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55)
355화. 목마른 만찬 (5)
“외경이 흔들린다고?”
아이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사드라자를 바라보았다.
“등잔으로 저주받은 태양을 감쌀 거라고 하지 않았나?”
“물론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등잔으로 태양을 가리는 것만으로도 저 외경 밖의 괴물들은 오해할 수 있어. 태양이 꺼졌다고 말이야. 그리고 소금 사막을 깨뜨리는 것 역시 놈들을 자극할 수 있지.”
사드라자의 대답에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주받은 태양이 사그라드는 것, 소금 사막이 깨질 듯 꿈틀대는 것. 모두 외경의 괴물들이 ‘질서가 흔들리는 징조’로 여길만한 일이다. 지성과 문명에 대해서는 모두 잊었으면서 그 풍요에 대한 탐욕만 남은 놈들은 언제든 미르미아를 침범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사실 아이작 역시도 예상한 일이었다. 오히려 아무 일 없이 무난하게 진행된다고 했으면 사드라자를 의심했을 것이다.
“괴물 몇 마리가 오는 것 정도는 걱정하지 말고 의식을 진행하라고.”
“천년 동안 기다려 온 순간이다. 실수 따윈 하지 않아.”
사드라자는 흐느적거리며 검은 피라미드 안쪽으로 몸을 옮겼다. 그의 뒤를 따라 축 늘어진 촉수들이 화려한 사제복처럼 출렁거리며 뒤따랐다.
아이작은 사드라자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피라미드 밖으로 나왔다.
“이제 시작입니까?”
밖에는 에이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어설프지만 격식 있는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음. 이제 각자 자기가 할 일을 진행하면 된다.”
에이단은 긴장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어디론가 달려갔다. 신호를 주고받은 병사들도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많이 없다. 아이작이 할 수 있는 일 역시도.
아이작은 다시 한번 피라미드를 돌아보았다.
‘배신하지 마라, 사드라자.’
일부러 그에게 경고해서 혹시 모를 일을 막을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모든 의식의 주도권이 그에게 있는 이상, 배신할지 말지는 아이작이 예측할 수 없다. 오히려 그에게 불필요한 상상을 부추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기로 했다.
‘사실 내가 돕지 않았어도…… 결국 일어났을 일일지도 모르지.’
아이작은 사실상 갑작스럽게 소금 사막을 깨뜨리는 일을 떠맡게 되었지만, 어쩐지 갑작스럽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는 이미 가득 찬 물잔에 넘치고 흐르게 할 만큼 물을 더 부은 사람이다.
게임 속에서 미르미아를 방문했을 때에는 이 ‘목마른 만찬’을 위한 목구멍은 텅 비어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것이 사드라자가 실패한 흔적인 것 같았다.
어쨌든 그는 시도하긴 했던 것이다. 때문에 아이작은 이번에야말로 그가 성공하길 바랐다.
천년의 고난은 보상받아야 하므로.
이제 곧 의식이 시작될 것이다. 아이작은 곧 전쟁터가 될 미르미아 풍경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움직였다.
***
천년의 사막을 만들어온 태양이 있다.
땅 가까이 드리운 그 태양은 바다를 말리고 땅을 지지며 황무지를 만들었다. 그것은 뜨지도 지지도 않으며, 교수대에 걸린 머리처럼 한 신앙의 파멸을 상징하는 존재로 남았다. 그 천년의 상징에 처음으로 얼룩이 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태양의 하단부에서 시작했다. 붉게 타오르던 저주받은 태양은 마치 곰팡이에 감염되듯 검게 물들어 갔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저주받은 태양이 식어 가고 있었다. 기이한 풍경에 지켜보던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솔직히 불길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군요.”
리안나가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투할린과 에델레드 역시 침묵으로 동의했다. 솔직히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저 저주받은 태양만큼 많은 사람을 죽인 기적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빛의 질서를 따르는 그들에게 ‘태양’이 상징하는 바와 그것이 ‘식는 것’에 대한 은유는 어쩐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필요한 일이란 건 알지만…… 과연 등대지기가 가만히 있을지.”
“글쎄. 등대지기도 천 년이나 내팽개쳐 둔 걸 보면 던져놓고 자기도 잊어버린 걸지도 모르지.”
