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56)
356화. 목마른 만찬 (6)
사드라자는 황급히 감각을 확장시켰다.
이곳은 소금 의회의 성역. 그리고 사드라자가 천 년 간 거점으로 삼았던 땅이다. 극도로 확장된 감각이 넘실거리는 실타래처럼 주변으로 뻗어나갔다. 미르미아의 성곽 너머, 주변의 도시와 마을들을 지나, 거의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야 이사크레아 여명군의 일부를 찾아낼 수 있었다.
태양을 꺼뜨리자마자 달아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설마…… 미리 병력을 빼돌렸다고? 내 배신을 예측하고서?’
아이작이 강하다는 것은 안다. 그와 함께 왔던 동료들조차 그를 단숨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외경의 괴물들이 쳐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그들이 거느린 군대는 여차하면 인질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드라자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병사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괴물을 막다가 죽을 것이라고.
하지만 아이작은 군대를 일찌감치 빼돌리는 것으로 응수했다.
‘아니, 그러면 내가 본 병사들은?’
사드라자가 의식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에이단과 아이작, 그리고 소수지만 병사들을 분명 보기는 했었다. 다른 병사들은 일찌감치 빼돌렸다 치더라도 아이작 자신은 저 괴물 무리로부터 빠져나갈 자신이 있다는 건가?
사드라자는 아이작을 찾아 헤맸지만 그의 흔적은 물론 그가 보았던 병사들도 찾을 수 없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끼긱, 쿵, 쿠구구구…….
“입 닥쳐!”
외경의 괴물들이 난폭하게 어부의 집을 훼손하고 부수는 소리가 예민하진 사드라자의 신경을 긁어댔다. 천 년간 저주받은 태양 아래서도 원형을 유지해 왔던 어부의 집은 지금 유례없는 파괴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괴물 일부가 사드라자가 막아 놓은 구멍을 뚫고 파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저열한 짐승들이 감히…….”
사드라자의 몸이 출렁거리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신성이 격에 맞는 형태로 육체를 재구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드라자는 목구멍을 타고 빠르게 솟구쳐 오르면서, 단숨에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제 막 공터를 지나 검은 피라미드 내부로 진입하려던 괴물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또 다른 괴물과 눈을 마주했다.
쿠구구구궁! 어부의 집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어마어마한 흙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십 가닥의 촉수들이었다.
그것은 바다 생물이라기에 믿기 힘든 비늘과, 깃털과, 털가죽과, 이빨, 발톱을 한군데 짓눌러 만든 듯한 어색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문어가 지금까지 먹어 치운 것들의 잔해로 자신의 몸을 치장한 것처럼.
이미 그것은 바다 교단의 권속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보다는 질서를 잊은 외경의 짐승에 가까워 보였다.
사드라자는 촉수에 휘감긴 괴물을 단숨에 짓눌러 터뜨렸다.
콰드드득! 사드라자는 자신의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힘과 가벼운 감촉에 전율했다.
그는 지난 천 년간 목마른 만찬 의식을 아주 조금씩 수행하면서 힘을 보충해 왔다. 그의 신체가 변형된 것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도 그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때에도 외경의 괴물들은 방심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외경의 괴물이 자신의 촉수 아래 개미 마냥 으스러지고 있었다.
사드라자는 넘치는 힘과 전능감에 전율했다. 이것이 신의 권능인가? 이것이 천사가 누리는 힘인가?
시체와 잔해들로 만들어 낸 의식조차 이런 힘을 주는데, 신을 포식한다면 얼마나 거대한 힘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하고 강력한 권능의 힘을 누리고 있음에도, 사드라자는 더더욱 타는 듯한 갈증에 시달렸다. 그의 발밑에, 어부의 집으로 몰려드는 괴물들이 보였다.
사드라자의 눈에 그것은 잘 차려진 만찬처럼 보였다.
[그래, 모조리 먹어 치워 주마!]그리고 마지막 후식으로 소금 사막 아래 갇힌 무방비한 신의 부드러운 속살을 물어뜯는다면, 비로소 배가 부를 것 같았다.
***
검은 피라미드 뒤쪽.
