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69)
369화. 생과 사가 무너진 땅 (6)
“보면 안 되는 것? 그게 뭡니까?”
베셰크는 고개를 들어 아이작을 응시했다.
[모든 것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 여기에도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 존재하지만 앞으로도 나타날 수 없는 것. 갈망하지만 아무도 원치 않는 것.]아이작은 저 수수께끼 같은 말이 미다스의 손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왜 베셰크가 구태여 구체적으로 말하는 대신 저렇게 돌려 말하는 것인가 싶었다.
어쩌면 미다스의 손의 진짜 이름에 대해 아이작이 알지 못했듯이, 그 정체 또한 추측해 왔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막연하지요? 허나 쉽게 언급할 수 있다면 ‘보아선 안 될 것’이 아니지요. 성지 루아에서 등대지기가 나타났고, 백사병이 시작되어 무수한 인간이 죽었으며, 제가 저승을 끌어내린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 장소에 나타난 것이 평범할 것 같습니까?]아이작도 성지 루아가 정상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천사가 태어난 것만으로도 그 땅은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성지가 된다. 신이 탄생한 장소는 모든 신도들이 떠받드는 성지이며, 우르반수스와의 경계가 한없이 얕아진다.
하물며 성지 루아는? 그곳은 이미 베셰크가 경계를 허물기도 전부터 정상적인 공간이었을 거로 생각하기 어려웠다.
힘이 깃들 것이라 생각되는 곳엔 힘이 깃드는 법이다.
[뭣보다 그 애의 부모들이 찾던 물건도 평범한 물건이 아닙니다. 그건…… 개인적으로는 성물보다는 귀물(鬼物)이라고 부르고 싶군요.]“……아이의 부모는 어떻게 됐습니까?”
베셰크는 안젤라를 바라보았다.
[아이 앞에서 들려줄 만한 이야기는 아니군요.]그러나 안젤라는 흥미 없다는 듯 모닥불의 불꽃을 툭툭 건드리며 놀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작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베셰크를 응시했다.
“그래서 당신 목적이 그겁니까? 모든 인간들을 언데드로 만드는 것? 그게 당신이 원하는 바입니까?”
[설마요.]베셰크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빛의 법전을 여전히 존경합니다. 이제 그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지만, 그가 있어야만 제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압니다. 온화한 태양 아래 새로운 사람들이 끊임없이 태어나고, 자라고, 장성하길 바랍니다.]그는 인자한 목소리로 안젤라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들이 제한된 수명과 환경 속에 좌절을 겪을 때, 비로소 제 곁을 찾아와 두 번째 기회를 찾았으면 합니다.]언뜻 듣기에는 따뜻한 그 말에 아이작은 소름이 돋았다.
베셰크가 빛의 법전을 존중하고 일체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단지 빛의 법전이 있어야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새롭게 언데드가 될 자들이 있어야 그의 신도가 늘고, 궁극적으로 그가 바라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테니까.
베셰크에게 빛의 법전은 그저 산실이자 어린이집에 불과하다. 그곳에서 생명이 태어나고 건강하게 자라고, 자신의 땅에 와서 죽으면, 비로소 신도로 받아들인다.
단지 그뿐이다.
“안젤라도 마찬가지겠지.”
아이작은 어느새 반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베셰크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부모에게 이용당하고, 사제들에게 끌려가 불탈 뻔하고, 황금우상 상회에 착취당하고, 전쟁터까지 끌려와 고생하는 아이입니다. 이 아이가 진정 저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언데드가 되는 수밖에 없지요.]그러면서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려면 뼈가 좀 더 튼튼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린아이의 뼈는 너무 여려요. 저는 안젤라가 건강하게 어른까지 자랐으면 좋겠습니다.]아이작은 발작적으로 카훌린을 뽑았다.
***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려 퍼지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내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것을 알아차린 병사들이 급히 무기를 쥐고 그들을 둘러쌌고, 몇몇은 어디론가 달려갔다.
[언데드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고 생각해 보면 안 되겠습니까?]베셰크는 물끄러미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언데드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그 외형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언데드는 그 죽음을 암시하는 외형을 띄고 있지요. 단지 우르반수스에 그런 ‘선입견’이 쌓여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언데드를 두려워하는 것뿐입니다.]“그럼 그냥 변두리에 처박혀서 살아. 기어 나올 생각하지 말고.”
