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40)
340화. 악몽의 바다 (2)
“장애물? 폭풍우와 소용돌이, 해일을 피해 갈 수 있다고요? 반대로 말하신 게 아니라?”
“예.”
보통은 해적을 피해 다니지, 폭풍우를 피해 다니지는 않는다. 거대한 기상현상을 무슨 수로 피한단 말인가. 심지어 악몽 해협의 폭풍우는 등대지기가 미르미아에 뿌린 저주가 깨지지 않는 한 사라지지도 않는다.
옌코스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아이작에게 말했다.
“성배기사님이 바다에 대해서 잘 모르시나 본데, 바다는 숲이나 절벽처럼 샛길 같은 게 있지 않습니다.”
“당신들도 악몽 해협을 뚫는 해로에 대한 전설은 들어본 적 있지 않습니까?”
옌코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른 선원들도 웅성대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악몽 해협의 끔찍한 환경은 그들의 성지인 미르미아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다. 당연히 뚫으려 수없이 시도해 보았을 것이다.
“……당연히 들어봤지요. 그 전설 때문에 유서 써놓고 출항한 선장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부서진 배 잔해 외에는 단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 유령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것 같습니다만 그런 답을 원하시는 건 아닐 겁니다.”
옌코스는 씨근거리며 대답했다. 그들에게는 아픈 상처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선장이 죽을 때가 됐거나 미치면 남쪽으로 간다는 말도 있겠습니까? 저희가 아는 게 있으면 안내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이작도 안다. 소금 의회 신도들은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애초에 그들이 알 필요는 없었다.
“제가 알고 있습니다.”
아이작의 담담한 대답에 적막이 번졌다. 옌코스와 에이단, 선장들의 눈이 급격하게 커졌다.
“저, 저저저정말입니까? 대체 어떻게 그걸? 우르반수스에서 얻은 지식입니까? 자세히 설명 좀……!”
에이단이 달려들어 아이작에게 답변을 애원하자, 옌코스가 그를 붙잡아 떼어냈다.
“……성배기사님은 뭍사람 아니십니까. 배를 몰기는커녕 남쪽 바다는 이번이 처음이신 걸로 아는데 어떻게 그런 해로를…….”
“정확히는 해로가 아니라 ‘방법’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악몽 해협을 뚫는 ‘열쇠’지요.”
아이작은 어깨를 으쓱였다.
“악몽 해협의 끔찍한 환경은 자연적인 게 아니라 기적에 의한 겁니다. 그러니 기적을 파훼할 열쇠만 찾는다면 그 폭풍우도 뚫고 갈 수 있지요.”
이 세계에선 정론에 가까운, 그럴듯한 논리에 선장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들에게도 바다를 잠재우고 파도를 다스리는 성물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때문에 아이작의 말도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성물이라면 분명 소금 의회의 성물일 것이다.
엔코스는 이미 그 사실만으로도 반쯤 넘어온 상태였다.
“……그럴듯하군요.”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해적유령선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성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저 미친 해협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자들은 바다에 이틀쯤 빠졌다 나와도 상관없는 불사 교단의 언데드 유령선만이 유일했다. 하지만 소금 의회 신도들은 유능한 선원인 동시에 가끔은 잔인한 해적이기도 했다.
그들은 폭풍보다 유령선이 덜 무서웠다.
“열쇠는 어디 있습니까?”
“그게 문젠데요.”
아이작은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악몽 해협 안쪽에 있습니다.”
***
아이작의 설득 덕분에 소금 의회 선단은 남쪽으로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선원들은 배들의 무저갱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금지된 해역으로 간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선장들이 ‘바다를 잠재우는 성물’에 대해 열정적으로 소문을 낸 덕분에 공포 반 설렘 반으로 항해를 이어갔다.
“물론 그렇다고 두려움을 지울 수 있는 건 아니지. 선원들의 공포가 병사들에게도 일부 전염되고 있는 것 같더군.”
가끔이라도 배를 타보는 세상의 화로나 엘릴 신도들보다, 거대한 제국 영토 안에서만 활동하던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이 주로 그랬다. 하지만 공포보다는 다른 데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뱃멀미였다.
뱃멀미를 가장 심하게 앓는 로튼해머는 매일 반나절쯤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아이작은 지금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게벨 또한 배를 타기 전보다 안색이 초췌해진 것을 알았다.
