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58)
358화. 목마른 만찬 (8)
있을 수 없는 일에 사드라자는 경악했다.
소금 촉수는 닿는 모든 것을 소금으로 만들어 버리는 저주의 결정체다. 천년의 원념과 갈증이 이 소금 촉수에 엉켜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의 왼손은 오히려 태연하게 소금 촉수를 으스러뜨리며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아니, 소금 촉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제야 사드라자는 빈곤해진 머리로 이 촉수의 정체를 깨달았다.
‘설마 혼돈의…….’
기적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기적뿐이다. 닿은 것을 소금으로 바꿔 버리는 기적을 아이작은 더 강한 생명력과 포식 효과로 대응하고 있었다. 일부 촉수가 소금이 되어 버리더라도, 순식간에 새로 돋아난 촉수가 덩굴처럼 돋아나 엉켜 들었다.
[■, ■■■■─!]사드라자는 파괴된 언어로 비명인지 고함인지 알 수 없는 외침을 토해 내며 자신의 촉수를 스스로 잘라냈다. 그 사이 아이작의 왼손은 어깻죽지까지 촉수로 변해 있었다. 그 출렁거리는 촉수 가닥마다 불경하고 형언하기 힘든 기운이 느껴졌다.
촉수 위로 돋아난 눈동자들이 눈웃음치며 사드라자를 흘겨보았고, 송곳니 돋은 입술들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아주 맛있는 만찬상을 바라보는 듯.
사드라자는 아이작에게서 자신을 뛰어넘는 갈증과 식욕을 느꼈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거대한 공허와 함께.
외경 너머의 식탐이 질서의 영역으로 넘어와 그를 탐내고 있었다.
“뭘 망설이고 있지. 사드라자?”
아이작은 요염한 눈웃음을 지으며 유혹하듯 속삭였다.
“이리 와서 날 먹어 치워 봐. 네가 원하던 대로.”
아이작의 왼팔과 그의 기이한 빛깔로 빛나는 그림자 밑에서 돋아난 촉수들이 망토처럼, 파도처럼 너울 쳤다. 그것은 언제든 아이작이 명령하면 물어뜯을 사냥개처럼 대기하고 있었다.
사드라자는 촉수만이 기적일 뿐, 아이작의 몸은 인간의 것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어떻게든 소금 촉수를 꽂아 넣는다면 놈을 마른 미라처럼 바스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사드라자는 다시 한번 고함을 내지르며 촉수들을 휘둘렀다.
그제야 아이작의 촉수도 튀어 오르면서 소금 촉수들을 휘감았다.
‘놈이 혼돈에 속한 무언가라고?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지? 나는 외경의 괴물들을 제물로 바치고 그 살점을 물어뜯으며 살아왔다! 천 년이나!’
사드라자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끌어다 쓴 끝에 일시적으로나마 천사에 비견할 만한 힘을 얻었다.
어차피 아이작은 인간. 신성을 섭취해 온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필멸자에 불과하다.
과연 아이작은 사드라자의 소금 촉수 대부분을 휘감았으면서도 힘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사드라자가 이미 수많은 외경의 괴물을 상대하느라 지친 상태라는 것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힘이었다.
사드라자는 붉은 얼굴을 울컥거리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입 안에서 소금으로 된 혓바닥이 돌출하면서 순식간에 아이작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눈을 마주친 그 순간이야말로 아이작이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던 저 너머의 색채가 순식간에 사드라자를 휘감았다. 갑자기 눈앞이 새까맣게 변한 사드라자는 일시적으로 휘청거렸다. 동시에 강한 충격이 그의 몸을 강타했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사드라자는 급히 아이작을 놓고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작은 사드라자를 붙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또 한 번 강한 충격. 사드라자는 휘청거리다가 마침내 무너져 구르기 시작했다.
사드라자는 비탈을 따라 한참 구르다가 뒤늦게 아이작이 자신을 어딘가로 옮기기 위해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대응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전력을 그 스스로에게 쏟아붓게 만든 것이다.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저 너머의 색채 속에서 아이작이 꿈결처럼 속삭였다.
색채가 쏟아내는 환청과 환각, 환통들이 사드라자의 온갖 감각들을 자극했다. 그때 갑자기 그의 소금 촉수를 압박하던 힘이 일제히 사라졌다. 사드라자는 재빨리 빠져나오며 힘을 일시적으로 폭발시켰다.
