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45)
345화. 악몽의 바다 (7)
투할린의 벼락 망치는 평범한 벼락과 달리 땅에서 하늘로 솟구친다. 그의 망치가 먼저 맨바닥을 두드리는 ‘기도’를 올리면, 원하는 지점에 그의 신앙이 벼락이 되어 솟아오른다.
투할린은 그 벼락을 제련할 때 튀어 오르는 불꽃에 비유했다.
즉, 벼락 망치의 진짜 위력은 벼락이 터져 나오는 짧은 순간 폭발하는 힘에 있다.
쾅! 콰르르르…… 푸른 벼락이 폭풍 치는 하늘에 나뭇가지처럼 번져 나갔다. 바닷물 속에서 투할린의 기적에 지져진 서펜트가 들썩거리며 한순간 물 위로 튀어 올랐다. 몸통 자체의 폭은 에이단의 배 절반만 한 크기였으나,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길었다.
“뱀새끼! 어딜 감히 어르신 앞을 막느냐!”
투할린은 호통을 치며 망치를 또 한 번 갑판에 내려쳤다. 그의 힘이라면 옌코스의 배를 박살 내고도 남겠지만 갑판에는 흠집 하나 남지 않았다.
대신 어마어마한 위력의 충격파와 벼락이 또 한 번 바다 어딘가에서 튀어나왔다. 흰 포말과 함께 서펜트의 뼈마디가 들썩거리는 것이 보였다. 으스러진 뼈의 줄기와 그을린 흔적이 선명했다.
서펜트의 움직임이 방해받자 소용돌이의 흐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역시 서펜트가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서펜트는 투할린의 공격에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방향을 틀어 옌코스의 배를 덮쳐왔다. 투할린은 정면에서 닥쳐오는 거대한 서펜트를 피하지도 않았다.
옌코스가 급히 배를 틀려고 하자 되레 호통을 쳤다.
“계속 가!”
“하지만…….”
“저놈 두개골을 선수상에 달아 장식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고! 잡고 간다!”
옌코스는 기가 막혔지만, 명령을 거부할 순 없었다. 그에게 복종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펜트의 척추뼈가 이미 주변 사방을 다 가로막고 배를 감으려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펜트는 앞 갑판에 앉아있는 투할린을 향해 순식간에 덮쳐왔다. 투할린은 망치를 빙빙 돌리다가 서펜트가 들이닥친 순간 놈의 미간을 향해 힘껏 내리찍었다.
콰콰콰쾅! 이번에는 옌코스의 배조차도 휘말릴 수밖에 없는 엄청난 충격이 주변에 전해져 왔다.
서펜트는 소리 없는 비명을 토해 내며 몸부림쳤다.
그의 이빨에서 뿜어져 나온 지독한 시독(屍毒)이 투할린을 덮쳤다. 투할린은 용광로에 손을 담근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미지근하다!”
또 한 번 배 위로 벼락이 튀어 올랐다.
***
콰르르릉, 쿠릉, 쿠르르르…… 옌코스의 배 위에서 연신 벼락과 굉음이 터져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에이단 베어베크는 타륜을 쥔 손을 고쳐 잡았다.
저곳에서 희대의 영웅과 전설 속에나 나올 법한 괴물이 싸우고 있었다. 빛의 세기 이전 신화 속에서나 설득력을 얻은 광경이었다.
에이단은 그 현장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또 다른 한 곳에서는 또 다른 영웅이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세상의 화로에 투할린이라는 영웅이 있다면 소금 의회에는 호레이스라는 영웅이 있었다. 백수십 년 전 인물이지만, 그가 쌓아 올린 일화들은 수많은 버전으로 각색되어 전설과 동화로 만들어졌다.
그 호레이스가 죽음에서 돌아와 현대의 영웅, 아이작과 싸우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호레이스가 싸우려는 상대는…… 나인가?’
호레이스는 이 와중에도 에이단의 배를 격침시키면 아이작이 빠져나가지 못하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투할린이 탄 배가 나타난 이상 그 가능성도 이제는 미지수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에이단의 배에 집착했다.
에이단은 졸지에 전설 속 영웅과 겨루게 된 자신의 신세에 한탄했다.
‘내가 그 호레이스와 조타 실력을 겨룬다고?’
서펜트가 만들어 낸 소용돌이는 초기에 비해 많이 완만해졌지만, 여전히 뱃사람에게는 재앙 같은 규모와 크기였다. 그 와중에 폭풍까지 침범하면서 비가 쏟아져 내렸고, 소용돌이 속에는 부서진 배의 파편들이 암초처럼 달려들었다.
조금만 실수해도 그대로 좌초당하거나 박살 날 수도 있는 상황.
‘이런 곳에서, 내가 그 호레이스와?’
