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44)
344화. 악몽의 바다 (6)
이번에 아이작이 펼친 ‘감춰진 제례’는 역대급으로 거대한 크기였는데, 일대의 바다를 감싸고도 남을 정도였다.
배를 포획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천사의 개입을 일찌감치 막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갑자기 주변이 어두컴컴해지자 호레이스는 순간적으로 심해에 빠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언데드는 기본적으로 밤눈이 밝다. 그런 그들이 ‘어둠’을 느끼는 경우는 무언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을 때뿐이다. 심해나, 안개 따위의 것.
즉, 이 어둠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무언가라는 뜻이다.
콰드드드득! 그 정체를 깨달을 틈도 없이, 호레이스의 배가 급격하게 멈췄다. 빠르게 움직이던 물체가 갑자기 멈췄을 때 당연히 그러하듯, 관성에 의해 호레이스는 순간적으로 몸이 붕 뜨는 기분을 느꼈다.
콰드드득, 쾅, 쿵! 호레이스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선원들, 화물, 난간에 매달린 해골들까지 여기저기 부딪치고 으스러지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사람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기절했겠지만 호레이스는 넋을 놓을 틈도 없이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배를 강제로 멈춰 세운 존재가 있었다.
어둠을 꿰뚫고 아까 보았던 그 검붉은 촉수가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수십 개의 촉수 다발에 운 없이 뒤엉킨 해골 선원들이 으스러지고, 촉수 곳곳에 달린 톱니 같은 아가리에 빨려 들어가 게걸스럽게 삼켜졌다.
[하하하하…….]공포와 전율이 호레이스의 뻣뻣하게 마른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죽은 자에게 공포를 느끼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그것’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성을 가진 존재를 자극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호레이스는 주변이 핏빛으로 물드는 것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자 붉은 안개에 휘감긴 아이작이 그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저걸 보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놈은 없다.”
아이작이 말하는 와중에도 척수들이 한올 한올 내려와 선원들을 집어먹었다. 아이작은 심연의 손아귀를 소환해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력이 빨려 나가는 것을 느꼈지만, 이 자리에서 호레이스를 완전히 끝낼 생각이었다.
호레이스는 아이작을 보자마자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다.
정말 이름 없는 혼돈의 사도인가? 어떻게 이름을 알고도 백사병에 걸리지 않았지? 소금 의회가 대체 왜 널 돕고 있으며 왜 여명군을 참칭하는 거냐?
그러나 가장 먼저 튀어나온 질문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델로드 단장은?]“누구?”
[흰독수리 성기사단 단장 말이다. 그를 죽였나?]아이작은 그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천사가 아닌 바에야 누구도 영혼을 죽일 수는 없다. 단지 자아가 희박할 정도로 흩어놓거나 우르반수스로 돌려보내는 거라면 모를까. 하지만 아이작은 호레이스가 그런 맥락에서 한 말은 아닐 거라고 판단했다.
“먹었다.”
[그래?]호레이스는 담백하게 대답했다.
[그럼 네 배를 째야겠군. 놈은 여기서 못 나가.]역시나 제정신이 아닌 대답이었다. 호레이스는 아이작보다 아이작이 포식한 상대에게 더 관심이 많았다. 아이작은 호레이스가 허튼짓을 하기 전에 재빨리 칼을 휘둘러 목을 베어냈다. 호레이스는 전설적인 선장이지만, 칼솜씨로 전설적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이작이 원하는 바는 그의 두개골, 아니, 그 두개골로 조종할 수 있는 이 함대가 목적이었다.
호레이스는 두개골만 남은 상태에서도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죽지 않는 황제시여…….]“천사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유감이지만 이 안에서는 누구도 안과 밖으로 통하거나 나갈 수 없다. 명천사를 부르는 것도 불가능…….”
그때 아이작은 몸이 휘청거리는 것을 느꼈다. 호레이스의 배가 거세게 흔들린 것이다.
파도가 거세게 몰아친 건가 했지만 심연의 손아귀에 거의 붙들려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제야 아이작은 진동의 폭이 점점 커지면서 배를 움켜쥔 심연의 손아귀가 점점 팽팽해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설마.’