저 너머의 색채가 산산조각나며 흩어지자, 겨우 시야가 회복되었다.
그제야 사드라자는 자신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알아차렸다.
미르미아 앞바다, 메마른 소금 사막 바닥이었다.
소금 속에 반쯤 파묻힌 배들이 공동묘지의 비석처럼 주변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미르미아로 올라가는 길목에 아이작이 서 있었다.
“여기가 네게 어울리는 무덤이다. 사드라자.”
사드라자는 노성을 터뜨리며 그를 향해 다시 기어 올라가려 했다. 그러나 사드라자는 뒤늦게 자신을 이곳까지 굴러 떨어뜨린 힘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외경의 괴물 무리였다. 수많은 괴물무리가 군집하고 하나로 어설프게 엉겨 붙은 채 그의 몸을 물어뜯고 있었다.
사드라자는 설마 아이작이 외경의 괴물들마저 조종하는 건가 하며 경악했다.
다음 순간, 천지를 울리는 커다란 경종이 울려 퍼졌다.
신성한 파동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간 순간, 사드라자와 아이작, 심지어 외경의 괴물들마저도 잠깐이나마 멈춰 섰다. 그저 한 번의 종소리였으나 마치 명료한 메시지처럼 하나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넘쳐흐르는 바다.
쩌어어어어억.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소금 사막에 거대한 균열이 번져나갔다.
***
에이단은 마침내 의식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목구멍 안쪽에서 그가 정말 의식을 성공시켰는지 어쨌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웅장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을 뿐, 자신이 부르는 자에게 제대로 힘을 넘겨주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지상에서는 달랐다.
미르미아 일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이사크레아 여명군은 물론이고, 저 먼 남쪽의 외경의 괴물들마저도 부르는 자의 기지개를 알아차렸다.
쿵, 쿵, 쿵! 이어 맥박이라도 치는 듯 크게 일정한 간격으로 지진과 굉음이 일어났다. 혼란에 빠진 괴물들은 자기들끼리 물어뜯고 포효하며 난동을 부렸다.
아이작은 비탈이 무너지기 전에 재빨리 미르미아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미르미아는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듯 지진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았다.
반면 사드라자는 비탈을 올라오려다가 지진 충격에 연신 굴러떨어졌다.
소금 사막 깊은 곳에서 시작된 균열은, 가장 먼저 소금 둑을 강타했다.
강력한 파동이 잠시 바다를 밀어냈지만, 바다는 이내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해일이 되어 밀어닥쳤다. 소금 둑의 규모에 비하면 아주 작은 실금 같은 균열이었으나, 해일은 단숨에 그 균열을 깨부수며 순식간에 바다를 메우기 시작했다.
천 년간 메말라 있던 땅에 바다가 스며들었다.
그 소금 사막 위에 세워져 있던 모든 것이 허상처럼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노도와 같이 달려든 바닷물이 삽시간에 미르미아 앞바다까지 밀려왔다. 허겁지겁 언덕 위로 올라가려던 사드라자는 그 믿기지 않는 풍경에 넋을 놓았다.
바다가 온다.
동경, 집착, 애정, 공포, 슬픔, 분노, 모든 것을 담아 그가 그리워했던 풍경이 달려오고 있었다.
사드라자는 미르미아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바다는 단숨에 사드라자의 발목부터 후려갈겼다.
너무 넓은 범위에, 동시에 진행되어 마치 느리게 차오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론 엄청난 속도였다. 심지어 장애물조차 없이 달려든 물살의 힘은 천사마저 고꾸라뜨리기에 충분했다. 얼굴이 수면에 처박히자 사드라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드라자는 뒤늦게 신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 기도에 응답하는 자는 여전히 없었다.
그가 듣고 있음에도 대답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언어가 파괴당한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입안에 자꾸 스며들어 오는 바닷물 때문인지도.
사드라자는 자꾸만 힘이 빠지는 다리를 휘청거리며 세우려 애썼다. 그는 뒤늦게 자신의 촉수들이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밀어닥치는 바닷물에 그의 소금 촉수들은 온전한 형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사드라자가 동경하고 꿈꿔왔던 풍경이 지금은 그를 파괴하고 있었다.
‘부르는 자시여, 부디, 다시, 기회를.’
