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성배기사 (6)
[성배기사로의 전직을 진행합니다.] [신들이 당신의 숭고한 여정을 지켜봅니다.] [‘숭고한 여정’ 특전이 부여됩니다.] [신체 능력이 30% 상승합니다.] [신앙 능력이 30% 상승합니다.] [난관에 처할수록 특전의 효과가 강화됩니다.]아이작이 성배기사로 전직한 순간 알림들이 줄줄이 떴다.
아이작은 신체와 신앙 능력 30% 상승 효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전직한 것만으로도 1/3은 더 강해진 셈이다. 심지어 난관에 처하면 특전이 강해진다고 했으니, 이것은 최소치에 불과했다.
‘원래 이 정도는 아닌 걸로 아는데…… 분열 예식 때문인 모양이군.’
게임에서도 구하기 힘든 EX급 성물이라 버프의 효과도 큰 모양이다. 여기서 성물을 찾으면 찾을수록 그 효과도 중첩되어 강해질 테니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 뭘 할 생각인가, 우리 성배기사?”
아이작에게 성기사 임명식을 마친 뒤, 로튼해머와 브리엔트 성기사단은 본거지로 돌아갔다. 남은 것은 게벨과 이솔데뿐이었다.
아이작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근처를 돌아보면서 북쪽으로 갈까 합니다.”
“북부? 엘릴 왕국으로 가는 것도 좋을 텐데.”
성배기사의 기원은 엘릴 왕국에서 시작되었다. 성배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붉은 성배 클럽’이 훔쳐간 엘릴의 심장에 대한 은유다.
패왕 엘릴의 승천 후, 그 후계를 이은 왕들은 무희가 훔쳐 간 성배, ‘엘릴의 심장’을 되찾아오는 것에 집착했다. 신앙을 위해서든 영광을 위해서든 많은 성배기사들이 성배를 찾아 여정을 떠났지만, 무희는 사람들 속에 숨어 지내는 은밀한 종교가 된 상태였고, 결국 성배는 되찾지 못했다.
하지만 여정을 떠난 성배기사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수한 업적과 전설을 남겼다. 이제 성배는 단순히 하나의 성물을 가리키는 것을 넘어 신앙의 이상향쯤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빛의 법전에서도 성배기사를 우대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성배기사를 아직도 가장 크게 후원하는 곳도 엘릴 왕국이고, 유명한 성배기사들도 주로 그곳에서 배출되었기 때문에 게벨이 추천하는 것이었다.
“저도 그쪽을 생각해보긴 했는데, 뭐라도 들고 방문해야 좀 더 대우받지 않겠습니까?”
사실 아이작이 가진 ‘분열 예식’ 성물은 붉은 성배 클럽의 성물이지만, 동시에 엘릴 교단의 성물이기도 하다. 심지어 무희가 엘릴의 가슴을 째고 심장을 훔쳐 갈 때 쓴 칼이 바로 이 칼이다.
신의 피가 묻은 물건이니 다른 성물이고 자시고 아이작이 이 칼을 들고 가서 정체를 밝히기만 한다면 정말 성배라도 찾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겠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보상은 잠깐이야. 어차피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아이작에게 중요한 것은 2년 뒤 있을 여명군에서 충분히 한자리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것. 그걸 위해서라면 금전적인 보상보다는 분열 예식을 직접 사용하는 것이 나았다.
“북쪽에 성물이 있다고 로튼해머 단장님이 얘기해 주시더군요. 우선 그곳을 뒤져보려고 합니다.”
“그렇군.”
사실 로튼해머가 해준 말은 아니고, 아이작이 미리 알고 있는 정보였다. 지금 이 수도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성물이기도 했다.
아이작의 예상대로라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이니 방해가 될 만한 놈들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정보는 여명군이 시작될 무렵의 정보니까 완전히 일치하진 않겠지만…….’
게벨은 잠시 길게 한숨을 내뱉더니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아이작은 문득 게벨이 잠깐 동안에 갑자기 늙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미 나름대로 다 준비가 된 것 같으니 내가 더 조언해줄 필요가 없겠구나.”
“그동안 도움을 주신 것만으로도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니지, 이거 하나만 더 챙겨가라.”
게벨은 수도복 안에 입고 있던 가슴받이를 벗었다. 정강이받이와 벨트까지도 풀어서 아이작에게 넘겨주었다. 아이작은 당황해서 거절하려고 했지만 게벨은 완고하게 내밀었다.
