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51)
351화. 목마른 만찬 (1)
‘물 아래 물고기에 집착하느라 물비늘에 반사된 광영을 보지 못한 어부, 교만하게도 감히 등대지기를 속여 눈을 가리려 했으니, 어부의 집 위에 그가 다시는 빛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징표를 세워 두었노라.’
소금 의회에는 경전이 없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구전과 전 세계로 흩어진 생존자들의 경험담만이 일부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 빛의 세기 이전 소금 의회에 대해 알아보려면 결국 다른 신앙에 남겨진 기록을 찾을 수밖에 없다.
위의 문구가 에이단이 빛의 법전 경전에 기록된 ‘미르미아의 최후’에 관한 기록이다. 어부란 소금 의회를 낮잡아 보는 문구임이 분명하고, 등대지기가 누구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어부의 집’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는데, 아무래도 미르미아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고, 소금 사막 아래 파묻힌 바다 신전이나 어떤 특정한 건축물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에이단은 ‘어부의 집’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이곳이 어부의 집이었군요.”
에이단은 거대한 피라미드 사원 앞에 세워진 오벨리스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오벨리스크에는 지금은 읽을 수 있는 자가 드문 고대어로 ‘어부의 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경전에 적힌 문구는 비유도 없이 그대로 정확한 표현이었던 것이다.
“어째 이곳까지 올수록 점점 더 서늘해지네요, 선장님!”
레이나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머리 위에는 저주받은 태양이 검붉은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태양 가까이 갈수록 어쩐지 더 온도는 낮아졌다. 여전히 뜨겁긴 했지만, 워낙 더운 곳에 있다 와서 그런지 레이나 말대로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이 일종의 등잔 같은 역할을 하는 모양입니다. 저 거대한 태양이 떠 있을 수 있도록 받치는 어떤 신성한 힘이 존재하고, 그 힘 때문에 아래쪽은 열기의 발산을 막을 수 있는 거죠.”
“오오…… 놀라운 일이군요. 그러면 등잔을 어떻게 잘 쓰러뜨리면 적들이 있는 방향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조금만 더 신성과 유적을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레이나 힐드 경. 그리고 저 태양이 땅에 박히면 무슨 재앙이 일어날지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소금 사막 못지않은 다른 재앙이 또 다른 지역에 생기는 것은 에이단도 원치 않는다. 에이단은 고고학자로서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천 년간 닫혀 있던 사원을 향해 발을 디뎠다.
피라미드 사원에는 거대한 석문이 있었지만 굳게 닫혀 있었다. 이런 권위적인 건물에는 흔히 있는 방식으로,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열리는 문이다. 보통 이런 문 옆에는 평범하게 평상시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조그만 문이 있다.
에이단이 문고리를 잡기 직전, 갑자기 레이나가 그 손을 저지했다. 그녀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문고리를 내려다보다가 에이단을 조심스럽게 팔로 밀치면서 칼끝으로 문을 천천히 밀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이단은 잠시 침묵하다가 그녀를 보았다.
“여긴 던전이 아니라 신전입니다. 함정 같은 건 설치되어 있지 않을 거예요. 출입문이라면 특히.”
“예? 아, 물론 알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 문에 최근에 드나든 흔적이 보여서요. 에델레드 폐하께서 신전은 함부로 드나들지 말라고 했으니 손댄 사람은 없을 텐데.”
“드나든 흔적이요?”
“문고리에 먼지가 안 쌓여 있습니다. 다른 집들은 안 그런데요. 발자국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그런 것도 없습니다. 누군가 몰래 들어가고 흔적까지 지웠다는 뜻이죠. 제 경험상 이건 100% 매복입니다.”
에이단은 놀라면서도 의아해했다.
대체 그들 외에 누가 천 년이나 방치된 폐허에 머물고 있단 말인가.
레이나는 칼로 조용히 문을 밀친 뒤, 천천히 주변을 경계했다. 잠시 뒤 주변에 별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다시 에이단에게 손짓했다.
“아무도 없군요. 하지만 주의하는 게 좋겠습니다. 성배기사님께서 이 도시에 우리 말고도 누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조언을 해주셨거든요.”
“괴물 이야기 아닙니까?”
