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57)
357화. 목마른 만찬 (7)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혐성 발언에 사드라자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이 버러지 같은 놈이!]사드라자는 촉수를 휘둘러 아이작을 내리찍었다. 그러나 아이작은 루앗딘 열쇠를 꽂아 두고 카훌린을 뽑아 들었다.
미끄러지듯 사드라자의 몸 위를 달리는 아이작 뒤로 새빨간 선혈의 궤적이 이어졌다. 외경의 괴물들과 싸우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아이작이 사드라자의 몸을 해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드라자는 아이작을 으스러뜨리기 위해 수십 가닥의 촉수를 움직였다. 내심 파리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빈틈없는 공격이라 생각했건만, 아이작은 실낱같은 틈새로 상처 하나 없이 빠져나왔다.
되레 카훌린을 휘둘러 사드라자의 촉수 몇 가닥을 베어 넘기기까지 했다.
[─────!!]사드라자는 철철 흘러넘치는 피를 보며 경악했다.
천 년간 굶주림, 갈증, 고독 같은 고통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통증은 거의 느껴본 적 없었다. 오직 적이 스스로 쓰러져 죽기만을 기다리면서 썩은 살점만을 탐하던 그에게 아등바등하는 투쟁은 낯선 것이었다.
외경의 괴물과 싸우면서도 이 정도의 큰 상처는 입어 본 적 없었다.
[나는 신의 권위로 천사의 힘을 얻었다! 그런데 어떻게 일개 인간인 네 놈이!!]아이작은 사드라자가 천사의 힘을 얻었다는 주장은 부정하지 않았다. 천사가 가진 가장 큰 힘인 우르반수스 조작은 할 수 없더라도, 사드라자가 가진 힘만큼은 천사에 비견할 만했다.
다만 상대가 좋지 않았을 뿐이다.
데라 헤만과 아이작의 상성이 좋지 않았듯, 사드라자와 아이작도 상성이 좋지 않았다.
“나는 촉수에 대해 꽤 잘 아는 편이거든.”
아이작은 촉수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공격해 올 것인지 상상하고 대비하면서 단련해 왔다. 사드라자의 움직임은 하찮은 초보 검술가의 맥 빠진 공격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작은 카훌린을 빙글 돌리면서 다시 사드라자의 몸 위를 질주했다. 강력하게 뿜어져 나온 검기가 촉수의 살갗 깊은 곳까지 해체했다. 사드라자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칼날이 자신의 목젖을 향해 다가오자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러다 사드라자는 자신의 또 다른 힘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자신은 원래 사제였다.
잘려 나간 촉수의 일부가 기이한 형태로 비틀리더니, 순식간에 메말라 소금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메마른 소금 촉수들이 곧바로 아이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이작은 본능적인 이질감에 카훌린으로 그것들을 후려쳐 튕겨 냈다.
때마침 어부의 집으로 침입한 외경의 괴물이 그 촉수에 부딪혔다. 순간 괴물은 체액을 빼앗기듯 말라붙더니, 이내 가루가 되어 버렸다.
아이작은 그 모습을 보고 코웃음 쳤다.
“결국 근본마저 버리는 거냐?”
[네 놈이 뭘 안다고!]누가 봐도 소금 의회에 반대되는 삿된 기적이다.
바다의 풍요과 신비, 근원을 다루던 신앙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메마른 소금 사막과 황야뿐이다.
놈의 생각을 반영하듯, 사드라자의 몸이 촉수 끝부터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소금 의회? 놈들은 전통이고 뭐고 잊어버린 채 도망친 놈들에 불과하다! 그놈들에게 이 신성한 도시의 피가 얼마나 남아 있을 것 같냐! 복된 음성을 들은 자들이, 바다 아래 신비로운 신전을 본 자들이 얼마나 있을 것 같으냐!]사드라자의 몸은 전보다 작아지는 대신, 더 강하고 천사다운 기적에 휩싸인 형체로 변해 갔다. 보다 위험해지는 기운에 아이작은 일단 거리를 벌렸다.
[오직 나뿐이다! 오직 나만이 살아남았다! 내가 바다 교단의 생존자요, 후예다! 내가 바로 어부, 어란 품은 자, 부레 가진 자, 바다로 회귀한 자란 말이다!]사드라자는 광오한 외침을 토해 내며 잡스러운 부정형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신성한 형태로 거듭났다.
[내가 바로 새로운 바다 교단의 신이다!]아이작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웬걸. 이런 데서 동지를 만날 줄이야?”
