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41)
341화. 악몽의 바다 (3)
쩌저저저적…… 선원들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싸늘한 한파였다. 남부에서는 느끼기 힘든 냉기였다. 이미 온몸이 젖어있던 선원들은 체온이 빠르게 식는 것을 느꼈지만, 아이작은 그에 질 새라 더욱 맹렬하게 루앗딘 열쇠의 불꽃을 피워올렸다.
“왜 이렇게 늦었냐, 이 해적 놈들아!”
아이작은 희열에 찬 표정으로 유령선을 바라보며 외쳤다.
에이단은 그 모습에 살짝 질려버렸다. 유령선이 나타나는 원인과 정체가 명확한 이상, 소금 의회 선원들은 그것들에게 미신적인 두려움을 갖진 않는다. 하지만 그걸 차치하더라도 유령선은 그 자체로 무시무시한 해적들이다.
“에이단 선장, 포경 작살 준비해라! 놈들을 붙잡아야 한다!”
“예? 뭐라구요?”
“어서! 놈들이 악몽 해협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야!”
에이단은 설마 했던 유령선 포획 작전이라는 사태에 당황했지만, 바로 선원들을 움직였다. 갑작스러운 전투 지시에 선원들은 허둥대면서도 곧바로 작살을 장전했다. 에이단은 그 기민한 모습을 보고 불현듯 폭풍우가 상대적으로 가라앉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저 배에 그 바다를 잠재우는 성물이 있는 건가?’
그렇다면 아이작이 기를 쓰고 눈에 띄려고 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등대처럼 배를 밝혀 유령선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다른 배들을 돌려보낸 것 역시, 유령선이 방심하고 다가오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정말로 폭풍우에 의해 선단이 와해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쏴라!”
쾅, 콰쾅! 포경 작살 여러 개가 단숨에 유령선을 향해 날아들었다. 상당수 작살은 거친 파도에 빗나갔지만, 두 발이 정확히 선체에 적중했다. 설마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 공격받을 줄은 몰랐던 건지 유령선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끌어당겨! 배에 올라타야 한다!”
아이작은 가장 먼저 올라타기 위해 쇠사슬 위를 달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때 아이작은 유령선 난간 너머에서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섬뜩한 느낌이 스친 순간 아이작은 곧바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
쾅!
“성배기사님!”
에이단은 기겁하며 바다에 빠진 아이작을 찾았다. 하지만 거친 파도 속에서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령선에서 쏜 것도 다름 아닌 포경 작살이었다. 에이단은 그제야 상대 배도 소금 의회 소속의 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빌어먹을, 갑옷 입고 헤엄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대체 왜 바다에 뛰어들어서…….”
에이단은 벌써 가라앉고 있을 아이작을 구출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 준비를 했다. 꿈꾸는 자를 여기서 이렇게 허망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
“저, 저기!”
그때 선원 하나가 유령선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제야 에이단은 유령선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을 목격했다.
붉은 안개가 유령선 위에서 언데드 선원들을 휩쓸고 있었다.
***
바다에 떨어지기 직전 ‘붉은 탄원’을 이용해 유령선에 올라타는 데 성공한 아이작은 몸을 모두 수습하기도 전에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심장을 중심으로 가장 먼저 복구된 손과 팔을 들어 루앗딘 열쇠로 해골 선원들을 베어넘겼다. 다음 걸음을 딛기 위해 다리와 발이 생겨났고, 가장 마지막에 머리가 복구되었다.
그 사이 아이작은 벌써 해골 선원 다섯 명을 불태워 베어 넘기고 있었다. 허공에서 손, 발이 하나씩 생겨나면서 칼을 휘두르는 모습은 언데드들이 보기에도 섬뜩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언데드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하다. 완전히 태우지 않으면 놈들은 다시 끈질기게 일어날 테니까.
그것은 아이작의 뒤를 따르는 아직 미완성된 신체 부위들이 마무리 지었다.
[이제 ‘붉은 탄원’을 이용해 상대를 포식할 수 있습니다.]분열 예식을 반납하고 강화된 붉은 탄원은, 아이작이 좀 더 유연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가 완전히 몸을 복구시키지 않아도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게 돕는 한편, 붉은 안개 일부가 그의 망토처럼 뒤따르면서 해골들을 메뚜기처럼 갉아먹었다.
물론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데드는 포식해도 아무런 영양가가 없다. 하지만 먹어 치워서 복구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이었다.
[성기사! 성기사다!]아마도 소금 의회 소속이었을 해골 선원들이 커틀라스를 뽑아 들고 아이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법 용감했지만 이 바다 촌놈들의 패착은 이름 높은 성배기사의 명성을 듣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런 일반병을 상대로 집중할 필요도 없었지만, 아이작은 최근 얻은 깨달음을 복습할 겸 집중해보았다. 그의 자세가 이전과 약간 달라졌다.