[육체의 욕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난 삶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욕망과 공포, 그 두 가지가 신들이 인간을 쥐고 흔드는 도구입니다. 거기에서 벗어나야 인간은 한 단계 더 진보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욕망이 없으면 성취할 수 없고, 죽음이 두렵지 않으면 용감해질 수도 없어. 솔직하게 말해 봐, 불사황제.”
아이작은 고개를 삐딱하게 꺾으며 물었다.
“이때까지 불사 교단에서, ‘이미 업적을 세운 사람’을 데려온 것 외에, 언데드가 된 이후에 업적을 세운 사람이 있나?”
아이작의 말에 베셰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작의 말은 그의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아이작은 이미 불사 교단 엔딩을 클리어해 봤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불사 교단 안에는 어마어마한 인재와 영웅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그들은 언데드가 된 순간에 멈춘 것이나 다름없다.
단련한 검술은 완성도를 높일 뿐이고, 예술을 한다 해도 자기복제를 반복할 뿐이다.
수십 수백 년간 자신의 기술을 갈고닦아 온 그들은 산 자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기예를 부릴 수 있다.
그러나 한 우물을 계속 깊게 파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그 배운 ‘기술’을 통해 무언가 업적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없다. 욕망도 결핍도 없으니 자기만 만족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
불사교단에 영웅이 들어올 수는 있다. 하지만 영웅이 탄생하지는 못한다. 지금 있는 천사들조차도 이미 천사가 될 자격이 충분한 자들이 개종한 것뿐이다.
그러한 사실은 불사황제 베셰크에게 있어서 아픈 부분이기도 했다.
베셰크가 무언가 말하려 할 때, 아이작은 그의 아픈 상처를 한 번 더 건드렸다.
“너는 네가 저승을 지상으로 끌어내린 이후로,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나?”
신에게 던지는 말치고 도발적인 언사였다.
아이작은 칼을 쥔 채 온몸의 신경을 베셰크에게 집중시켰다. 그가 무언가 행동하는 즉시 움직이기 위해서.
그때 아이작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헉…….”
아이작만이 느끼는 감각이 아닌 듯,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병사들이 갑자기 무릎을 꿇거나 속을 게워 내기 시작했다. 호흡마저 곤란한지 갑옷을 벗고 목을 더듬는 자도 있었다.
아이작은 속이 거북해지는 원인을 뒤늦게 깨달았다,
인간의 귀로 듣기 힘들 정도로 낮은 초저주파가 인체를 경련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급히 베셰크의 머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카훌린은 허무할 정도로 허공을 스쳐 지나갔다. 불사황제는 잠시 밤안개처럼 일렁였을 뿐, 조금도 상처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행히 속을 뒤집던 소리는 멈췄다. 베셰크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아픈 말을 하는군요. 아이작. 의외로 우리에게 관심이 많았던 모양입니다.]베셰크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면까지도 흰올빼미를 닮았군요. 그래요. 우리는 영웅을 낳지 못합니다. 때문에 더더욱 당신 같은 존재가 필요하지요.]“제안 주신 사항에 대해서 감사히 생각합니다만, 본인께선 아쉽게도 귀사와 함께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며, 다음 기회가 오지 않길 기원합니다.”
아이작은 장황하게 거절 인사를 내놓았다. 썩 꺼지라는 의미였으나 베셰크는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럼 이제 제가 왜 귀하를 구하고 싶어 했는지 알겠군요.]베셰크는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저 해산물의 밥이 되기에는, 귀하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불태워진 재가 되기에도, 전쟁광이 쓰다 버릴 칼이 되기에도 아깝지요. 귀하의 재능은, 인류의 모든 영웅들의 재능은 신이 아닌 인류를 위해 영원히 활용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대놓고 말했는데도 알아먹질 못하는군.”
아이작은 좀 더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칼을 한 번 더 휘둘렀다. 이번에는 카훌린에 검기까지 듬뿍 담았다.
성검에 담긴 검기가 베셰크의 몸뚱이를 단숨에 찢었다. 베셰크는 잔해조차 남기지 않고 밤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그제야 한숨 섞인 탄식이 바람결에 섞여 들려왔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저 혼돈이란 말인가?]그러나 그의 존재감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아이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카만 밤하늘에 별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별들은 하늘에 한 땀 한 땀 눈동자를 수놓고, 조각나는 구름과 바람이 망토 자락을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밤을 굽어보는 망자가 무한한 시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영원이 어항 속의 어린 금붕어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불멸의 왕이었다. 저승을 정복한 황제였다. 신을 비웃는 신이었다.