무수한 괴물들이 사드라자에게 휩쓸려 나가고, 동시에 사드라자에게서 느껴지는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괴물들이 놈을 따라간 뒤, 어부의 집은 적막에 빠져들었다. 이제 검은 피라미드 안에 남아 있는 신성력은 거의 없으니 굳이 이곳을 탐내는 놈도 없었다.
그리고 그 조용한 곳에서 유독 시커먼 장막이 서서히 걷혀 내려갔다.
그 속에서 아이작과 에이단, 그리고 병사들로 변장한 소금 의회 선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작은 ‘감춰진 제례’를 해제하자마자 사드라자의 기척부터 파악했다.
“……놈의 정신이 완전히 팔렸다. 빠르게 움직이지.”
그 어떤 존재로부터도 고립시킬 수 있는 감춰진 제례는 기척을 숨기는 용도에서도 완벽하게 작동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사드라자는 일시적으로나마 거의 천사에 준하는 힘을 얻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사드라자조차 자신의 영역에서 아이작을 감지하지 못했다.
에이단은 구멍 난 어부의 집을 통탄스러운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그의 입장에서 천 년 묵은 대선배가 구원자로 지명된 ‘꿈꾸는 자’를 배신하고 신성모독까지 범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 님은 놀라지 않으신 것 같군요.”
“그래, 뭐…… 사실 처음부터 예감했거든.”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은 천년이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불사 교단조차 없던 그 시절에 천 년이나 살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신성을 품은 존재들뿐이다.
즉, 사드라자는 고대신이거나 그 비슷한 것이다.
“……사드라자가 고대신이었다구요?”
“확실하진 않았지. 그가 수명이 늘어나는 특이한 성체일 수도 있고, 부르는 자가 가장 마지막에 선정한 명천사였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온갖 예외가 사드라자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놈이 인신 공양과 신성을 착취해 편법적으로 신성을 얻어 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지.”
미르미아 멸망 직후, 혼란에 빠진 신도들을 이용해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고. 그거라면 다른 모두가 죽고 사라졌음에도 오로지 그 혼자만 살아남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합리적인 설명이었지만, 확신은 없었다. 정말로 예외가 없으란 법도 없고, 천년이나 신전을 지켜온 사제를 덮어놓고 의심하고 싶지도 않았다.
“같은 이유로 네게 말하기도 어려웠다. 천 년간 신전을 지켜온 사제가 사실 신성을 착취하던 괴물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은 잔인하니까.”
“……그래서 저를 굳이 끌고 다니며 뺑뺑 돌려 암시해 주신 거군요.”
에이단은 크게 실망한 눈치는 아니었다.
사실 아이작 덕분에 그 역시 어느 정도 의심을 품고, 동시에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다만 배신하지 않고 이 의식을 성공적으로 완수한다면 에이단은 자신의 ‘오해’를 사과할 의향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가능성은 사라졌다.
“가자. 사드라자가 돌아오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하니까.”
“예.”
소금 의회 신도들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 사드라자가 튀어나온 목구멍 속으로 걸어 내려갔다.
신앙인이 저지른 죄악은 결국 같은 신앙인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사드라자는 모두를 배신하는 대신 자신이 모든 만찬을 독식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지만, 틀렸다.
이제 그에게 남은 길은 파멸로 가는 길뿐이었다.
***
[이 신성한 땅에서 망령되게 행동하지 마라, 이 버러지 잡것들아!]사드라자는 광기와 힘에 취해 괴물들을 향해 촉수를 난타했다.
정작 그 괴물들보다 미르미아를 더 많이 파괴하고 있는 것은 사드라자 본인이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건물이 부서지고 더 많은 괴물들이 으스러질수록 자신의 힘에 짜릿한 감정을 느낄 뿐이었다.
이 빌어먹을 사막, 빌어먹을 도시, 빌어먹을 교단과 신, 무능한 천사들.
무엇보다 바닥을 기면서도 아등바등 살아남길 바라던 자신이 가장 혐오스러웠다. 그가 힘과 폭력을 만끽하는 행위는 자신의 과거를 씻어내리려는 행위이기도 했다.
모든 것에 대한 천 년의 한과 분노가 일시에 폭발하여 그의 전신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괴물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 ■■■■, ■!”