에이단은 헛웃음이 나왔다.
타륜을 쥔 손은 거친 파도 때문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지만, 오히려 힘이 더 불끈 들어갔다. 전설 속의 해적 선장과 배 몰이 실력을 겨룬다라.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돛줄 당겨라, 뱃놈들아! 한번 해보자!”
빠아아아…… 돛이 한계까지 팽창하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소용돌이와 바람을 받은 에이단의 배는 이전에 겪어본 적 없는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에이단은 이미 자신이 이 배를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배와 선원, 선장 모두가 한 몸이 된 듯 움직였다.
바다가 돌본다는 말로밖에 표현 못 할 순간이었다.
에이단은 호레이스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호레이스는 이미 수많은 선원을 잃었음에도 뒤처지지 않고 거의 대등한 속도로 에이단을 추격해 왔다. 그의 실력에 에이단은 공포와 경외감을 동시에 느꼈다.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호레이스인지, 아니면 그와 맞서는 또 다른 인물인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
투할린은 서펜트를, 에이단은 호레이스를 상대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이작은 호레이스를, 아니, 정확히는 그를 먼 곳에서 가호하는 죽은 십이월을 응시했다. 눈 앞에 있는 것은 분명 호레이스건만 그 위에는 거대한 고목나무만 한 열두 면의 얼굴을 가진 수도승의 환영이 아이작을 움푹 팬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물러나라, 아가야.]조소나 경멸이 아닌, 웃어른이 정말 아이를 어르는 듯한 목소리였다.
죽은 십이월이 직접 그의 머릿속에 말을 걸고 있었다.
[호레이스 선장은 가엾은 자다. 나는 그가 맹세를 지킬 때까지 지켜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너희들, 빛의 법전 신도들은 호레이스를 방해해선 안 돼.]죽은 십이월이 자상하게 타이르듯이 속삭였다. 아이작은 그가 뭐라 하든 무시하고 호레이스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그러나 그 순간 또 다시 죽은 십이월의 존재감이 진득할 정도로 강해지면서 아이작을 짓눌렀다.
아이작은 간신히 쓰러지거나 뒷걸음질 치지 않았지만, 호레이스에게 다가갈수록 압력은 강해졌다. 마치 한발 한발이 밀도 높은 심해로 발을 딛는 것 같았다. 그 안에는 아이작을 짓눌러 터뜨릴 듯한 힘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이작은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죽은 십이월을 응시했다.
“맹세? 성지 루아를 수복할 때까지 여명군을 그만둘 수 없다는 그 맹세 말인가?”
죽은 십이월이 신기하다는 듯 아이작을 들여다보았다.
[그 맹세에 대해 아는 자는 이제 모두 죽었을 텐데. 떠벌릴 만한 자들은 모두 뱃전에 묶여있고. 어디서 들었지?]아이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마디 한마디 호흡하기도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죽은 십이월은 어차피 대답이 그리 궁금하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조곤조곤 속삭여 주었다. 마치 사정을 듣고 나면 설득되어 물러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7차 여명군 총지휘관 아레첼 브란트는 포로로 잡힌 호레이스에게 사형 면제 대신 조건을 제안했다. 성지 루아까지 관통할 해로를 개척할 생각인데, 그 선단을 이끌어달라고.]빛의 법전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대범한 방식이다. 게다가 그 무렵의 빛의 법전 교단은 교조적인 태도로 엘릴과 세상의 화로와도 갈등을 빚어 ‘백제국’이라는 깃발조차 유명무실해진 상태였기에 더더욱.
그나마 총지휘관이 제국 안에서 나름 해군력을 갖춘 브란트 가문이었기에 해낸 발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호레이스의 신앙과 명예를 생각하면, 그저 약속받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들은 거짓도 기만도 모르니까. 하지만 너희 빛의 법전 신도들은 다른 신앙을 믿지 않았지. 그들은 호레이스에게 신앙을 걸고 맹세하도록 강요했다. 성지 루아를 수복할 때까지 여명군을 그만둘 수 없다고. 자존심을 짓밟는 잔인한 짓이었지.]‘글쎄, 그 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아이작은 그 당시에는 호레이스도 ‘기분 나쁘지만 그럴 수도 있지’ 정도로 여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소금 의회의 선장들은 배를 몬다면 무슨 배든 대충 할 사람들은 아니었으니까.
[호레이스는 아레첼 브란트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그는 기적적인 솜씨로 선단을 이끌어, 7차 여명군의 60여 척의 배 중 20척을 미르미아에 상륙시키는 데 성공했지.]시작부터 손실이 2/3나 발생한 끔찍한 상황이지만, 아이작은 그 폭풍우가 얼마나 끔찍한지 직접 보고 겪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 폭풍우를 20척이라도 통과시켰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는 기적이다.