칼센 밀터의 모습을 본뜬 사냥꾼 자세.
해골 선원 하나가 가만히 서 있는 아이작의 미간을 내리찍기 위해 커틀라스를 휘둘렀다. 그 순간 아이작의 칼날이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해골 선원의 정수리부터 골반까지 쪼개버렸다. 칼의 움직임은커녕 아이작이 발을 떼는 것도 보지 못했던 해골 선원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아이작은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다가 한걸음 성큼 다가갔다.
칵, 카득, 쉬릭. 난폭한 충격음도, 단말마도 없었다. 단지 칼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뼈가 꺾이는 소리가 가볍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아이작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주변에 있는 선원들이 하나둘 잘려 나가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들의 잔해가 붉은 안개에 휩싸이자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마치 사신이 그들을 하나하나 추수하는 듯한 모습에 해골 선원들은 전율했다.
[저건 빛의 법전 성기사가 아니야! 도망쳐라! 사신이 나타났다!]당연하지만 불사를 추구하는 불사 교단은 사신의 존재 따윈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소금 의회 출신 언데드들. 언데드가 되어서도 미신을 믿는 그들은 아이작의 존재를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해골 선원들 일부가 바다에 몸을 던지기까지 하자 아이작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멋지군. 이게 바슐이 말하던 ‘살기를 절제하는 검’이라는 건가?’
칼센의 검술은 아이작과 달리 살기를 극도로 정제한 검술이었다. 살기를 절제한 검술이 사람을 죽이는 데 효율적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했지만, 바슐이 보면 아주 좋아라 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데라 헤만에게 물어볼 걸 그랬나.’
물론 데라 헤만에게 바슐의 안부를 물었다간 그때 리히트하임에 침입한 게 본인이었다는 사실을 까발리는 꼴이다. 명천사가 어디 호구도 아니고 쉽게 죽진 않을 테니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이놈…… 죽어라!]마지막 상대는 선장인듯한 화려한 복장을 입은 언데드였다. 놈은 선장실 안에서 육중한 포경 작살을 장전한 채 기다리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갈겨버렸다. 아이작은 코앞으로 포경 작살이 밀려온 순간, 다시 붉은 탄원으로 몸을 피 안개로 변화시켜 선장실로 들어갔다.
아이작이 피 먼지가 되어 흩어진 줄 알았던 선장은 희열을 느낄 새도 없이, 자신의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쓰러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선장은 루앗딘 열쇠 끝에 매달린 채 눈구멍으로 불꽃을 뿜어내며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대체 뭐냐. 뭐 하는 놈이길래…….]“네가 선장이냐?”
[그래. 내 이름은 네이스 로앤이다. 원하는 게 뭐…….]“아냐, 됐어. 충분해.”
아이작은 선장의 두개골을 루앗딘 열쇠 끝에 매단 채 다시 갑판으로 나왔다.
어느새 포경 작살로 유령선 가까이 선체를 끌어당긴 에이단의 배가 붙어 있었다. 그 배 위에서 얼빠진 눈으로 아이작을 바라보는 선원들이 보였다.
단신으로 유령선을 점거하다니, 듣도 보도 못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다를 잠재우기 위한 성물입니까?”
에이단이 루앗딘 열쇠에 불타오르는 해골 선장의 두개골을 보고 물었다.
“아니.”
하지만 아이작은 부정했다.
“이건 열쇠로 가기 위한 열쇠라고 해야 하나. 아직 한 단계가 더 남았다.”
***
“설마 유령선을 혼자서 점령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예전에 익사자 왕을 상대하셨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해지신 것 같군요.”
“명색이 명천사인데 익사자 왕이랑 이런 해골 잡병들을 비교하면 쓰나.”
선원들은 유령선을 겁내면서도 그 익숙한 구조와 형태에 머뭇머뭇 넘어와 상태를 살폈다. 오랜 시간 바닷물 속에 잠겨있던 유령선은 여기저기 삭고 낡았지만, 따개비를 제거하고 돛 줄을 교체하는 등, 관리된 흔적이 보였다.
유령선은 수면 아래를 헤엄치고 폭풍 속을 뚫고 다닌다. 불사 교단의 어떤 기적에 의해서 그런 거긴 하겠지만, 어쨌든 딱히 이런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에이단은 그 이유를 분석했다.