괴물들 사이에서 대강 번역하자면 지저분한 것끼리 교잡한 것, 비린내 나는 것, 냄새나는 것 정도의 의미가 담긴 불경한 언어들이 반복적으로 튀어나왔다. 괴물들은 동족이 바로 곁에서 으스러지는 꼴을 보면서도 게걸스럽게 촉수에 달라붙어 물어뜯고 올라탔다.
싸움닭에게 개미 떼가 달려드는 꼴이었다. 닭은 개미들을 발톱으로 짓누르고 쪼고, 날갯짓하는 것만으로도 날려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개미들은 두려움도 공포도 없이 그저 닭을 물어뜯는 것에만 집중했다.
심지어 외경의 괴물들은 전신이 으스러져도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온몸이 곤죽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도 촉수에 묻어 이빨만으로 촉수를 물어뜯었다. 사드라자가 신의 형상을 취하려는 괴물이라면, 그것들은 진짜 바닥이 없는 괴물들이었다.
상대를 진창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괴물들.
사드라자와 외경의 괴물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형식적으로나마 인간다움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이 싸움의 간격을 점차 좁혀 가고 있었다.
사드라자는 그 집요한 집념에 문득 피곤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피곤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벌써?’
강력한 권능은 그만큼 많은 힘의 소모를 의미한다.
천사들이 지상에 강림했을 때 굳이 대리인의 육신을 빌거나, 본신을 드러내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물러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사드라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년을 버텨온 고도(古都)는 이제 완전한 폐허가 되어 있었다. 시커멓게 뭉개진 시체들과, 그 체액이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괴물들이 스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 너머에 대체 얼마나 많은 괴물들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기에, 사드라자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더러운 놈들! 감히 어딜 침입하느냐!]사드라자는 난폭하게 또 하나의 괴물을 촉수로 짓밟아 터뜨렸다. 그러다 손 끝에서 따끔한 통증을 느꼈다. 유독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던 괴물이 머리째로 터져나가면서 그 날카로운 송곳니를 촉수 깊숙이 박아넣은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괴물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이, 태양이 떠 있을 때에는 도시에 범접조차 하기 어려워했던 것들이…….]사드라자 한때 저주하고 증오했던 태양마저 찾으며 형편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나 그 저주받은 태양은 바로 자신의 손으로 꺼뜨린 참이었다.
등대지기가 돌아오지 않는 한, 태양이 다시 떠오르진 않는다.
사드라자는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도시에 충분히 많은 피가 흘렀다. 목구멍에 많은 피가, 어쩌면 지난 천년보다 더 많은 제물들이 준비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목마른 만찬 의식을 행하여 그 힘을 흡수한다면…….’
아니, 이번에는 아예 목구멍 속까지 내려가서 부르는 자의 힘까지 파먹자. 그리고 그자의 육신으로 목마른 만찬 의식을 다시 한번 행하자.
신의 육신을 흡수하여 내 것으로 만들다니, 그보다 더한 권위와 힘을 더 어디서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사드라자는 자신의 계획에 전율하며 어부의 집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검은 피라미드를 본 순간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느껴졌다. 천 년간 자신과 시체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했던 성역이 다른 누군가의 발과 신성으로 침입당한 흔적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에게 익숙한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다.
[안돼!]사드라자는 급히 목구멍 안쪽으로 얼굴을 쑤셔 박았다. 대책 없이 몸집을 부풀린 덕분에 구멍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기가 힘겨웠다. 온몸이 유연한 두족류의 형태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드라자는 멈출 수 없었다.
그의 감각이 맞다면 지금 목구멍 안쪽에서 행해지는 의식은 ‘목마른 만찬’이다.
그것도 자신처럼 힘을 흡수하기 위한 것이 아닌, 정말로 부르는 자의 목을 축이고 소금 사막을 깨뜨리기 위한 의식.
[안돼! 그를 깨워선 안 돼!]이제는 모순적인 언행마저 내뱉으며 사드라자는 구멍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낯선 검광이 번뜩였다.
쉬릭, 콰드득. 사드라자는 처음에는 그것이 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곧 낯익은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미르미아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을 토하며 사드라자는 다시 급격히 몸을 빼냈다. 그의 머리 위에서 루앗딘 열쇠가 새하얗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칼에 매달린 아이작이 칼날을 비틀며 속삭였다.
“역시 배신자에게는 루앗딘이 만든 회초리가 잘 통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