“지혜를 갖춘 괴물이 더 위험한 법이죠. 인간이 위험한 이유와 똑같이.”
***
‘어부의 집’은 외부의 햇볕을 교묘하게 끌어들이는 방식인 건지, 어디선가 스며들어 온 햇살과 반사광으로 내부가 환했다. 하지만 여전히 제 기능을 하는 것은 조명뿐인 듯, 아마도 한때 무수한 물줄기를 퍼 올렸을 분수대와 층층이 이어진 수로, 커다란 횃대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레이나는 폐신전에서 괴물과 함정과의 사투라도 기대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신전은 정말 신전 그 자체의 역할에 충실해 보였다.
대규모 인원을 수용하기 위한 거대한 공간과 그럴듯한 장식물들, 권위를 자랑하기 위한 길고 높은 복도뿐이었다는 뜻이다.
“흠, 어쩐지 숟가락이나 찾는 편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런 장엄한 풍경을 보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오십니까?”
에이단이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하지만 에이단도 사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신전에는 신과 인간의 연결점을 상징하는 태피스트리나 천사의 모습 등을 조각 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신전은 너무 밋밋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에이단은 자신의 신앙을 위한 변명을 해 보기로 했다.
“아마 ‘진짜 신전’은 바다 밑 신전에 있고, 이곳은 그저 간이 성소였을지도 모릅니다. 바다 신전은 아무나 방문할 수 없는 곳이니 평신도들을 위해…….”
“선장님, 저쪽 좀 보십시오.”
그때 에이단의 말을 전혀 안 듣고 있던 레이나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커다랗고 공허한 공간 아래, 또 다른 작은 피라미드가 세워져 있었다. 물론 어부의 집에 비해 작다는 것이지, 거대한 대저택만 한 크기였다.
“저렇게 큰 건물을 어떻게 놓치고 있었나 했는데, 저 장소만 정확히 햇볕이 들어오지 않게 했군요. 다른 어둠과 정확하게 어우러져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레이나조차도 유적의 교묘한 방식에 놀랄 정도였다.
에이단은 그것을 보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 자신이 기대하던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
레이나 역시 비슷한 기분을 느낀 건지 주저 없이 검은 피라미드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불쾌한 냄새를 느꼈다.
“이거…… 생선비린내입니까?”
레이나가 불쾌하다는 듯 물었다. 항구에 생선비린내가 풍기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이곳이 천 년 전 말라붙어 버린 항구라는 점을 생각하면 기괴한 일이다. 레이나는 이번에야말로 심상찮다는 것을 느낀 듯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며 검은 피라미드로 다가갔다.
검은 피라미드에는 윤곽조차 알아보기 힘든 검은 문이 있었다. 작은 황금색 문고리만이 오직 그곳이 문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문에도 먼지가 없습니다.”
레이나가 속삭였다. 그녀가 칼끝으로 문을 밀자,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불쾌한 냄새가 더욱 지독해졌다.
그 순간, 칼끝에 강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레이나는 그 즉시 에이단을 뒤로 밀치며 문을 발로 걷어찼다.
쾅.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와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나는 안으로 뛰어들려다가 내부가 빛조차 들지 않는 시커먼 어둠이라는 것을 알고 멈춰 섰다.
“안에 누구냐!”
“…….”
이내 안쪽에서 얕은 신음과 사람 목소리 비슷한 것이 들려왔다. 레이나는 다시 한번 윽박지르려 하자, 에이단이 그녀의 허리를 붙들고 말렸다.
“잠깐! 잠깐 진정하고 얘기 좀 들어보십시오. 레이나 경! 말이 통하는 상대 아닙니까!”
레이나는 잠깐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녀의 임무는 누굴 살해하는 게 아니라 고고학 연구를 하는 에이단을 경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수상하다고 무작정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에는 에이단이 정중하게 물었다.
“누구십니까?”
그제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간신히 들려왔다.
“……에이드릭 ……사드라자.”
에이단이 놀란 표정을 하자 레이나가 조바심 나는 듯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부레 가진 자…… 그러니까 소금 의회의 고위사제직을 가진 사드라자라는 뜻입니다.”