단지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산 자들은 질식할 것 같은 아득한 영원의 시간을 느꼈다.
***
베셰크가 장악한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죽음을 보았다.
누군가는 칼에 찔려죽고, 누군가는 모래 구덩이에 빠져 질식사했다. 누군가는 또 얼어붙은 채 썩지도 못하고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렀다.
아이작 또한 자신의 최후를 응시했다.
아이작은 새카만 어둠에 휩싸인 자신의 몸뚱이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뼈마디는 어디 갔는지 골격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고, 그 얇은 가죽 안에 쉴 새 없이 출렁거리며 빠져나오려는 혼돈만이 보였다.
그러다 마침내, 아이작의 왼쪽 눈부터 시작해 기이한 것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생물도, 사물도, 기체도 아니다. 그저 균열이었다.
세상을 찢고 갈라놓는 균열. 단지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한 부분을 침식하고 잡아먹었다. 영원히 복구되지 않을 흔적을 남기면서 아이작의 몸을 뒤덮었다.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을 것처럼.
그것은 범람하는 혼돈이었다. 아이작을 갈가리 찢어놓은 촉수는 그 작은 구멍을 시작으로 이 세상을 향한 침식을 시작했다. 오직 영원히 사는 존재들만이 밀려 나오는 공허를 응시하며 끔찍한 영원을 대비할 뿐이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허억……!”
아이작은 휘청거리며 얼굴을 틀어쥐었다. 환상에 불과했지만 짧게나마 자신의 몸이 찢어지며 촉수가 튀어나오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아니, 통증이 아니었다. 아이작의 왼쪽 눈은 ‘혼돈의 눈’을 발동시키지 않았음에도 촉수가 스멀거리며 기어 나오고 있었다.
아이작은 그 촉수를 쥐어뜯을 듯 움켜쥐며 다그쳤다.
‘들어가!’
그제야 촉수는 순응하며 몸 안쪽으로 사라졌다.
아이작은 누군가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까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모두들 자신의 죽음에 대한 환상에 시달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심지어 소란을 듣고 달려 나왔던 투할린과 에델레드 조차 쓰러져 있었다.
아이작은 이대로 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 칼을 꽉 움켜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 순간, 아이작의 머리 위로 새하얀 섬광이 뻗어 나왔다.
‘파수자의 등대’를 베셰크에 맞서 발동한 순간, 주변의 어둠이 밀려났다. 빛의 법전이 정한 질서가 세상에 다시 고정되고, ‘불사’라는 부정한 것이 깨져나갔다.
그러나 신에 맞설 정도는 아니었다. 아이작은 단지 베셰크의 어둠에 맞선 것만으로도 머리가 깨져 나갈 듯한 통증을 느꼈다. 머릿속이 불타오르다 못해 눈마저 타들어 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충분했다.
“……천둥 장인이시여!”
아이작이 환각을 깨뜨린 덕분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투할린이 망치로 땅을 내려쳤다.
지평선까지 뒤흔드는 맹렬한 굉음이 대지의 거죽을 뒤집으며 터져 나왔다. 심장을 울리는 폭음이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정신을 깨웠다.
강력한 열기와 피가 모두의 몸 안에 들끓었다. 투할린의 두 눈은 용광로의 주홍빛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 그의 피부 자체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쇳덩이 같았다.
지금 이 순간, 투할린에게 명천사 천둥 장인이 임해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다.
“엘릴이시여, 당신의 전장이…… 이곳에 있습니다!”
혀를 깨무는 통증으로 깨어난 에델레드가 크게 외쳤다. 그가 손에 든 칼드부흐를 중심으로, 마치 나무가 자라나듯 연녹색의 갑옷이 자라나 에델레드의 몸을 서서히 감싸기 시작했다. 싱그러운 나무의 향기와 불어오는 바람이 기사들의 정신을 각성시켰다.
에델레드는 사자 모양의 투구를 쓴 채, 불멸의 어둠을 정면으로, 오만하게 응시했다.
에델레드에게는 명천사 사자 기사가 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