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43)
343화. 악몽의 바다 (5)
에이단의 배에 탄 선원들은 물론, 유령선의 선원들까지 모두 그 모습을 넋 놓고 지켜보았다.
유령선에서 뻗어 나온 촉수는 명백히 배보다 거대했다. 촉수는 비좁다는 듯 선체를 부수고 으스러뜨리며 밖으로 범람했다. 그것은 조개 껍질을 부수고 튀어나오는 조갯살, 아니, 두개골을 깨뜨리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내장들을 연상케 했다.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참람하고 부정한 이미지의 연속.
그 가늠하기 힘든 혼돈의 연쇄가 흘러넘치며 순식간에 호레이스의 배를 침범했다.
심연에서 기어 올라온 촉수가 배를 순식간에 휘감아 바다 밑으로 끌어들이는, 뱃사람들의 악몽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후퇴!]그때 모두의 머리를 두들기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호레이스의 호통에 언데드 선원들은 물론 소금 의회 선원들까지 뒤늦게 공포에서 깨어났다. 언데드 선원들은 허둥지둥 도끼질하며 촉수를 선체에서 떼어내기 위해 애썼다.
공포는 지성을 가진 존재의 생존본능을 자극한다. 생존본능은 두 가지 반응을 낳는다. 하나는 회피, 또 하나는 경외감이다.
호레이스는 본능적으로 전자를 선택했지만, 촉수가 유령선을 물어뜯는 것을 본 소금 의회 선원들은 후자의 감정을 느꼈다.
“바다의 진노가 손길을 뻗치셨다!”
“익사자 왕께서 당신의 짐승인 크라켄을 보내셨다!”
크라켄은 보통 문어로 분류되고, 저 촉수는 명백히 다리가 여덟 개보다는 배로 많았지만, 선원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안개와 저 너머의 색채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이미 경외심에 휩싸인 선원들은 ‘저것’이 아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무슨 부정한 짐승……!]반면 상대적으로 제정신인 호레이스는 푸른 안광을 희번덕거리며 아이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작은 아직도 손을 묘한 모양으로 비틀어 호레이스의 배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가 이 기괴한 촉수 무리를 조종하는 것은 분명했다.
역시 평범한 존재가 아니다. 아니, 빛의 법전 성기사가 맞긴 한 건가? 그러나 지금은 아이작의 정체에 대해 추측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호레이스는 눈을 번뜩이며 조타륜을 직접 움켜쥐었다.
그는 외경에 가까운 바다에서 진짜 크라켄과 만난 적도 있다. 그는 그때도 살아남았다. 물론 크라켄은 빨판으로 배에 달라붙지만, 이놈은 이빨과 손톱으로 달라붙는다는 점이 다르긴 하다.
[돛을 최대한 펼쳐라! 일항사, 외부장갑 고리를 전부 풀어! 여기서 빠져나간다!]선원들은 호레이스의 명령에 당혹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선장의 명령에 반문할 때가 아니었다. 그들은 기계적으로 호레이스의 명령을 수행했다.
이때 그가 한때 몸담았던 소금 의회의 기적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드드득! 호레이스의 유령선이 맹렬한 속도로 몸을 비틀며 촉수들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적절한 바람, 적절한 타륜의 각도, 적절한 노의 움직임, 돛이 펼쳐진 타이밍.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면서 호레이스의 유령선이 믿을 수 없는 속도를 냈다.
동시에 호레이스의 유령선 표면을 감싸고 있던 따개비와 외부장갑이 벗겨졌다. 허물을 벗듯이 촉수로부터 빠져나간 호레이스의 유령선은 맹렬한 속도로 거리를 벌렸다.
***
‘아, 텄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작은 안타까운 한숨을 토해 냈다. 나름 치명적인 함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바다에서 소금 의회의 배를 붙잡는 것은 어려웠다. 심연의 손아귀라고 해도 먼 거리까지 뻗어나갈 수는 없었기에, 이제 곧 우르반수스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아이작 님, 저기!”
저 너머의 색채가 흩어지면서 심연의 손아귀가 사라진 순간, 안개를 뚫고 배 한 척이 맹렬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돛대에는 태양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흰독수리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7차 여명군 주력으로 참전한 흰독수리 성기사단의 문양이었다.
배는 에이단의 배를 한 방에 두 쪽 내 버리겠다는 듯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선원들이 고함을 치며 배를 틀려고 했지만 이미 곳곳에 걸린 갈고리들 때문에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흰독수리 형태로 만들어진 선수상이 에이단의 배를 낚아채듯 날 듯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소금 회의 기적이, 에이단에게도 빛을 발했다.