물론 아이작은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었다. 신이 되는 건 그의 취향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 추잡한 모습을 가진 도둑놈의 범죄에 공감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사드라자의 목숨은 시한부다.
에이단이 이 모든 것을 끝낼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까.
***
목구멍 안쪽. 에이단과 그를 따라온 선원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의식을 준비 중이었다.
주변은 아이작이 성역을 점령한 효과로 촉수와 신경, 힘줄, 심장이 두근거리는 형태가 되어 있었다. 먼저 들어간 아이작이 ‘사드라자가 별 이상한 짓을 한 모양’이라며 둘러댔지만, 사실은 모두들 느끼고 있었다.
이 성역에서는 아이작이 가끔 보여주던 불길하지만 강력한 힘이 꿈틀댄다는 것을.
그러나 지금 그 힘은 그들을 공격하는 대신 안온한 기운으로 북돋아 주고 있었다.
“에이단 선장님, 정말 괜찮을까요?”
“……꿈꾸는 자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나 있었을 것 같나? 그분께 받은 은혜는 한도 끝도 없다. 만약 그분께서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라면, 그 손을 붙잡고 뛰어가야 마땅해.”
에이단은 어설픈 고대 지식과, 아이작이 알려준 목마른 만찬 의식 절차를 합쳐 의식을 진행했다. 하지만 며칠 사이 주입받은 지식으로 진행하는 야매 의식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나마 사드라자가 기본적인 세팅을 해 둔 덕분에 뭔가 꿈틀대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뿐이었다. 의식이 어딘가에서 막혀 도무지 진행되지 않았다.
“사드라자가 새겨 놓은 부정한 기도문을 수정하다가 틀린 글자가 없는지 확인을…….”
“에, 에이단 선장님…….”
“으, 으음.”
그때 선원 하나가 놀란 듯 어딘가를 가리켰다. 사드라자가 새겨 놓은 기도문 한쪽, 아마도 한때는 돌덩이였을 살점이 이리저리 꿈틀대면서 철자를 바꾸고 있었다.
일부 모자란 글귀는 새빨간 핏줄을 드러내면서 글자를 만들어 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지만, 글자가 바뀌니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봐도 정상적인 기도문이었다. 사드라자가 심어 놓은 부정한 글귀가 정상적으로 고쳐진 것이다.
에이단은 식은땀을 흘렸다. 이 성역이 아이작의 의지를 대행해 그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성역의 도움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에이단이 기도문을 틀리게 낭송하자 대신 웅웅대며 기도문을 알려주기도 했고, 제기(祭器)의 위치나 움직일 순서가 틀리자 제 살점을 움직여 똑바로 교정하기도 했다.
같은 부분을 에이단이 반복해서 틀렸을 때 촉수가 튀어나와 에이단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기까지 하자, 선원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마침내 이런 천신만고 끝에 의식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에이단은 곧 난감한 결론에 부딪혔다.
“제, 제물이 부족합니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성역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던 에이단은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 대고 외쳤다. 사드라자가 알뜰하게 힘을 쓸어 간 덕분에 목구멍에는 제물로 쓸 피나 사체가 부족했다.
난감함과 당혹스러운 시선이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갑자기 선원 한 명이 벌떡 일어섰다.
“에이단 선장님, 제 몸을 쓰십시오.”
“뭐?!”
“저희 교단이 천년을 기다려 온 일입니다. 저 머저리 같은 사제 놈 때문에 실패할 뻔했지만, 이번에야말로 우리 손으로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다른 선원들도 일어섰다.
“외부인의 힘을 빌려서 온 것만으로도 이미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실패하면, 어차피 얼굴 들고 다닐 수도 없습니다!”
“맞습니다. 에이단 선장님! 부디 제 몸을……!”
“닥쳐, 이 멍청한 놈들아!”
에이단은 선원들이 아우성치며 일어서자 버럭 화를 내며 걷어찼다.
“조금 어려워졌다고 그렇게 쉽게 목숨을 포기하냐! 사람 잘되자고 신을 믿는 거지, 신 잘되자고 목숨 버리는 거 아니다! 네놈들은 아이작 님이 밖에서 뭐라고 말했는지도 기억 못 하냐!”
그 말에 선원들은 뜨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이작 님은 신이 인간을 잡아먹으면 그건 신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했다! 이미 그 시점부터 그 신에게는 숭배하거나 존경할 가치도 없는 거야! 네 놈들은 괴물에게 목숨을 바칠 셈이냐!”
에이단의 일갈에 선원들은 잠잠해졌다.