“게벨 씨도 배가 처음이십니까?”
“……그런 셈이지.”
게벨은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가 뱃멀미하는 모습을 본 적 없었다. 하지만 그는 흑제국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안색이 안 좋아졌다.
아이작은 게벨에게서 하루가 다르게 스멀스멀 배어 나오는 두려움을 읽었다.
바다나 유령선에 겁먹은 게 아니다. 그의 두려움은 과거에 기인하고 있었다.
“게벨 씨. 불사 교단과 싸울 때가 걱정되십니까?”
“전투가 두렵지 않은 사람도 있나? 하지만 꽁무니를 뺄 생각은 없으니…….”
“아니, 같은 동료였던 기사단원들을 만날까 걱정되시냐는 말입니다. 아발란체 성기사단이요.”
아이작이 한 번에 핵심을 찌르자 게벨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잠깐 노여운 표정으로 아이작을 노려보다가 이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들의 영혼이 결국 굴복해 데스나이트가 된 모습으로 만날까 두렵다. 아니, 거의 반드시 그렇겠지.”
게벨만 그럴까. 지난 여명군 때 전사한 자들 대부분은 불사 교단의 영토에서 언데드가 되었다.
영혼마저 굴종하고 자아를 유지하느냐, 영원히 영혼이 묶인 채 노예로 봉사하느냐 선택지 앞에 오랜 시간 버티기는 어렵다. 특히 자신이 빛의 법전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더더욱.
여명군이 싸워야 할 상대는 과거 여명군에 뛰어들었던 가장 열정적이고 용감한 전사들인 셈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다. 더 이상 도망칠 생각은 없어. 오히려 만났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그들의 배회를 끝낼 수만 있다면.”
이미 불사 교단으로 배교한 상태라면 돌이킬 수 없지만, 아직 노예에 불과한 상태라면 육신을 불태우는 것으로 해방할 수 있다. 게벨은 그 가능성에 목숨 걸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빛의 법전에 대해 그가 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복수였다.
아이작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도 돕겠습니다.”
“……아이작, 나는 이미 네게 복수라는 무거운 짐을 맡겼었다. 아직 진실은 정확히 모르지만 네게 더 이상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아. 나는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족하다.”
“잊으셨습니까, 게벨 씨? 저도 아발란체 성기사단의 검술을 일부나마 익혔습니다.”
아이작은 히죽 웃었다.
“게벨 씨의 목표는 제 목표이기도 합니다. 선배들이 못난 꼴로 방황하고 다니면 후배가 뭐가 되겠습니까. 성지 루아로 가는 길에, 아니, 여명군이 끝나도 만나지 못한다면 우리 둘만이라도 찾으러 다녀보죠.”
아이작의 호쾌한 대답에 게벨은 할 말을 잃었다. 아발란체 성기사단의 복수를 위해 아이작을 끌어들이고 가르친 것은 게벨이다.
마지막 후계라고 할 수 있는 아이작에게도 충분히 자격이 있었다.
“그래, 그러자꾸나.”
게벨은 희미하게 웃었다. 아이작은 그의 얼굴에서 옅게나마 공포가 가신 것을 보고 안도했다.
내심 게벨이 복수를 마친 뒤 동료들 뒤를 따라간다면서 자살이라도 할까 봐 걱정한 것이다. 아이작이 곁에 있다면 게벨은 새로운 보람을 찾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은 내 옛 동료들보다는 육지에 도착한 다음이 걱정이군. 미르미아라면 그 사막 너머가 바로 외경 아닌가?”
“외경이요?”
“빛의 법전의 질서가 미치지 못해 혼돈의 괴수들이 드글거리는 땅 말이다. 옛신들의 도피처. 거기서 넘어온 괴물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이작도 물론 외경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게임상에서는 일종의 미구현 구역인데, 청개구리 같은 플레이어들이 기어들어 가면 ‘반드시 죽는 영역’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죽음은 플레이어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터무니 없는 괴물들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외경은 미구현 구역도 뭣도 아니다. 실존하는 땅이며 진짜 과거 이름 없는 혼돈 태생의 괴물들도 있다. 아이작은 게벨이 그걸 알고 지적하는 걸까 싶어서 뜨끔했을 뿐이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요.”