넘실거리며 몰아닥친 파도가 한순간 배를 들어 올렸다. 순간적으로 갈고리의 폭이 느슨해지고, 난간 높이가 유령선에 비슷할 정도로 올라왔다.
에이단은 기적의 순간을 눈치 빠르게 포착했다.
“돛줄 당겨!!”
콰드드드드득! 기적의 순간은 에이단만이 아니라 선원들 모두 포착했다. 명령과 동시에 당겨진 돛줄이 비명 지르며 팽팽해지고, 바람을 탄 배가 튕겨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장력을 버티지 못하고 끊어진 갈고리들이 반동으로 되려 언데드 선원들을 덮쳤다.
에이단의 배가 아슬아슬하게 방향을 비틀자마자 흰독수리 전함이 배 옆구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갔다.
콰콰쾅! 지금까지 에이단의 배를 구속하고 있던 유령선을 되레 들이받으면서 처참한 파쇄음이 울려 퍼졌다. 에이단은 용골이 박살 난 배를 보면서 자신이 저 사이에 낄 뻔했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잘했다, 에이단! 그대로만 해!”
방금 전 벌어진 일이 얼마나 기적적인 일이었는지 모르는 아이작만 태연하게 외쳤다. 에이단을 비롯해 선원들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아이작은 이제 그들 못지않은 난관을 상대할 차례였다.
흰독수리 전함 옆구리에는 마치 인형처럼 덜렁거리는 해골들이 목을 매달고 있었다. 다른 해골들과 다른 점은 그 해골들이 전부 빛의 법전 문양이 새겨진 성기사 갑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었다.
카라라라락, 쾅! 밧줄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목 매달린 흰독수리 성기사단의 성기사들, 아니, 데스나이트들이 하나둘 에이단의 배에 착지했다. 마치 교수형을 당한 것 같은 시체들이 목줄이라도 찬 것 같은 모양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절규 비슷한 것을 토해내며 선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사이로 아이작이 재빨리 달려들었다.
까가가각, 터텅! 아이작은 순식간에 데스나이트의 검을 걷어내고 미간에 찔러넣었다. 데스나이트는 미간을 찔린 것만으로 움찔움찔하다가 칼날을 비틀어 빼낸 순간 폭발하며 쓰러졌다. 아이작은 곧바로 다른 데스나이트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아니, 세상에…….”
에이단은 순식간에 데스나이트 셋을 썰어 넘기는 아이작을 보면서 경악했다. 흰독수리 성기사단의 성기사들이 자의든 타의든 데스나이트가 되었다는 것은 생전의 실력과 힘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해골 선원들을 상대할 때와 크게 다르지도 않은 시간으로 순식간에 베어 넘기고 있었다. 단독으로 성기사단과 싸워도 밀리지 않을 듯한 기세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사실 아이작이 밀리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아이작은 카훌린의 신성함과 수확자를 처치하면서 얻은 ‘영체에 대한 타격’, 그리고 영혼 포식 효과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제는 언데드를 상대하는 것이 이전처럼 어렵지 않았다. 빈곤한 언데드 선원들과 달리 데스나이트의 영혼에는 흡수할 만한 신앙이 어느 정도 있었다.
[‘녹슨 데스나이트(C-)’를 포식하였습니다.] [‘죽은 신의 내장’ 특전으로 섭취 효율이 상승합니다.] [특전을 획득하기에 충분한 신앙이 부족합니다.] [더 많은 포만이 필요합니다.]아쉽게도 먹을 만한 영양분은 별로 없었다. 아이작은 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역시 다른 데스나이트들보다 훨씬 약하군.’
데스나이트들이 강한 이유는 생전의 힘과 자아를 보유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아득한 시간을 온전히 자기 단련과 계발에 힘쓸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취향에 맞는 장비를 찾거나 축복을 찾아낼 수도 있고.
하지만 흰독수리 성기사들은 전혀 그러지 못한 모습이었다.
얼마나 무수한 시간을 바닷속에서 헤맨 건지 갑옷에는 따개비와 해초가 잔뜩 붙어있었고, 검은 황색으로 녹슬어 있었다. 이런 패잔병 같은 몰골을 한 존재에게 데스나이트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조차 아까웠다.
그 모습에는 어떠한 경멸과 악의까지 느껴졌다.
아이작은 심연의 손아귀를 피해 안개 너머로 잠시 사라진 호레이스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불사 교단의 언데드가 되었으면서도 여명군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자의 속내를.