에이단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제단을 다시 노려보았다. 솔직히 상황의 급박함을 생각하면 자신의 몸이라도 던지고 싶은 것은 심정이었다. 특히 밖에서 아이작이 목숨 걸고 싸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소금 의회의 수치를 자신의 손으로 치울 수 있다는 것은 꽤 의미를 가진 선택지였다.
하지만 그동안 아이작을 믿고 따르면서 겪어 온 경험이, 그 가능성을 차단해 버렸다.
그때 에이단은 성역의 붉은 살점으로 이루어진 벽이 울컥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이내 뻐끔거리며 입을 벌린 구멍에서, 일제히 검붉은 핏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괴하면서도 불길한 광경에 선원들은 입을 벌렸다. 에이단은 설마 이 성역이 자신의 피까지 나눠주는 건가 생각했지만, 이내 채워지는 신성력을 보면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경의 괴물이 흘린 체액이다.”
성역이 미르미아 지하 곳곳에 스며든 핏물을 모조리 빨아들여 이 안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
드드드드득, 드득, 득.
사드라자는 그 관절을 기괴하게 비틀며 형태를 재조립해 나갔다.
이제 사드라자는 문어의 형태에서, 마치 벽화로 그려진 태양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직경 10미터쯤 되는 붉은 얼굴을 중심으로 바큇살 같은 새하얀 소금 촉수가 가지런하게 위에서 아래로 뻗어나갔다.
촉수 일부는 땅을 딛고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꼴이었으나, 아이작은 묘한 감상을 느꼈다.
“그게 네가 생각한 ‘가장 강력한 형상’인가?”
아이작은 사드라자의 변형된 모습에, 게임 속에서 사냥해야 했던 ‘외경의 짐승’ 중 하나를 떠올렸다. 소금 사막을 깨뜨리기 위해 반드시 잡아야 했던 가장 강력한 괴수 중 하나였다.
‘붉은 사제’라는 별명이 붙은 그 괴물은, 정확히 지금 사드라자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기다림에 지친 사드라자는 저주받은 태양이 뜬 상태에서 혼자서 의식을 시행했다가 도시에서 추방당한 것이다.
그때는 웃기는 모습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솔직히 미르미아 상공에 떠 있던 저주받은 태양을 떠올리게 하는 외견이었다.
온 사방으로 뻗어나가던 붉은 열기, 닿는 곳마다 황무지와 소금을 꽃피우던 저주받은 손길.
사드라자는 천년의 세월이 흘러 자신의 교단과 나라와 이웃들을 파괴한 저주받은 힘을 흉내 내고 있었다.
아이작은 그가 진심으로 섬기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루앗딘은 도시와 교단만을 파괴하지 않았다. 한 사제의 정신세계마저 완전히 파괴해 버린 것이다.
[■■■, ■■■■…….]사드라자는 언어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것을 중얼거렸다. 그것은 외경의 괴물들이 내뱉는 불경한 언어나 고어와는 달랐다.
그저 모든 체계가 파괴된 언어였다.
“결국 인간의 언어마저 잃어버린 거냐, 이 멍청한 놈아…….”
아이작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사드라자가 변신하는 동안 아이작도 넋 놓고 기다리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럴 만큼 아이작이 양심 있고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차피 사드라자의 목숨은 시한부였기에, 그 역시도 버틸만한 힘을 끌어오고 있었다.
‘성역이 이런 역할도 해 주는군.’
미르미아 지하에 깔린 이름 없는 혼돈의 성역이, 도시 곳곳과 지하수로에 핏줄을 꽂아 피를 흠뻑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 일부는 아이작에게, 일부는 검은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갔다.
아이작이 포식한 피는 전부 이름 없는 혼돈의 권속에 속한 자들의 피.
그 속에 담긴 신성력이 아이작의 힘을 크게 북돋고 있었다. 그때 사드라자가 아이작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은 날카로운 촉수를 휘둘러 보란 듯이 주변을 파괴했다. 건물들이 낙엽처럼 쓸려나가고 소금이 되어 부스러져 내렸다.
이내 사드라자는 촉수를 빠르게 아이작의 몸을 향해 내리꽂았다.
콰득. 그러나 그 소금 촉수는 아이작의 왼손에 붙잡혔다. 사드라자는 움찔했으나 이내 그 붉은 얼굴에 미소를 드리웠다.
이제 아이작은 소금 기둥이 될 테니까.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일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아이작의 왼손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 붉은 촉수들이 되레 소금 촉수들을 으스러뜨리며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