호레이스는 그가 맡은 임무를 충실하게 성공시킨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하지만 아레첼 브란트는 너무 많은 손실에 실망하고 좌절했지. 그렇지만 인제 와서 폭풍우를 다시 뚫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미르미아의 소금 사막 지대를 지나 성지 루아로 향하고자 했지만…… 우습게도 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등대지기였지.]정확히는 등대지기가 미르미아 위에 띄운 태양이다.
여전히 희번덕거리며 타오르는 그 작은 태양은, 밤낮없이 소금 사막을 그을리며 바다 없는 항구 위에서 등대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7차 여명군은 예상치 못한 끔찍한 열기와 갈증에 시달렸다.
모든 습기는 소금 사막 위로 감히 침범할 수 없었고, 살아있는 생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소금 사막을 지나는 동안 외경에서 넘어온 괴물들이 쉬지 않고 그들을 기습해 왔고, 열기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불사 교단의 언데드들은 그 모습을 우습다는 듯 먼 거리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아레첼 브란트는 절망 속에 등대지기에게 기도를 올렸다. 제발 미르미아에 내린 저주를 거둬달라고. 우리가 부디 당신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죽은 십이월은 동정심을 한껏 담아 중얼거렸다.
아이작은 문득 그가 그 광경을 본 것처럼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7차 여명군 당시 죽은 십이월 또한 먼 곳에서 다른 언데드들처럼 자기네 명천사가 자신의 신도들을 죽이는 꼴을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등대지기는 들어주지 않았지.]등대지기는 그저 이미 죽은 도시를 계속 죽은 상태로 두는 것에 집중할 뿐이었다.
도시의 시체를 모욕하는 것이 신도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듯.
[아레첼 브란트는 미쳐갔다. 그의 병사들도, 성기사단도. 결국 7차 여명군이 전멸하기 전, 아레첼은 마지막 이성을 쥐어 짜내 퇴각 명령을 내렸다. 죽더라도 성지 루아에서 죽겠다던 그는 없었지.]신이 그들을 버렸다는 것을 우습게도 기적 앞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 퇴각 명령을 받아들였을 때…… 불같이 화를 내며 단호하게 그 명령을 거절한 자가 한 명 있었다.]아이작은 흐릿한 눈을 돌려 죽은 십이월에서 그 밑에 있는 선장, 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호레이스의 목소리가 아이작의 귓가에 찢어지듯 울려 퍼졌다.
소금 의회는 고대의 한 선장이 등대지기와의 맹세를 파기하면서 나락에 떨어졌다.
빛나는 성지, 미르미아는 폐허가 되었고 신도들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도 빛의 법전에 의해 호레이스 본인이 맹세 파기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7차 여명군은 호레이스의 실력 없이는 그 폭풍우를 다시 뚫고 갈 자신이 없었지. 그들은 결국 호레이스의 부하 선원들을 인질 삼고, 호레이스 목에도 직접 쇠사슬을 채워 배와 엮은 채 바다로 끌고 갔다. 배를 실수로라도 침몰시킨다면 함께 빠지도록 말이야.]거기서 죽은 십이월은 만족스러운 깊은 미소를 지었다.
[불필요한 짓이었지. 호레이스는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눈앞에 배를 몰고 있는 언데드 호레이스와 뱃전에 매달린 무수한 해골들이 그 결과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먼바다로 뜨자마자 모든 함대를 미르미아 앞바다에 침몰시켰다. 7차 여명군은 그렇게 전멸했지.]죽은 십이월은 가엾다는 듯 손을 내려 호레이스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하지만 그의 손길은 허상에 불과했다. 그 환각은 오직 아이작에게만 보였기 때문에 모든 감각을 조타에 집중하고 있는 호레이스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나는 죽어가면서도 맹세를 떠올리는 그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그에게 자비와 기회를 베풀기로 했지. 빛의 법전은 냉엄하게 질서와 규율을 관철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유예하며 더 많은 기회를 베풀어야만 하니까.]그렇게 호레이스는 불사 교단이 거느린 대함대의 제독이 되었다.
호레이스는 성지 수복을 해낼 때까지 여명군에 종사하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불사 교단 소속이다. 그리고 성지 루아는 불사 교단의 영토다. 즉, 호레이스가 불사 교단이 된 시점에서 ‘성지 수복’은 약간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호레이스는 이제 더 이상 여명군 소속이 아니다.
그저 기만과 조롱의 대상일 뿐.
뱃전에 대롱대롱 매달려 모욕당하던 성기사들의 꼴이 다시 한번 아이작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호레이스가 ‘탈영병’이라며 두개골을 깨부수던, 난간에 매달린 해골들은 바로 그때 후퇴하던 7차 여명군의 병사들과 성기사들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