“전부 성기사 장비들이다. 낡고 안에 깃들어있던 기적들도 마모되어서 사라졌지만, 그래도 쓸만할 거다.”
“아니, 이런 것까지는 필요 없는데…….”
“널 위해서가 아니라 성기사들의 명예를 위해서다. 성배기사란 놈이 거렁뱅이처럼 돌아다니면 정신병자 취급받을 테니 최소한의 갑옷은 갖춰 입어야지.”
게벨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복장이 신분을 보증해 주는 세상이다. 로튼해머에게서 성기사임을 인정받은 증표를 받긴 했지만 일일이 다 확인시켜 줄 순 없다. 게벨은 아이작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갑옷들을 억지로 씌웠다.
아이작은 체구 차를 고려하면 그에겐 꽤 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게벨의 몸에 딱 맞아 보이던 갑옷들은 아이작의 몸에 닿은 순간 그 이음새들이 수축하며 아이작 몸에 바싹 밀착했다.
처음부터 맞춤 제작된 것처럼.
“딱 맞지? 그 기능은 기적이 아니라 세상의 화로 장인들이 손댄 거라 사라지지 않을 거다. 좋은 칼도 한 자루 있으면 좋겠다만…….”
아이작이 툭하면 검을 부숴 먹기 때문에 남은 검이 없었다. 물론 분열 예식도 정말로 ‘좋은’ 검이지만, 그건 함부로 꺼내 들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제 검을 빌려드리죠.”
그때 이솔데가 나서더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심판의 검’을 꺼내 들었다.
아이작도 게벨도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단심문관 장비 아닙니까?”
“분실했다고 하죠. 그리고 드리는 게 아니라 빌려드리는 거예요.”
이솔데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성배기사라면 언젠가 성유물을 반납하기 위해 교단으로 돌아오시겠지요. 그러면 언젠가 다시 만날 날도 올 겁니다. 그때라면 아마 이 검보다 더 좋은 검도 가지고 계실 테니, 그때 돌려주시면 됩니다.”
심판의 검이라면 이미 게임 안에서도 중상급에 속한다. 그걸 대체할 정도의 검이라면 아이작이 꽤나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이름을 날릴 성배기사가 맨손으로 돌아다니게 할 순 없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아이작은 게벨 때와 달리 거절하지 않고 넙죽 받아들였다. 갑옷은 그다지 욕심이 없었지만, 심판의 검은 정말 탐나는 물건이었던 탓이다. 그 자체로 교단의 높은 사람임을 인증하는 장비이기도 했고. 만약 교단과 문제가 생긴다면 심판의 검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때 이솔데가 아이작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게벨 씨는 어떻게 하겠다고 하시던가요?”
아이작은 이솔데의 제안을 떠올렸다. 게벨이 원한다면 성기사로 복직시켜 명예를 되찾아 줄 수도 있다던 제안. 아이작도 그것 때문에 게벨과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게벨은 제안을 거절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게벨 씨는 아발란체 성기사단에서 탈퇴하고 싶은 생각이 없으십니다.”
“……그렇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솔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게벨이 배교자의 멍에를 벗는다는 것은 아발란체 성기사단이 배교자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게벨이 더 이상 그 조직에 속하지 않고, 탈퇴했음을 증언해야 한다.
하지만 게벨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아발란체 성기사단은 그저 무고한 희생자였으니까.
“뭐, 언젠가는 게벨 씨의 억울한 사정도 밝혀지겠지요. 아무리 숨어지낸다 해도 두각을 드러낼 사람이니.”
이솔데 입장에서는 노골적으로 교단의 판단에 맞설 수 없었다. 그러니 저런 식으로 중립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작도 그녀의 말에 동감했다.
애초에 게벨이 계속 수도원에 있을 것이라고는 아이작도 생각하지 않았다.
게벨은 여명군이 시작될 때 아이작의 곁에 있게 될 테니까.
***
이솔데는 보고를 위해 교단으로 돌아가고, 게벨은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게벨에게는 수도사들에 대한 작별 인사도 대신 부탁했다.
예정에 없이 수도원을 나서게 되었지만 갑작스럽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이미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
이솔데가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이미 아이작은 떠날 준비를 마쳐 놓은 상태였다. 그녀가 방문한 이유는 자신과 상관없었지만, 덕분에 이렇게 바로 훌쩍 떠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개인 소지품은 많지도 않았고, 포식 능력 때문에 식량도 준비할 필요 없었다.