그 말에 레이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소금 의회의 고위사제라니? 소금 의회가 ‘의회’라는 이름을 갖게 된 뒤, 그들에게는 ‘사제’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그들의 사제는 선장이고, 의회는 그 선장들이 모여서 의견을 조율하는 평등한 장소다. 신과 단절된 그들이 최선의 방향을 선택하기 위해 취한 방식이었다.
즉, 이 사드라자라는 자는 천 년 전 소금 의회의 직위를 가진 존재라는 뜻이었다.
***
에이단은 호기심 때문에 어리석은 짓을 하진 않았다. 그는 즉시 레이나와 함께 아이작에게 돌아가 어부의 집에서 발견한 ‘사드라자’라는 존재를 알렸다.
아이작도 듣자마자 바로 검은 피라미드 앞에 도착했다.
그의 곁에는 혹시나 싶어서 동원된 리안나와 시드리크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에이단이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소금 의회의 고위사제라는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에이단.”
“그런 게 아니라 저 존재가 진짜 그만큼 위협이 될까 싶어서 그렇습니다. 성배기사님. 솔직히 지켜본 바에 의하면 레이나 님도 아니고 제가 상대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검은 피라미드 입구 주변에는 에이단이 나름대로 준비한 대비책들이 있었다. 소금 의회에 몇 남지 않은 방어용 금제(禁制)라던가, 봉인용 의식 따위가 소금으로 그려져 있었다.
소금 사막에서 퍼온 듯한 흰 소금에는 아이작이 느끼기에도 분명한 힘이 존재했다. 어지간한 부정한 존재는 이걸 뚫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에이단이 저 사드라자라는 존재를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말이 통한다고 들었는데, 무슨 말을 하지?”
“그…… 익사자 왕 때와 마찬가지로 워낙 심한 고어(古語) 사투리라서 잘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충 의역해보면 본인이 고위사제 ‘사드라자’고, 재앙이 일어난 이래 내내 이곳에 숨어 살았다더군요. 천 년이나 지났다고 하니 대단히 놀란 눈치였습니다.”
“어떻게 살아 있었지?”
“그게……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도시에 내려진 저주를 피해 이 피라미드에 숨어있는 동안 형언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몸이 변했다고 하더군요.”
정말 천 년 전 존재라면 소금 의회가 가진 ‘거짓말을 못 한다’는 강박은 적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건 후대와 전통이 수세기에 걸쳐 쌓아 올린 트라우마 같은 것이니까.
아이작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 봐도 소금 의회에 ‘사드라자’라는 존재는 없었다. 진짜 이름을 숨기고 있거나, 아니면 게임 속에서도 숨어 있었다는 뜻이었다.
어느 쪽이든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의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 피라미드 안쪽을 향해 말했다.
“나는 아이작 이사크레아다. 네가 사드라자인가? 왜 이 신전에 숨어있었지?”
오직 아이작에게만 허용된 능숙한 고어가 흘러나왔다. 이미 익사자 왕 때문에 경험이 있는 에이단만 놀라지 않는 가운데, 검은 피라미드 안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작.”
마치 그 이름을 음미하고 되새기는 듯한 목소리였다.
“만나서 반갑다. 나는 그저…….”
“잠깐.”
아이작이 그의 대답을 제지했다.
“나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 자와 대화하지 않는다. 모습을 드러내.”
“…….”
사드라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에이단을 제외하고 다른 자들을 뒤로 물려줄 수 있겠나? 옆에 있는 자들은 난폭해 보이는데, 내 모습을 보자마자 칼을 휘두를까 두렵다.”
아이작은 징집병도 아니고 정예한 엘릴의 소드마스터와 기사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사드라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에이단 혼자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정도로.
엘릴의 기사들이 멀찍이 물러나자, 문이 천천히 열렸다.
이내 문 밖으로 나온 형체에 에이단이 숨을 들이켰다.
그것은 촉수였다. 검붉은 빛을 띤 촉수는 스멀거리며 천천히 햇볕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형체가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자 아이작도 굳은 표정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검은 피라미드 안쪽에서 나온 사드라자를 본 순간 아이작이 떠올린 것은 키 3미터짜리 문어가 인간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작은 소금 의회 신도들이 느끼던 곤혹스러움을 자신도 느끼게 되었다.
저 촉수가 이름 없는 혼돈의 영향을 받은 건지, 아니면 소금 의회의 영향을 받은 건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