사드라자는 바닷물 속에서 부글거리며 거품을 토해내며 애원했다. 그러나 그는 속절없이 거센 물살에 쓸려나가기만 할 뿐이었다. 빠르게 높아진 수위는 이제 저항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하게 그를 후려치고 있었다.
한때 그의 칭호는 부레 가진 자, 인간의 몸이었음에도 물속에서 호흡하는 것이 허락된 고위 사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천사의 힘을 가졌음에도 호흡은커녕 떠오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모든 팔다리가 마모되고, 붉은 얼굴은 반대로 빠르게 말라붙어 갔다.
부정하게 주어진 그의 모든 권능을 회수하기라도 한 듯.
사드라자는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언덕 위에 선 한 사내를 발견했다.
아이작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가라앉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저 위치에서 차오르는 바다를 볼 수 있었을까?
아니, 아니다. 배신하기도 전부터 이미 사드라자는 이미 그는 더럽혀진 존재였다.
배신으로 몰락한 교단의 유일한 생존자인 자신은 결국 배신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옳았다. 그의 최후는 새로운 세대에게 적절한 교훈이 될 것이다.
과거의 부정을 버리고 소금 의회란 이름으로 거듭난 후예들에게.
***
아이작은 익사하는 사드라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다 교단의 마지막 생존자가 바다에서 익사하는 풍경은 그에게 아이러니한 기분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결국 저 교단 사람들은 바다에서 죽기를 갈망하지 않던가?
어떤 의미에서 사드라자에게는 호상이다.
‘……사드라자가 배신한 게 다행이군.’
사드라자는 지난 천 년간 인간을 비롯해 온갖 부정한 제물들을 가리지 않고 목구멍에 끌어모았다.
말 그대로 부정하고 삿된 기운이다. 그 힘으로 부르는 자를 깨웠다간 어떤 여파가 미칠지 모른다.
하지만 사드라자는 배신으로 자신이 그 모든 부정을 흡수하고, 신선한 제물들을 손수 마련한 뒤 정갈한 상태에서 새롭게 의식이 진행되게끔 했다. 이후 깔끔한 최후까지.
이보다 더 나은 결말은 없을 것이다.
“고맙다, 사드라자. 너는 훌륭한 빌런이었다…….”
아이작이 실없는 소리를 하는 동안 그의 뒤쪽에서 또 다른 혼돈의 권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힐렛과 헤카틀리.
그저 짐승에 불과한 다른 권속들과 달리, 오직 아이작을 따르는 권속들.
“뜻대로 행했습니다. 아이작 님.”
마녀 헤카틀리가 얼굴 중 유일하게 인간의 형태로 남은 하관을 움직이며 말했다. 사드라자가 변신하는 동안 아이작이 준비한 또 다른 안배는 자신의 권속들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아이작도 자신이 사드라자에게 힘으론 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곳에서 헤카틀리는 그녀의 독특한 장기를 살렸다.
“혼돈의 권속들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건가?”
“지능이 짐승 수준에 불과하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쇠약해진 개체들만 뭉쳐서 자아를 흐트러뜨렸지요. 다만 아무래도 사드라자에게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서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드라자를 공격한 외경의 괴물 무리는 헤카틀리가 몰아온 것이었다.
헤카틀리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으나 아이작은 충분히 만족했다.
혼돈의 권속들에게 그저 ‘방향성’만 부여할 수 있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성과다.
‘저 너머의 기생충’을 심으면 좀 더 정교하게 움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작은 괴물들의 수괴가 될 생각이 없다. 하지만 그 괴물들에게 목줄을 채우고 매로 후려쳐 통제할 수 있다면 거부할 생각도 없었다.
그때 아이작은 사드라자와 함께 가라앉았던 거대한 괴물 군집체가 바다에서 기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놈은 잔뜩 지치고 타격받은 것 같았지만, 여전히 살아있었다.
아이작은 지힐렛과 헤카틀리를 돌아보았다.
“너희도 이곳에서 다른 괴물들을 포식할 기회가 있으면 포식해라. 너희가 강해지는 것도 내가 바라는 일이니.”
헤카틀리와 지힐렛에게서 강한 식욕을 느낀 아이작이 지시했다.
포식을 통해 강해지는 것은 아이작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쁜 듯 고개를 조아리고는 이내 자리를 떠났다.
‘그럼 나도 뒷정리를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