아이작은 급히 난간 너머를 바라보았다. 맹렬한 파도가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미친 듯이 질주하는 파도는 맹렬하게 원을 그리다가, 거대하게 입을 벌리기 시작하는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대한 전함, 아니 수십 척의 함대조차도 기꺼이 집어 삼킬만한 거대한 소용돌이가 목구멍을 벌리고 있었다.
호레이스가 아이작의 손 위에서 낮은 웃음을 흘렸다.
[아무도 이 바다에서 못 빠져나가. 아무도.]***
드드드득!
아이작은 이러다가 배가 반토막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촉수가 배를 놓도록 지시했다. 놓아주자마자 호레이스의 배는 튕겨 나가듯 파도를 타고 달려갔다.
감춰진 제례도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장막이었으나, 자연적 규모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엄청난 압력으로 압박하자, 곧 깨지면서 해제되어 버렸다.
‘낭패군.’
감춰진 제례 안에서는 아무도 탈출할 수 없으며, 시전자가 해제하거나 외부의 개입으로만 파괴된다. 장막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외부에서 어떤 형태로든 관측할 수 없다.
명천사가 개입하려면 기원자의 요청에 응답하거나 기원자를 관측하고 있어야 한다. 감춰진 제례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막는다.
분명 그런 기술일 텐데, 소용돌이가 일어나자 제례가 깨져 버렸다.
따라서 눈앞의 소용돌이는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설마 벌써 명천사가 와있던 건가?’
그 순간 아이작과 그 주변에 있던 모든 존재들에게 어떤 강렬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것은 어두운 방 안에 앉아있는 비쩍 마른 수도승의 모습이었다. 수도승의 얼굴은 모두 열두 개로, 모두 제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몸에 크고 작은 구멍이 잔뜩 나 있어서 그 구멍 사이로 지네와 뱀, 벌레가 기어다녔다.
진득한 죽음의 이미지를 표상한 듯한 그 환상이 머릿속을 난타한 순간, 호레이스의 몸이 벌떡 일어나 아이작의 턱을 후려갈겼다.
“뭐……!”
당연히 아이작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호레이스의 몸통은 잽싸게 두개골을 가로채 달려갔다. 아이작은 어이가 없었지만, 어차피 이제 저 미친 선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 거대 소용돌이 앞에서 저항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아이작은 방금 드러난 이미지에 대해 생각했다.
‘열두 개의 얼굴을 가진 수도승의 모습을 가진 명천사라면…… ‘죽은 십이월’인가? 그럼 직접 모습을 드러낼 일은 없겠군.’
죽은 십이월은 다른 불사 교단 명천사들과 불사 황제처럼 육신에 속박되어 있다. 다만 죽은 십이월은 스스로를 깊은 묘역에 스스로 파묻고 명상에 빠진 상태였다. 때문에 그의 도움을 청하는 자에게 직접 찾아가는 대신 기적과 가호를 기꺼이 내려주는 천사였다.
이 자리에 천사가 없다는 사실에 아이작은 그나마 안도했지만, 호레이스가 어떤 수단으로든 명천사의 힘을 빌릴 만큼 강력한 성물이나 기적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 거대한 소용돌이가 죽은 십이월의 힘이란 것은 분명했다.
재앙은 잔인하지만 모두에게 공평했다. 거대한 소용돌이 목구멍 근처에 있던 운 나쁜 유령선들이 가장 먼저 빨려 들어갔다. 심해에서도 버티는 유령선이지만, 소용돌이의 파괴적인 물살에 휩쓸린 순간, 분쇄기에 들어간 듯 산산조각 나며 사라졌다.
“…….”
유사시 호레이스의 유령선에 빌붙어서 빠져나갈 틈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아이작은 그 계획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리고 그랬다간 에이단의 배도 구할 방법이 없었다.
에이단은 흰독수리 전함을 떨쳐낸 뒤, 소용돌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조타 중이었다. 아이작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약간 감탄했다.
이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이작의 교만이었다.
소금 의회의 선장은 이런 상황에서도 대처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잠깐, 그러면 호레이스도…….’
콰과과과과! 호레이스의 전함이 맹렬한 소리를 내며 파도 위를 달렸다. 호레이스의 전함이 소용돌이 위를 파도타기 하듯이 달리며 에이단의 배를 추격하고 있었다.
[아무도 못 나가!]조타륜을 잡은 호레이스가 신들린 듯한 움직임으로 배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는 어쨌든 에이단의 배를 부숴 버리면 아이작이 영원히 이 바다에 머물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이작은 욕설을 내뱉으며 호레이스를 잡으려 했지만 흔들리는 배 위에서는 쉽지 않았다.
