 뽑아 들고, 에델레드는 칼드부흐를 꺼내 들었다.
에델레드는 칼드부흐를 꺼내자마자 눈빛이 연녹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칼드부흐의 힘을 ‘적당한 수준’으로 꺼내는 법을 익힌 것 같았다.
아이작을 상대하려면 적당한 수준으로는 안 되겠지만 배를 부술 수는 없으니까.
힘을 적당히 아껴야 하는 것은 아이작도 마찬가지였다. 강한 기술을 쓸 수 없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한 제약을 가지고 싸우는 셈이었다.
‘한번 실력 좀 볼까.’
먼저 움직인 것은 아이작이었다.
공격보다는 방어 후 대응하는 모습에서 더 많은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상단에서 하단으로, 정직하지만 빠른 베기 동작. 에델레드는 예상보다 빠른 칼에 놀란 듯해 보였지만 제법 깔끔한 동작으로 막아 냈다. 그리곤 동시에 반동을 살려 곧바로 상급 검술을 시전했다.
까드드득! 갑판 위에 갑작스럽게 세 줄기의 흠집이 생겨나며 아이작을 향해 쇄도했다. 아이작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덟 갈래? 아니, 아직은 세 갈래뿐인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손으로 펼쳐지는 이삭 검술은 처음 보았다. 세 갈래밖에 나오지 않는 것은 힘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에델레드의 검술 특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충분히 놀라웠다. 나이만 놓고 보면 아이작보다 어린 나이에 상급 검술을 펼친 것이다.
‘게벨이 상급 검술을 가르쳐준 게 늦어서 그런 거긴 하지만…… 일단 받아친 다음 반응을 볼까.’
에델레드의 검이 날아오는 동안 아이작은 이런저런 분석을 하고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에델레드가 느린 것이 아니라, 데라 헤만을 상대하면서 학습한 아이작의 반응 속도가 미친 듯이 올라간 것이다.
아이작은 칼을 움직였다.
까득, 까각, 쾅!
연달아 움직인 세 번의 검광이 에델레드가 만들어낸 세 갈래를 단숨에 파훼했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다음 일어난 일은 아이작도 예상하지 못했다. 파훼당한 검기 중 하나가 역으로 꺾이면서 에델레드를 덮친 것이다.
“아차.”
아이작이 당황한 순간 굉음과 함께 에델레드가 단숨에 나가떨어졌다. 칼드부흐에 보호받는 신체는 상처 하나 없었지만, 얼빠진 얼굴은 그가 받은 충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작은 급히 다가와 에델레드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죄송합니다, 폐하. 데라 헤만과 싸우다가 붙은 버릇이 저도 모르게 튀어 나갔군요.”
“……싸우다가 붙은 버릇이요? 몇 시간 동안 싸우기라도 하신 겁니까?”
아이작은 데라 헤만과 싸운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칼센이 싸운 시간을 합쳐도 30분은 안 넘을 것 같았다.
“데라 헤만은 상대의 큰 기술을 파훼하고 역으로 돌려주는 못된 기술이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 흉내를 냈군요. 어지간히 지긋지긋했던 모양입니다.”
“데라 헤만의…… 기술을 며칠 만에 배우고 흉내 냈다구요. 그렇군요…….”
정확히는 며칠이 아니라 30분 남짓이지만 아이작은 말하지 않았다.
에델레드가 지나치게 풀 죽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작은 그의 기죽은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에델레드는 최연소 소드마스터에 어쩌면 최연소 상급검술 사용자다. 물론 천사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그가 검을 배운 시간에 비해 거둔 성취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나랑은 비교하면 안 되지.’
“하지만 여덟 갈래를 사용하신 것은 대단하군요. 상급 검술에 대해서는 제대로 가르쳐 드릴 틈도 없었는데…… 약하게라도 세 갈래까지 발현한 것은 충분히 훌륭한 시도였습니다.”