‘드디어 떠나는군.’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오긴 했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자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지나치게 허전함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했다. 마침 그에게 이정표가 되어 줄 새로운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성배기사가 되면서 찾아온 변화는 버프만이 아니었다.
[파수자의 등대(EX)의 조건이 만족되어 활성화되었습니다.]아이작은 성배기사로 전직한 뒤 나타났던 메시지 하나를 다시 떠올렸다.
도무지 활성화 조건을 알 수 없어서 그냥 그림의 떡으로 남겨 두고 있던 파수자의 등대.
칼센 밀터의 궁극기이기도 했던 그 스킬이 마침내 활성화된 것이다.
‘헤인켈의 예를 보면 포식으로는 선천적인 능력만을 습득할 수 있는데…… 칼센이 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성체였다는 뜻이겠군.’
대체 성체씩이나 되는 양반이 왜 배교를 저질렀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파수자의 등대는 빛의 법전에서도 최상위급 기적이다. 칼센의 탄생에 적어도 천사나 신의 의지가 개입했다는 뜻이다.
‘뭐…… 중요한 건 아니지.’
중요한건 ‘바로 그 칼센’의 궁극기가 자신의 몸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게임 속에서 파수자의 등대는 아주 강력한 방어 스킬로 묘사된다.
일정 시간 동안 무적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고, 주변에 강력한 버프 능력을 부여한다고.
하지만 설정상 묘사되는 것은 다르다.
‘파수자는 혼란으로 가득 찬 우주에서 질서의 기준을 잡는 자이며, 등대는 어둠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유일한 이정표이자 변하지 않는 존재를 은유한다. 파수자의 등대는 혼란과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바른 것과 그른 것을 골라주는 무오(無誤)한 존재이며…… 뭐 그렇게 묘사되던 것 같은데.’
너무 거창한 설명이라 대체 어떻게 구현될지조차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아이작은 모처럼 얻은 궁극기를 맥 빠지게 사용하는 것은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효과도 모른 채 사용했다가 곤란에 빠지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작은 몸을 가다듬은 뒤, 파수자의 등대 능력을 발동시켰다.
이내 그의 눈이 밝은 섬광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성기사단이 휩쓸고 지나간 계곡은 을씨년스러웠다. 민간인 피해를 염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곳곳이 기적으로 그을리고 박살 난 바위들로 가득했다.
계곡에 안개가 스며들 무렵, 희뿌연 안개 속에서 사냥꾼 복장을 한 세 사람이 등장했다.
2m에 이르는 장신의 사냥꾼 두 명과 그 가슴팍에 올까 말까 한 작은 체구의 소녀였다.
사냥꾼들은 성기사들이 뒤집어놓은 이 계곡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쓰며 사방을 경계했지만, 소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가 찾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녀는 혈흔을 찾고 있었다.
이 계곡에서 뱀파이어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혈흔은 찾을 수 없었다. 당연했다. 뱀파이어의 피는 해가 뜨면 모두 먼지가 되어서 남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찾고 있는 혈흔은 특별했다. 지워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문득 소녀는 계곡 한복판에서 멈춰 섰다.
그녀는 바닥을 더듬더듬 더듬다가 이내 무언가를 발견한 듯 바닥에 손을 꽂아 넣었다. 손은 바닥을 두드리는 대신 마치 액체처럼 퍼지면서 사방에 붉은 피를 흩뿌렸다. 잠시 후 손을 뽑아 들자, 상처 하나 없는 손이 나타났다.
그 손에는 짧은 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검은 이내 형태를 잃고 흐물흐물 무너지다가 소녀의 손을 타고 다시 흡수되었다.
“엘릴의 피다. 확실하군. 여기서 분열 예식이 적출됐다.”
사냥꾼들 사이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설마 헤인켈 공작님께서…….”
“아니. 백부께서는 돌아가신 것 같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군. 다행히 아버지 걱정처럼 배교를 저지른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다시 무언가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검을 찾을 때처럼 손을 땅에 박아넣기를 반복하던 그녀는 이내 곧 고개를 갸웃거리며 멈춰 섰다.
“뭐지?”
소녀는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뭔가 발견하셨습니까?”
“시체가 끌려가거나 재가 된 게 아니다. 먹혔어. 이 자리에서.”