“큭…….”
무엇보다 호레이스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죽은 십이월의 기운이 강하게 그를 짓눌렀다. 이미 수많은 천사들의 기운과 대적해 온 아이작이었지만, 적의와 견제 의사를 담아 기운을 내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그때 아이작이 든 카훌린에서 은은한 떨림이 전해져왔다.
[바다를 살펴봐라, 성배기사.]카훌린에 봉인 당하고 아이작을 지켜보도록 명령받은 엘릴의 명천사, 칼루리엔이었다.
[아무리 나라도 아무도 찾지 못할 바닷속에 수천수만 년 갇히는 꼴은 피하고 싶군. 바다에 형제가 느껴진다. 거기에 이 기적의 실체가 있다.]아이작은 칼루리엔의 말에 바다 밑을 살펴보았다.
거세게 흔들리는 소용돌이와 파도 속에서 뭔가 의미 있는 것을 찾기는 힘들었지만, 이내 물 밑을 움직이는 시커먼 물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그것은 거대한 물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서펜트?”
아이작은 이미 바닷속에서 어인 해적단을 상대하고 익사자 왕도 잡은 적 있었다. 그깟 해골만 남은 바다뱀쯤이야…… 라고 말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 불리했다. 이 미친 소용돌이 속에 뛰어들었다간 소금 의회가 ‘파도의 교리’를 걸어줘도 그냥 휩쓸릴 것이 분명했다.
‘촉수를 쓰면 되려나? 또 한 번 심연의 손아귀를 쓴다거나, 사상 지평선을 쓰면…… 아니.’
아이작은 시선을 돌렸다.
감춰진 제례가 파괴된 것이 그에게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이작에게도 도움을 청할 상대가 있다.
이 바다에서 자연적 재앙을 불러들일 수 있는 자가 호레이스만은 아니었으므로.
퉁, 콰르르르릉! 심장을 울리는 거친 진동과 함께 바다에서 거꾸로 벼락이 솟구쳐 올라갔다. 용처럼 솟아오른 벼락의 줄기가 순식간에 유령선 한 척을 새카맣게 태우고 하늘 위로 흩어졌다.
“찾았다! 우리 정신 나간 총지휘관!”
투할린과 옌코스가 탄 배가 폭풍우를 뚫고 안개의 바다에 도착했다.
***
아이작은 분명히 자신이 열쇠를 찾고 나올 때까지 나머지는 모두 악몽 해협 바깥쪽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총지휘관 명령을 고분고분 따르면 그건 절대로 동맹군이 아니다. 명령을 의심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동맹군이다.
특히나 아이작이 자기 목숨을 걸고 장난질하는 성배기사라는 것을 잘 아는 투할린은 특히나 그러했다.
그래서 아이작은 일찌감치 투할린과 옌코스에게 독립 행동을 허락했다. 물론 그 명령 밑바탕에는 다른 근거도 깔려 있었다.
투할린에게는 폭풍을 통제할 수 있는 천둥 장인의 가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천둥 장인을 직접 부르지 않는 이상 배 한 척 간신히 지킬 정도의 국소적인 영향력이지만, 그래도 가호는 가호다.
‘그럼 처음부터 투할린과 함께 갔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은 아이작도 해봤지만 어렵다고 판단했다. 호레이스는 아이작은 몰라도 투할린은 알고 있다. 투할린이 모습을 드러냈다면 호레이스도 전략을 바꾸거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옌코스의 배 역시도 아이작과 마찬가지로 고립된 척하면서 유령선 포획에 나섰으나, 아이작 예상대로 한 척도 만나지 못한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수 일만에 드디어 적을 만난 투할린은 한껏 투지를 끌어올렸다.
투할린은 새로운 유령선을 발견하고 싸울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그 배 난간에 다름 아닌 아이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의아해했다. 그 배에서 아이작이 그들을 향해 뭔가 필사적으로 의사 표시를 하고 있었지만 거리와 파도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 밑을 가리키는 아이작의 필사적인 손짓은 분명히 보였다.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린 투할린은 바다 밑을 유영하는 거대한 해골 물뱀을 발견했다.
이내, 함선만 한 벼락이 바다에서 하늘로 솟구쳐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