“아마 언데드들이 소금 의회 선원들이라 그런 거 같군요. 의미 없다는 건 알지만 선원들 입장에서 배가 썩어가는 꼴을 보면서도 그냥 방치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일종의 화단 가꾸기 같은 취미 활동이었단 말이지?”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언데드가 되면 시간이 무궁무진할 테니 취미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이단은 그렇게 말하며 유령선의 장비와 화물들을 살펴보았다. 약간 오래되긴 했어도 어쨌든 관리받은 덕분인지 작살포도 그렇고 아직 쓸만한 물건들은 많았다. 그 역시 오래된 옛 선배의 배에 묘한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그나저나 폭풍우가 상대적으로 잠잠해진 느낌이군요. 아직 파도도 거칠고 안개도 짙지만…… 혹시 이 유령선 때문입니까?”
“그래.”
유령선은 그 고유의 냉기를 뿜어내기 때문인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그 주변은 상대적으로 이상기후가 잦아든다. 이 언데드 해적들이 악몽 해협에서 날뛸 수 있는 이유다. 바다를 잠재우는 ‘성물’의 정체가 바로 유령선이었다는 사실에 에이단은 말문이 막혔다.
“불사 교단은 정예한 해군을 키울 필요도 없어. 이 폭풍이 선단을 갈가리 찢어놓으면 지칠 대로 지친 배를 기습해서 빼앗으면 되니까. 그래서 여기 이런 유령선들을 풀어놓은 거겠지.”
“그래서 우리 배들이 흩어질 때까지 기다리던 거였군요…… 그럼 이제 이 배를 앞세우고 우리 배들을 다시 불러 모아 전진하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 우리 배가 몇 척인데 유령선 하나로는 턱도 없지.”
“예? 그러면…….”
“유령선을 몇 척 더 사냥할 거다. 나타나면 닥치는 대로 포획한 다음 개처럼 묶어서 앞장세워야지.”
에이단은 어쩐지 아이작의 말투가 해적 같다고 느꼈다.
최대한 좋게 봐줘도 성기사 같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해적 잡는 해적으로 탈바꿈한 아이작은 서둘러 다른 해적이 나타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
그러나 아이작의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첫 유령선을 포획하고 이틀째.
유령선 주변 해역은 상대적으로 잠잠해져서 견딜만했지만, 유령선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선원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방한 대책을 거의 세우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아이작이 열심히 루앗딘 열쇠를 피우긴 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설상가상 주변에 짙게 낀 안개는 선원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안개가 짙군요.”
에이단이 곁에서 아이작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안개만 보면 조용한 해역 같은데, 저 너머에 집채만 한 파도와 소용돌이가 들끓는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이 안개도 악몽 해협의 악몽 중 하나야. 어느 순간 암초에 들이받게 만들거나, 더 깊은 지역으로 끌어들이지.”
아이작은 자욱하게 낀 안개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역시 들킨 건가?’
이렇게나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이작의 의도가 들통난 걸지도 모른다. 어차피 유령선이 없으면 악몽 해협을 넘어오진 못할 테니,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공격할 필요는 없다고.
그렇다면 아이작의 계획은 모조리 무위로 돌아간다. 아이작이 고를 수 있는 방법은 초기 옌코스가 주장하던 대로 동쪽으로 가서 여명군 본대를 돕는 경로로 가던가, 서쪽으로 크게 우회해서 외경을 정면으로 뚫고 돌파하는 방법뿐이다.
전자는 마음에 들지 않았고, 후자는 아이작이 생각하기에도 미친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남쪽으로 가야 한다.
‘정 안되면 단독으로라도 해협을 뚫고 먼저 미르미아에 도착한 다음 방법을 찾는다거나 할 수도 있겠지. 적어도 내 권속들은 소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때 에이단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안개를 응시했다.
“왜?”
“아이작 님, 안개가 배를 암초 있는 곳으로 끌어들인다고 하셨으니, 혹시 유령선이 있는 곳으로도 끌어들이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벌써 이틀째 아무 소식이…….”
아이작은 입을 다물었다. 에이단이 응시하는 방향에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보인 것이다.
이사크레아 여명군의 배는 아니었다. 소금 의회 배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작과 에이단은 그 배의 규모와 크기에 놀랐다. 적어도 그들의 배보다 두 배는 되는 크기였다.
아이작은 루주베르크에서 보았던 브란트 공작가의 군함을 떠올렸다. 그때 주변을 둘러본 에이단이 다급히 아이작을 불렀다.
“아, 아이작 님.”
에이단이 말하지 않아도 아이작은 이미 주변에 새로운 실루엣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말 그대로 ‘바다에서 솟은 것처럼’ 나타나고 있었다. 눈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난 숫자였다.
그때 안개 일부가 흩어지면서 돛에 새겨진 거대한 표식이 드러났다.
아이작은 그 표식을 손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여명군.”
악몽 해협의 폭풍에 휘말려 전멸당한 것으로 알려진 7차 여명군.
그들이 안개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