“……널 쭉 지켜봤는데, 제대로 계획을 짜고 진행하는 것 같지가 않다. 항상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든 해내는 능력이 대단할 뿐이지.”
아이작도 (구)이름 없는 혼돈의 권속들이 자신을 보면 어떻게 대응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그다지 호의적인 반응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또 모르는 거니까. 당장은 저 수평선 너머에서 다가오는 먹구름부터 주시해야 할 것 같았다.
악몽 해협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
“돛줄! 돛줄을 몸에 감아!”
“이건 미친 짓이야!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남쪽 바다로 가면 갈수록 서서히 거칠어지는가 싶던 바다는 어느 순간부터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온 선원들은 모두 노련한 소금 의회 신도들이었기에 배는 가까스로 뒤집히지 않고 있었지만, 결국 시간문제였다.
아직 악몽 해협의 진짜 광기에는 발도 딛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급기야 젊은 선원 하나가 크게 밀어닥쳐 온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졌다. 그 순간 에이단이 눈을 부릅뜨고 기도문을 외웠다. 선원은 가라앉는 대신 튕겨 나가듯 물 위로 떠올랐다. 그 사이 선원들이 다급히 밧줄을 던졌다.
선원들이 곤경에 처할 지경이라면 다른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선실 안에 갇혀있긴 하지만 쓰러져있는 것조차 불가능한 환경 속에, 그들은 왜 이 바다가 ‘악몽 해협’이라고 불리는지 알게 되었다.
“배가 돌아간다!”
결국 대열이 깨지면서 타의인지 자의인지 밀려나는 배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둘 배들이 폭풍 속에서 흩어지면서 북쪽으로 되돌아갔다. 아이작은 굳이 그 배들을 다시 부르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이미 계획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돌파하는 게 어렵다면 무리하지 말고 반드시 돌아갈 것. 그 어떤 것도 병사들 생명보다 귀하지 않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긴 했지만, 사실 그들은 떡밥이었다. 아이작이 이 악몽 해협을 돌파하는데 필요한 열쇠를 끌어들이기 위한 떡밥.
때문에 아이작은 모진 파도를 전신에 얻어맞으면서도 돛대에 매달려 수평선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성배기사님! 인제 그만, 돌아갈까요?!”
돛줄에 허리를 꽁꽁 묶은 에이단이 아이작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 역시 뱃사람으로서의 경력이 수십 년이지만, 이런 폭풍우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게 악몽 해협의 초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상황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저는 받아들이겠습니다만, 선상 반란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곤 보장 못 하겠습니다!”
에이단은 투덜거리며 다시 갑판을 어기적어기적 기어갔다. 물론 이런 환경에서 선상 반란 따위는 불가능하다. 에이단의 말은 그저 불만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작도 초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낚기 전에 배가 가라앉아 버리면 어불성설이다. 그때 아이작은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는 밧줄에 몸을 묶은 채 루앗딘 열쇠를 뽑아 들었다.
폭풍우 치는 구름 낀 하늘 아래 루앗딘 열쇠가 등대처럼 환하게 타올랐다.
“와라!”
곁에서 지켜보던 선원들은 아이작이 강력한 힘으로 폭풍우를 베기로 마음먹었다는 의견과 마침내 성배기사가 미쳤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시간이 갈수록 후자로 기울었는데, 결국 그들 주변에 아무런 배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직 아이작에게 충성하는 마음을 가진 에이단의 배만이 남았다.
이사크레아 여명군 선단은 시작부터 와해한 것이다. 남은 배라곤 오직 아이작이 탄 배 한 척뿐이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확신을 가지고 루앗딘 열쇠를 흔들었다.
“성배기사님, 이제…….”
에이단이 다시 한번 말리려던 순간, 배가 갑작스럽게 휘청하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거의 전복되기 직전 에이단의 필사적인 조종으로 배가 뒤집히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가 안 되겠다면서 아이작의 명령을 무시하고 배를 돌리려 했다.
그때 아이작이 소리쳤다.
“왔다!”
아이작은 지금까지 보고 있던 수평선이 아닌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 아래 쪽에서 물거품과 함께 배 한척 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떠오르고 있었다. 아이작이 탄 배가 고꾸라질 뻔한 것은 바로 그 물거품 때문이었다.
싸늘한 한기와 함께, 악몽 해협의 악명높은 유령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