투할린이 코웃음 치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변방 중의 변방, 소금 의회의 신성을 뽑아다 쓰는 기적이니 등대지기 역시 신경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명천사가 나타나면 모든 상황이 복잡해지므로 모두들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대비하거나 기도하고 있었다.
어느새 저주받은 태양의 절반 가까이가 그늘에 침식되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서 노을을 연상했다. 아직 절반만 가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기온이 상당히 서늘해진 것이 느껴졌다.
그때 가장 먼저 이변을 감지한 투할린이 고개를 돌렸다.
“온다.”
미르미아 남쪽, 사막과 바위 계곡 너머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마치 태양이 비추는 면적이 줄어든 만큼 그 땅이 자신의 땅이라는 듯, 회색 먹구름이 삽시간에 사막을 회색빛으로 바꿔버렸다.
마치 하늘과 바다가 뒤바뀌어 해일처럼 밀려오는 모습에 보는 모두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저거…… 저거 외경 아닙니까? 북해의 바다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요.”
리안나가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외경이 북상하다니. 있을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일이다. 저주받은 태양의 빛은 가려 둘 뿐이지 꺼진 게 아니다. 괴물들이야 착각할 수 있어도 외경이 깨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때 투할린의 고개가 급격하게 다시 돌아갔다.
미르미아 상공에 떠 있는 저주받은 태양은 어느새 2/3 가까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수면 아래로 가라앉듯이, 바다에 담긴 쇠공이 찬찬히 식어 가듯이.
저주받은 태양이 꺼져 버렸다.
“사드라자가 배신했다.”
***
사드라자는 어두워진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저주받은 태양이 꺼지자 피라미드 내부는 믿기 어려울 만큼 어두워졌다.
낯선 풍경이었다. 그러나 천 년 동안 저주하고 애걸하면서 바라 왔던 풍경이었다.
완전히 태양이 꺼진 것을 확인한 사드라자는 길모퉁이의 작은 벽돌을 힘껏 밀었다. 작은 돌이 밀려나자 균형을 잃은 벽돌과 바위들이 일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외적을 막아 내기 위한 단순하지만 수천 년이 지나도 망가지지 않는 장치였다.
피라미드를 드나들 통로를 모두 막은 사드라자는 검은 피라미드 안쪽으로 움직였다.
‘한때 이곳에는 해가 지더라도 밝게 타오르도록 횃불이 가득 피워져 있었지.’
사드라자는 소금길로 이루어진 ‘목구멍’을 따라 내려가며 과거를 회상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낮에 빛을 가득 머금은 피라미드 사원은, 밤이 되면 틈 사이로 빛을 내뿜으며 아름다운 윤곽과 문양을 드러냈다.
온 바다가 그들의 영토였고 길이었다.
온몸이 불타오르는 남자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리고 천년의 시간이 지나 이제 그들의 후예가 찾아왔다.
그들의 도움으로 의식을 위한 준비를 마쳤으나, 사드라자는 부족함을 느꼈다.
‘아직도 목이 마르다.’
사드라자는 천년에 걸쳐 부르는 자의 힘을 일깨우기 위한 제물을 모았다. 그리고 아이작의 도움으로 충분한 양의 제물을 더 보충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말 그대로 부르는 자를 ‘깨우기’ 위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소금 사막이 갈라지더라도 그 소금이 녹는 데 또 수백 년이 걸릴 것이며, 그 사이 등대지기가 또 찾아올지도 모른다.
천 년 전에도 괴물 같은 자였는데 지금은 얼마나 더 미친놈이 되었을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더 풍부한 만찬을 준비해야 한다.
첨벙. 사드라자는 목구멍 아래 물웅덩이에 닿았다.
주변은 썩어들어가는 괴물들과 고대신의 사체, 인골, 짐승의 뼈들로 가득했다. 온갖 생물이 썩으면서 흘려보낸 진물과 피로 오물이나 다름없어진 웅덩이가 사드라자의 촉수에 닿았다.
“제 이름을 옛날처럼 다시 한번 불러주소서.”
사드라자는 그 썩은 피 웅덩이에 허리를 숙여 입을 가져다 댔다. 이내 그는 거침없이 오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며 목을 축였다. 이내 충만한 힘이 그의 몸속에 스며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목마른 만찬 의식을 통해 신성력으로 바뀐 제물들이 만들어 낸 힘이었다.