‘영혼 포식은 효율이 극히 낮아. 뭔가 효과를 보려면 빌론 게오르크처럼 영혼이 충만한 놈을 처치해야 뭔가 덕을 보겠는데.’
카드드득! 아이작이 8명째 데스나이트를 베자 흰독수리 전함 위에 올라탄 선원 중에서도 동요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위에서 밧줄을 풀어 데스나이트를 떨어뜨리는 놈들이 있는 게 분명했다.
아이작은 자세를 가다듬고 흰독수리 전함의 옆구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칼끝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여덟 갈래의 검은 기운들이 일제히 맹렬하게 한 곳을 향해 파고들었다.
사나운 뱀 여러 마리가 일제히 커다란 짐승을 물어뜯어 죽이는 환상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콰콰쾅! 맹렬한 파쇄음과 함께 흰독수리 전함의 선체가 한순간 옆으로 기울어졌다. 전함 옆에는 암초가 튀어나와 아작을 낸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포경 작살도 해내기 힘든 위력에 선원들은 경악했지만, 아이작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가 재차 다시 검을 휘두르려 하자, 흰독수리 전함에서도 기겁하며 반응을 보였다.
카라라락, 쾅! 순간 에이단의 배가 묵직하게 흔들렸다. 엄청난 무게의 무언가가 배에 올라탄 것이다. 아이작은 심상찮은 기운을 느꼈다.
안개가 푸르게 물들고 있었다.
다른 데스나이트보다 선명한 안광을 토해 내는 거대한 체구의 데스나이트가 안개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남다른 기운에 아이작은 그가 성기사단 단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작은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었다.
‘저건 좀 포식할 만한 가치가 있으려나?’
***
호레이스는 거리를 벌린 채 아이작의 정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불사 황제시여, 저게 제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습니까?’
호레이스에게는 생전의 소금 의회 선장으로서의 통찰력과 경험, 실력이 있었고, 언데드가 된 이후에도 그 감각이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었다. 그의 지식은 180년 전에 멈춰서 전혀 갱신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게 아이작의 정체를 추측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정녕 저게 이름 없는 혼돈 교단의 생존자입니까?’
그가 아직 살아 있던 시절은 아직 이름 없는 혼돈의 자살과 불사 교단의 부흥이 만들어 낸 혼란과 공포가 잠들지 않았던 시절이다. 빛의 법전 교단이 집착적으로 이름 없는 혼돈이 남긴 잔해를 파괴하고 제거하여 지금은 대부분 잊었지만, 수많은 세상을 보고 경험한 호레이스는 그 편린이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름 없는 혼돈의 사도가 대체 왜 빛의 법전 성기사를 참칭하고 있으며, 소금 의회 후배들의 비호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기이함이 그의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그때 호레이스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흰독수리 성기사단 단장이 아이작과 싸우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호레이스는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쳤다.
[이 개자식들! 그놈은 풀어주지 말라고 했을 텐데!]호레이스의 호통은 호통으로 끝나지 않고 곧바로 타륜을 붙잡아 배의 방향을 돌렸다.
언뜻 보기에는 체구가 몇 배는 크고 무거운 성기사단 단장이 금방이라도 아이작을 짓눌러 버릴 듯했으나, 호레이스의 눈에는 뱀 앞에 작은 개구리가 놓인 것 같은 모습으로밖에 안 보였다.
단순한 피식자와 포식자의 관계.
[누구도 이 바다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누구도!]호레이스의 전함이 바람을 타고 맹렬하게 돌격해 왔다.
이미 에이단의 배 주변은 여러 차례 배가 뒤엉키고 부서지면서 난장판이었다. 그런 와중에 호레이스의 배가 날듯이 다가오자 갑판 위로 선원들은 우왕좌왕 뛰어다녔다.
에이단은 이 난장판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부르짖었다.
“아이작 님!”
아이작은 다가오는 호레이스의 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성기사단 단장의 명치에 꽂아 넣은 카훌린을 아래서 위로 그어 올리며 단숨에 반토막 냈다.
호레이스의 비명과 함께 아이작은 성기사단 단장의 영혼이 검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타락한 델로드 시엘(A+)’을 포식하였습니다.] [‘죽은 신의 내장’ 특전으로 섭취 효율이 상승합니다.] [‘불굴(임시)’ 특전을 습득하였습니다.] [임시 특전은 소화될 때까지 축복이 유지됩니다.]그리곤 곧바로 다가오는 호레이스의 배를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감춰진 제례.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장막이 소리 없이, 느리게, 그러나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드리워졌다.
이제 그 안에서 잔혹하고 불경한 미사가 펼쳐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