“세 갈래뿐인데 약하기까지 했군요…….”
아이작은 역시 자신에게 애 보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안젤라를 불러서 여동생 역할이라도 시킬까 했지만 더 적당한 말을 찾아냈다.
“이 정도면 놀라운 성취입니다. 폐하께서 눈이 너무 높아지신 것뿐이지요. 그리고 앞으로 바다를 건너는 동안 시간이 많으니, 그동안 좀 더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이작의 말에 에델레드의 표정이 곧 다시 환해졌다. 성취가 놀랍다는 것보다 아이작과 훈련할 시간이 생긴다는 사실에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에델레드는 반드시 꼭 훈련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물러났다.
하지만 에델레드가 사라지고 나자 아이작은 새로운 고민이 생겨났다.
‘데라 헤만의 검술? 이거 보통이 아닌 거 같은데?’
***
에델레드를 보낸 뒤 아이작은 선실로 들어와 가볍게 칼을 휘둘러보았다. 격렬한 동작이 아니라 단지 데라 헤만의 검술을 흉내 내는 것뿐이었기에 좁은 선실 안에서도 무리가 없었다.
몇 번 동작을 반복한 뒤에야 아이작은 확실한 사실을 깨달았다.
‘신성을…… 포식한다고?’
데라 헤만은 주변의 신성을 먹어 치우는 성체를 가지고 있다. 몸에 품은 막대한 신성을 기반으로 기적과 축복을 둘둘 싸매고, 어떤 기적을 맞아도 멀쩡한 맷집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의 검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상급검술은 어떤 눈에 띄는 효과를 발동하는 것보다 주변의 신성을 급격하게 끌어들이는 효과를 발휘했다. 기적을 걷어내거나 축복을 파훼할 수 있을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신수나 천사를 상대할 때 대단히 효과적일 것이란 점이었다.
아이작은 몇 번 더 자세를 바꾸며 검술 자세를 교정해 보았다.
마치 버튼을 누르면 바뀌는 것처럼 ‘데라 헤만 자세’와, ‘칼센 밀터 자세’, ‘아이작 자세’가 나왔다. 모두 같은 성 아르테 검술에 기반한 것이라, 잠시만 집중하면 바로 전환할 수 있었다.
요약하자면 ‘데라 헤만 자세’는 천사나 신수, 혹은 축복으로 몸을 둘둘 싸맨 상대를 상대할 때 좋았고, ‘칼센 밀터 자세’는 일대일 상대를 할 때 유효했다. 그리고 ‘아이작 자세’는 다양한 상황에서 쓰기 좋았지만, 대규모 적들을 상대할 때 가장 적당해 보였다.
아이작은 그 특징들을 따와 이름을 다시 붙였다.
‘대충 금사자, 사냥꾼…… 그리고 촉수 자세라고 불러야겠군.’
자신에 대한 호칭은 야박했지만 어차피 남에게 들려줄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갑자기 이런 자세 변환이 가능해진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칼센 밀터가 아이작의 몸에 강렬한 흔적을 남긴 것이다.
아이작은 칼센의 검술을 몸에 새겨 넣는 그 짧은 순간, 칼센의 자아가 빠르게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었다. 당신에는 눈앞의 전투가 급해서 신경 쓰지 못했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설마 그걸로 완전한 포식이 이루어진 건가 싶었다.
“칼센?”
공연히 허공에 대고 불러 보았지만 늘 그렇듯 대답은 없었다. 또 자기가 말 하고 싶을 때만 튀어나와 떠드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뒤늦게 포식이 이루어져 흡수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칼센이 남기고 간 말이 뒤늦게 떠올랐다.
‘나와 데라, 다음의 시대는 너다.’
“하, 이 빌어먹을 놈.”
아이작은 쓰게 웃으면서 이 양파 같은 기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조용히, 평생 빛의 법전에 충성해 왔으나 세기의 배교자로 남게 된 성기사를 무거운 마음으로 기억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