외경의 괴물들, 야만적인 고대신, 감히 신에게서 등 돌리고 도망치던 신도들, 불결한 이교도들…… 그리고 더 이상 대답 없이 침묵하는 괘씸한 신까지.
바다 신전에서 스며 올라오는 부르는 자의 힘 역시 그에게는 목을 축일 양식에 불과했다.
“제 이름을 옛날처럼 다시 한번 불러주소서.”
대답은 없었다. 그 침묵이 사드라자를 갈증 나게 했다.
아직도 목이 마르다.
목이 마르다.
하지만 이제 곧 이 미르미아를 흠뻑 적시고도 남을 만한 피가 흐르게 될 것이다.
***
‘멍청한 놈.’
아이작은 꺼져 버린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꺼져 버린 태양은 이제 당연하다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적으로 유지되던 것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저주받은 태양이 사라진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하고 어두워진 상태였다.
여기서 등대지기가 나타나면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면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등대지기가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못지않은 재앙 덩어리가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쿠구구구…… 외경이 허물어지면서 마치 댐이 터진 듯 괴물들이 무리 지어 올라왔다.
날개 달린 놈, 외다리로 뛰는 놈, 기는 놈, 입술로 걷고 앞뒤를 구분할 수 없는 놈…… 구분할 수도 없고 통일 짓기도 어려운, 그저 괴물이라는 표현으로밖에 부를 수 없는 존재들.
평소에는 자신들끼리도 싸우고 잡아먹는 짓도 서슴지 않던 놈들이 지금은 미친 듯이 미르미아를 향해 올라왔다. 마치 그곳에 맛있는 만찬이라도 준비된 것마냥.
‘틀린 말은 아니지.’
이제 곧 소금 사막이 깨진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새로, 부르는 자가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아주 먹음직스러운 먹거리다. 사실 사드라자가 차려 놓은 목마른 만찬만으로도 괴물들을 유혹하기엔 충분하다. 그들은 언제나 힘에 굶주려 있기에.
아이작은 혀를 차면서 피라미드 위에서 뛰어내렸다.
‘너는 가장 멍청한 선택을 했다. 사드라자.’
***
사드라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한 힘을 느꼈다.
그는 멍한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몸 전체에서 타오르는 거대한 힘과 지혜가 용솟음하듯 솟구쳤다. 온몸의 세포가, 사고가, 시간이 세세하게 구분되고 명료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그의 통제 안에 있었다.
단지 목마른 만찬 의식을 통해 구현한 힘을 자신이 마셨음에도, 마치 천사와도 같은 힘이 몸 안에 담겨 있었다.
‘이 힘이라면 소금 사막을 깨뜨릴 수 있을지도.’
다른 방법도 있다.
만약 소금 사막을 깨뜨리고 그 안에 무방비하게 방치된 신의 힘까지 먹어 치운다면 어떨까…… 그 무력하고 말 없는 노인네를 씹어 삼킨다면 진정으로 초월적인 존재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식욕이 미친 듯이 올라왔다.
목이 마르다.
시체 썩은 물처럼 검붉게 변한 그의 두 눈이 기이한 빛깔로 번들거렸다. 하지만 사드라자는 애써 갈증을 억눌렀다.
사제로서 남은 마지막 자아가 그것만은 반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때가 아니다. 바깥은 지금 전쟁터가 되었을 것이다.
등대지기의 추종자들이 몰고 온 군대가 외경에서 넘어온 괴물들과 가망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는 천사의 가호를 받는 자들도 있는 듯했으니 꽤 오랫동안 저항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의 피가 흐르든 그 피는 미르미아 지하로 흐른다.
미르미아 전체의 수로와 우물과 지하수가 사드라자의 목구멍이다. 그는 그 피마저 마시고 자신의 천 년 간의 고독에 걸맞은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
그러나 그때 사드라자는 이상한 것을 느꼈다.
피가 흐르지 않는다. 아니, 전투가 일어나는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드라자는 자신의 초월적인 감각을 확장시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지했다.
이내 사드라자는 경악했다.
외경의 괴물들은 벌써 성곽을 뚫고 어부의 집 코앞까지 쳐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놈들이 어부의 집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오면 바로 목구멍까지 코앞이었다.
그리고 그 어느 곳에도 이사크레아 여명군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